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사회적 불평등
염 무 웅 (영남대 명예교수)
물 빠진 연못에 물고기 퍼덕이듯, 책들은 넘치는데
엊그제 한겨레(2012.7.23)의 <이 여름의 책들>이라는 칼럼에서 필자 고종석은 “흔히 가을을 ‘등화가친지절’이라 부르지만, 책읽기 좋은 철은 아무래도 여름이다”라고 적고 있는데, 완전히 동감이다. 그 글을 보니 자연 나의 옛날이 떠오른다.
나로서는 평생에 걸쳐 아무 잡념 없이 책에 몰두할 수 있었던 기간은 시골 소읍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이었다. 흥미가 가는 책이 잡히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거기 빠져들었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당시에는 독서에 대한 열망에 비해 갈증을 채워주고 정신을 드높일 책이 주위에 아주 드물었던 점이다. 6•25전쟁이 끝난 지 겨우 4, 5년밖에 안된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런데 반대로 요즘은 좋은 책이 넘쳐나는 것 같다. 서점에 가보면 마치 물 빠진 연못에 물고기가 퍼덕이는 것처럼 수많은 책들이 말을 걸어오는 걸 느낀다. 50년 전에 내가 이런 책들에 파묻혀 지낼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더 풍요로웠겠나 싶은 안타까움이 당연히 있다.
그와 더불어 떠오르는 생각은 요즘 이 책들의 주된 독자는 누구일까 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학생은 아마 틀림없이 아닐 것이다. 심신 공히 온갖 영양분을 필요로 하고 가장 맹렬하게 그것을 흡수할 나이인 그들이 자유로운 독서로부터 사실상 ‘금치산선고’에 처해져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대학생들은 어떨까. 취업과 직결되지 않은 인문•사회•자연과학 교양서의 구매성향을 조사한 통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데, 소위 유명대학 도서관의 대출빈도가 가끔 신문에 보도되는 것을 보면 오늘 이 나라 대학생들의 지적 상황도 그다지 믿음직스러운 것이 못된다.
주목할 만했던 현장 르포와 통계 보고서 저서
각설하고, 국내 저자의 책이건 번역서건 우리나라 독서시장에서는 현장취재에 기반한 르포나 통계조사를 중심으로 한 보고서 성격의 저서가 추상적인 이론서에 비해 인기가 적은 것 같다. 지난 3월 이 난에서 다루었던 제임스 길리건의『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이희재 옮김, 교양인 2012)나 그 책과 함께 잠깐 언급했던 『미국을 닮은 어떤 나라』(데일 마하리지 지음, 마이클 윌리엄슨 사진, 김훈 옮김, 여름언덕 2012)가 말하자면 보고서 내지 논픽션 성격의 책들인데, 특히 후자는 르포기자와 사진작가인 두 저자가 한 팀이 되어 최근 30년 동안 몰락하는 미국 노동자계급과 그들의 후예인 노숙자와 유랑빈민들 속으로 들어가 때로는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보고 겪은 감동의 기록임에도 한국독자들에게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실은 비슷한 시도를 한 국내 저자의 책도 있었다. 언론인 홍은택의『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창비 2005)가 그것인데, 역시 대중적으로 주목받았다는 소식을 나는 듣지 못했다. 좀 분야가 다르지만, 발레리 줄레조의『아파트 공화국』(길혜연 옮김, 후마니타스 2007)이나 손낙구의『부동산 계급사회』(후마니타스 2008) 같은 책들도 우리나라의 비정상적 주택사정과 열악한 정치현실을 감안하면 더 심층적인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문제작임에도 아쉽게 한때의 화제로 그치고 말았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에 내가 소개하려는 책은 김기태 기자의『대한민국 건강불평등 보고서』(나눔의 집 2012)이다. ‘프롤로그’에도 나와 있듯이 이 책은 <한겨레21> 2010년 12월 7일자 커버스토리 ‘죽음도 가난했다’부터 2011년 1월 29일자 ‘에필로그 - 모든 생의 무게는 같아야 한다’까지 8차례 연재된 김 기자의 기획기사에 바탕하고 있다.
이 책을 선택한 까닭은 물론 건강과 의료문제가 국민복지에서 핵심이자 기본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들 짐작하겠지만 대선을 반년 앞둔 이 시점에 예비후보들마다 복지문제를 입에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분들의 복지담론이 얼마나 구체적 현실분석에 근거한 것인지 알아야 그들이 제시하는 정책의 허실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지 않겠는가.
건강불평등이 훨씬 더 많은 희생자 낳는데도 둔감
그런데 김기태의 저서를 읽고 나서야 나는 건강불평등 문제를 다룬 책들이 이미 여러 권 출간되어 있음을 알았다. 예컨대『추적 한국 건강불평등』(이창곤 지음, 밈 2007)이나 『건강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할까』 (S.아스타나•J.할리데이 지음, 신영전•김유미•김기랑 옮김, 한울아카데미 2009) 같은 책들이 그것이다.
