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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사랑하라
잠 5:15-23
15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16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17 그 물이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과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18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19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20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21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
22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23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죽겠고 심히 미련함으로 말미암아 혼미하게 되느니라
잠 5:15-23 /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떠 먹어라. 네 샘물에서 퐁퐁 솟아나는 깨끗한 물을 떠 마셔라. 네 샘물만 마셔라. 16) 어찌하여 네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집 밖으로 흘려 내보내느냐? 어째서 네 집 샘물이 길거리로 흐르게 하느냐? 17) 너만, 너 혼자만 그 물을 마셔야 할 게 아니냐? 다른 사람이 그 물을 마시게 해서야 되겠느냐는 말이다. 18) 네 샘에 행복이 가득 차게 하여라. 네 젊은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아가거라. 19) 사랑스러운 암사슴처럼 애교가 넘치고 귀여운 암노루처럼 부드러우니, 그 품에 파묻혀 한결같이 그의 두팔에 안겨 그 속에서 흡족하게 웃어라. 20) 얘야, 어찌 다른 집 여인에게서 이러한 기쁨을 느낄 수 있겠니? 다른 여인의 품에 안긴다고 해서 이렇듯 행복하게 웃을 수 있을 성 싶으냐? 21) 그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은 사람이 하는 모든 일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 보신단다. 그런데 어찌하여 네가 하고 있는 일을 `설마 모르시겠지' 하고 생각하느냐? 그분은 사람이 하는 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일일이 헤아리고 계시느니라. 22) 못된 짓만 꾸며 남을 짓밟으려는 자들은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 버리는 법이며,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것이나 다를 것 없다. 23) 그런 것들은 꾸지람을 듣기 싫어하여 죽을 수밖에 없으며 너무나도 미련해서 망하게 되는 것이니라.
부부의 성행위는 깨끗한 샘물을 마시는 것과 같고 음행은 도랑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샘물과 도랑물(15-17) 솔로몬은 결혼관계를 통한 사랑을 우물과 샘에서 나는 물을 마시는 것에 비유하고, 음행을 더러운 도랑물을 마시는 것에 비유합니다. 깨끗한 우물물과 샘물은 개인의 은밀한 소유인 반면, 거리에 흐르는 도랑물은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된 것입니다. 혼자서 깨끗한 물을 마시는 즐거움처럼 부부의 은밀한 성적 만족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거룩한 복입니다. 이 깨끗한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는 것은 스스로 행복을 발로 차버리는 어리석은 죄입니다(히 13:4).
아내를 즐거워하라(18-19) 결혼은 야합이 아닙니다. 야합은 본능적인 것이지만 결혼은 인격적으로 하나 되는 언약입니다. “나는 너에게 속하고 너는 나에게 속한다”는 진실한 언약이 바로 결혼식의 핵심입니다. ‘네 샘’, ‘취한 아내’는 부부가 서로에게 속한 존재임을 암시합니다. 배우자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이요, 나에게 맞는 돕는 배필입니다(참고, 창 2:20, 23). 나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최고의 선물을 주셨기에 나는 평생 배우자를 존중하며 사랑하여야 합니다. 둘이 하나 되는 신성한 연합 속에 하나님의 복이 있고 경건의 대물림이 있기 때문입니다(말 2:15). ‘연모하라’(히. 샤가 19)는 말은 황홀한 즐거움에 사로잡혀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참고로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그의 아내를 가리켜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겔 24:16).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20-23) 남자가 성적 욕구를 음녀와의 관계로 해소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죄입니다. 이는 성적 만족을 위해 결혼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입니다.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다”는 구절은 인생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서 보신다는 뜻입니다. “인생의 삶이 모든 곳에서 여호와의 감시 하에 있고 주권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지혜가 존재합니다.”(Morgan) 흔히 사람들은 죄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 속여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갈 6:7). 결혼의 울타리 밖에서 욕망을 채우는 것은 죄의 줄로 자신을 매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사람들은 이번 한 번 뿐이라고 생각하고 욕망을 채웁니다. 하지만 그 ‘한 번’이 열 번이 되고 백 번이 되어 결국 그는 죄의 줄에 매이는 노예가 될 것입니다. 23절의 ‘죽겠고’는 “단순히 육체적인 때 이른 죽음만이 아니라 영생의 반대개념인 영원한 죽음(심판)을 포함합니다.”(Waltke)
적용: 결혼의 울타리를 넘어선 성적 욕망의 충족이 죄가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창조의 질서 속에서 설명해 보세요.
아직 이른 시기인데 고춧대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장마가 길어 제대로 된 열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잎은 아주 무성하지만 사람에게 필요한 열매는 맺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겉모습은 무척 화려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열매를 맺지 못할 경우 유익과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가 무엇인지 바로 알고 열매를 얻기 위하여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 설 교 >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잠 5:15-23
여러분 얼굴 보는 늘 행복해요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해도 마음이 흐뭇해 지고 따뜻해지고 그러면 참 좋을 터인데 그렇게만 해도 평화스럽지요.
못 생긴 사람들은 얼굴만 보아도 질겁다는 데 지하에 깊은 물이 지하수가 흘러가고 사람들은 그 지하수를 먹기 위해서 우물을 파기도 하고 펌프를 박기도 하고 그래서 지하에 있는 물을 끌어 올려서 마시지요
내가 더운 여름철에 있다 해도 지하 깊은 곳에서 나온 물들은 시원하고 단 맛도 있고 그러지요 그러나 내가 원한다고 해서 아무대나 가 가지고 내 집 물처럼 먹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 잠언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주고 있는데 관계를 샘에 비해서 이야기 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과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는 데 그 관계가 어그러진 관계 맺어져서는 안 될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정해진 태두리를 이런 것들이 사람들의 관계를 어그려트리는 것이지요 우리가 잠언 5장에 나오는 이야기 음녀에게 가지 말라 음녀에게 가면 너 망한다 너에게 돌아올 모든 것들 다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런 이야기였지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음녀에게 가지 않을 수 있는지 이것을 샘에 빗대어 이야기 하거든요 오늘 그 본문을 가지고 공부를 하겠습니다.
잠언 5장 15절부터 23절입니다.
여기 보면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라 네 샘에서 물을 마시라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지요 뭐 마실 수 있지 맥락과 뛰어 놓고 이야기 하면 자기 집 물 흘러가지 못하게 하면 너무 이기적인 것처럼 보여요
옛날에 농사 짓는 일이 농부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물이지요 그래서 물고 싸움이 심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물이 위에서부터 채우고 흘러가야 하는데 이웃 사람 밉다고 해 가지고 못 흘러가게 막아 놓고 물을 독점한다든지 이러면 심각한 물꼬 싸움이 일어나고 그것 때문에 폭력이 일어나고 이런 경우가 있지요
아전인수 제 논에 물 대는 것이지요 아무튼 제 논에 물을 대는 것이지요 물은 흘러가야 돼 흘러가지 않으면 안 돼 그런데 여기에서 물은 흘러가지 말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다음 구절과 연결을 해야 하는데
18절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는 말이 나오고 그것이 어떤 뜻인지 밝혀주고 있어요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 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우물 샘이라는 게 아내를 뜻하는 말이구나 아내를 뜻하는 은유적 언어입니다.
본래는 이제 물이 잘 흘러가야 하는 것이지만 항상 은유적 언어는 그것이 무엇이 가르키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그러면 의미가 달라져요 그러니까 물이 흘러가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무엇이라고 하느냐 하면 네 우물에서 물을 마셔라 다른 집에 가서 물 달라고 하지 말아라 그 이야기이지요
다른 곳에서 만족을 얻으려 하지 말라 다른 곳은 어디여요 음녀입니다. 음녀에 가 가지고서는 생애 만족을 구하면 안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에 여러분 우리는 물이 풍족한 나라이지요 물 부족 국가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제한 급수하는 도시들도 있었지요 이것이 가속화 될 가능성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옛날에 아주 낭비하는 것을 보면 물쓰듯한다 이야기 했지요 물 쓰듯 하면 안 돼 물을 정말 아끼는 삶의 방식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미국에 칼리포니아 같은대도 거기가 사막지대이지요 물이 부족해요 너무 물이 부족하니까 지방 정부가 정원에 물주지 못하도록 지시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정원에 물을 주기 위해서 물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금지되어 있는 기간에 물을 주거나 그러면 벌금을 물릴 수도 있습니다.
