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높을 고(高), 오를 등(登)의 고등어
프랑스 파리의 곳곳에서 만났던 피카르(Picard)가 떠오른다.
냉동식품만 파는 곳이다.
잘게 썬 냉동 채소부터 생선, 고기, 각종 간편식까지 냉동식품으로는 없는 게 없었다.
피카르에서 파는 것들만으로도 제법 근사한 밥상을 차릴 수 있었다.
파리에서 연수하던 2016년 8월부터 2017년 7월까지, 내가 살던 파리 15구의 셋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콩방시용(Convention)역이었다.
출구 바로 앞에는 피카르가 있었다.
매주 한 번쯤은 피카르에 들러 고등어를 샀다.
노르웨이산 고등어였다.
뼈를 발라낸 큼지막한 필레 6쪽이 7유로쯤 했던 것 같다.
그때 노르웨이 고등어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됐다.
피카르는 가끔 품목별로 20% 할인행사를 했다.
오다가다 들러 고등어가 할인 중인지 살펴보고, 할인하는 날이면 몇 팩씩 사곤 했다.
맛이 어찌나 좋았던지 초등학생이던 아들은 보온도시락의 밥 위에 구운 고등어를 올려달라고 했다.
요즘 페이스북에서 노르웨이 고등어에 관한 글을 종종 만난다.
가격이 너무 올랐다는 내용들인데, 세계 최대 고등어 수출국인 노르웨이가 어자원 보호를 위해 어획 쿼터를 확 줄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나는 전북 부안의 뽕잎 고등어를 주문해 먹는다.
어릴 때부터 ‘바다’ 하면 고향과 가까운 부안, 그중에서도 격포를 먼저 떠올렸던 탓일 게다.
부안의 뽕잎 고등어는 뽕잎을 넣어 숙성·염장한 고등어다.
겨울철 살이 오른 고등어를 사용해 씹는 맛도 좋다.
고등어는 성질이 급한 생선이라 잡은 뒤 신선하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한데, 한여름 끓는 여름에도 진공포장된 고등어를 꺼내 구워 먹을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이다.
부안은 뽕으로 유명하다.
변산면 누에마을에는 오랜 양잠의 역사가 있고, 지금도 뽕나무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나라 오디와 누에 4분의 1이 부안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러니 부안의 뽕잎과 바다에서 난 고등어가 만나 만들어낸 뽕잎 고등어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고등어를 생각하면 대학 시절의 ‘고갈비’가 떠오른다.
1990년 3월, 내가 입학한 대학의 여러 주점에는 ‘고갈비’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붙어 있었다.
내게는 낯선 음식이었다.
생고등어를 반으로 갈라 소금을 뿌려 두었다가 양념장을 얹어 연탄불에 노릇노릇 구워냈다.
살을 다 먹고 나면 뼈에 붙은 살까지 발라 먹었다.
이름 그대로 갈비처럼 뜯어 먹는 고등어였다.
돈이 궁해 소갈비나 돼지갈비를 먹기 어려웠던 청춘들에게 고갈비는 값싸고 든든한 음식이었다.
생선이 흔했던 부산 같은 바닷가 도시에서 고갈비가 태어나고 사랑받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고등어 등처럼 푸르던 청춘과 고갈비는 50대가 된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간간한 안동간고등어를 만났다.
경북 안동은 동해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 지역이다.
냉장·냉동 운송이 발달하기 전에는 동해안에서 잡은 고등어를 안동까지 가져오는 동안 상하지 않도록 소금에 절이는 방법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강구항·영덕항·축산항 등 동해안에서 잡은 고등어가 내륙으로 운송됐고, 그렇게 만들어진 간고등어는 안동을 대표하는 음식이 됐다.
예전에는 소금도 귀했을 테고,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에서 생선을 맛본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간고등어가 제사상과 밥상에 오르던 귀한 음식이었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더 마음에 와닿는다.
파리의 피카르에서 처음 맛본 노르웨이 고등어,
고향 가까운 부안의 뽕잎 고등어,
대학 시절 주점에서 만난 고갈비,
그리고 안동의 간고등어.
돌이켜보면 고등어 한 마리에도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고등어의 이름과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등이 부풀어 오른 물고기(皐登魚)'라는 뜻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에서는 ‘사바(鯖)’라고 부르는데, 고기 어(魚)에 푸를 청(靑)이 붙은 글자다.
우리에게도 ‘등 푸른 생선’이라는 표현이 익숙하다.
그런데 요즘의 고등어는 더 이상 예전의 고등어가 아니다.
고등어 값이 지난해보다 크게 올랐다.
지난해보다 80% 가까이 급등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시장과 마트에서 가격표를 볼 때마다 눈이 휘둥그레진다.
높을 고(高), 오를 등(登), 이제 고등어는 정말로 ‘높을 고, 오를 등’을 쓰는 생선이 됐다.
씁쓸하다.
전 국회의원 조수진님 글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