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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과 징벌의 관계
왕하 15:23-31
23 유다 왕 아사랴 오십년에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년을 치리하며
24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25 그 장관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반역하여 사마리아 왕궁 호위소에서 왕과 아르곱과 아리에를 죽이되 길르앗 사람 오십명으로 더불어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더라
26 브가히야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27 유다 왕 아사랴 오십 이년에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이십년을 치리하며
28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29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 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취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30 웃시야의 아들 요담 이십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반역하여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쳐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31 베가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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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처음부터 사람이 있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계신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로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발걸음도 세시고
머리카락도 세십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목숨과 생명을 유지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깨끗한 공기와 따뜻한 햇볕,
때를 따라 비를 내리셔서
만물을 살려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처럼 인간은 햇볕과 공기와 비와
모든 생명의 은혜안에서
우리가 놓여져 있는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사람이 되어서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영광 돌리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히 그 내부에 악마의 속성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살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없다는 것,
그 자체 만해도
하나님께 사람 취급받기가 곤란한 사람입니다.
내가 뭘 더 할 수 있느냐를 생각하지 마시고
내가 지금 누구에의
도움과 은혜로 살아가는가를
우리는 매일 같이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잊어버리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저것 얻고자 이것 얻고자
분주히 오가기 보다는
차분하게 마음을 다시 한번 정돈해서
나는 누구의 도움으로 사는가를
날마다 생각하며 일생을 보내야 합니다.
내가 감사를 해야 하는데
누구에게 감사를 해야되는가?
이처럼 감사의 대상이
누군가를 늘 파악하고
그 분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정상이라는 말입니다.
'다른 이는 교회 안 나오는데
내가 왜 괜히 여기와 있지?
바보같이 말이야' 라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남들 안 온다고 해서
같이 지옥 가렵니까?
남들 인간같이 안 산다고
인간이 안 되렵니까?
남들 다 하나님을 배반한다고
같이 하나님께 대항하렵니까?
정작 우리 자신들이
사람답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는
이 시대에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인간들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 없이
못살 것처럼 삽니다.
그러나 이점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 없이도 못살지만
동시에 그 사람들로 인해서
우리가 고통받고 망하게 될수도 있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나의 원수가 집안 식구다'고 했습니다.
가까운 집안 식구가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방해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내게 은혜를 입히시고
늘 부여하시는 분에게 고맙다고 하는데
가까운 식구들이 훼방놓을 수 있는 겁니다.
그 때마다 우리는
정상적인 사람은
항상 무엇으로 사는가를
확고히 해야 합니다.
본문에 하나님께서 북쪽 이스라엘나라에게
자꾸 징계를 하고 벌을 내리면서도
사랑을 베푸십니다.
우리는 왜 북쪽 나라에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리시는가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그 진위를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감사하고 싶은데
하나님이 누군 지를 잘 몰라서
제대로 감사를 못하는 경우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러니까 더욱 감사를 해야 되겠구나
하는 쪽으로 생활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본문내용에서 반복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런 인간이..
이런 나쁜 짓을 했다는데 있습니다.
즉 이 나쁜 짓은
옛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한 일을
반복하는데서 나온 죄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달리 말하자면,
여로보암의 죄가 기준이 되어서
여로보암처럼 살아가는 자는
내가 결코 선한 자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왕하 15:28에 보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또 왕하 15:24 말씀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 왕하 15:18에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여로보암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열왕기상 14장8절에 보면
여로보암은 자기가 지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이 조치를 취했는데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좇으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찢어서 주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시금 본문에서의 흐름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보답하고 싶어서
감사한 대상을 찾고 있는데
그분이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싫어버린 바 되어
갖다 버리는 종류의 사람도 있습니다.
찢어버리는 종류의 사람은
여로보암의 죄를 따르는
그 일당의 무리들입니다.
따라서 나중에라도
이 여로보암의 죄와 같은 질의 죄를 지으면
우리 하나님은
언제든지 그 인간을 찢어버려
한쪽으로 치워버리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자는 구출하고
어떤 자는 제외시키는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출애굽기14:26-28에 보면
다음과 같은 신기한 일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 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 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이 말씀은 홍해바다에서 일어난 일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민족들은
재빨리 홍해바다를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인들을 뒤쫓던 애굽 군사들도
재빨리 따라 들어가지만 몰사해 버립니다.