아주 부요한 사람들은 자기 정원이 중요해요 벌금 낼 때 내지 뭐 몇 푼이나 돼 그리고 쓰지요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는 물이 과거에 풍족했지요 지금도 사막 지대에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불이 훨씬 풍족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사막 지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물이 생명이기 때문에 특별히 사하라 이남지방에 사는 사람들 광야나 사막 지대레 사는 사람들은 물을 뜨기 위해서 하루 종일 걸어가고 물이 나오는 대서 흙탕물 같은 것 마시고 이런 것 보면 오늘 우리가 물을 너무 낭비하는 삶의 구조라는 게 부끄러워져요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지구촌의 한쪽에 너무나 메말라 있는 것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고 인간들이 삶의 방식이 지구의 기후 변화를 가져왔고 이 재앙이 그들에게 집중된 것이라고 보면 우리가 그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뗄 나무를 구하기 위해서 하루 종일 걸어다니는 여인들의 이야기 이런 것을 물자를 아껴 써야 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나타나거든요
여기 보면 이스라엘이 있는 곳은 광야이기 때문에 거기서는 물을 구하는 문제가 생명과 직결이 되지요 그래서 때때로 우물을 파기도 합니다. 돌을 파서 우물을 파요 돌을 파니까 반석에서 물이 솟아 나오면 좋겠지만 안 그렇지요
그래서 돌에다가 우물을 판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비가 내리며 물이 고여서 제가 몇 년 전에 아르메니아라고 하는 나라에 가서 수도원들을 순례한 적이 있는데 그 수도원에 가 보니까 아주 바위 산에 있는 수도원인데 바위가 옆으로 파져 있어요 무엇인가 거기를 죽 따라 갔더니 물이 모이는 곳이야 수도사들이 바위산에서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물이 모이는 곳이어요.
15절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우물이라는 것이 바위를 파서 만든 웅덩이 속에서 솟아 나오지 않지만 그래서 여기 물이 있다고 하는 것은 네 삶이 지속된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일단 우물이 좋은 것이어요 샘이라고 하는 것은 속에서 솟구치는 물입니다. 고인 물이 아니라 여러분 이런 것 만나면 마치 거명수에서 물이 나온 것처럼 그런 것이어요 그래서 사랑의 노래인 아가서에도 보면 우물과 샘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기쁨과 만족과 생기를 주는 여인의 모습으로 늘 비유되고 있어요
그러니까 여기 우물과 샘이라고 하는 것 이것은 아내를 뜻하는 말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아가 4장 15절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 흐르는 시내구나 사랑의 노래이지요
사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언어 속에 다 담아내기가 어렵지요 예를 들어서 요한씨가 지금의 아내와 사귀고 있을 때 서로 사랑의 밀어를 주고받는 데 사랑해 그러면 굉장히 밋밋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사실은 그것으로 충분한데 그래도 그분이 만족을 못하면 파트너들은 연구를 하지요 그 때 사용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은유이야 은유적인 언어를 사용한 것이지요 이 은유적인 언어 사랑하면 시인이 된다는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하는 이를 통해 은유적인 언어를 발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하튼 그 우물에서 물을 마셔라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셔라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사람 속에는 충동이라고 하는 것이 있지요 그런데 이 충동이라고 하는 것은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이드라고 포인트 같은 사람은 그렇게 이야기 하는 데
충동 내 속에서 덜컥 일어나는 충동이라고 하는 것은 이성에 의해서 제어되지 않을 때가 많이 있어요 그래서 충동이어요 급작스럽게 나타나기 때문에 어떤 분은 이 충동을 무 정부적이라고 이야기 해 정부가 없어 그러니까 컨튜럴이 안 돼 이게 무정부적인 것이야
사람이 그렇습니다. 속에 어떤 충동들이 있는데 애기들도 보면 예쁘다 하고 안아 주면 애가 신나면 신을 주체 못해서 앞에 있는 사람 얼굴을 꼬집기도 해요 충동이지요 지기 속에서 솟아 나오는 사람들이 그래요
충동은 무엇을 지금 우리에게 보여주느냐 하면 결핍과 관련이 됩니다. 결핍이 없는 사람은 어떤 충동이 없어요 내 속에 비어있는 부분이 없으면 내가 무엇인가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완전히 만족한 상태입니다.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배우는 충동의 덩어리라데요 비어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케릭터 연구하기 위해서 자기를 비어 주어야 하지요
어쩼던 충동이 강력하게 그 충동이라는 것이 너무나 강력한 것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그 충동을 때때로 둑을 쌓아서 막아야 돼 그것은 내가 이성적으로 막는 연습을 해야 되고 사회적 관습이 우리의 충동을 막아 주기도 하고 그런데 이 충동이 둑을 넘을 때가 있는 것이지요 이 경우에 관계의 파탄이 온단 말이지요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이 충동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할 때 다른 사람과의 신실한 관계가 망가져요 무정부적인 나는 충동적으로 행동을 했는 그 충동적 행동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는 관계의 파탄이 일어날 수 있어요.
또 다른 하나의 문제는 이 충동을 따라 살게 되면 그 순간 나는 타자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하게 대하는 경우가 있어요 특별히 그것이 성적인 충동입니다. 그것이 성적인 충동인 경우에 그런 것이어요
내가 늘 이야기 해 왔지만 타자를 수단으로 삼는다고 하는 것은 그가 여기 타자 혹은 이웃이 있는데 그를 내가 수단으로 삼았어요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는 순간 그래서 이것을 비 인간화 그래 그를 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야
그러니까 내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가지고 다른 사람을 나의 목적의 수단으로 삼는 순간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면 나는 그를 비인간으로 만들고 있어요 이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 수 있지요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네가 이제 네 우물에서 물을 마셔야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 바깥으로 샘물을 찾는 경우에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나가지 말도록 하여라 그의 충동이 다른 곳으로 안에 있는 지향하게 될 때 안에 있는 샘물도 밖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는 것이야 그것을 이야기 해 주고 있다
17절 그 물에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과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정말 마시는 물은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은유하고 있는 것은 부부간의 관계 이야기 한다고 본다면 이것은 나누어서는 안 된다 하는 이야기이지요
그가 네 샘물이 밖으로 넘치지 않기 위해서는 관리를 해 주어야 돼 이 말 말고 좋은 말이 있을까 생각들 한번 해 보세요 케어 돌봄 서로 돌보는 것이지요 샘도 샘이 물이 잘 솟아 나오지만 샘이 샘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해 주어야 돼
하나는 늘 청소해 주어야 해 옛날에 우물을 파면 청소를 해 주어야 합니다. 일년에 한번이나 두 번 정도는 더러운 오물을 꺼내고 말간 모래를 깔기도 하고 일종의 자연적인 정화 장치를 만드는 것이지요
물이 다 고이기도 전에 팍팍 퍼내면 우물이 힘들어요 우물을 안 퍼낸다고 넘치지도 않아 이것이 재미있는 것입니다. 적절한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지요 항상 그렇게 자꾸 돌봐 주고 깨끗하게 해 주고 그래야 되는 데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 그를 소중히 여겨야 해 내게 시원한 샘물을 주는 이 샘을 소중히 여겨 주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 관계의 파탄이 무엇 때문에 오는지 아세요 간단해요 덕 보려는 마음 때문에 그래요 저 사람에게 요구하는 마음이 많으면 관계의 파탄이 오게 되어요 저 사람에게 아름다운 관계는 어디에서부터 오냐 하면 내가 그에게 선물이 되고자 하면 아름다운 관계가 시작이 되어요
부부간의 파탄은 언제나 거기에서 와 저 사람이 마땅히 해 주어야 돼 하는 순간 오기 시작해 그래서 덕보려는 마음만 내려놓으면 관계의 어려움은 크게 생기지 않아요
그러니까 내가 그에게 선물이 되려고 애를 쓰면 좋을 것 같아 옆에 있는 사람을 곁님이라고 이야기 해 곁에 있는 님 곁님 곁님의 존재를 고마워하라 이 사람이 내게 있다는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 이렇게 고마워하고 그의 있음 자체를 귀중히 여기기 시작하면 그가 내게 무언가 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고마운 것이 아니라 그의 있음 자체가 내게 고마울 때
그래서 여러분 두 종류의 결혼 생활이 있어요 이 사람 때문에 내 인생이 있고 이 사람 덕분에 내 인생이 있어요 아주 다르지요 한번 생각을 할 필요가 있어요
제가 노자에서는 어떤 말이 치인사천막약색(治人事川幕若嗇) 치인(治人) 사람을 다스리고 사천(事川) 하늘을 섬길 때 막약색(幕若嗇) 이것만하는 것이 없다 색은 인색하다 할 때 색이야 인색은 인생이 아니라 아낌입니다.
