기자 : 서울에 돌아오셨는데, 월드컵 보러 브라질에 가실 예정은 있으십니까? 한국팀의 월드컵 예상 성적은 어떻게 보시나요?
이장수 : 너무 멀어서 브라질까지는 못 갈 듯 합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국팀이 조별예선도 통과하고 8강에도 도달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최근의 한국팀이 보여주는 모습이 좀 어려워 보이고, 기량면에서 볼때에도 2002 월드컵에서 보여주었던 그 팀과 약간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 내가 한국팀 조별예선 상대를 연구해 본 바로는, 첫경기 러시아전이 무척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경기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예선을 돌파할지 안할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러시아에게 승리할 경우, 토너먼트 진출이 가능하겠지만, 만약 비기거나 질 경우에는 조별예선 통과가 무척 어려울 것입니다. (작두타셨네)
기자 : 한국 축구 선수들의 '해외파'의 영향력은 여전히 무척 큽니다. 기초가 무척 중요해 보입니다.
이장수 : 현재 유럽에서 뛰고 있는 한국 선수들은 수십명이 넘고, 아시아 대륙에서 뛰는 선수나 미국 등 다른 국가들을 포함한다면, 백여명이 넘는 한국 국적 선수들이 해외에서 뛰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이런 차이는 무척 큽니다. 쉽게 국가대표간의 성적 혹은 중국 슈퍼리그의 성적 등을 비교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해외파의 수는 일종의 국가대표의 기초를 드러내는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클럽 감독에 부임해 있을때는 많은 선수들에게 해외에서 나가서 뛰길 권유하였었습니다. 만약 나갈 수 있게 된다면, 구단은 저에게 문의하여 그들을 보내주었습니다. 선수들에게도 이런 임무를 부담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자 : 현재 중국국내에 좋은 선수들은 모두 당신의 친정팀이기도 한 광저우 헝다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현재도 가오린, 순시앙, 정즈 같은 선수들을 주시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보기에 저 선수들은 어떻습니까?
이장수 : 지금도 여전히 자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선수들은 여전히 무척 우수한 선수들이고, 이 선수들은 어떻게 하면 축구 선수로서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정즈는 무척 뛰어난 프로선수입니다. 장린펑 역시 제가 있던 때에 이적해 온 선수입니다. 이런 선수들은 중국에서 모두 우수한 선수들이고, 팀플레이도 무척 뛰어납니다. 제가 막 중국에 왔을때보다도 그들은 더욱 더 프로정신이 투철한 선수로 성장하였습니다.
기자 : 최근 몇년동안 중국 슈퍼리그팀을 이끄셨고, 이장수 감독이 떠난 후에 모든 팀들이 안정적으로 전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베이징 궈안 같은 경우, 이장수 감독이 떠난 후로 매번 빅 3 안에 들고 있고, 광저우 헝다는 굳이 따로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장수 : 이것은 제가 영입해 온 선수들의 생각과 연관이 있지 않나 합니다. 예를 들어 베이징 궈안에 있던 시절에, 당시에 내우외환에 몰려있던 상황에서, 저는 베이징 궈안 구단주에게 26세 이하의 선수들을 영입할 것을 요청했었습니다. 이렇게 해야 5년 안에 선수들이 모두 팀의 일원으로 성장하여 굳어지고, 1,2년 내에 선수들이 성숙해지면 축구팀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광저우 헝다에 부임했을 당시에도 저는 젊은 선수들의 영입을 요청하였었고, 이렇게 해야 몇년동안 팀이 흔들리지 않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제가 팀을 떠난 후, 2~3년 동안은 모두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기자 : 이제 회상할 수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광저우 헝다에 부임하게 되었습니까?