아마 우리나라에 알려진 이 방면의 가장 중요한 저자는 영국 노팅엄대학교의 사회역학 교수였던 리처드 윌킨슨(Richard Wilkinson, 1943~)일 터인데, 『평등해야 건강하다』(김홍수영 옮김, 후마니타스 2008), 『건강불평등. 무엇이 인간을 병들게 하는가』(손한경 옮김, 이음 2011), 『평등이 답이다. 왜 평등한 사회는 늘 바람직한가』(케이트 피킷과 공저, 전재웅 옮김, 이후 2012) 등 잇달아 번역된 저서들에서 그는 인간의 건강과 행복에 있어 무엇보다 사회적 평등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임을 거듭 밝히고 있다.
그런데 윌킨슨의 논지 가운데 범인들의 선입견을 뒤집는 것은 평등이 단지 서민층에만 유리한 진보주의자들의 관념적 이상이 아니라 모든 계급구성원의 건강과 기대수명에 고루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목표임을 실증적•이론적으로 입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등해야 건강하다』제1장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주장에서는 학자를 넘어선 투사의 음성조차 들린다.
기대수명의 격차는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결국 근대 시장민주주의의 병폐인 심각한 사회적 불의를 보여준다. 우리는 사람들이 재판도 없이 구속당하고 고문당하며 실종되는 인권침해의 사례들에 대해서는 쉽게 분개한다. 하지만 건강불평등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희생자를 낳고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만약 어떤 무자비한 정권이 건강불평등 때 문에 줄어든 빈곤층의 수명만큼 가난한 사람들을 강제로 감금한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쩌면 빈곤층의 높은 사망률은 감금보다 더 심한 사형집행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불평등을, 매년 정부가 아무런 명분 없이 상당수의 국민을 사형시키는 것과 같은 수준의 인권침해로 취급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평등 수준 높이면 부자들도 혜택
『대한민국 건강불평등 보고서』의 저자 김기태가 주로 의존하는 이론적 배경도 바로 윌킨슨의 이 저서들이다. 김 기자는『평등이 답이다』(원제는 수준측량기, The Spirit Level: Why more equal societies almost do better, 2009)를 읽고 저자와 이메일 인터뷰를 하여 자신의 책에 수록하기도 했다. 인터뷰에서 김 기자는 “평등수준을 높이면 최상류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데,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묻고, 이에 대해 윌킨슨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일관되고 확신에 넘친 대답을 보낸다.(p.241)
물론 평등수준을 높이면 빈자에게 가장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부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 사람들은 종종 소득 상위 10%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데 놀라기도 한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건강 및 사회문제는 빈곤층뿐 아니라 전 체 계층에 영향을 미친다.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는 높은 지위에 이르기 위한 경쟁이 격 하고, 그 과정에서 불안은 사회 전체에 두루 퍼진다. 물론 그 파급은 상류층에도 미친다.
생각해보면 보건과 의료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지향하는 의사-학자라면 종국에는 이와 같은 사회학적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이해된다. 지난번의『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의 저자 길리건이 존경해 마지않는 19세기의 독일 의사 루돌프 피르호가 세포병리학•공중보건학•사회의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비스마르크에 대항한 진보정치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그런 점에서 아주 자연스럽다. 실은 길리건 자신도 폭력문제를 다루는 정신의학자로서 오랫동안 살인과 자살 등 폭력치사를 완화시키기 위해 현장에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정치적 견해에 도달했고, 그것을 20세기 미국 정치사의 변동에 적용한 결과물이 다름아닌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였던 것이다.