사람을 다스리거나 하늘을 섬길 때 제일 귀중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낄 줄 아는 것이야 우리 시대에 가장 큰 슬픔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아낄 줄 몰라 사람을 이용하려고 해 이런 경우 많지요 인간이 인생 살기 싫을 때 언제인가 하면 누군가가 나를 헌 신짝처럼 버릴 때 신의를 버리고 내가 그렇게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마치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그러다가 이제 단 맛 쓴 맛 다 겪고 나서는 쓰레기 통에 버리는 것이지요
버림받은 사람들 호모 사케르라고 이야기 한데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사실은 신성한 신에게 바치는 제물을 뜻하는 단어였는데 나중에는 사람에게 무가치하다고 짓밟히는 존재로 만든다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사람 낭비가 너무 심한 것이 우리 시대다 그런 생각을 해요
중요한 것은 집에 샘물 집 밖으로 아껴야 되고 소중히 여기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그렇지요 내가 제대로 돌봐 주지 않을 때 아끼지 않을 때 그의 마음속에 생기는 것은 그늘이야 이 그늘은 어떻게 따뜻한 햇살을 원해 무엇인가 채워지기 원하지요 그러면 어디이냐 안에서 찾을 수 없으니까 밖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어 그렇지 않아요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야
여성들이 집안에 머물며 집안 일 하는 상황을 반연하고 있지요
요한복은 4장에 나오는 수가성 우물가에 여인을 아는 데 낮 정오에 물을 길으러 오다 예수님과 만나지요 그 여인이 나중에 무엇이 밝혀집니까? 그 여인의 남편이 다섯이야 지나가기는 했지만 물론 학자들은 그 여인의 남편이 사마리아에 주인이 5번 바뀐 상황을 반영한다고 해요
거기에 이방 민족들이 들어오고 또 들어오고 이방 민족이 들어올 때 신들도 들어오지 않아요 사마리아가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상징적으로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다섯 남편은 이 여인의 마음 속에 든든함이 없는 것이지요 그 현실을 반영해 주고 있어요 아무도 아껴 주지 않았어 사람들이 아무도 고마워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집 밖으로 흐를 수 있는 것이지요 이 여인은 그렇게 볼 수 있어요
여러분 나의 곁에 있는 사람이 사회적인 관계의 단절을 경험하게 한다든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한다든지 내가 뿌리 봅히지 않은 느낌이 들도록 해야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 있어요
18절에 보니까 아주 적극적으로 이야기 해요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 하라
19절 그는 사랑스러은 암 사슴 같고 암 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샘이 볼 될 때는 언제일까요 샘을 외롭게 하지 않을 때가 복된 것이지요 그렇지요 샘을 아무도 찾아오지 않거나 너무 자주 찾아오면 그래서 물이 고일 사이가 없으면 샘도 피곤해 힘들어 그런 것이지요
그러니까 적절할 때 찾아 가고 그런 관계 그래서 여러분 관계 제가 여러차레 이야기 했지만 관계가 너무 밀착되어 있는 것도 문제이고 옛날에 어떤 분이 그렇게 이야기 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밥은 찰진 밥을 좋아하지 않아요
너무 밥이 질게 되면 쌀의 개체들이 망가져 가지고 달라붙어 있어요 이게 진밥이지요
그런데 너무 된 밥 꼬드밥 따로 놀아 그렇지요 그런데 찰진밥은 개체성이 유지되면서 서로 잘 붙어있어 이게 아름다운 관계여요
그래서 그런 관계를 제가 무엇이라고 이야기 했어요 사이 좋아 사이 좋음 적당히 떨어지기도 하고 적당히 붙어 있기도 해야되니까 이런 이야기여요
여기에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그 생이 복되기 위해서는 젊은 날에 얻은 아내를 내가 즐거워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어떻게 즐거워해야 합니까? 곁님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고마워 실지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은 나의 기쁨도 함께했지만 내가 고통스러울 때도 함께 했지 않아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게 등 돌릴 때도 그가 내 곁에 있어 주었다
옛날에 그런 말이 있지요 조강지처(糟糠之妻) 조는 무엇이어요 술찌거미 옛날에 막걸이 거루고 난 찌꺼기 그것을 먹은 것이야 먹을 것이 없으니까 강이라는 것이 쌀겨 강자라는 말이 쌀 먹을 것이 없어 도정한 사람이 버린 쌀겨를 먹은 것이야 그 시대를 함께 걸쳐 온 것이야 이게 조강지처야 처만이 아니야 조강지부 그렇지요 이게 중요해요
물론 세상에는 정말 함께 살기 어려운 사람도 있어요 우리 그 사실도 인정해야 합니다. 너무 망가져 있는 관계도 있지요 그것이 지속되어지나 이것은 어려운 문제여요 조심스럽게 접근되어야 하지만 여전히 관계가 그렇게 애를 써야 되지요
함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함께 마음을 모으고 그렇게 가야 되지요
전도서 9장 9절에 보면 네 헛된 평생에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람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해 아래에서 수고하여 얻은 네 몫이니라
우리 인생이 굉장히 허망한 것처럼 느껴 질 수 있어요 그런데 그 허망함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어디에서 오느냐 내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래 이게 전도서가 정말 중요합니다.
때때로 살다 보면 내 마음 속에 허무한 감정 공허한 느낌이 찾아 올 수 있어요
공허하고 허무하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어 그 때 공허함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어 그게 일상적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이야
이게 소중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를 물러나도록 이 관계가 부유한 것처럼 이 사람도 쓸모없이 보이고 나를 괴롭힌 것 같고 하나에 집중할 때 내 마음에 섭섭함이 사라져요
어쩼던 젊어서 얻은 아내를 여기에서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암 사슴은 아가서에서 은총 부드러운 호감을 이런 것을 상징하는 언어들입니다. 아름다운 암 노루 그러니까 여성다운 매력과 아름다움을 사용하는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는데 늘 아름다움 이런 말 때문에 지나치게 외모에 집중하게 된 것은 그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외적인 아름다움만이 아니고 내면에서 풍겨나온 아름다움이 진자 아름다움이어요
그래서 저는 늙는 것 싫어가지고 자꾸 무엇을 댕기고 팽팽하게 한 얼굴보다는 시간과 더불어 아름답에 주름진 얼굴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져 늙어 가는 것 지난번에서 이야기 나누는데 연기하는 분이 너무 팽팽해지면 표정이 안 나온다 연기가 안 된다고 했지요 어쩼던 여기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여기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의 품을 족한 줄로 여겨라 이것이 잘 안 되지 않아요
아까도 노자 이야기 지족불욕(知足不辱)이요 지지불퇴라 지족(知足) 족한 줄 알면 (不辱)욕된 일을 당하지 않는다 족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항상 욕된 일을 당해 망신당하는 것 이런 것들이지요
여기 지지불태(地支不殆) 지지(地支)아는 것이지 알지하고 그칠지하고 불태(不殆) 위험하지 않다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항상 사람들이 과도한대 문제가 생기지요 넘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족한 줄로 여기라
딤전 6장 6절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니라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자족할 줄 아는 것 항상 사람들은 자기 앞에 있는 것은 누리지 못하고 다른 것에 눈을 돌리느라고 항상 불 만족 스럽게 살아갑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이거든요 자기에게 있는 것을 누릴 줄 아는 것이 지혜라는 것이어요
18절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이 이야기는
그 사람에 흠뻑 취하라 사실은 우리가 평생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나도 내 아내와 오랫동안 이 사람 다 알지 못하다 어떻게 다 알겠어요 사람은 그 자체로 신비인데 어떻게 다 알겠어요
사람은 그 자체로 신비인데 죽을 때까지 몰라요 다 알 수가 없지요 그러니까 무엇이냐 하면 내가 가지고 상투적인 기준에 따라서 그 사람을 가두어 놓지 말라 그 말이어요 내가 그 사람 속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호명하면 그 사람 속에서 많은 것이 나올 수 있지요 상대에게서 우리는 호명 안해 결혼한 순간부터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결혼이라고 하는 게 사랑의 무덤처럼 돼 그러면 안 돼 사랑이 점점 커져야 돼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서로 속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호명해서 그것이 그 사람 속에 발현 되도록 해 주어야 돼 노력해야 돼 사랑은 노력이어요
그러니까 사랑이 노력이라고 해 가지고 그게 의무가 되면 힘든데 여러분 나 스스로가 저 사람이 내 속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호명할 마음이 들 필요가 있어 약간 매력적이어야해
유시화라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이런 제목의 시를 씁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유명한 시이지요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안에 있는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려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그러니까 여러분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여러분 흔드세요 그 마음속에서 그런 것이지요 그렇게 될 때 내 곁에 있는 곁님은 늘 신비야 마르지 않는 샘이고 그래서 음녀를 경계하라는 이야기 우물을 마시라는 이야기 마르지 않는 샘이고 내 영혼에 그래서 이제는 음녀를 경계 우물에서 그 아내를 그의 사랑을 연모하라를 이야기를 했어요
20절에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그렇게 이야기입니다.