이장수 : 이 이야기는 참 재미있습니다. 당시에 저는 베이징에서 서울로 돌아가 있었을 때었습니다. 어떤 베이징 친구가 저에게 묻기를 "광저우에 가서 감독하는 건 어때?" 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광저우는 중국 갑급리그에 있었고, 중국 갑급리그팀들은 별다른 흥미가 없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중국 슈퍼리그 팀들을 원해서 집에 돌아온 후에도 중국 갑급팀들에게는 가지 않겠다고 했었습니다. 다음날이 되자 베이징 친구가 전화와서 말하기를 일단 광저우에 가서 이야기를 해보고 결정을 해보자고 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갑급팀에는 관심없다고 가지 않았습니다. 3일째가 되자 베이징 친구가 또 전화와서 말하기를 "그럼 이렇게 하자. 나는 모두들에게 말해길 너가 올 수 있다고 했었다. 넌 일단 와서 이야기를 해줘야 내가 체면이 선다. 너가 밥이라도 먹고 가야 내가 체면이 선다고." 제가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서 말하길, 그럼 내가 베이징에 골프치러 간다고 할테니, 너랑 구단 스탭이랑 같이 베이징에 와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그렇게 해서 갔더니 나왔던 사람이 광저우 헝다의 사장 류융줘였습니다. 그는 상세하게 구단의 발전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고, 저에게 구단이 저에게 감독직을 인수받기를 원했다고 하고, 풍부한 자금을 운용할 수 있음을 약속했습니다. 또한 저에게 구단 관리와 선수단 지도 전권을 주고 저를 지지하겠으며 긴 시간동안의 구단 발전에 대한 원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자 저도 그들에 대해서 마음이 움직였고, 광저우로 가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도 전 광저우 헝다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기자 : 그럼 당신이 광저우에 가서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 을 만났을 때는 어땠습니까?
이장수 : 전 그때 헝다가 뭔지 잘 몰랐습니다. 훗날 광저우에 들어가 쉬자인을 만났을때, 전 비로소 겨우 헝다가 들어온 것을 알았습니다. 쉬자인은 무척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 역시 말하길 그의 계산에 제가 감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고 합니다. 저랑 그가 만나서 이야기 한 것은 무척 간단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훈련이나 경기 모두 그는 저를 간섭하지 않고, 모두 저에게 맡긴다고 하였습니다. 무척 명쾌했고, 그는 사람을 관리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광저우에 가고 있을 당시 저는 필경 중국 갑급리그 팀이라 여러면에서 부족할 것으로 생각하고 주저했었는데, 쉬자인의 이런 신임이 저로 하여금 감독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제 생각에 믿음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기자 : 이장수 감독이 생각하기에 광저우 헝다에 있던 몇년은 어떠셨습니까.
이장수 : 여전히 무척 맘에 듭니다. 제가 광저우 헝다 프런트에게 4년을 약속했는데, 계약 당시에 2년 안에 중국 슈퍼리그에 오르고 4년 안에 우승을 노리기로 했었는데, 이건 무척 여유가 있는 약속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1년만에 중국 슈퍼리그로 승격하였고, 2년만에 중국 슈퍼리그를 우승하였습니다.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시간을 모두 앞당겼고, 원만하게 일이 잘 풀렸습니다. 헝다 역시 무척 프로다웠고, 저에게 모든 관리를 맡겼으며, 어떤 일에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말을 했던 것들을 모두 지켰고 환경도 무척 좋았습니다. 비록 제가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지만, 저는 무척 만족하였습니다.
기자 : 어떻게 계약을 해지하게 되었습니까?
이장수 : 그 당시에 광저우 헝다는 이미 리피를 불러놓았었습니다. 후에 제가 면담을 했을 때, 제 기억에 저를 데려왔던 류융줘는 저랑 같이 있으면서도, 한마디도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얼굴에는 가득하게 곤란하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떤 말도 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어떤 말을 하지 않더라도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프로 감독이고, 제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일종의 다공자이 (광동성 일대의 외지 노동자를 일컫는 말) 였습니다. 사장이 말한대로 움직여야 하고, 회사는 그렇게 움직입니다. 축구팀의 프런트 역시 동일합니다. 위에 있는 사장이 말한대로 움직여야 하고, 저같은 다공자이는 그에 복종해야 합니다.
기자 : 헝다가 이렇게 성적을 내고 있을 때 물러나야 했을 때, 이장수 감독의 심정은 어떠셨습니까?
이장수 : 비록 제가 이렇게 물러나야 했지만, 저는 무척 유쾌했습니다. 왜냐면 제가 감독으로 있던 몇년 동안 헝다의 일하는 환경은 무척 훌륭했습니다. 저는 돈의 크고 작음에 신경쓰지 않았고, 제가 신경썼던 것은 제가 하는 일을 얼마나 존중받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었는데, 헝다는 이런 저를 충분히 존중해 주었습니다. 비록 감독을 교체했을 때, 이것은 프런트의 필요로 의한 것이었지만, 이것은 투자자의 입장에서 봤을때는 정상적인 일이었습니다.
기자 : 베이징 궈안에서 물러났을때의 감정이랑은 다른 것 같습니다. 베이징에서 경질당할 당시에는 우승까지 아주 약간 뒤져있던 상황이었는데 말입니다. (타마 주 : 2009년 베이징 궈안에서 경질될 당시 1위와 승점 2점차 3위를 달리고 있었고 우승경쟁을 하기까지 시간이 남아있었는데 갑자기 경질되어 중국 축구계에 큰 충격을 주었었습니다.)
