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미국의 J.F케네디 대통령은 (남)베트남의 공산화는 동아시아의 공산화를 초래한다는우려 때문에 (남)베트남에 미정규군을 파병함으로서 군사적 원조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64년 통킹만사건이 발생하여 Johson정부는 미군을 직접 전투에 참가시키게 되였고 1965년 (북)베트남에 폭격을 시작하게 되면서 전쟁은 본격화 되었습니다. 이때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25개국에 참전 요청을 했고 그 중 7개국이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정치적 입지가 좁았고 심지어 베트남의 구 식민종주국 프랑스도 말리는 전쟁이었고 영국의 노동당 정부 수반 해럴드 윌슨은 대놓고 이에 대한 비판을 했습니다. 이미 미국의 침략전쟁이라 규정하고 베트남 개입에 대한 비판을 모스크바에서 브레지네프와 회담하면서 했고 이는 미영관계를 급속히 악화시킵니다.
포드 대통령 당시 영국의 IMF파국을 미국이 일부러 수수방관해서 윌슨을 정치적으로 죽였다는 설도 이때 나오고 FBI국장 에드가 후버가 영국을 비롯 유럽내 모든 정치인들에 대한 비리를 조사 할 때였습니다.
아시아에서 반대한 나라중에는 필리핀이었는데 결국 미국의 억지에 굴복해 참전하게 됩니다. 이에 반해 박정희 정부는 미국과 밀접해져 당시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했기에 유일하게 자진해서 군대를 파견합니다. 한국은 1964.7.18 비전투부대인 의료지원단과 태권도 교관단 파병을 시작으로 1965년10월에는 전투부대인 청룡(해병대)부대 와 맹호사단을 1966년에 백마사단과 주월한국군사령부 예하 지원부대를 파병하였으며 베트남에서 철수하던 1973.3.23까지 8년 8개월간 연인원 32만명이 참전하여 5,000여명의 전사자와 16,000여명의 전상자 50,000여명의 고엽제피해자를 발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1964년 5월 9일 미국정부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베트남전 파병을 요청했고 뒤이어 1964년 7월 15일 베트남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지원 요청이 있어 대한민국 국회는 1964.7.31 제44회 임시국회를 열어 베트남참전안을 가결 통과시켰습니다. 이로서 우리나라는 근대역사 상 처음으로 해외파병이 시작되였습니다.
우리국군이 참전하게된 동기와 명분을 여러 가지로 설명이 가능하겠습니다만 정치적으로는 (남)베트남이 공산화 되는 것을 막고 자유수호하려는 공동방위체로서의 신의룰 준수함은 물론 우리나라가 1950년 6.25전쟁 당시 공산화를 막기 위하여 우리나라에 참전해 준 16개국에 대한 보답일 뿐 아니라, 국제적인 지위향상에도 일조가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경제상태는 세계 최하위 빈곤국가로서 기업의 해외진출은 생각지도 못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파병을 계기로 참전 기간 중 약 10억불 이란 당시로는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정부는 개발도상국 대열에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한편 군사적으로는 방위산업 육성과 장비근대화를 이루었고 우리군의 국제적 지위향상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많은 전투 경험자를 배출할 수 있었고, 독자적인 전술개발과 병법, 전술을 습득하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1966년 3월 4일 발표되었던 Brown각서에서 첫째로
군사원조로서는
1. 한국군의 현대화 장비지급
2. 참전 한국군의 일체의 경비부담
3. 해외참전 전투 수당지급
경제적으로는
1. 베트남에 건설사업 참여
2. 수출장려 및 기술원조 증가
3. 경제개발 차관 제공
4. 경부고속도로 건설지원
등을 미국으로부터 약속을 받았습니다. 종전 후 베트남전에서 철수한 국내의 각 건설업체들은 베트남에서의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때마침 석유파동으로 급격히 성장하는 중동지역에 진출함으로서 오늘의 경제기반을 조성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32만 베트남참전 용사들은 국가경제발전의 초석이 되었으며 세계평화의 수호군으로서 소임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특히 거의 4개 사단의 국군 전투병의 월남 파병이 우리 국방에 구멍을 뚫어 놓고 당시 북한도 심심하면 도발 청와대까지 오던 시기라 미군에게 이에 상응하는 댓가를 요구하고 그것이 우리 군에 대한 현대화작업이었답니다.