음녀를 연모한다고 하는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냐 하면 얼이 빠진 상태야 멍한 상태가 된 것이야 연모한다는 것은 내 마음을 빼앗긴 것이야 이미 그래서 어떤 대상에 대한 칩착은 그 자체가 무엇이냐 하면 부자유야 그렇지요 내가 무엇인가 얼이 빠진 상태라고 하는 것은 내가 내 생을 선택할 가능성이 줄어든 것이야 내가 붙들고 있는 것 처럼 느끼지만 내가 붙들린 것이야 이게 음녀에게 흘린 사람들 음남에게 홀린 사람들 이방 계집의 안지 말라고 하는 데 하바크라고 껴 안는 것이야 집착하다
다시 말하면 성애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어요 거기에 집착하다 보면 망한다
21절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네 앞에 평탄케 한다
사람든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 몰라고 하나님은 속일 수 없지요 인간의 인간 됨은 거기에 있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의식하고 사는 게 참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명심하고 그 뜻을 따라 살기로 작정하는 순간 어떤 줄 아셔요 그 삶이 쉬어져요
그것을 결단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그게 쉬어져요 거꾸로 내 삶이 왜 이렇게 어렵지라고 느낄 때 물론 외적인 조건들이 있어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라면 순리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아요
22절 악인은 자기 악에 걸리며 그의 줄에 메이나니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죽겠고
23절 심히 미련함으로 말미암아 혼미하게 되느니라
악인은 자기 악에 걸린다 자기 죄에 중에 메인데 그래서 죄(罪)라는 글자 한자로 써서 넉사자 사실 그물 망이지요 아닐 비자가 있어 그물이 씌여진 상태 죄라는 것은 그것을 짓는 순간 부자유해 집니다. 벌(罰) 벌도 그물망이 있어요 말씀언 칼도자 말로 판결이 난 것이야 부자유하게 씌워진 상태인 것이야
악행하는 사람은 자기가 좋아서 했어요 그러나 그를 붙잡는 착오가 된다 그 이야기가 여기에 나오고 있는 것이지요 항상 우리가 악인들의 길로 가지 않기 위해서 훈계를 싫어하면 안 돼 그 훈계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훈계를 싫어하게 될 때 우리의 영혼이 혼미하게 되어요 미혹이다 할 때 쌀 미(迷)자 가다는 척자가 있고 쌀 미자가 있어 쌀이라고 하는 것이 작지요 작은 것이기 때문에 미혹되었다는 것은 내 삶이 분간을 못해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몰라서 가리산 지리산 이게 미혹됩니다.
그것을 이제 우리가 벗어나기 위해서는 분명한 지향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분명한 지향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의 푯대가 있지요 그리스도라는 푯대 그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게 될 때 미혹됨을 면할 수 있어요
빌 3장 14절 인생이라고 하는 산을 오르다 보면 여기 높은 산을 오르려고 해요 여기에서 바라보면 이쯤 떨어진 대서 바라보면 보여요 목표가 그런데 여기쯤 서면 안 보여요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어요 가야하는 방향을 알고 있다 그래서 삶에서 중요한 것은 방향성 내가 이쪽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래서 방향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기 삶에 지향이 뚜렸한 사람은 미혹됨이 없어요
오늘 우리가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 이야기를 했는데 항상 곁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겨야 해 도스오프스케 미성년이라는 책에서 기독교인들은 이상하데 온 세상을 사랑한다고 말해 가장 가까운 있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해 시작은 거명수에서부터 한강이 시작되는 것 처럼 가장 가까 있는 사람부터 그 사람을 신비로 바라보기 시작할 때 아름다움에 눈 뜨기 시작할 때 다른 사람에게도 여러분 그런 사랑의 승리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매튜 핸리의 주석
음행에 대한 경고
잠언 5:1-14
Ⅰ. 그 다음에 올 경고에 대한 엄숙한 서문(1, 2절). 솔로몬은 본문에서 자기 아들에게 말하고 있다. 즉 자기가 애정을 품으며 영향력을 다소 행사하는 자기 자녀들에게 하듯이 모든 젊은이를 상대로 이 말씀을 전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의를 요구한다. 비록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이란 말로 시작하지는 않았을 망정 그 자신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하는 한 예언자였던 것이다. "주의하며 네 귀를 기울이라. 말씀을 들으며 기록된 것을 읽을 뿐만 아니라 네 마음을 그것에 기울이고 그것을 부지런히 숙고하라."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서 그는 다음 사실을 강조한다.
1. 그의 담화의 우수성.
"그것은 내 지혜요 내 명철이다. 내가 네게 지혜를 가르치고자 나서려 할 때 이보다 더 적절한 명칭을 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덕 철학이 곧 나의 철학이요, 그것이 바로 내 학교에서 가르칠 내용이다.
2. 그의 담화의 유용성. "내가 말하는 것에 주의하라."
(1) "이로써 네가 슬기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즉 너는 근신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솔로몬의 강의가 의도하는 것은 우리의 머리를 여러 가지 개념이나 근사한 사색의 소재나 의심스런 논란으로 가득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우리 스스로 할 수 있게 인도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분별있게 처신하도록 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일은 우리에게 어울리는 일이며 우리의 진정한 이득이 될 것이다.
(2) "이로써 네가 슬기롭게 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즉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네가 사귀는 자들의 이익을 위해(소위) 네 말문이 막힐 때에 지식을 즉시 동원할 수 있도록 하라."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말 2:7). 그러나 성서로 준비되어 있고 그로써 강한 자들은 저희 기도에서 뿐만 아니라 저희 담화에서도 영적 제사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Ⅱ. 육체적 욕망, 즉 간통, 간음, 모든 음란을 삼가라는 경고. 어떤 이는 이 말씀을 비유적으로 받아들여서 본문의 음녀를 인간의 마음과 예의, 혹은 감각적 욕심을 유혹하는 경향이 있는 우상 숭배나 거짓된 교리로 이해하기도 한다. 과연 이런 것은 어떤 것보다 적절한 해석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본문의 주된 의도는 명백히 제 7계명의 범죄에 대한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다. 이 간음죄는 청춘이 너무나 범하기 쉬운 죄요 너무나 격렬한 유혹이며 그 본보기는 아주 허다하다. 이것이 용납된다면 영혼 속의 모든 미덕의 씨앗에게는 너무나 파괴적인 존재가 되기 때문에 솔로몬의 경고가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고 너무 자주 입에 올린다고 해서 이상해 할 것은 하나도 없다. 충실한 감시자로서 솔로몬은 여기서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자기 생명과 위안물을 주의하듯 이 죄를 피하라는 훌륭한 경고를 해 주고 있는데 이는 그 죄가 틀림 없이 그들의 파멸을 보증하는 것인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하도록 경고받는 일은 두 가지이다.
1. 이 죄의 매력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는 것(3절).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사실이다(혹은 "이방 여인의 입술은 꿀송이처럼 떨어진다"). 육욕의 즐거움은("술잔에 색깔을 내며 바로 마음을 동하게 하는" 포도주처럼) 매우 유혹적이다. 그 입, 곧 그 입의 입맞춤과 그 입의 말은 "기름보다 미끄러워" 독약이 매끄럽게 내려가며 그 안에 해독이 있을까 의심조차 불러 일으키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다음 사실을 살펴 보자.
(1) 그 결과는 얼마나 치명적인가! 종말이 이를 때에 죄인이 자기 꿀과 기름으로 얻게 되는 열매는 무엇인가?
[1] 양심의 공포. 그것은 "쑥같이 쓰다"(4절). 입에서 달콤하던 것이 배에서는 역겹고 신맛으로 변한다. 생각해 보면 그것이 "두 날 가진 칼"처럼 양심을 베고 찌른다. 어느 쪽을 잡아 보든지 간에 그것은 상처를 입힌다. 솔로몬은 경험으로 그것을 말할 수 있었다(전 7:26).
[2] 지옥의 고통. 만약 어떤 자가 이 죄를 범하였다가 회개하고 구원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이 죄의 직접적인 영향은 몸과 영혼을 멸망시킬 수 있다. 그 "발은 사지(武地)로 내려가며," 마치 저주가 너무 오래 졸고 있기라도 한 듯이 지옥이 자기에게 끌어 다니기 위해 그 죄인의 발은 "음부를 잡고 있다"(5절). 이 죄에 얽혀 있는 자들은 자기와 지옥사이에는 단 한 발자국의 간격밖에 없으며 바야흐로 자기들이 거기에 빠지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2) 이 매력들은 얼마나 거짓된 것인가!
음녀는 아침으로 호리고 아름다운 말을 하며 그 말은 꿀처럼 달고 기름같이 매끄러우나, 그녀는 자기에게 귀를 기울이는 자들을 기만할 것이다. "그녀의 길이 든든치 못하여도 너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그녀는 자기 가면을 자주 바꾸며 자기의 본색을 매우 다양하게 감추는데 이는 만약 자기 정체가 드러나면 혐오를 받게 되는 까닭이다. 희랍 신화의 변덕장이신 프로테우스처럼 이 여인은 자기가 뜻을 두고 있는 자들과 사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여인이 이렇게 온갖 재주를 피우며 꾸며대는 목적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생명의 길을 찾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밖에는 없다. 그들이 일단 생명의 길을 찾게 된다면 자기가 그들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이 여인은 알기 때문이다. 다음 두 가지가 사탄이 자기의 모든 유혹에서 노리는 주요 목표임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사탄의 궤계를 모르는" 자들이다.
[1] 그들로 하여금 생명의 길을 택하지 못 하게 하는 것. 즉 경건한 신앙인이 되지 못하게 방해하며 천국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사탄의 계략이다. 사탄은 자신이 천국의 행복에서 추방되었으므로 그들도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2]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그들로 하여금 생명의 길을 헤아리지 못하게 하는 것. 즉 신도들이 그 길로 행하는 게 얼마나 도리에 맞는 일인지, 그 길로 가는 것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이득이 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없게 하는 것이 주요 목표인 것이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여 경건한 신앙에 영광을 돌리도록 하자. 즉 종교는 스스로 진지한 생각에 마음껏 젖어보고 사물을 천평에 얹어서 공평무사하게 달아 보는 자들에게서 소기의 목적을 거둔다는 사실과, 악마는 이런 저런 종류의 향락물을 저들에게 끊임없이 공급함으로써 저희가 "그들의 평안에 속하는 일들"을 조용하게, 침착하게 생각해 보지 못하도록 그 주의를 전환시키는 방법 외에는 사람들을 자기세력 하에 끌어들일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살피도록 하자. 음란은 어떤 것보다도 더 명철을 어둡게 하고 양심을 마비시키며 사람들이 생명의 길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는 죄이다. 음행은 "마음을 빼앗는도다"(호 4:11).