이장수 : 베이징 궈안에 있었을때는, 처음 시작할때부터 우승을 위한 준비를 했어야 했고, 창춘 야타이에게 우승을 내줬던 때에는, 우리 팀은 고작 승점 1점차였습니다. 2년째에는 많은 노력을 했었고, 그 당시에는 1등에도 올라갔었습니다만, 갑작스럽게 경질되었습니다. 저 역시 그들이 왜 저를 경질시켰는지 듣지 못했었습니다.
기자 : 그 당시에 경질될것이란 것을 알아차리셨습니까?
이장수 : 사실 저는 그렇게 예민한 사람은 못 됩니다 (웃음)
기자 : 당신이 지휘봉을 잡았던 여러 팀들을 종합해서 봤을때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이장수 : 저는 중국의 여러 팀을 돌았습니다만, 맨 처음에 갔던 팀을 제외하고는 모두 좋았습니다. 단지 칭다오에 있던 2년은, 친닝과 함께하여 모든 것이 다 좋았고 모든것이 다 잘 풀렸었습니다. 베이징이나 광저우 역시 좋았습니다.
기자 : 무리키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봅시다. 무리키가 광저우 헝다를 떠난다는 루머가 있는데요.
이장수 : 에, 무리키를 데려올 당시에 저는 브라질에서 그를 찾았습니다. 브라질에서 그의 경기를 3차례 지켜봤는데, 그를 꼼꼼하게 지켜보고 전체적인 부분을 관찰하여 결국 그를 선택해서 왔는데, 그도 그다지 싼건 아니었지만, 콘카는 정말 비쌌습니다. 최종적으로 프런트는 콘카 역시 광저우 헝다로 데려왔습니다. 제가 광저우 헝다에서 그만둘 당시에, 어떤 사람이 말하길 무리키 역시 당신 따라서 그만두려고 했다고 합니다. 가능성 있다고 봅니다.
저 브라질 사람에게도 아마 감정이라는게 있는거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웃음)
기자 : 이장수 감독이 어떤 팀을 감독하던 간에 결과는 항상 좋게 나왔습니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장수 : 내 생각에 축구란 것은 무척 큰 집단입니다. 축구팀, 감독, 선수들, 투자자, 치우미, 대중매체 등 저 다양한 분야의 각 사람이 각 분야에서 추가되어야 비로소 축구팀은 더욱 좋아지고 강해집니다. 무언가 하나가 부족해지면 안됩니다. 이것은 축구팀만의 상황이 아니라, 축구를 제외한 다른 운동분야에서도 동일합니다. 우리가 속해있는 여러 큰 집단에서는 반드시 각각의 사람들이 합심하여 재능을 발휘해야 비로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사회나, 청소년들에게도 이런 것들이 적용이 됩니다. 제가 치우미들이나 미디어들에 대하는 것도 이런 개념에서 나옵니다. 모두가 축구를 위해서 서로 존중을 해야 하고, 당연하게도 서로가 무언가 특별나게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기자 : 베이징 궈안 치우미들이나 광저우 헝다 치우미들에게 있어서 당신은 항상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장수 : 그렇습니다. 베이징 궈안 프런트가 저를 경질하기로 결정한 날 밤에, 저는 그렇게 속이 편치는 못했습니다. 비록 제가 많은 팀을 경험해 보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경질당해서, 무척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저는 친구와 함께 주점에 갔습니다. 평소에는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지 않아서 1년에 1,2번 마실까 말까였는데, 경질당한 그날 밤에 저는 3시까지 술을 마셨었습니다. 완전히 취해서 궈안호텔에 돌아갈 당시에, 지하에 수십명의 치우미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이미 새벽 3시였었는데 말입니다. 저는 무척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제가 취해있던 터라, 말을 하려고 해도 말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저를 보며 환호성을 지를 때, 저는 겨우 "난 술먹었어요" 라고 말하며 호텔로 올라갔었습니다. 이후 서울로 돌아갈때에도, 비행장에서 몇몇 치우미들이 저를 배웅해 주었고, 같이 눈물을 흘려 주었습니다. 저 역시 무척 감동하였습니다. 저와 치우미들은 서로 존중해 주었었고, 훗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기자 :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지휘봉을 잡았을 때 언론매체에게 소송을 건 일이 있었습니다.
