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9 호 |
원자력발전소와 누실명(陋室銘) |
강 명 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몇 해 전의 일이다. 휴일에 난데없는 정전이었다. 아파트 기계실에서 무언가가 잘못되어 전기가 불통이라는 것이다. 한데 그날따라 귀찮게 들락거릴 일이 많았다. 꼼짝 않는 엘리베이터를 흘겨보며 18층을 몇 번 오르내렸더니 오후에 아주 파김치가 되고 말았다. 차라리 등산을 했더라면 덜 지쳤을 것이다. 계곡을 따라 물소리 새소리 들으면서 산을 오르니 말이다. 하지만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단조롭고 고되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전기가 끊어질 때 처할 끔찍한 상황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기가 모자라거나 없을 때 아파트에서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요즘 아파트들은 대개 2, 30층을 넘는다. 2, 30이 넘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주부와 노인, 학생, 직장인, 그리고 택배를 하는 분들을 상상하면 실로 끔찍스럽다. 철썩 같이 의지하는 모든 가전기기들도 한낱 플라스틱 덩어리, 쇠뭉치가 되고 말 것이다. 티브이도 인터넷도 무용지물이 되고, 우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단절감에 몸서리칠 것이다. 전기에너지 없는 아파트는 저 높은 산꼭대기의 외로운 돌집에 불과한 것이다.
대지진으로 일본의 원자력발전소가 파괴되고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성을 절감한 사람들은 원자력발전소를 그만 짓자, 없애자 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안정성’ 세 글자만 읊조리는 대한민국 정부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일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다. 그리고 원자력발전소를 유지하고자 하는 논리 역시 쉽게 반박할 수도 없을 것이다. 왜냐?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경제성장이란 신화를 맹신하고 있는 이상, 에너지의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원자력발전소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할 것이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온 전기일망정 그게 끊기면 너무나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폭발하듯 증가하는 에너지의 수요를 어떤 방법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어렵지만 원자력발전소를 없애고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는 쪽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에너지의 가격이 몹시 비싼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값싼 대체 에너지란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인가. 과도한 에너지의 소비(아니 낭비)를 전제로 하여 유지되는 사회와 경제에 대한 근원적 반성이 없는 한 원자력발전소의 유혹을 뿌리치게 쉽지 않을 것이고,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
차라리 작은 집에 사는 소박한 삶의 즐거움을 |
지금 남아 있는 조선시대 가옥을 보면, 방들이 됫박만 하다(1970년대까지만 해도 방은 크지 않았다). 이유야 여럿이겠지만, 무엇보다 난방의 수단이 방의 크기를 제한했을 것이다. 장작 외에는 난방의 수단이 없는 시대가 아니었던가. 천정이 높고 널찍한 방을 데우는 데는 엄청나게 많은 장작이 들어간다. 그러니 방이 작은 수밖에. 하지만 그 작은 방에서도 살았다. 소박하고 작은 집을 찬미한 허균의 「누실명(陋室銘)」은 그런 사회를 배경으로 지어진 것이다.
“방이라 해 봐야 열 자 남짓/ 남쪽으로 문 두 쪽 내었더니/ 정오에 쏟아지는 햇볕이/ 마냥 밝고 따스하네/ 덩그런 벽만 있는 집이지만/ 경사자집(經史子集)은 골고루 갖추었지/ (중략) 남들은 누추한 집이라며/ 어이 사느냐 하지만/ 내 눈에야/ 신선의 거처와 진배없네/ 마음도 몸도 편안하거늘/ 뉘라서 내 집을 누추하다 하리?/ 내 누추하다 이르는 것은/ 몸과 이름 함께 썩어 사라지는 것이라네/ 원헌(原憲)의 집은 초가집이오/ 도연명의 집은 오막살이였지/ 군자가 산다면야/ 무슨 누추함이 있으리오”
작은 집에서 사는 소박한 삶의 즐거움이다. 나는 가난한 전근대를 찬양할 생각은 별로 없다. 하지만 풍요롭지만 위험한 지금 세상을 찬양할 생각도 조금도 없다. 아마도 우리는 넓고 높고 편리한 아파트로 상징되는 풍요로운 삶에 대해 근원적으로 반성하지 않는 한 에너지 부족에 시달릴 것이고, 방사성 물질을 호흡할 수도 있다는 공포를 느끼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삶보다야 차라리 허균의 ‘가난한 누실(陋室)에서의 삶’이 더 좋지 않겠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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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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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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