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습격?
제목부터 낯설다. '습격'이라 함은 상대의 갑작스런 침범을 의미하는데, 외로움이 습격하다니? 뭔가 무섭게 파고드는 듯한 심상찮은 제목이다. 저자는 2019년, 영국 정부가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를 설치하고 장관을 임명한 사실을 알리면서, '외로움'이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 사회적 체제의 문제, 또는 시스템의 문제임을 적시한다.
사실 우리의 일상에서 외로움은 혼자라서 느끼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사람들 틈바귀 속에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살아간다. 또 거미처럼 얽혀진 네트워크 시스템에서 연결되어 살아간다. 그러함에도 현대인의 외로움은 커져만 간다.
왜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첫째 인공지능 AI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 두 번째 우리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인 '능력주의'를 오늘날 한국인들을 외롭게 만드는 두 가지 결정적 요인으로 꼽았다.
사실 외로움의 시작은 '뿌리뽑힘'과 '쓸모없음'이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인간의 가치에 대한 경멸 속에 과잉화된 존재로 전락하는 일들이 일어나는데 결국 많은 이들이 이 세계에서 '있을자리'를 잃고 불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에 휩싸일 때 인간은 외로워진다.
설마 AI가?
이 책에서는 언급되진 않았지만, 올해부터 프로야구에서 심판의 이색적인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볼·스트라이크 판정함에 있어 자신의 판단보다 기계의 판단을 따라야 한다. 오히려 인간 심판은 AI로부터 전달받은 데이트를 읽어주는 기능에 그친다.
이른바 자동 판정 시스템(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 ABS다. 게다가 올해부터 투수들이 공을 던지는 시간을 제한하는 피치 클락(Pitch Clock)까지 시범 도입될 예정이어서, 스포츠 영역에서마저 인간의 영역을 기계에 넘겨줄 예정이다.
이것은 AI가 공정하다는 편견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실제 AI는 남성중심적이며 인종차별을 드러내거나 노동자와 가난한 자에게 훨씬 더 엄격하거나, 학연, 지연, 성별에 연연하였다. 그 까닭은 엄청난 양의 빅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인간의 감정 표현, 안면 색상, 음성의 톤 등 목소리 등을 분석한 다음, 최종적으로 가장 많이 입력된 데이터 즉, 우수한 사람들, 합격자들의 패턴과 가장 일치한 사람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이 맺는 좋은 관계가 좋은 데이터 AI를 생성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직접 고용 정규직화하고자 했지만, 공사 내 정규직과 취업준비생 등 청년층의 반발로 무산된 사건은 크나큰 파장을 남겼다. 10년 이상 해당 업종에 일해왔던 베테랑 보안요원들은 '무임승차'의 원흉이 되버렸다. 반발했던 사람들의 주된 이유는 '능력'이 아니라 정규직이 되기 위한 '시험'을 통과했느냐였다.
우리 사회에서 시험이 자신의 특권을 보호하기 위한 '사적소유권'이 된 지 오래다. 최근 수련의 등 의사집단 파업에서 보았듯이 엘리트 직군일수록 시험이라는 장벽을 쳐놓고 특권을 소유할 수 있는 인원수를 철저하게 통제한다. 이처럼 시험이라는 수단은 ‘인위적 제한을 통해 기회비용을 초과해 발생하는 이익을 낳는다. 이른바 한국적 '능력주의'의 사례다.
본래 '능력주의'라 함은 타고난 혈통과 신분, 계급 같은 것이 아닌, 오로지 능력에 따라 분배하자는 발상에서 비롯되었으나, 오늘날 능력주의는 타고난 배경 즉, 부모의 능력마저도 주요한 배경으로 꼽힌다. 능력도 상속된다. 능력주의 시대의 상위 엘리트 계급의 자녀들은 지구의 어느 시대보다 오랜 시간 교육을 받는다. 말하자면 자본만 되물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가진 사회적 능력 또한 되물림 한다.
미국의 경우 하버드와 예일대 등 상위권 대학에는 소득 상위 1%에 속하는 가구 출신이 하위 50% 가구 출신보다 훨씬 더 많이 재학하는 사살은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별 다르지 않다. 2020년 기준 소위 SKY대학의 경우, 신입생 중 55.1%가 상위 20% 이상에 속하는 계층이다. 그 비율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데 부유층은 자신들이 가진 사회적 지위와 부를 교육을 통해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5~60년대 고도성장을 구가했던 스웨덴 사회에서 노사 갈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본과 노동자들은 충분한 부가가치를 분배하였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불황에 빠져든 70년대 말부터는 갈등이 증폭된다. 반면 고도성장을 자양분 삼아 자본축척이 노동소득을 웃돌면서 '자산양극화'가 극심해진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모델이 등장하는데 가난은 사회적 질병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양극화는 궁극적으로 중산층마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사회적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자산과 소득의 사회적 양극화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써 노동을 분배기준으로 삼지 않은 '기본소득'과 '기초자산제'를 대안으로 내세웠다. 저자의 이와 같은 주장은 지금은 원외로 밀려난 진보정당 '정의당'의 주요 정책 중 하나였다.
그러나 사회 곳곳에 만연한 능력주의는 이번 총선에서 보여주었듯이, 노동하는 이들을 대표하는 정당을 소멸시키거나, 적어도 기성 정당이 노동하는 집단을 대표하려 할 때 그 역량을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또한, 능력주의는 다른 유럽 선진 복지국가들과 달리, 사회보험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위치에 놓인 노동자를 보호하는 역진적 선별 제도로 설계되어 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우리나라의 제도와 사회적 특성에 따라 가장 외로운 세대를 20대와 30대라 하였다. 외로움의 본질, 즉 내가 어려울 때 손 내밀 사람이 없다는 감정이 젊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고 진단하였다.
따라서 이와 같은 청년세대의 '외로움'을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시스템의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생애 주기 자본금'을 제안하면서 첫째 상속제와 증여세, 둘째 부유세, 셋째 공유부로서 토지세, 데이터세, 탄소세를 제안했다.
저자의 제안은 어느 사회과학자들보다 매우 거칠고 담대하다. 반면 매우 친절하다. 무엇보다 거친 세상을 살아갈 일곱 살 아이를 둔 자상한 아빠 미소가 느껴지는 따스한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 내리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저자가 꿈꾸는 세상은 도래할 수 없거나 요원하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넘어 '슬픔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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