2. 이 죄의 가장자리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것(7,8절).
(1) 이 경고는 엄숙한 머리말로 소개되고 있다. "그런즉 아들들아, 나를 들으라!"
이 말씀을 읽거나 듣는 이들은 누구이든 간에 내가 하는 말에 주의하고, 믿음을 말씀에 혼합시켜서 보물처럼 쌓아두며, 이방 여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같이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아라. 내가 하는 말을 단지 지금 받기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고수하여 네가 유혹의 맹렬한 공격을 받을 때에 그것이 네게 바로 쓰이며 힘이 되게 하라."
(2) 경고 자체도 매우 어조가 강하다.
"네 길을 그녀에게 멀리하라. 우연히 네 길이 그녀 가까이 있고 일 때문에 그녀의 매력이 미치는 곳으로 들어가게 될 만한 그럴듯한 구실을 네가 가지더라도, 위험에 직면하게 되느니보다 차라리 네 길을 바꾸며 내 진로를 변경하여라. 그녀의 집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그 거리의 맞은 쪽으로 걸어가라. 아니 돌게 되는 한이 있어도 딴 길을 통과하라."
이 말씀이 암시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죄에 대해 아주 두려워하는 감정과 미워하는 감정을 품어야 한다는 것. 우리는 전염병으로 오염된 지역을 꺼려하듯 죄를 무서워해야 한다. 우리는 죄를 싫어함에 있어서 더 가까이 갈 수 없을 정도로 악취가 나는 썩은 고기 보듯 해야 한다. 모든 육체적 욕망에 대해 뿌리 깊은 반감을 품을 때라야 우리는 우리의 순전함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2] 우리는 이 죄를 범하게 하는 기회가 되거나 이 죄를 향해 한 걸음 내딛는 것이 될 일이면 무슨 일이든지 회피해야 한다는 것. 피해로부터 보호를 받으려는 자들은 피해의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부패한 본성 속에는 맹위를 떨치는 화약이 들어 있어서 어떤 구실로든 불꽃에 가까이 가기만 하면 그것은 미쳐서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 시험에 뛰어 들고는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라고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셈이 된다.
[3] 우리는 경건한 질투로 우리 자신을 질투해야 하며 우리 자신의 결단력을 과신해서도 안 된다는 것. 즉 "우리가 여기까지만 오고 더 이상은 나아가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자기 스스로 하면서 모험삼아 죄의 가장 자리로 나아가 보려고 한 만큼 우리 자신의 결단심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
[4] 우리는 우리에게 덫이 되며 범죄의 빌미가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간에 설사 그것이 "오른 눈"과 "오른 손"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빼 버리고 찍어 내던져야"하며, 우리의 영혼을 위태하게 하느니보다 차라리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도 헤어지는게 낫다. 이것은 우리 구주의 명령이다(마 5:28-30).
(3) 이 경고를 강조하기 위해 솔로몬이 여기서 사용하는 논증은 앞에서 나온 논제와 동일한 것을 다루는 것으로, 이 죄에 부수되는 여러 가지 폐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1] 그것은 명성을 사라지게 만든다.
"너는 네 존영을 남에게 주게 될 것이다(9절). 너는 네 스스로 명예를 잃게 될 것이다. 너는 모든 이웃 사람들 손에 돌을 쥐어 주어 네게 던지게 하고 말 것이다. 그들은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네게 대해 수치를 퍼붓고 너를 경멸할 것이고 어리석은 자에게 하듯 너를 짓밟을 것이다."
음행은 사람을 천하고 야비하게 만드는 죄이므로 지각있는 사람이나 덕있는 사람은 매음녀와 교제하는 자들과 사귀는 일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2] 그것은 시간의 낭비이며 청춘 시절이자 인생의 꽃다운 시기인 네 "수한을 잔포자에게 빼앗기게"한다. 즉 "그 잔포자는 극도의 잔인성으로 영혼에 전쟁을 거는 너의 야비한 욕망이요 네게 애정을 가장하나 실제로는 너의 고귀한 생명을 노리는 야비한 음녀이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에 바쳐져야 할 세월이 잔포한 죄를 섬기는 데에 쓰여지고 있다.
[3] 그것은 재산을 탕진시킨다(10절). "타인이 네 재물로 충족하게 될 것이다. 한데 그 재물은 네 가족을 위한 청지기로서 네가 위탁받은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네 수고의 열매는 마땅히 네 가정의 양식이 되어야 마땅할 터인데 아무 권리도 없고 네게 감사하지도 아니 할 의인의 집에 있게 될 것이다."
[4] 그것은 건강을 파괴하며 인간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네 몸, 네 육체가" 그로 인해 "쇠패하게" 될 것이다(11절).
음란한 욕정은 죄인이 소홀히 하며 전혀 신경을 쓰지 아니하는 "영혼에게 싸움을 걸" 뿐만 아니라 죄인이 그토록 전념하며 즐겁게 해 주려고, 마음껏 포식하게 해 주려고 온갖 신경을 다 써 주는 몸에 대해서도 역시 싸움을 건다. 음탕한 정욕은 이와 같이 기만적이며 미련하고 해로운 것이다. 음란을 탐하여 스스로 음행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기력을 피폐하게 하며 자신을 약골로 만들고, 더욱이 어떤 자는 몸서리나는 질병에 만신창이가 되기까지 한다. 이로 인해 그들의 수명은 중도에 꺾이며 그들은 잔학한 욕망의 동정도 못 받는 제물이 되고 만다.
[5] 그것은 양심이 그때까지 깨어있는 경우라면 저희 마음을 공포로 가득 채울 것이다.
"네가 지금은 유쾌해 하며 자기 기만 속에서 노닥거리고 있으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틀림 없이 한탄하게 되리라(11절).
네가 이 모든 순간에 계속 만들고 있는 것은 회개의 작업을 위한 것이 되며 죄가 네 앞에서 제 본색을 드러내게 될 때 돌이켜 보고 괴로워하며 고통스러워할 재료를 쌓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조만간에 비애를 몰고 올 것이다. 그 때는 영혼이 겸허케 되어 회개에 이르는 때거나, 아니면 양심이 죄인에게 정면으로 덤벼들게 되어 질병에 의해서든 무덤에 의해서든 "몸과 육체가 쇠패하게" 되는 때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 때에는 몸이 무덤에서 썩는 동안 영혼은 구더기도 죽지 않는 지옥의 고통 속에서 괴로움을 당하며 "아들아! 기억하라!"고 하는 비명이 끊이지 않고 울리게 된다. 솔로몬이 여기에서 등장시키는 건 자신을 힐난하며 자신의 우매를 더욱 악한 것으로 여지없이 탓하는 죄인의 깨달음이다. 죄인은 그 때에가서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아주 비통하게 한탄할 것이다.
첫째, 더 선하게 개조되기를 싫어하였으므로 자기가 알게 되는 것을 싫어하였고, 자기 의무에 대한 가르침이나("어찌하여 내가" 훈계받는 규율을 "싫어하며," 모든 훈계가 다 참되고 선한 것임에도 "훈계"그 자체를 "싫어 하였던고"!) 자기 잘못에 대해 지적받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는 사실. "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겼노라"(12절).
그는 자기를 맡았던 분들, 곧 부모나 목사들이 그들의 본분을 다 하였다는 사실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그의 선생이었다. 그들은 자기에게 훈계를 하였고 좋은 충고ㅘ 타당하나 경고를 해 주었다(13절). 그러나 자신의 치욕이 되도록 쩔쩔매면서 그는 이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는 자기에게 밀어닥친 모든 불행 가운데에서 그 점에 있어 하나님을 의로우시다고 인정하다. 즉 그는 그들의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았었고 "그들의 목소리를 복종하지 않았었다." 그는 실로 "자기를 가르치는 이에게 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었으며, 그들이 하는 말에 개의치도 않았고 그 감명을 받지도 않았던 것이다.
좋은 교육을 받고 그에 맞춰 살지 않는 이들은 저 딴 날에 책임져야 할 일이 매우 많을 것이다. 그리고 가르침을 받은 것을 현재 기억하지 않으려 하고 그 가르침에 순응하려 하지 않는 자들은 저희 죄를 더욱 가중시키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저희 파멸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으로서 기억하게 될 것이다.
둘째, 너무 빈번한 범죄 행동으로 인하여 죄의 악습이 뿌리를 내리고 탄탄하게 굳어져 있으므로 자기 마음이 안에서 완전히 죄를 범하는 데에 동조화게끔 되었다는 사실(14절). "내가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모든 악에 거의 빠지게 되었었노라."
