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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살
평상에 앉아
나의 옛날은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법
산과 계곡의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화려한
누정이 특권층이 호사를 누리던 공간이었다면,
시골 집 마당의
평상은 서민들이 앉거나 드러누워 쉴 수 있도록 만든 야외 가구의 일종이다.
70년대 초만 해도 마당이 있는 도시 집에
평상이 있었다.
평상의 소재는 다양했다.
기본 골격은 목재로 만들고 바닥은 대를 쪼개
엮은 살을 깔거나 송판 등 목재 판재를 깔았는데 남도의 서민들 집에는 값싸고 흔한 대나무살 평상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그런 평상은 일차적으로 여름 밤 서민들의
여름나기를 위한 기능적인 공간이었다.
마당에 모깃불을 피우고 좁은 공간에 가족들이
무릎을 맞대고 둘러앉아 하루의 일을 이야기하며 온 식구가 박장대소했던 소통의 장이었다.
할머니의 반복된 옛날이야기에도 지루한 줄
몰랐고,
삼촌들의 귀신이야기
몸을 움츠리렸던 어린 시절 추억의 무대였다.
거기에 시원한 수박 한 조각이나 삶은
옥수수나 감자 한 알은 또 얼마나 반가운 귀물이었던고!
그 때는 형제들이 은하수를 보며 밝은 별을
자기 것이라고 우김질도 하나의 놀이였다.
또 나무 그늘 밑의 평상은 여름 손님을
맞이하는 서민들의 사랑방 구실도 하는 등
그렇게 한 여름 집안의 더위를 피해 마당에
설치한 피서용품이었다면,
가을에는 고추를
말리고,
삶은 고구마 순이나
호박을 썰어 말리는 공간이었다.
말린 식품들은 할머니만 아는 독에 저장했다가
겨울이면 입맛을 돋우는 반찬이 되거나 제삿날에는 제물로 상에 오르기도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평상은 서민들의 삶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구실도 톡톡히
했던 소중한 살림살이기도 했다.
이제 평상은 도시의 가정집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물건이 되었다.
핵가족화 되면서 주거 문화가 마당 없는
[아파트]
중심이
되고,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소파를 자랑하는 집의 거실로 바뀌었다.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대량 보급된 현실에서
단독 주택에 사는 사람들도 부채를 들고 밖에 나갈 일이 없어졌으니 한 겨울에는 처마 밑 그늘에 세워두고 아꼈던 평상은 이제 천덕꾸러기가 되고
마침내 평상이 앉을 자리는 사라진 것이다.
은하수를 볼 수 없는 도시
환경,
미세 먼지를 걱정하는
현실이서 소중하고 유용했던 평상을 이야기 하면 시대에 뒤진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시골집에서도 찾기 힘든
평상!
유원지에나 가면 그것도 땀이 끈적이는 비닐을
깐 평상 하나에 비싼 자릿세를 물고 앉아볼 수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10일(수),
무더운 날의 오후에
평상을 만들었다.
엄격하게 말하면 철제 골조에 대나무를 쪼갠
살을 이어 ‘살평상’
만드는 일을 했던
것이다.
10년 전 숙지원 자두나무 그늘에 설치하여
그동안 쉼터 삼았고,
완두콩과 강낭콩의
꼬투리를 따는 작업장도 되었던 평상이었는데,
너무 오래 비바람에
방치했더니 대나무 살이 삭아 힘을 주어 앉기만 해도 부서져버렸다.
그러나 평상의 골조가 쇠로 되어 버리기
아깝다는 점,
그리고 전천후
야외작업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그걸 창고 안으로 옮기고 새로 대나무 살을 바꾸겠다니 아내는‘그러다 말겠지.’하는 표정이었다.
그렇더라도 나는 평상을 포기할지
않았다.
합판이나 방부목을 깔까하는 생각도
했지만,
아무래도 대나무
마디가 발의 복숭아씨를 고이는 불편이 있을지라도 대나무 살을 엮은 평상이 제격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예전 평상을 구입했던 가게는 문 닫은
지 오래라고 했다.
여기저기 평상을 제작하는 곳을 찾았지만
대나무 살을 구할 수 없었다.
