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사람의 배짱은 여행을 통해 커진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나에게 배짱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도 없지만, 만약 있다고 한다면 여행을 통해 배짱의 그릇이 커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난생처음 해외로 나갔던 적은 1980년대 중반, 건설엔지니어로 사우디아라비아에 갔을 때였다. 모세가 건넜다는 홍해의 해변, 허허벌판 사막의 담수플랜트 현장에서 영상 40도를 오르내리는 땡볕 아래서 속절없이 비지땀을 흘렸다. 하루해가 저물 때면 나뿐만 아니라 근로자마다 제각기 등에 허연 지도들이 나타났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뜨거운 시간으로 인해 내 배짱도 노릇노릇 굽혀졌던 것 같다. 그때 이후로 나는 그토록 싫어하던 여름을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해외 현장 근무 이래로 해외여행은 취미라기보다 일종의 탐사가 되었다. 마치 세계지도를 놓고 퍼즐 맞추기 하듯이, 해외여행을 해오고 있으니까 말이다. 웬만한 동남아 국가들은 달랑 배낭 하나 메고서 두루두루 돌아보았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넘게 배낭여행을 갔던 적도 있다. 그 과정에 낯선 나라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적도 있고, 한밤중에 밀수범(?)으로 몰려 마닐라공항에서 험한 꼴을 당했던 적도 있다. 그래도 그때마다 뜻밖의 귀인이 나타나 손을 내밀어 준 바람에, 이날까지 잘 살아오고 있다. 숱한 나라들을 돌아다녔지만 그중에서도 중국 여행을 가장 많이 다녔다. 이번 중국 대륙 실크로드 여행이 서른여섯 번째 중국여행이었다. 여행의 미덕은 역시 역지사지(易地思之), 다시 말해 입장 바꿔 생각하기라는 말이다. 덕분에 그동안 신기루 상태로 머물러 있던 실크로드가 어느 정도 실체가 드러난 기분이다. 만약 기회가 허락된다면, 실크로드의 또 다른 구간을 찾아가고 싶다. 영순위로 고대 페르시아의 땅, 이란을 꼽고 있다. 이 책을 쓰는데 큰 도움을 준 이들이 있다. 초고를 읽고 귀한 의견을 주신 하우엔지니어링 자료실 이종선 실장, 박금수 부사장, 다음으로 ‘가나자와에서 일주일을’의 저자이자 필자의 둘째 여식인, 현아가 꼼꼼한 교정과 함께 족집게 훈수를 해주었다. 또한 실크로드 아흐레 여정 내내 고락을 함께 즉석 토론으로 나의 옹색한 생각 그릇(?)을 넓혀준 지인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동안 있어도 없는 듯 투명인간(?) 대접을 해준 아내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끝으로 ‘실크로드 여행기! 아직 멀었어요?’하고 자기 일처럼 채근을 해주신 분들의 성원에도 감사를 드린다. 여행을 떠나는 동기는 대개 두 가지로 나뉜다. 한 가지는 복잡한 제 속을 훌훌 털고 비우러 간다. 또 한 가지는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듯, 허전한 속을 싱싱하게 채우러 간다. 실크로드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기에 어떤 사람에게도 강추! 할 수 있다. 마무리하는 마당에 생각해 본다. 신기루 너머 오아시스 도시들에 대한 감상을 조금 과하게 털어놓은 것 같다. 다시 가슴 속 배터리가 방전 신호를 보내오면 나머지 실크로드 구간도 찾아가고 싶다.