그 많은 군사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말입니다.
다 물 속으로 들어가 죽었지요.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천국은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천국에 못 갈 사람은
단 한 명이라도
하나님은 온 힘을 다해서
결코 넣어주지 않는 쪽으로 일하십니다.
그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외시키고 탈락시키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에
열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오지 못할 자들이
천국에 얼씬거리는 것을
철저히 배격합니다.
열심히 계획하고 투자하고
정성을 다해 양육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천국 갈자와 못 갈 자를
구분하셔서 잘라내시는 일에도
한시도 방심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이 점에 있어 완벽하십니다.
빈틈 없이 일하십니다.
바로 이런 분에게
우리가 감사해야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천국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유혹입니다.
죽어서 다들 가고 싶은 곳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마음이고
천국에 들어갈 자와
안 들어갈 자를 구분하는 일을
지금도 하나님께서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천국은 자기가 원한다고
다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천국에 정신이 팔려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단 한 명이라도
천국에 못 갈자가 들어가는 경우를
놓치지 않기에 신경 쓰고 계십니다.
홍해바다를 건너갈 때
애굽사람들은
곧 이스라엘 사람들을 덮칠 것같이
뒤쫓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히브리인들이 지나 갈 때
그 멀쩡했던 바다의 양 벽이
무너질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바다를 무너지게 한 시점은
모든 애굽 군사들의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다 물에 수장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다달았을 때 일입니다.
곧 천국과 약속의 땅은
그 어떤 애굽사람도
허락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식으로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이 철칙 하에 지금도 하나님은
이 우주를 운영하시고
역사 하시고 계시는 겁니다.
못 들어오게 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들어 온 자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이 또 있겠습니까.
여러분 천국은 아무나 가는 줄 아십니까?
천국 가는 백성의 뒤를 쫓는
지옥 백성의 무리를
늘 잘라버리는 일을
하나님이 하고 계십니다.
천국가지도 못하는 자들이
천국 가겠다고 나설 때
그들을 잘라내면서
천국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가를
알려 줍니다.
하나님이 햇볕주시고 공기주시고
비를 주시니까
그것밖에 못하시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천국 갈자와 못 갈 자를
예리하게 잘라내는 일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출애굽 사건 때
홍해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갈라지느냐,
어떤 원칙에 따라 구분되느냐를
보여줍니다.
이런 의도를 가지시고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인들을 홍해 바다 쪽으로
탈출을 감행케 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천국과 지옥이
영원히 함께할수 없다는 것을
홍해 바다 속에서 드러내실 까요?
그것은 구원이란
사람들이 자기 재주 부리기와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 능력으로
얼마든지 천국 갈 수 있게 하는 장치를
아예 치워버리는 것입니다.
다같이 죽음의 홍해바다 속으로
같이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살고 죽고 하는 것은
홍해 바다에 들어가 있는
본인들의 능력과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이미 다같이
죽어있는 존재로 간주될 뿐입니다.
애굽사람이나 이스라엘 민족이나
다같이 먹고 싸고 배울거 배우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개인적인 자질 차이가
구원의 차이가 아닌 것입니다.
홍해 바다의 갈라짐은,
구원되지 말아야 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 배려를 나타내는 일입니다.
죄 지은 자가
거룩한 나라에 못 들어가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입니다.
어느 누구나 바다를 헤치고
구원에 통과될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홍해바다를 두신 이유입니다.
"천국은 내가 알아서 간다"는
교회안의 구호는 순간이 만들어낸
넋두리에 불과한 겁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천국이란
인간이 자력으로 가는 동네가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주머니에 돈이 가득있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홍해 바다를 건너서 천국에 왔거든
네 자랑하지 마라는 것이
또한 홍해 바다가 가로놓여 있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 중에 기적이요
행운 중에 행운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 사실을
후손들에게 대대로 전하게 된 것입니다.
요즈음은 안 믿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별 반 다를 게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밤에 들어와서 자고
똑 같은 생활을 합니다.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평범한 생활의 연장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그 평범한 생활 가운데서
한 사건, 한 사건을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영적 축복입니까.