그럼 고엽제가 일으키는 질병과 거기에 따른 우리의 무지로 생긴 편견을 정리하겠습니다. 이 자료는 국군 대구병원에서 가져왔는데 당시 고엽제 자체를 모르던 우리는 여기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었다고 합니다.
베트남 전쟁기간 중 V.C(viet.cong)의 은둔지와 무기 비밀수송로로 이용되어 온 정글제거와 시계를 청소하기 위해 또 V.C 경작지 농작물 제거를 위해 1960~1971년까지 베트남국토의 15%에 해당되는 60만 에어커의 광범위한 지역에 2,000만 G/A의 고엽제(AGENT-ORANGE)를 살포하였습니다. 그 중 80%에 해당하는 1,600만 G/A의 고엽제를 한국군 작전지역에 무차별 살포하였다는 사실입니다. AGENT-ORANGE란 고엽제가 담겨져 있는 드럼통에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ORANGE 색깔띠를 둘렀다하여 붙여진 별칭인 것같습니다. 이 고엽제라는 약품속에 인류 역사상 가장 독성이 강한 물질인 DIOXIN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것은 고엽제를 만드는 화학적 과정에서 불순물로 생성된 것이지 의도적으로 첨가된 독극물이 아님을 밝혀두는 바입니다.
DIOXIN 이 얼마나 독성이 강하냐하면 치사량이 0.15g인 청산가리(Kaliumcyanid)의 1만배,비소(AS)의 3,000배에 이르는 독성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DIOXIN 1g이면 사람 2만명 을 죽일 수 있는 지구상에서 독성이 가장 강한 독극물입니다. 이것은 잘 분해되지도 않을뿐더러 용해도 되지 않아서 인체에 극히 적은량이 흡수되었다 해도 점차로 몸속에 축적되어 10년 ~ 25년이 지난 후에도 각종 암, 신경계 손상, 기형유발, 독성유전 등의 각종 후유증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베트남에서 고엽제 사용에 관한 별다른 지시나 주의사항도 없었고,특히 비행기로 공중살포시에는 모기에 물리지 않는다고 고엽제가 쏟아지는 곳을 쫓아다니면서 조금이라도 더 맞으려 했습니다. 부대 주변에서 제조작업을 하는 병사들은 고엽제 가루를 철모에 담아서 맨손으로 뿌리기도 하였습니다. 작전 기간 중에는 흐르는 물을 수통에 담아서 거기에 소독약 몇알만 넣어 마셨습니다. 이러다보니 그 고약한 DIOXIN은 우리 참전 용사들의 눈,코,입,피부 등을 통해 아무런 여과 없이 전신에 숨어 축척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피해는 국적에 관계없이 미군을 위시한 모든 나라의 장병들이 모르는 사이에 많은 량의 DIOXIN을 몸속에 축적시켜둔 채 전쟁은 끝났습니다. 적을 섬멸하기 위하여 뿌렸던 고엽제가 10~25년이 지난 후 부메랑이 되어 이와 같이 우리 노병을 죽이고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참전국 장병들은 원인 모른는 병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1978년경부터 미국에서는 사회적 문제로 발전되기 시작했습니다. 원인모를 질병이 고엽제의 후유증인 것으로 판단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일부 환자들이 미국정부와 그 다음에는 고엽제 제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고 손해배상을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미의회에서는 청문회를열어 전 주월미국 총사령관이었던 웨스트.모랜드 육군대장을 증인으로 청문회에 출석시키는 등 한때 미국의 정계는 떠들썩했으며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특히 헬기 조종사들의 경우 피해가 심했다는데 이유는 살포 비행기가 정글속의 베트공 휴대형 대공탄에 맞을 까봐 헬기가 바로 비행기의 및을 날면서 정글속을 감시하고 공격하다 보니 비행기에서 나오는 다이옥신을 바로 밪은 겁니다. 당시 헬기 조종사들은 다이옥신 가루가손등에 수북히 쌓일 때까지 조종을 해야 했답니다.