목차
실크로드차이나에서 일주일을, 박하, 우루무치, 만년설, 보그다봉, 공항,신장위그르, 동투르키스탄, 천연하천, 청나라, 건륭황제, 신장걸설생산병단, 둔전, 철도, 라싸, 박물관,여행
https://youtu.be/PnABTHo8EqM
프롤로그 11 신기루 너머 오아시스로
첫 번째 도시 27 우루무치, 만년설 덮인 보그다봉 아래
두 번째 도시 57 투루판(吐魯番), 땅속에서 찾은 길
세 번째 도시 101 둔황(敦煌), 서라벌에서 온 혜초스님
네 번째 도시 127 자위관(嘉?關), 천하웅관 너머 치차이산으로
다섯 번째 도시 153 우웨이(武威), 청동분마의 기상
여섯 번째 도시 177 란저우(蘭州), 황허의 관문
일곱 번째 도시 197 시안(西安), 진시황을 위한 변명
에필로그 217 다시 대륙의 시대는 오는가
책 속으로
‘다시 대륙의 시대는 오는가?’ 이것은 내가 늘 마음에 품고 있던 화두였다. 해양의 시대를 지나, 다시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대륙의 시대가 올까. 지리적으로 보면 한반도는 대륙의 발판이자 해양으로 나가는 교두보이다. 하지만 지정학적으로 보면 분단국이고 여전히 섬 아닌 섬나라로 머물고 있다. 이런 환경이 은연중에 사람들의 의식까지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래전 어느 원로 선배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분이 일제강점기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부산역에서 출발한 기차를 타고 만주로 수학여행을 갔다고 한다. 당시 그분에게 북녘 땅의 도시들과 만주는 낯선 이국땅이 아니라 장차 꿈을 펼칠 무대로 여겨졌던 지역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북녘은 어떤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기 마련이 아니던가.
- 〈본문〉 중에서
해외 현장 근무 이래로 해외여행은 취미라기보다 일종의 탐사가 되었다. 웬만한 동남아 국가들은 달랑 배낭 하나 메고서 두루두루 돌아보았다. 그 과정에 낯선 나라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적도 있고, 한밤중에 밀수범으로 몰려 공항에서 험한 꼴을 당했던 적도 있다.
숱한 나라들을 돌아다녔지만 그중에서도 중국 여행을 가장 많이 했다. 이번 중국 대륙 실크로드 여행이 서른여섯 번째 중국여행이었다. 여행의 미덕은 역지사지(易地思之), 다시 말해 입장 바꿔 생각하라는 말이다. 그동안 신기루 상태로 머물러 있던 실크로드가 어느 정도 실체가 드러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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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 누구나 인생에 한번쯤 꿈꾸는 실크로드 여행
- 시인이자 건설 엔지니어인 저자가 기록한 실크로드 차이나에서의 일주일
4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자 건설 엔지니어인 저자가 실크로드를 여행하며 쓴 기행(紀行)이다.
저자는 실크로드에 연한 중국 대륙의 도시와 타클라마칸사막과 고비사막 사이에 자리한 7개 오아시스 도시에 머물면서 실크로드의 의미를 단순히 동서양의 교역로뿐만 아니라, 단절된 인간 세계의 마음의 교역으로까지 인식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실크로드를 통해 생의 다른 길을 찾는 이들에게 전하는 ‘인생 마음 교역 안내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이래, 수많은 여행가들이 실크로드를 찾아와 자신의 기록을 남겼으나 대개 지리와 문명의 교류에 관한 것이었다.
이 책은 기존의 실크로드 문명 기행과는 사뭇 다른 관점에서 실크로드를 이야기한다. 건설 엔지니어의 눈으로 실크로드를 바라보고 시인의 가슴으로 실크로드의 풍경을 기록했다. 단순한 실크로드 가이드북에 머물지 않고 문명 비평서로 읽혀도 좋을 만큼 역사와 현실을 적절하게 책 속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본문에 등장하는 혜초의 한시와 저자가 쓴 시들은 실크로드의 적막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누구나 막연하게 지니고 있는 실크로드에 대한 환상을 역사와 현실이 맞물린 또렷한 실체로 변환시켜주는 것이 또한 이 책의 미덕이다.
“우루무치, 투루판, 둔황, 자위관, 우웨이, 란저우, 시안. 우루무치와 란저우와 시안을 제외한 나머지는 타클라마칸사막과 고비사막 사이에 자리한 오아시스 도시들이다. 신기루 같던 사막의 7개 오아시스 도시들은 흥미로운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따지고 보면 깨달음은 책 속이 아니라 길 위에 있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