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이야기
남자친구를 만난 지 한 달 됐을 때 그는 묵주기도를 함께하자고 했습니다. 잘할 수 있을까 염려했는데 지금은 800일이 넘게 54일 묵주기도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첫째 지향은 ‘로마나와 제럴드가 항상 함께하도록 이어주세요’였습니다.
휴대폰 요금제는 커플 요금제로 바꿨습니다. 매일 저녁 9시가 되면 누구든 먼저 전화를 겁니다. 휴대전화에 이어폰을 끼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저는 내 방에서, 남자친구는 그의 방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목도 아프고, 입가에 침도 막 고이는 거예요. 처음에는 잘 보이고 싶어 예쁜 목소리로 기도하게 돼 집중하기가 조금 힘들었습니다. 기도는 씻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우리는 무조건 기도 시간이 되면 어디에 있든 기도하자고 약속했습니다. 기도 장소는 매번 새로웠습니다. 제가 한 달간 외국에 있을 때는 보이스톡으로 기도했습니다. 지하철에서 혹은 카페에서 함께 기도한 적도 많았습니다. 소리 내어 기도할 수 없어 함께 손을 잡고 제가 마음속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를 시작하면 후반부 기도가 시작될 때 제가 손으로 남자친구의 손에 신호를 주는 겁니다. 손을 움찔움찔해가며 꽉 찬 사람들 속에서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를 할 때는 둘 다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듯이 하는데 그럴 때는 약간 민망했지만, 공공장소에서 기도하는 것도 점점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기도 지향은 다양했습니다. ‘투병 중인 사도 요한을 도와주세요, 세월호 사고로 자녀를 잃은 유가족과 천국에 있을 학생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하느님, 저희의 기도를 듣고 계시나요?”라고 묻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며 달리고 있는 이 기차를 멈추게 하거나, 속도를 늦추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을 향해 가는 이 길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예수님을 모시고 싶으니까요.
이유리 로마나(인천교구 영종본당)
그 남자 이야기
“은총이 가득하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여자친구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문득 생각합니다. 이번이 몇 번째 기도더라. 생각해보면 끊임없이 지향을 드렸던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그 지향들은 행복한 결말로 응답받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을 돕기 위한 전문직 생업, 안정된 가정을 꾸릴 편안한 집, 사랑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 등. 사실 제 눈으로는 딱 제가 뜻한 바와 같이 똑같이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제 차례가 되니 거의 반사적으로 입에서 기도문이 작동합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다시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소리가 참 한결같아요.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요. 수화기 저편의 여자친구는 완전히 집중하고 있는 걸까요? 잘 시간에 기도하다 보니 가끔 하품도 하고 발음이 새기도 하는 걸 보면, 이미 꿈속을 헤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멈춤은 없습니다.
함께 기도를 시작한 이래로 여자친구의 목소리는 항상 저와 함께였습니다. 그 목소리는 제가 도전을 시작하며 두려워했을 때, “괜찮다. 할 수 있다”고 말해주던 제 안의 용기 그 자체였고, 힘들어할 때 “괜찮다. 잠깐 쉬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말해주던 인내였고, 실패했을 때 “괜찮다. 내가 함께 곁에 있지 않으냐”고 말해주던 제 안의 위안이었습니다.
제가 지향했던 그 모든 것 중 무엇과 이것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 지향이 가져다줄 거라 믿었던 그 많은 아름다운 것 중 그 무엇이 이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성모님이 제 기도에 응답하셨을까요? 예, 그렇습니다. 그 응답은 기도문 안에 글자 그대로 담겨 있고, 제 여자친구가 그분의 목소리를 대신해 제게 답을 건네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기도하고 있는 이 순간에요.
첫댓글 이글을 보면서 제가 많이 반성해야 겠네요. 매일 미사책에 아침,저녁 기도가 있어서 매일 미사책은 다달이 전해주면서 꼭기도 하라고 제친구에게 말하면서
아직도 한번도 묵주기도에 대해서 알려주지 안았네요. 저만 성모님은총을 욕심낸 기분입니다. 반성하면서.........
청춘 남여가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매일 묵주기도를 드리면서 진한 사랑을 잉태해가는 과정이 아름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