그가 예배를 위한 집회에 들어갔을 때, 혹은 하나님을 경배하러 회당이나 성전 뜰로 들어 딴 이스라엘인들과 함께 갔을 때 그의 음란한 마음은 방종한 생각과 욕망으로 가득차고 그의 눈은 간음으로 그득하였다. 그 장소나 모인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나, 행해지고 있던 일에 대한 경외심도 그를 제어하지 못하였고, 그는 여느 곳에서나 그러하듯 그 곳에서도 거의 악하고 부도덕하였다. 깨어 있는 양심에게는 거룩한 일에 대한 모독보다 더 무섭게 보이는 죄약은 없다. 우리가 회중과 집회 속에서, 그리고 존귀하게 되는 장소와 거기서 누리는 은혜를 죄스럽게 하는 것보다 더 죄를 악화시키는 일도 없을 것이다. 시므리와 고스비는 "모세와 온 회중이 보는 데서" 저희 음행을 공인하였었다(민 25:6 이하). 마음의 간음도 하나님께는 공개된 것이나 진배없어서 우리가 경건한 종교적 행사로 그에게 가까이 나아갈 때 그것은 그를 극히 노엽게 할 것이 틀림 없다. 나는 치안관과 재판관 그리고 그들의 회중을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모든 악 가운데에 있었노라'(어떤 이들은 그렇게 해석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 말씀이 죄의 악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형벌의 악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나는 본보기가 되었고 세상의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나는 이스라엘의 회중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거의 모든 쓰라린 심판 아래에 있었으며 하나의 표적으로 세워졌노라. 내가 회중 가운데에 서서 부르짖었노라"(욥 30:28).
우리는 마지막에 가서 이와 같이 후회막심할 일은 피하도록 하라.
악의 치료법(잠언 5:15-23)
간통과 간음, 그리고 그런 모든 호색적이고 음란한 행로에는 큰 폐배가 있음을 보여 준 솔로몬은 본문에서 그런 악에 대한 치료법을 처방해 주고 있다.
Ⅰ. 합법적 결혼이 가져다 주는 위안을 족하게 여기며 즐기라.
이것은 음란 방지를 위해 마련된 것이므로, 예방될 수도 있었던 일의 치료에 효과적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제 때에 사용되어야 마땅하다. 누구도 하나님께서 인간이 생리적으로 원하는 그러한 쾌학들을 금하심으로써 인간을 무자비하게 다루신다고 불평해서는 안 된다. 은혜롭게도 하나님은 그런 욕구에 대해서는 정식으로 충족될 수 있도록 조처하셨던 까닭이다.
"너는 동산 안의 모든 나무에서 다 따 먹으려 하지 말고 네가 즐거워하는 한 나무만을 택하라. 너는 그 나무에서 마음대로 따 먹을 수 있다. 본능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조할 것이나 그 이상의 욕정은 다른 아무 것에도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을 하나의 짝에 국한시킴으로써 하나님은 사람에게 가혹한 처사를 하시기는커녕 오히려 실제로는 그들의 참된 이익을 도모하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Herbert선생이 관찰하는 대로 "하나님이 만약 모든 것을 공유물로 해 놓으셨더라면 혹실히 인간은 그것을 사유물로 만들기 위해 담을 두르는 자들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Church porch). 솔로몬은 여기에서 허락받은 결혼의 즐거움이(음란한 영의 요소인 사악한 지혜가 아무리 정상 결혼의 즐거움을 조소하더라도)금지되고 거짓된 음행의 모든 쾌락을 훨씬 능가한다는 사실에 대해 무척 상세히 진술하고 있다. 그는 이것을 하나의 해독제로 처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간음에 대한 논고로서도 강조하고 있다.
1. 젊은이여! 결혼하라. 결혼하되 불타지 말아라. "우물"을 가져라. "네 자신의 우물"(15절), 곧 "네 청춘의" 아내를 가지라(18절). "전적으로 끊든지 아니면 결혼을 하라"(Herbert) "세상은 넓다. 그리고 거기에는 다양한 성취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너는 스스로 줄일 수 있다."
2. 결혼한 자는 자기 아내에게서 기쁨을 얻으며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라.
아내는 그가 직접 택하였으므로 그는 그 선택을 기뻐해야 마땅한 까닭이다. 뿐만 아니라 아내는 하나님의 섭리가 그를 위해 정해 주신 여인이어서 그는 하나님의 지정을 더욱 더 즐거워해야 마땅하며, 아내가 자기 자신의 것이므로 아내와 더불어 즐거워해야 한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18절). 그 여인 안에서 네 스스로를 행복된 자로 생각하며 그녀를 복된 아내로서 대하고, 그녀로 네 축복을 소유하게 하며 날마다 아내를 위해 기도하라. 그리고 "아내와 더불어 즐거워하라." 기도와 하나님의 축복으로써 신성화되어 우리에게 주어지는 위로에서는 우리가 기쁨을 얻기가 쉬운 것이다. 우리가 친척을 즐거워하는 일은 우리에게 허락된 것일 뿐더러 우리에게 내리신 명령이기도 하다. 특히 함께 멍에를 멘 배필이 함께 즐거워하고 서로를 기뻐하는 일은 어울리는 일이다. 상호간에 기뻐하는 것은 서로가 충실하다는 증거이다. "신랑이 자기 신부를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사 62:5) 율법으로도 주어진 일이다(전 9:9). "너는 네 평생의 모든 날을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밖에 나가서는 교제하는 사람들과 즐겁고 명랑하게 어울리면서 가정에 돌아와서 가족들과는 언짢고 무뚝뚝하게 지내는 자들은 하나님이 지정해 주신 곳에서 자기들의 위안을 취하여 하지 않는 자들이다.
3. 자기 아내를 좋아하며 극진히 사랑하라(19절). "그녀를 사랑스러운 암사슴같게, 아름다운 암 노루같게 여기라." 유력한 자들은 왕왕 자기들 집에서 이런 애완 동물을 길들여서 함께 논다. 그러나 힘든 연구와 사업으로부터 기분 전환하기 위해 네 자신의 아내와 순결하고도 즐거운 교제를 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것을 원하지 말아라. 가난한 사람의 암양 새끼가 그 주인의 품에 안겨 있듯(삼하 12:3) 네 아내로 네 품에 눕게 하며 너는 네 머리를 아내 가슴에 쉬게 하라.
"너는 그 품에 항상 족하게 여겨라." 다른 어떤 이에게서 즐거움을 찾지 말라." "너는 언제든지 그 사랑 안에서만 잘못을 범하라. 네가 만일 네 사랑으로 하여금 도에 지나치게 하고, 누구하고든지 못견디게 열애에 빠지려면 네 자신의 아내만을 그 상대로 삼아라. 거기에는 과도할 위험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네 욕정의 갈증을 해소시키기 위해 네 자신의 우물에서 마시는 물이요, 네 샘에서 흐른 맑고 달콤하고 건강에 좋은 물이다"(15절; 고전 7:2, 3 참조).
4. 자기 자녀를 기뻐하며 그들을 즐거이 바라 보라(16, 17절).
"자녀들을 너의 순수한 샘에서 흘러 나온 시냇물로 간주하라(유대인은 유다의 근원-물-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사 48:1). 시냇물이 원천에서 갈라져 나오듯이 자녀는 네 분신이다. 네 아내에게만 집착하라. 그러면 너는 다음과 같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1) 무수한 자손. "그들은 강물처럼 풍부히 흘러가며 널리 퍼져서 딴 가계와 결합할 것이나 반면에 음행을 저지르는 자들은 그 수효가 붓지 않을 것이다"(호 4:10).
(2) 고유한 자손. "그들은 네게 영광이 되고 너는 그들을 어디든지 보내도 떳떳하고 길거리에서도 함께 나다닐 수 있으나, 사생아는 너의 치욕이 되며 네가 인지하기를 부끄러워하는 자식이다." 이 일에 있어서도 미덕에는 온갖 즐거움과 명예가 있다. 그러므로 미덕은 "지혜"라고 불러 마땅하다.
5. 신실하고 유덕한 아내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는" 가운데 금지된 쾌락의 제안을 냉소하라. "음녀를 연모하며"(20절) 불결한 창녀를 사랑하고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살펴 보라. 명예나 미덕을 인식하고 있는 자라면 그런 것을 생각하기도 싫어할 것이다.
"네 자신의 샘에서 나는 청결한 생수를 앞에 두고 더러운 흙탕물을 그나마도 독이 들어 있고 훔쳐온 흙탕물을 더 좋아하다니, 너는 왜 그렇게 멍청이가 되려하며 왜 그토록 자신의 원수가 되려고 하느냐?"
만일 이성의 명령이 들린다면 미덕의 법에 복종하게 될 것이다.
Ⅱ. "언제나 너를 향하시고 계신 하느님의 눈을 보고 그에게 대한 경외감이 네 마음을 지배하게 하라"(21절). 이 음행의 죄 중에 살고 있는 자들은 스스로에게 은밀함을 약속한다("간음하는 자의 눈은 저물기를 바라느니라." 욥 24:15). 저희 행위가 하나님께로부터 숨기우지 못하는데 무슨 목적으로 그러는가?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1.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고 계신다.
