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교구 예비 신학생 고2 피정 때의 일이다.
내가 맡은 프로그램은
학생들과 만나 부담없이 질의 응답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시간에 맞추어 강당에
들어갔을 때,
나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벽에 붙어 있는 그림들이었다.
그 그림들은 바로 전
시간에 가졌던
[기성 사제를 어떻게 보는가...]
라는 주제를 갖고
그룹토의를 한 결과를
간단하게 보고 형식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그림의
내용들은
수단을 입은 사제가 한
손에는 돈 뭉치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골프채를
휘두르면서
무척 유쾌하면서도 혐오감을
주는 징그러운 얼굴표정을 한 모습이었다!
또 다른 그룹에서 나온
그림은
신학생때는 청수(淸秀)하고
해맑은 얼굴이...
사제가 된 후 연륜이 쌓여
가면서 돈에 눈이 어두어진 얼굴로서
벌어진 입으로 돈다발이
들어가는 모습이었는데...
그 사제의 말로(末路)는
추하고 슬픈 모습으로 끝난다는 내용이었다!
그
때,
어린 학생들
앞에서...
그것도 사제직을 지망하는
예비 신학생들 앞에서
당한 무안은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결국 90분이라는 긴
시간을 통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또 그렇게 되고자 노력하는
사제들을 소개하면서,
대부분의 사제들이 각자의
어려움과 고통을 참아 가면서
주님의 영광과 백성인
교우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세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많은 사제들이
호의호식하면서 돈 방석에 앉아 있지 않음을 역설했지만...
뒷맛이 개운치 못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1시간 30분 동안,
그들이 갖고 있던
부정적인 기성 사제상이 어느 정도 교정되었는지
나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사제들을 바라보는
눈들이
계층과 나이를 불문하고
이처럼 날카롭고 비판적이라는 점이
사제 생활 1 년
남짓한 나로서는 무척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나이 어린 예비
신학생들이
기성 사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면에 대해서는
일차적으로 사제들이 책임을
져야 하며,
두번 째로 사제 성소를
키워 주는 부모와 주위 사람들이 사제직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실도
함께 지적하고 싶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사제도 사람들 가운데서
간선된 부족한 인간이다.
결코,
천상세계에서 살다가 싫증을
느낀 나머지 날개를 떼어버린 천사가 아닌,
죄 많은 인간 중에서 뽑힌
죄인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래서 세인들이 안락과
쾌락을 즐길 때,
뽑힌 죄인들도 그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며,
이 점을 학생들에게도 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제도 다른 인간들과 함께
주님 앞에 부족한 죄인인 동시에,
그분의 은총과 자비가
필요한 죄인임을 일깨워 주어야 하며...
마지막 날에는
사제 자신의 권위와 직분에
호소할 아무런 권리도 없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나서야
하는 평범한 죄인임을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
사제는 제단의 봉사자로
하느님으로 부터 성소를 받아 뽑혔다는 사실 외에는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
그리고 이 사회를 정화하고
평화와 안녕을 가져다 줄 어떤 묘책도
가지고 있지 않을
뿐더러...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둠의 세계를 더듬어 나갈 수밖에 없는
보통 인간임을 솔직히 알려
줄때,
그들이 갖고 있는 기성
사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수정되리라 생각된다.
사제는
매일매일, 매 주마다...
판에 박은 것 같은
단조로운 일에 직면하면서 성무 집행을 하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신원을
확인하며,
거기서 힘을 얻어
살아간다는 것도 알려 주고 싶다.
일 년에 두 번 찾아 오는
판공 때는
좁고 답답한 공간 속에서
5- 6 시간 계속되는 성사 집행 중에 겪는
자기와의 처절한 싸움을
그들은 모른다!
밤 늦게 병자성사를 청하는
환자 가족을 따라 병원 영안실에 가서
싸늘한 시신을 더듬거리며
그 영혼이 구원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사제를
그 들은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또 먼저 돌아가신 선배
사제의 영혼을 위해 연미사를 드릴 때,
뭔지 모르지만 형언할 수
없는...
착찹한 마음에 사로잡히는
사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고, 또
나는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며,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고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생활은 하느님의 사명을 위해 살고
있다! 고
겸손되이 외치는 많은
사제들을 소개해 주고 싶을 뿐이다......
-천상에서 후배 사제님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