이장수 : 네, 언론매체들도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충칭리판에서 감독을 할 당시에, 한 언론이 제가 뒷돈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저 뿐만이 아니라 제 국가와 구단에 있어서도 엄청난 위해를 끼칠 내용이었습니다. 그당시에 국내외적으로 파장이 매우 컸었는데, 법원의 판결에 따라 제가 승리하였고 20만위안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돈을 한푼도 가지지 않고 충칭리판의 유소년들을 위해 사용했었습니다.
기자 : 이장수 감독이 지휘를 할 때, 모든 방면에 있어서 높은 수준을 요구한다고 하던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이장수 : 아니, 절대 아닙니다. 충칭리판의 경우는 리그에서 잔류를 원하는 수준이었고, 칭다오는 갑A급 수준이었습니다. 베이징 궈안은 리그 1위를 하는 것이 목표였고, 광저우 헝다는 우승을 원했습니다. 다양한 수준을 가진 팀을 모두 만나보았습니다. 감독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도전정신이 필요합니다. 남들이 보는 것과 팀을 다르게 보아야 만이 비로소 팀의 수준을 볼 수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급여는 너무 낮게 받지는 않습니다 (웃음) 사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감독의 권한과 환경입니다. 구단주의 간섭이 많은지 그렇지 않은지, 그들이 내 일에 대해 간섭하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칭다오에서 감독을 할때 저는 무척 편안하고 쾌활하게 감독직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그들은 모두 저를 지지해 주었습니다. 제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팀의 수준이 높고 낮음이 아니라, 일하는 환경이 어떠한지, 그리고 저를 존중해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기자 : 이장수 감독은 매번 클럽 감독만 맡아 하셨는데, 혹시 국대 감독은 생각이 없으십니까?
이장수 : 아직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직업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국대감독보다는 클럽감독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매 주마다 경기가 있고, 준비기간마다 선수들을 붙잡아 놓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대표 감독은 만약 클럽 감독의 경험을 기초로 한다면, 써먹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일년 동안 몇차례 만날 일이 없는 반면, 클럽 팀은 매 주마다 경기가 있고, 경기 외에도 매일 훈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래야 도전정신도 생깁니다. 국외에도 역시 동일합니다. 일단 클럽팀 감독을 잘 수행해 보아야, 비로소 국가대표 감독도 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저는 국가대표 감독을 맡지 않게 된지 너무 오래 되었습니다. 또한 국가대표 감독은 제가 좋아하는 대로 훈련을 하고 클럽팀에서 처럼 다양한 부분의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저는 역시 클럽팀 감독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기자 : 한국 클럽들이 이장수 감독을 찾은 적은 있습니까?
이장수 : 충칭에 있을 때와 칭다오에 있을 때 저를 찾은 적은 있습니다. 당시에는 클럽팀 감독을 해달라고 찾은 것이 아니라 국가대표 감독을 하지 않겠냐고 찾았던 건데, 저는 그다지 달갑지 않아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기자 : 중국 국대에서 찾지는 않았습니까?
이장수 : 중국 국대에서 저를 찾은 적은 없었고, 저 역시 국가대표를 맡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신문지상에서 저의 이름이 오르내린 적이 있었지만, 모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은 아닙니다. 제 생각에 중국 축협에서는 이미 사람을 찾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기자 : 이장수 감독의 생활 습관을 보면 담배도 피지 않고 술도 잘 마시지 않습니다.
이장수 : 그렇습니다. 제 스스로의 요구 조건은 무척 엄격합니다. 제가 중국에서 감독을 할 때,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한국의 형상을 대표하는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신문에서 인터뷰를 할때, 내가 어떠어떠한 이미지라고 나타내면, 그것은 그대로 한국이 어떠어떠한 이미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기사에 '한국' 이라는 글자가 앞에 새겨지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 술을 즐겨 마시고 담배를 필 수 있겠습니까. 제 생각에 다른 나라에서 일할때는 스스로 자기 몸가짐을 단속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충칭에서나 칭다오, 베이징, 광저우 등에 있을 때 클럽 수뇌부들의 관심은 늘 높았고, 큰 길을 갈 때 저를 알아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내가 나의 조국의 형상을 대표한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엄격해지게 됩니다.
기자 : 선수들에게 무척 엄격하다고 들었는데, 선수들에게 욕도 하십니까?
이장수 : 맞습니다. 그런 적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선수들을 바라봤습니다. 선수들에게 희망이 있고, 충분히 자신의 능력을 높일 수 있다고 보았다면, 그들에게 욕을 해서라도 바로잡고 싶었습니다. 반면 욕을 해도 소용없을 것 같은 선수들에게는 욕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떤 팀을 가더라도 늘 이런 식으로 선수들을 대했습니다.
첫댓글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