하나님은 누구나 영적인 홍해 바다 한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늘 내 힘으로 살 겠다는 사람들과
하나님이 벌리시는 일로 인해
내가 구원받았다는 고백의 시각이
얼마나 다른 관점입니까.
하나님의 기적은
나라고해서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천국 갈 사람과 못 갈 사람의 구분은
누구에게든지 차별 두지 않고 적용하십니다.
들어갈 자만 들어가는 곳이 천국이라는 철칙은
지금도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은
인간들과 인간들의 관계를
서로 이해하게 하시려고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홍해가 둘 사이를 덮음같이
보호받아 건너는 쪽과
물속으로 수장되는 쪽으로
둘을 갈라 놓으시는 겁니다.
여기에는 교회나온다고
달라지는 법이 없습니다.
어린양의 피가 발리우지않은 자는
목사나 신학자라할지라도
심판을 벗어날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조치에 대해
반대하는 자들이 필히 등장됩니다.
바로 그런 자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찢겨나간 자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복의 근원에서
다윗이 무슨 구원의 명분이 되는가 하며
토라지도록 조치를 하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는
지금도 갈라지고 찢어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개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단체에서도
참된 성도와 성도 아닌 사람이
찢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불신 친구와는 언젠가는 헤어지게 하시고,
안 믿는 동창생들과 갈라서게 되어 있고
같은 교회 내에서도 복음과 관계없는자와
관심 없는 자가 갈라서도록
하나님이 알아서 다 조치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부로 헤어지지 않으려고 해도
말입니다.
철학자들은 세상에 고뇌와 아픔때문에
신이 꼭 필요하고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요청할수있는 신으로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택한 사람을 찾아온 것이 아니고
자기가 살다보니 신의 도움 받아 보겠다고 여기고
신을 요청하면 신은 언제든지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
철학자들이 말하는 신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이
인격적인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사람들은 답을 할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모든 인간이 다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불자도, 이스람교도도, 기독교 신자도
다른 여타 종교를 믿는 자들 할것없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은 다
천국을 가게 되는 것일까요?
그렇게 되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찢어 버린다든지, 갈라진다는 것,
성경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은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잘 섬기자고
애쓴 자들입니다.
그런데 진짜 하나님은
그 유대인들 손에 죽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즉 너희들이 생각하고 있는 하나님은
가짜였다는 겁니다.
철학자들이 믿는 것은
바로 요청하는 신이라는 것입니다.
내 생활에 필요해서
한번 믿어나 보자는 보험들 듯이
믿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죽고 난 뒤에는
천국에 꼭 가야지 하면서
믿는 자기의 필요에 의해서 요청하는 신입니다.
직접 찾아오신 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알고 있었던 신은
가짜였음을 다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면 진짜 하나님은
어떤 현상을 우리에게 나타냅니까?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분인데
웬 횡재냐 하는 감격이
유발되도록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축복이며
완전 횡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진짜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힘든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버리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믿어 볼까,
아이구 10년 믿어도 별거 없네
부처나 믿을까 이것도 별거 없네
다시 교회 나가 봐야지"
이런 식으로 교회 오는 사람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하나님을 차버릴 사람입니다.
자기의 소원대로 안 되면
버리는 가짜 신입니다.
왜냐?
자기가 선택한 신이기에
자기 뜻대로 안되면
더 이상 효용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짜 하나님은,
"너는 도저히 구원될 수 없는 인간인데
네가 당첨이 되었네.
너는 천국 백성이야"라고 찾아온 하나님입니다.
세상이 모두 멸망한다하더라도
그 안에서 하나님에 구원의 은혜와 고마움은
영원히 변치 않을 사람입니다.
23절을 보면
"브가히야라는 사람이 왕이 되어서
2년 동안 통치하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찢어진 나라의 행세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버림 받은 애굽 군대와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정치를 한 것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구데타를 일으켜
50명을 죽이고 대신 왕이 됩니다.
지상의 정치판은 힘의 정치판입니다.
권력을 누가 가지느냐의 싸움입니다.
힘 싸움과 권력, 능력, 재력싸움에
서로 휘말리는 자체가
찢겨진 세계의 하나의 본질입니다.