"사람의 길," 즉 그의 모든 동태와 모든 행동은 다 "여호와의 눈앞에" 있으며 마음의 모든 활동과 생명의 모든 유출이 아무리 은밀히 진행되며 아무리 교묘하게 가장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눈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님은 참 빛으로 그것을 보고 계시며 그 모든 원인과 상황과 결과까지 알고 계신다. 그는 가끔 인간의 길에 시선을 던지시는 게 아니라 언제나 실제로 그들을 관망하고 감독하고 계시다. 그런데도 너는 감히 하나님 목전에서 그를 거스려 범죄 하려느냐? 너와 동류인 인간의 면전에서도 감히 행하지 못하는 악을 그의 보시는 앞에서 행하려느냐?
2. 하나님은 죄인을 불러 자기 행위에 대한 셈을 하게 하실 것이다."
그는 "인간의 모든 행실"을 보실 뿐만 아니라 죄인의 악행을 곧 심판하시게 될 분으로서 그들의 모든 행실을 "헤아리시며" 판단하시기 때문이다.
모든 행위는 저울에 달아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전 12:14). 이것이 왜 우리가 "우리 발의 길을"(4:26) "헤아려야"하며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 "우리 자신을 심판"해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Ⅲ. "자기의 불의함 중에서 계속 행하는 자들의 확실한 멸망을 예견하라."
이 음란 죄 중에 사는 자들은 벌받지 않으리라고 스스로에게 확신하지만 그들은 자기를 기만하고 있다. 그들의 죄가 그들을 찾아 낼 것이다(22, 23절). 사도는 이 말씀의 의를 몇 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히 13:4).
1. 이것은 인간이 그 구속력을 타파하기가 무척 힘든 죄이다. 죄인이 늙고 약할 때에라도 그의 정욕은 강하고 활동적이어서 "자기의 젊은 날을 생각하게"만든다(겔 23:19). 이와 같이 그 자신의 동의하게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자발적으로 투항하여 악의 포로가 되었으므로 "자기의 죄의 줄에 메이느니라." 그 죄와 악은 그를 너무나 철저히 장악하고 있어서 그는 스스로를 구제할 수가 없으며, "미련함이 많음을 인하여"(그토록 잔혹한 주인 밑에 스스로 종살이하러 들어가는 것보다 더 미련한 게 무엇이랴!) "혼미하게" 될 것이고 끝없이 방황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음란은 사람들이 한 번 뛰어들기만 하면 도저히, 거의 회복할 수 없는 죄인 것이다.
2. 음란은 만약 사람들이 버리지 않으면 형벌을 능히 피할 수 있는 죄이다. 그것은 그들의 멸망을 피할 도리가 없게 만든다. 그들 자신의 불의는 그들을 사로잡아 양심의 비난을 받게 하며 현재적 책망을 받게 만들 뿐만 아니라(렘 7:19), 그들을 체포해 가지고 꽁꽁 묶어서 하나님의 심판에 넘겨 버릴 것이다. 거기에는 감옥도, 쇠고랑도 필요없다. 그들은 치유할 수 없으리 만치 악한 타락한 천사들이 "흑암의 감옥에 예배"되어 있듯이, "자신의 죄의 줄에 묶여"있게 될 것이다.
"자주 책망을 받고도 자기 목을 곧게 하는" 죄인은 "결국 훈계를 받지 아니함을 인하여 죽을" 것이다. 그는 이미 전체적인 경고를 충분히 전달받았으므로 세부적인 경고는 받지 않을 것이며 자기의 위험을 미리 보지 못하여 죽을 것이다. 훈계를 받으려 하지 않는 그는 "자기의 많은 미련함" 속에서 길을 잃게 되어 죽을 것이다. 그의 운명은 이와 같을 것이며 결코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할 것이다.
죄의 길을 택할 정도로 어리석은 자들은 그 길의 종착지인 멸망에까지 가도록 하나님께서 가만히 내버려 두심이 타당하다. 이것이 왜 우리가 감각적 욕망의 유혹에 대하여 경각심과 결단력으로써 방어해야 하는지의 타당한 이유인 것이다.
당신의 아내를 복되게 하십시오!
잠언 5:15-23
여러분도 “복덩이”란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실 것입니다. 그 의미는 “매우 귀중한 사람이나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네이버 사전) 여러분에게 있어서 매우 귀중한 사람이나 물건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하면, 여러분의 복덩이는 누구 또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잠언 5장 18절 상반절을 보면 성경은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Let our fountain be blessed)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샘”이란 아내를 비유합니다. 즉, 성경은 우리의 아내를 복되게 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우리의 아내를 복되게 할 수가 있습니까? 한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아내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복으로 여겨야 합니다.
잠언 18장 22절을 보십시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He who finds a wife finds a good thing And obtains favor from the LORD). 물론 지혜자 솔로몬 왕은 아무 아내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하면 잠언을 보다 보면 그는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1:9, 19; 25:24). 여기서 솔로몬 왕이 말하는 “아내”는 그런 다투는 여인이나 성내는 여인이라기 보다 “어진 여인”(an excellent wife)(12:4), “슬기로운 아내”(prudent wife)(19:14) 또는 잠언 31장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A wife of noble character)(31:10)입니다. 잠언 12장 4절을 보십시오: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잠언 19장 14절을 보십시오: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잠언 31장 10절을 보십시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이러한 어질고 슬기로우며 현숙한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하나님께 은총을 받은 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아내를 배우자로 둔 남편은 복 받은 자입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어질고 슬기롭고 현숙한 아내는 그에게 복덩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내를 복덩이로 여기고 계십니까? 아니면 저주 덩어리로 여기고 계십니까? 제가 이렇게 질문을 하는 이유는 오늘 본문 잠언 5장 18절에 나오는 “복되게 하라”는 원어 히브리어 의미에는 “복”(bless, be blessed)이라 뜻도 있지만 “저주”(curse)라는 뜻도 내포되 있기 때문입니다(Vine). 우리는 우리의 배우자를 복덩이로 여겨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젊어서 취한 아내”는 하나님이 주신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내는 우리에게 복이되기 때문입니다(말2:14) (박윤선). 그러므로 우리 남자는 우리 아내에게 “당신은 나의 복덩이요”(You are my blessed one)라고 마음으로 여길뿐만 아니라 말로도 표현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의 복된 아내를 우리의 복덩이로 여기지 않 는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불신앙의 죄요 또한 교만의 죄입니다. 아마 우리 남자들 중 이렇게 변명하고 싶은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현숙한 여인을 주시지 않으시고 다투며 성내(성깔있)는 여인을 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그런 아내를 복덩이로 여길 수 있겠습니까?’ 참 그럴싸한 변명같지 않습니까? 만일 그러한 말을 제가 듣는 다면 저는 그 형제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다투며 성내는 여인을 주신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런 여인을 선택했으니 책임감을 가지고 그 여인을 현숙한 여인으로 양육하십시오.’ 너무나 많은 경우 우리 남자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어질고 슬기롭고 현숙한 여인을 거부하고 우리가 보기에 예쁘고 매력을 느끼는 그러나 나중에는 다투며 성내는 여자를 선택하여 결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선택을 했다면 우리는 책임감을 가지고 우리의 아내를 현숙한 여인으로 양육하는데 헌신해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너무 많은 우리 남자들이 자기가 선택하여 결혼한 아내에게 참 무책임한 말과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아내에게 저주스러운 말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또한 행동으로도 아내로 하여금 자기가 저주 덩어리고 느끼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지금 많은 아내들이 자기들의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여인의 인생입니까? 우리는 우리 아내(배우자)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덩이로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아내에 대한 책임을 신실하게 끝까지 잘 감당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우리 아내를 복되게 하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의 배우자를 즐거워해야 합니다.