죽물의 고장이라는 담양 군청에 전화하고 또
전화 받은 곳에서 다시 몇 군데를 거쳐서야 대나무만 쪼개어 파는 곳을 알아내어 주문을 했다.
그런 나를 보는 아내의 반응은 여전히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바람 좋은 쉴 곳도
많고,
공간만 차지하여
효용성이 떨어지는 물건에 집착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갯수를
확인하고, 평상의 틀에 길이를 맞추어 자르고 ,대나무살의 거친 매듭을 다듬는 것이 일의 시작이다.)
10일 점심을 먹은 후,
우선 기본 철골조의
길이에 맞추어 대나무를 자르고,
낫으로 엉성한 부분을
다듬었다.
그리고 철사와 펜치며
망치 낫 손칼 등을 챙겨 대나무살을 엮기 시작했다.
하지만 쉽게 생각하고 덤빈 일은 요령이
없으니 늦은 저녁을 먹기 전에 끝나지 않았다.
뒤늦게 대나무 살의 폭이 각기 다른데 한
쪽으로만 넓은 면을 깔면 바닥의 균형이 깨진다는 점을 알고 다시 뜯어내기도 했다.
일곱 가닥의 철사 줄은 걸핏하면 헝클어지고
더러는 얼굴을 스치곤 했다.
가까스로 일을 끝내기 밤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일곱
가닥의 철사줄로 엮어 판을 만드는 일도 경험을 요한다.
면이
넓은 살만 한쪽으로 몰아칠 경우 바닥은 균형이 깨진다.
넓은
것과 좁은 것을 교차해서 엮어야 한다는 사실은 나도 뒤늦게 알았다.)
대는 가벼운 물기나 먼지를 청하지 않은
소재다.
또 먼지가 묻어도 금방 털어지는 장점이 있고
세월이 가면 갈수록 색상도 보기 좋은 노란색이 된다.
누우면 아래서 올라오는 바람에
시원하고,
땀을 흘려도 흡수하는
효과도 크다.
비록 엉덩이가 고이는 흠은 있어도 지압을
한다고 여기면 좋지 않을까?
이제 밤하늘의 은하수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별 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자식들은 먼 곳에 있으니 덩그러니 부부가
밤에 평상에 앉아 부채질하거나 낮에 있었던 사소한 이야기에 웃음 짓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각자의 스마트폰에 매달려 가족 간에도 눈길
마주치는 일이 별로 없다는 현실도 모르지 않는다.
어쩌면 가족 간의 소통이 이루어지던
곳,
각종 저장 먹거리를
만들어 가족의 미래를 만들었던 작은 공간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웃음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 시절을 그립게
기억한다.
내가 평상에 매달렸던 일도 그리움의 표현일
것이다.
가난하면서도 가난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서민들이 민화와 전설이 구전되던 곳.수줍은 아이들이 어른들의 칭찬에 노래하고
춤추었던 무대.
경치 좋고 시원한 곳의 누정이 행세하는
양반들의 문화 공간이었다면,
평상은 백성들의
애환을 담은 그야말로 토속적인 문화공간이었다.
(완성된
평상. 거칠지만 창고안에 있어 비바람을 피할 수 있으니 수명은 더 길어질 것이다. 겨우나기 저장식품을 말리는 공간되 되고 바깥의 작업장되 될
것이다.)
만들어진 평상을 모니 서툰 솜씨가 그대로
드러난다.
넓고 좁은 부분을 역으로 엮으려는 노력을
했지만 끝을 보니 한쪽이 조금 빈다.
48개의 대나무살이 모두가 폭이 같거나 두께도
일장하지 않으니 바닥은 울퉁불퉁이다.
휘어진 대나무들이 섞여 있어 애를 먹었는데
사이의 간격이 일정치 않다보니 어떤 곳은 틈이 크기도 하다.
앞으로 내가 만든 평상이 한 여름 밤 꿈을
키우거나 가족이 모여 소통하는 공간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앞 뒤가 툭 트이고 전망 좋은 곳에 파라솔
그늘이 있는 현대식 야외 테이블이 있으니,
평상 만드는 일은
요즘 흔히 말하는 ‘가성비’와는 전혀 어긋난 헛수고인지
모른다.
