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박성식을 처음 본 건 1997년 이었습니다. 그때 우리 단체에선 자원봉사에 관한 교육이 있었고, 친구의 소개로 교육에 왔었지요.
그때도 박성식군은 고덕동 이마트 건너편 정자에서 점심시간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빵과 우유를 나뉘드리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만 4년을, 꼬박꼬박 빠지지않고 자기 점심시간을 이용해 노인분들을 만나왔던거지요.
박성식의 자원봉사 활동은 신앙생활의 하나였습니다.
1990년 처음 교회 청년들과 ꡐ작은 사랑의 모임ꡑ을 만들어 영아.보육. 재활원등에서 봉사를 시작했고, 91년부터는 도봉동 철거지역에 있던 ‘한마음 공부방`에서 자원교사로 일을 했습니다. 1997년 시민회 회원으로 참여하게 된 후에는 점심 나누어드리는 일 말고도 시민회 방과후 공부활동의 교사로 참여해 주1회는 아이들을 나들이 장소에 데려다주고, 간식후원자를 방문해 간식을 갖다주며 한달에 한번은 일요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가서 씻기고 놀아주는 삼촌이 되었지요.
무엇보다도 놀라웠던건 이 모든 일을 늘 웃으면서 찾아서 그리고 성실하게 해낸다는 것입니다. 우린 그에게 “ Yes man" 과 “박성실”이란 별칭을 선물하기도 했지요.
드디어 2003년 시민회에서는 지역사회의 보이지 않는 자원활동의 힘을 모아서 어려운 이웃들의 집수리와 결연을 하자는 “ 해뜨는집”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박성식의 생활은 이제 돛을 단 배처럼 보였습니다. 기술자 형님들과 나이 많으신 어르신, 그리고 어린 동생들을 이끌면서 늘 먼저 몸으로 모범을 보이고 몸을 낮추는 겸손으로 해뜨는집의 수장으로서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한달에 한번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일을 하기위해 한달내내 짬짬이 집수리할 곳을 돌아보고 일감을 정하고 분배하는일, 그리고 그동안 수리했던 집을 정기적(1달에 한번)으로 방문해 점검하고 명절에 작은 선물을 드리는 일까지.....그의 손이 가는곳에는 사랑과 정성이 넘칩니다.
오늘도 그의 핸드폰은 쉬지않고 울립니다.
하지만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아름답기만 합니다.
이제 30을 한참 넘긴 그를, 우린 늘 “아름다운 청년”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첫댓글 오~~부라보입니당 ㅋ
짱!! ^^d
작사모 오랜만에 듣는다...박단장 수고했어... 이제 하산하도록...농인줄 알지...배고프면 전화해라...
이야^^ 짱!!^^
민망,민망~!!!
ㅎㅎ 박성식의 역사가 한눈에......그래도 많이 모자라 보이네요. 뒷날 이 장규의 모습도 이러하지 않을까...........^*^
음... 감동의 물결이 파도를 치는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