미국에서는 이처럼 요란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한민국 제5공화국 정부에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철저한 보도통제와 억압으로 (실제로 1984년 중앙일보에서 고엽제문제를 보도하였으나, 제보기자 해고시키고, 타언론사에 보도하지 못하도록 통제하였음) 독재 정권하에 있는 한국에서는 대부분 그런 사실을 모르거나 입이 막혀 참전용사들은 베트남 풍토병이이라는 원인 모를 질병에 시달리다가 수 많은 참전 군인들이 40대의 아까운 나이에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왜 자기가 죽어가는지 몰랐습니다. 병원에서 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살아보려는 본능 때문에 가산을 모두 탕진했습니다. 난치병이라고 뒤늦게 안 전우들 중 몇 명은 더 이상 가족에게 고통을 줄 수 없다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그들이 베트남에서 윤리적으로 부끄러운 짓을 하다가 고약한 성병, 국제 매독에 걸려서 죽는다고 그 질병을 좋게 말해서 "베트남 풍토병"이라고 말하며 그들의 도덕성을 비난하여 매도했습니다.
따라서 고엽제 후유증이란 일정한 병이 아닌 고엽제에 따른 여러가지 병의 징후를 가르키는 증상명이고 여기에 따른 다양한 증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일광과민성피부염(日光過敏性皮膚炎)
2. 심상성건선(尋常性乾癬)
3. 지루성피부염(脂漏性皮膚炎)
4. 만성담마진(慢性蕁麻疹)
5. 건성습진(乾性濕疹)
6. 중추신경장애(中樞神經障碍)
7. 뇌경색증(腦硬塞症)
8. 다발성신경마비(多發性神經麻痺)
9. 다발성경화증(多發性硬化症)
10. 근위축성신경측색경화증(筋萎縮性神經側索硬化症)
11. 근질환(筋疾患)
12. 악성종양(惡性腫瘍)
13. 간질환(肝疾患). 다만, B型 및 C型 感染으로 인한 것을 제외
14. 갑상선기능저하증(甲狀腺機能低下症)
15. 당뇨병(糖尿病)
16. 고혈압(高血壓)
17. 뇌출혈(腦出血)
18. 허혈성심혈질환(虛血性心血疾患)
19. 동맥경화증(動脈硬化症)
20. 무혈성괴사증(無血性壞死症)
21. 고지혈증(高脂血症)
22. 기타 枯葉劑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혀진 질병
으로서 大統領令이 정하는 질병
2 세 환 자
1. 척추이분증(脊椎二分症). 다만, 은폐성 척추이분증은 제외
2. 말초신경병(末梢神經病)
3. 하지마비척추병변(下肢痲痺脊椎병변)
고엽제후유증
1. 비호지킨임파선암(非호지킨淋巴腺癌)
2. 연조직육종암(軟組織肉腫癌)
3. 염소성여드름(鹽素性여드름)
4. 말초신경병(末梢神經病)
5. 만발성피부포르피린증(滿發性皮膚포르피린症)
6. 호지킨병
7. 폐암(肺癌)
8. 후두암(喉頭癌)
9. 기관암(氣管癌)
10. 다발성골수종(多發性骨髓腫)
11. 전립선암(前立腺癌)
12. 버거병
13. 기타 第15條의 규정에 의한 疫學調査 또는 연구의 결과
枯葉劑後遺症에 해당된다고 밝혀진 질병으로서
大統領令이 정하는 질병
이상이 제가 아는 고엽제에 대한 것입니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고엽제의 정확한 정의를 아시면 쓰기 수월하시겠죠? 글의 주제나 인상은 본인이 알아서 하실 일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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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블릿 이라는 소설 아시나요?
이대환 님이 쓰신 단편 소설인데 그게 JSA의 박찬욱 감독님이 연출해서 영화로 나온다고 하더군요,,
줄거리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앓고 있는 참전용사의 쓸쓸한 생활을 보여주고 그의 아들도 유전으로 장애를 갖고 있고 뭐 그런 내용을 사실성 있게 그려낸 겁니다.
이 작품으로 소논문 하나를 써 내야 되는데 주제를 어떻게 정하고 어떤식으로 써야할지..
여기 계신 님들은 고수님들이 많으시니까 고엽제나 전쟁후유증에 관한 의견 부탁드립니다.
내일 모레까지 A4 7장에 써서 내야 되거든요,,ㅠ.ㅠ
그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