겨우 소나기를 만나면 말리던 가지와 고추가
비를 피하는 곳이 되고,
더러는 그곳에 앉아
마늘을 까고,
옥수수 껍질을
벗기거나 완두콩 깍지를 벗기는 일이나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평상에 앉아 보니 비록 옛날을 헤매고
있다는 소리를 들을지라도 하루의 수고가 억울하지 않다.
이제 모깃불 연기 냄새가 맡고
싶어진다.
2016.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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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평상 멋진작품.그보다 더 멋진글입니다.
앵글과 11T 합판으로 11만원이나 들여서 평상을 만들었는데 테두리에 자꾸 가시박혀서 결국엔 청테이프로 덕지덕지 마감을한 우리집 남자보다는 훨씬 고상하십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평상 자체에 의미를 두시기 바랍니다.
부부가 함께 앉아 달을 볼수 있다는 사실만도 좋지 않을까요?
우리 평상의 위치는 그야말로 멋 없는 자리에 있습니다.
평상은 추억의 물건입니다.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옛날 시골 할머니댁 평상이 생각이 나네요.~~^^
젊은이들은 평상이 무엇인지도 잘 모를 것입니다.
하긴 알 필요도 없겠지요.
그래도 마음 한 쪽은 서운 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8.13 18:13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8.13 20:38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8.13 21:23
아주 오래 전 난생처음 간 군산 골목길에 놓여져있던 대나무 평상이 생각나네요.
반질 반질한 평상에 앉아 천천히 부채질하시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느 곳 평상엔 넓적한 가오리가 엎드려 있어 신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시골 집에 가보면 더러 평상이 보이지만 추억의 공간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을 할머니들은 시원한 유선걱이나 에어컨이 나오는 마을 회관으로 모이더군요.
아마 몇 년 후면 사전에 단어로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린 시절 저녁 먹고 평상에 누워 밤하늘 보며 모기 쫓던 생각이 납니다. 수많은 별 들, 은하수. 모깃불의 연기.
저녁 무렵에 핀 분꽃의 향기. 그래서 텃밭 정원에 분꽃을 몇 포기 심어요. 꽃을 좋아하셨던 아버지 생각합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
광주에 사시는군요.
지금은 시골에서도 별을 볼 수도 없고 할머니들도 모기장이 쳐진 유선각으로 모이더군요.
세상 많이 변했습니다.
분꽃! 소박한 우리 꽃이지요.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어렸을때 마당에 평상에모여
수박이며 맛있는것먹었던~^*
추억이 새록새록나네요!!!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이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겠지요.
좋은 추억을 만드는 날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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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귀촌하고부터 대나무 평상만들고 싶었는데 도시에서만 산 아바이는 아무리 내가 평상타령을 해도 못들은척 방부목으로 테이 블을 만들고 끝 십년이 넘어도 못만들었네요
대나무 산곳 연락처 와 대나무값 가르켜주실수 있는지요 말리는것이 많은 시골생활이다보니
' 필요해서 이제라도 만들고 싶어요
님의글에 공감이 갑니다
모기불 쑥대 잘라서 말려놓았다 태우려구요
정자에서 호박전 부처먹으며
모기불 피우고 트럼벳연주하는 지인불러서
작은 음악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대나무 살만 있다고 평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든든한 틀이 있어야겠지요.
저의 경우 철로 된 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대나무 살을 철로 된 틀에 끼워 넣으면서 발을 엮 듯 철사로 엮었는데 그 일만도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을 보아도 나무널판 평상은 보이는데 대나무살 평상은 흔치 않더군요.
대나무는 담양에서 구입가능합니다.쪼개 보내준 가격만 4만원 들었습니다 (택배비는 그쪽 부담)
철사 3천원어치 샀더니 조금 부족하여 나중에 하나 더 샀습니다.
제 경우 틀이 있었기에 그 정도 든 것 같습니다.
우선 틀을 무엇으로 만들 것인지 생각하십시오.
요즘 편백 등 좋은 나무로 만든 물건들도 보이더군요.
@빛돌뫼(나주) 엣날에 쓰던 쎄라젬 알미늄 틀이 있어요 폭이 좀 좁긴하지만 일인용 침대 만 한거지요 기장은 좋아서
그곳에다 만들면 어떨까 해서요
답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