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창문 커튼을 들추자
옥상에서 파를 심는 염색공이 보였죠
손바닥은 매일 다른 색이 입혀져 있었으니까
염색공이라고 불러요
청색으로 물든 손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옥상에서 파가 자라는 것도요
옥상이라는 말
오이비누 냄새가 나요
오이 오이 상쾌한 식감을 가진 말이죠
일요일 오후
잘 말린 천을 펼치고
창틀에는 뜨거운 머그잔을 올려놓습니다
염색공 손바닥은 두꺼운 책 같아서
라마의 긴 속눈썹을 그려 넣습니다
속눈썹은 가장 안쪽에서 떨리고
우리는 서로 잘 알지도 못하지만
잘 알고 있습니다
밤이 오면
염료를 끓입니다
흑해를 건너온 울트라마린은 긴 여행이 필요했죠
바다 건너 이 작은 냄비에 끓여지기까지
문장들은 얼마나 아름다운 시가 될 수 있을까요
염색공의 손바닥은 넘기면 넘길수록
마음에 자꾸 지나가는 구절들만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오늘 밤에는 넓은 잎을 가진 목화송이들이 기쁘게 피어날 것입니다
- 시집『알바니아 의자』걷는사람 / 2022 -
사진 〈Bing Image〉
알바니아 의자
정 정 화 (1973~)
종 모양의 단추를 찾았습니다
부드러운 컬마다 언덕 냄새가 묻어 있는 작은 단추 구멍 속으로
양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으면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연장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면 꼭 의자를 하나씩 만듭니다
화가가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듯 목수에게는 의자가 그럴까요
보라색 벽을 단단하게 칠한 후
언제 뜯겨나갈지 모르는 지붕을 매일 그리고 있는 당신
알록달록한 돌로 만든 목걸이와 말린 담뱃잎으로
감자와 밀가루를 바꿔 집으로 돌아옵니다
배고픈 도마뱀은 주파수가 잡히지 않는 라디오 위에 올라가 긴 안테나를 올리고 있습니다
양의 울음이 언덕 너머 멀어지지 않도록 소매에 달아놓았습니다
장화를 신은 허름한 걸음 사이로 해진 자투리 천을 모아 버려진 팔들을 넣었습니다
튀어나온 어깨를 다듬어 맞추고
베개 커버를 뜯어내어 몰려오는 밤안개를 덮고도 우리 심장은 따뜻합니다
꽃의 리비에라 아드리아 이오니아
알바니아 의자를 문 앞에 내어놓고 저녁별이 이내 가득하기를 기다립니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곳에서요
무릎을 모은 채 양팔로 가슴을 안고 있으면
어디든 언덕이 펼쳐졌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