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에콰도르의 안데스 자락, 침보라소산(해발 고도 6310m)의 빙하에서 얼음을 잘라내 시장에 판매해 60년 넘게 생계를 이어 화제가 됐던 발타사르 우슈카가 11일(현지시간)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2018년 10월 1일 EBS ‘세계테마기행’에 등장해 황인범 여행작가와 만나 대화를 나눴던 노인으로 낯 익다.
발타사르는 전날 집에서 기르던 황소한테 받혀 바닥에 쓰러지며 크게 다쳐 끝내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고인이 살았던 에콰도르 중부 침보라소주(州) 구아노 지방정부는 이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아이콘이 된 어르신이자 마지막 산악 얼음장수였던 고인의 별세를 알리게 돼 유감”이라고 밝혔다.
고인은 15세 때 아버지로부터 에콰도르에서 가장 높은 침보라소산의 얼음을 캐내 시장에 내다 파는 일을 물려 받았다. 평생 한 번도 다른 일을 갖지 않고 이 일만을 했다.
침보라소는 과거 용암을 내뿜으며 폭발한 화산이었으나 지금은 활동을 멈춘 휴화산이다. 고인은 일주일에 두 차례 침보라소산의 5200m 지점까지 올라가 만년설이 단단하게 굳어져 생긴 빙하를 삽과 곡괭이로 깨 약 20kg에 이르는 얼음 덩어리를 채집한 뒤 나귀나 말의 등에 실어 날랐다. 햇볕을 받아 녹지 않도록 건초 더미로 덮은 채 날라 리오밤바 시장에서 얼음으로 판매했다.
냉장고가 흔치 않았던 시절에는 고인처럼 침보라소산의 얼음을 캐 생계를 이어가는 이가 제법 많았다고 한다. 한때 20개가 넘는 작업 조가 동시에 이 일을 하기도 했지만 냉장고가 보급됨에 따라 침보라소산의 얼음상인들도 차츰 자취를 감추더니 어느덧 고인이 마지막으로 남았고, 그 덕에 유명인이 됐다.
고인의 삶을 주제로 한 시(詩)도 있다. 권달웅 시인의 작품 ‘마지막 얼음 장수’가 그것이다. “발타사르는 / 열다섯 살 때부터 여든까지 / 곡괭이로 얼음을 캤다 … 만년설 얼음을 캐서 파는 발타사르가 / 마지막 얼음 장수가 될 것이다.”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은 고인은 73세가 돼서야 초등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 2017년에는 그가 평생에 걸쳐 행한 작업의 인류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에콰도르 국립문화유산연구소(INPC)로부터 명예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말년에는 산에 오르는 대신 구아노 박물관의 홍보 담당으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