이걸 지금 성경에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본문에 보니
부하가 왕을 살해하고 왕이 되었고
그 사람이 또 배반하여 죄를 지으니까
하나님께서 또 다른 악한 놈을 세워서
작살내게 하였고
이러한 나쁜 짓, 더 나쁜 짓,
아니 그 보다 더 나쁜 짓의 반복입니다.
나쁜 짓과 나쁜 짓의 만남을 통해서
권력을 쥐었다가 빼앗겼다가 하는
흐름, 변화의 조짐이
하나님께 찢겨 버림받은 세태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태에 대해서
무관심해서는 안됩니다.
아, 세상이 이렇게 흘려 가는구나
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어야
우리는 그 세계에서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 나는 저 흐름에서
승리자가 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라는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하고 찬양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와
구원의 은총으로 인해
천국 가는 백성들도
따로 존재한다는데 있습니다.
특히 본문 29-30절에는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 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취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웃시야의 아들 요담 이십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반역하여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쳐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여기에 앗수르라는 무지막지한
당시 최고의 강국 이방나라가
하나님이 계신다는
이 북쪽의 찢겨진 나라에 들어와서
짓밟아 버리고
수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베가라는 사람은
또 부하 호세아에게 죽임을 당하고
왕의 자리를 빼앗기지요.
이처럼 베가라는 사람은
자기가 한 행동을 그대로
다시 돌려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사회에서
교육받는 것이랴
'하면 된다'입니다.
그러면 '하면 된다'가 다 무엇입니까?
뭘 어떻게 한다는 말입니까?
힘이면 다입니까?
요사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본질은 복음입니다.
복음이 바로 전파되면 교회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교회가 유지가 되고
어떻게 하면 사람을 내 사람 만들까
어떻게하면 나와 같은 생각을하는 사람을 모을까
마치 그것이 복음인양
교회 경영기법을 강단에서 선포하고
그걸 믿어야 구원받는 줄 알고
가르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내 사람 만들기 ...
그 사람 본질이 어느 세계를 지향하느냐.
어디를 향해 감사하느냐,
나는 어떤 세계에 속했느냐
여기에 대해서 확인하는 것이 복음이 아니라,
힘 되는 사람들이 우리교회에 몇 명 있나를 가지고
힘 자랑하는 이것을
마치 교회 성공한 것처럼
이렇게 자부하더란 말입니다.
그러니 교회든 세상이든
지금 찢겨진 나라로서
자기들끼리의 투쟁이며 싸움하는 겁니다.
감사하고 하나님이 이처럼 나를 사랑하셨구나
거기에 대한 감격과 희열과 고마움이
충만 되어야 할 교회가
그저 남의 교회 교인 못 뺏어
안달하는 세상의 집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과연 우리들이 홍해바다에서 수장될 자들인지
아니면 건너온 사람인지
한번 확인 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 물에서 건너왔다면
자기 뒤를 돌아보세요.
천국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잖아요.
바빠서 교회 못나오고, 돈 문제, 가족문제,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홍해바다에 빠져 죽어갑니다.
그럴 때 우리는 가뿐하게 홍해를 통과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 기쁨과 고마움에 대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어야 되겠지요.
무슨 불평이 있을 수 있습니까.
다시 세상 애굽으로 내려가 볼까요?
여러분들이 거기서
세상적인 힘으로 이길 필요가 있을까요?
거기는 힘이 없으면 못사는 세계인데요.
여기 본문 보아도. 주코 죽이는 세상입니다.
왕이 되면 그 왕 노리고
다른 사람이 왕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고
또 밑에 사람이 힘을 키워서 또 왕이 되고 ....
거기에다가 밖의 더 큰 깡패가 쳐들어와서
형님 잘못되었습니다 라고 빌고 ,
자기는 약한 자를 눌리고..
이런 애굽세계가 마음에 와 닿습니까?
이런 눈앞의 세계가 좋습니까?
여러분 그 세계는 피곤합니다.
좋은척 해야하고
내것은 없고 남의것으로 가득채워야하는 세계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면서
우리의 위치가 애굽인인가,
아니면 홍해를 건너온 넉넉한 사람인가를
스스로 한번 비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