잠언 5장 18절을 보십시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Let your fountain be blessed, And rejoice in the wife of your youth). 과연 우리가 우리의 아내를 어떻게 즐거워해야 합니까? 우리 남편들은 우리 아내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겨야 합니다. 19절을 보십시오: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A loving doe, a graceful deer — may her breasts satisfy you always, may you ever be captivated by her love) 아내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라는 말은 우리 남편들은 우리의 아내의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사로잡힌바 되야 한다(we must be captivated by her love)는 의미입니다. 특히 우리는 우리 아내의 미모보다 그녀의 미덕에 우리의 마음이 사로잡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다는 말씀 비유의 의미입니다(박윤선).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의 “우물”과 우리의 “샘”(15절)인 우리의 아내의 사랑만을 즐기며 결코 그녀를 버리고[“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하지 말라는 말의 뜻(박윤선)] 음녀의 집으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우리의 아내로 말미암아 성적으로나 애정적으로나(sexually and affectionately) 만족할 만한 원기 회복(satisfying refreshment)을 얻을 때에(MacArthur)) 우리는 결코 음녀의 품을 그리워하며 음녀의 사랑을 연모하지 않을 것입니다(20절). 솔로몬 왕은 오늘 본문 잠언 5장 16-17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로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그러나 지금 얼마나 많은 남편들이 자기들의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타인으로 더불어 나누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자기들의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인에게 가고 있습니까? 지금 많은 남편들이 자기들의 아내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지 못하며 아내를 즐거워하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그녀의 사랑을 연모하지 않고(19절) 오히려 음녀를 연모하며 다른 여인의 가슴을 안고 있습니다(20절). 부부 카운슬러 M. 게리 뉴먼은 200명의 남자들 (바람을 피는 사람과 안피는 사람)을 대상으로 왜 남자들이 바람을 피는지에 대해 조사 연구 분석을 하였는데 그 결과가 이렇다고 합니다(인터넷): 48%의 남성들은 바람을 피우는 이유가 감정적/정신적인 사랑을 상대방(아내/애인)으로 부터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흔이 남자들이 바람을 피는 가장 큰 이유가 아내들로부터 육체적인 친근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약 8%의 남자들만 “그렇다”고 답을 해다고 합니다. 남자들도 신체적/육체적 친근감보다, 그들의 아내로부터 “자 기야, 고마워”, “자기야, 사랑해” 라는 감정적/정신적 친밀감 을 원한다고 합니다. 단,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여자와는 다르게, 남자들은 이런 속에 있는 감정을 잘 표현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77%의 남자들은 주위에 바람을 핀 친구나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40%의 남자들은 바람피는 대상을 직장에서 만난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같은 직장서 만난 여자와 바람을 피게 되 는데 그 이유는, 작장내 동료 여인들 또는 후배 여인들로 부터의 칭찬과 존경을 받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남자들은 그들을 인정해 주는 여인한테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남자들이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인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바람을 피우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죄악된 선택의 결과를 맛볼 수 밖에 없습니다(7-14절). 그 징계란 우리가 7-14절에서 묵상한 “존영 상실”(9절), “시간 상실”(9절), “재물 상실”(10절), “건강 상실”(11절), “양심상 고통을 당함”(12-14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간음의 결과을 알고 음녀를 연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더 높은 동기를 21-23절에서 맗씀하고 있습니다. 그 동기는 한 세 가지입니다(Walvoord).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For a man's ways are in full view of the LORD, and he examines all his paths).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악인의 모든 행위를 감찰 (평탄케 하신다는 말의 개역)하신다는 말입니다(박윤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은밀히 행하는 모든 행 위를 감찰하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 아내의 사랑을 연모하지 않고 다른 여인의 사랑을 연모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아시고 우리를 징계하실 것입니다. 둘째로, 죄라는 것은 우리를 올가미에 걸리듯 걸려들게 하며(1:17-18) 또한 우리로 하여금 죄의 줄에 매이게 하기에 우리는 음녀를 연모해서는 아니됩니다. 오늘 본문 잠언 5장 22절을 보십시오: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The evil deeds of a wicked man ensnare him; the cords of his sin hold him fast). 비록 우리들은 죄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에 대하여 말 하기를 좋아하지만 사실 죄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노예로 만들어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의 도덕적 생활이 규율이 안 잡혀 자기 멋대로 행할 때에 그 결과는 죽음이라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음녀를 연모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을 인하여 죽겠고 미련함이 많음을 인하여 혼미하게 되느니라”(He will die for lack of discipline, led astray by his own great folly). 우리는 결코 미련함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훈계를 받지 못하고 우리의 마음을 음녀에게 빼앗겨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결과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지혜에 주의하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기의 아내 또는 배우자를 복되게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허락해 주신 자신의 배우자를 복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의 아내를 즐거워 합니다. 그들은 그녀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깁니다. 여러분, 이것은 복의 근원이 되시는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신부된 교회의 관계를 가리킵니다. 즉, 우리 신부된 교회는 복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우리의 복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겨야 합니다. 신랑되신 예수님을 온맘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자의 삶을 살고!
잠언 23:15-19
1. 눈
어느 날, 한 사진작가가 아름답고 젊은 여성의 사진을 찍었다. 그녀의 얼굴은 티 없이 깨끗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가 필름을 현상했을 때 그녀의 얼굴에 이상한 반점이 드러나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이해할 수가 없어 카메라에 무슨 이상이 있는가를 조사해 보았으나 잘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흐른 후 그녀의 어머니를 만났을 때 그녀가 어려서 홍역을 앓은 후 생긴 것이었음을 알았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었던 것을 카메라의 면밀한 눈은 놓치지 않았다. 우리는 카메라보다 더 뛰어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그 어떤 것들도 다 보고 계심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마음을 소유하고 늘 겸손하게 행하는 지혜로운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지혜가 있는 삶
본장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교훈으로 말씀한다. 그중에서도 지혜자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이다. 아무리 유혹이 강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다. 지혜자의 훈계는 아들의 삶이 지혜 있는 모습이 되며 악인의 유혹을 이기는 온전한 모습을 가질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전장을 통해 지혜로운 자가 택해야 할 바른 선택을 교훈한 저자는 본장에서 지혜로운 자가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교훈을 말해 주고 있다. 지혜자는 탐욕스러운 자와는 사귀지 말아야 하며 그들이 주는 식물과 재물에 유혹되지 말아야 한다. 그것들은 순간적인 쾌락을 주지만 더 큰 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1-9절). 또한, 가난하고 연약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훈계에 귀기울이고 자식에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에 힘써야 한다. 그것을 통해 자식의 영혼을 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여호와만을 경외해야 한다(10-21절). 부모를 소흘히 여기지 말고 정성으로 섬기고 즐겁게 해드려야 한다(22-25절). 특히 도덕적인 면에서 간음케 하는 창녀를 멀리할 것이며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죄를 범하게 하는 술에 빠지지 않게 조심하여야 한다(26-35절).
3. 마음을 지혜롭게 하고(15)
하나님의 자녀들은 무엇을 지혜롭게 하는 복된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을 지혜롭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복된 인생을 살아야 한다. 솔로몬은 이렇게 말한다.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잠 23:15) 하나님은 우리가 지혜로운 마음을 소유할 때 기뻐하실 것인데, 세상에서 육신의 부모 역시 자녀가 지혜로운 마음을 갖는다면 기쁠 것이다. 우리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 부모를 기쁘시게 하는 인생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잠 10:1) 하나님의 은혜로 자녀들이 자신을 살피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 있기를 기도한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 23:24-25) 늘 성령 안에서 깨어 있어 기도하며 지혜를 사모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의 상황이 왔을 때 바른 선택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지혜를 사모하는 자는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창기를 사귀는 자는 재물을 없이 하느니라.”(잠 29:3) 또한, 지혜로운 자로서 늘 진리를 따라 행하기를 바란다.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요이 1:4)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여 늘 진리를 따라 행하는 지혜로운 인생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지혜로운 자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길을 즐거워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잠 23:26) 그릇된 길로 빠지기 쉬운 세상 가운데서 혼자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마음을 지혜롭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입술이 정직을 말하고(16)
하나님의 자녀들은 입술이 무엇을 말하는 복된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입술이 정직을 말하고 감사의 고백을 하는 복된 인생을 살아야 한다. 솔로몬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잠 23:16) 우리는 정직한 말을 하는 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돈과 명예와 권력을 목표로 하며 살아가는 세상에 속한 이들을 따라 살아가지 않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 아무 행위든지 좇지 말라.”(잠 3:31) 또한, 더러운 말을 입밖에도 내지 않는 삶을 사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성령님의 도움으로 더러운 말을 멀리하고 선한 말을 하는 그리스도인, 정직을 말하며 모든 이에게 은혜를 끼치는 복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의 도움으로 말의 실수가 없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약 3:2) 말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은 자주 말의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실수를 늘 자신에게 허락한다면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와 아픔을 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지만, 늘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 성령의 언어를 사용하고 점진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을 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성령님의 도움으로 어리석은 말을 하지 말고 감사의 말을 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 5:4) 자신의 소유를 지키기 위해서 험한 말을 쉽게 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입술이 정직을 말하고 감사의 고백을 하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고(17-18)
하나님의 자녀들은 항상 누구를 경외하는 복된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복된 인생을 살아야 한다. 솔로몬은 이렇게 말한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잠 23:17-18) 우리는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는 인생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인생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복임을 깨달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5:16)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기를 바란다. “너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기도 원하지 말지어다.”(잠 24:1) 행악자의 끝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바란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시 37:1-3) 들의 풀과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살아가는 악인은 결국 사라지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의지하는 자는 결국 살게 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임을 깨닫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시 111:10)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야훼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원이요, 그대로 사는 사람이 슬기를 깨친 사람이다. 주님 찬송 영원히 울려라.”(시 111:10)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가기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 주를 경외하는 복된 걸음을 걷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모르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은 이러한 복 가운데 거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면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닫고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복된 길을 걷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3-14)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마음대로 자신의 인생을 해석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복된 인생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를 얻어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사는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주의 은혜로 지혜를 얻어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길로 인도할지니라.”(잠언 23:19)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살아가는 복된 자가 되어,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는 길로 늘 향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잠언 24:14)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주 안에서 소망을 품고, 하나님의 지혜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마음을 지혜롭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복된 자!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입술이 정직을 말하고 감사의 고백을 하는 복된 자! 여호와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복된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자의 삶을 사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