외상외과가 개설된 병원이 아주대병원뿐이라니
김기태의 『대한민국 건강불평등 보고서』는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저자가 2010년 11월 한달 동안 성가복지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취재를 목적으로 자원봉사를 하면서 주로 암으로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그러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는) 열다섯 명 환자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기록이다. 제2부는 같은 무렵 수원 아주대병원 중증외상특성화센터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는(그러다가 숨을 거두기도 하는) 열여덟 명 외상환자들을 취재한 기록이다. 제3부는 학자•연구원들의 용역보고서에 나타난 통계를 원용하여 지역별•계층별•연령별•학력별로 현재 한국의 건강-의료현실을 점검한 내용이다. 제4부는 앞에서 얘기했듯이 주로 윌킨슨 교수의 이론에 의존하여 오늘날의 한국 보건의료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내가 읽은 바로는, 다른 사람의 연구와 보고서를 원용한 부분(즉, 제3부와 제4부)보다 저자 자신의 직접적 체험이 살아 있는 부분, 즉 생생한 현장의 소리와 장면을 기록한 제1부와 제2부가 이 책의 알맹이다. 우선 김 기자의 취재를 받아주었던 병원들부터 간단히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서울 월곡동에 위치한 성가복지병원은 1990년 7월에 문을 연 무료병원인데, 가톨릭 성가소비녀회(聖家小卑女會)의 수녀들이 운영주체라고 한다. 1992년에는 호스피스 병동도 문을 열었다. 노숙인•행려병자 등 주로 가난한 환자들이 혜택을 보는데, 개원 이후 2011년까지 연인원 54만 6717명, 실인원 1만 3149명이 입원했다. 의사 3명과 간호사•조무사 등 30명이 낮은 급료를 받고 일하며, 부족한 인력은 수천명 자원봉사자들로 채운다.(p.29~30) 2011년 한 해 지출이 27억 6천만 원 정도로서, 지출의 80% 이상을 후원금으로 충당한다고 한다.(후원문의 02-940-1501-2)
한편, 이 책을 읽고 처음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외상외과가 개설된 병원이 이국종 교수가 책임자로 있는 아주대병원뿐이라는 것이다. “돈이 되지 않고 골치만 아프기 때문에”(p.85) 병원들마다 응급실 투자를 외면한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대와 부산대 출신들도 외상외과 시술을 배우러 수원으로 온다는 것이다. 2011년 1월 ‘아덴만의 영웅’으로 언론을 장식했던 석해균 선장이 중상을 입은 몸으로 후송되어 왔을 때 그를 “치료할 만한 곳이 서울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석 선장을 감당할 만한 아주대병원이라도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더 충격적인 통계도 새삼스럽게 세상에 알려졌다. 부실한 응급의료 시스템 때문에 해마다 1만 명 가까운 중증외상환자가 추가적으로 사망한다는 연구였다.”(p.109)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그러나 거의 아무도 모르는 현실이다.
실태를 똑바로 알아야 옳은 대책이 나올 터
이 책에서 저자가 시종일관 예의 주시하는 것은 암이나 중증외상 같은 치명적 질병들이 부유층보다 빈곤층에게 항상 더 공격적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참고한 학자들의 연구보고가 그 사실을 보여준다.
강원대 손미아 교수(예방의학)의 ‘암 발생과 사망의 건강불평등 감소를 위한 역학지표 개발 및 정책개발연구’(2008)에 따르면 “암사망 위험비는 소득 상위 1%가 암으로 100명 사망할 때 기초생활수급권자는 두 배 가까운 196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p.56)
보건복지부외 질병관리본부가 전국 8개 주요병원 응급실을 찾은 외상환자 8만 816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 ‘2009 표본병원 손상유형 및 원인통계’에 따르면 “전체 중증 외상환자 가운데 33.6%가 노동직이었고 17.3%가 사무직이었다.”(p.112)
서울대 신상도 교수(응급의학)의 도움을 받아 조사한 바로는 “2009년 전 국민의 응급실 방문회수는 392만 218건이었다. 이 가운데 건강보험 가입자의 방문건수는 337만 1734건이었고, 의료급여 대상자는 18만 5574건이었다.”(p.128) 이 수치를 인구비례에 따라 나누면 건강보험 가입자는 100명당 7회이고 의료급여 대상자는 100명당 12회가 된다. 바로 이것이 다름 아닌 건강불평등의 실상인 것이다.
문제는 이 엄연한 불평등에 대해 우리 국가와 사회가 어떻게 대응하는가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불평등은 건강과 의료분야에만 나타나지 않는다. 이 책의 제1부와 제2부에서 저자가 묘사한 가슴 아픈 사연들은 빈곤과 가정해체, 사업실패와 자포자기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최후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지 보여주는데, 중요한 것은 이 전락의 다양한 경로 어디에서도 사회안전망이라 할 만한 구원의 손길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 하에서는 국민건강과 의료체계에 대한 조사보고서조차 공식적 발표를 미루고 있다. 예컨대, 노무현 정권 당시 용역을 받아 강원대 손미아 교수 등 16명의 연구진이 2008년 11월에 완성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있는 3259만 명의 기록을 모아 암발생과 사망의 계층별 불평등양상을 분석한 328쪽짜리 보고서”(p.74)를 정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역시 노무현 정권 당시 편성된 4억 8천만 원의 예산으로 한양대 신영전 교수(사회의학) 등 41명의 연구진이 3년여 만에 완성한 1200쪽 분량의 보고서 ‘건강불평등 완화를 위한 건강증진 전략 및 사업개발’도 현 정부가 깔아뭉개고 있다.(p.150~2) 가천의대 임준 교수(예방의학)가 한국산업안전관리공단의 용역을 받아 2007년에 내놓은 산업재해에 관한 연구보고서는 언론에조차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고 한다.(p.202)
실태를 똑바로 알아야 옳은 대책이 나올 수 있는데, 실태와 직면하기를 회피하는 정부로부터 무슨 대응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김기태 기자의『대한민국 건강불평등 보고서』는 소득 2민불의 OECD회원국임을 자랑하는 나라의 복지현실에 대한 고발장이라는 점에서만도 커다란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