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기다리며
안 해 본 조선소 노동일 !
그러나 용기와 자신감으로
불에 달군 철판과 맞붙은지 벌써 3달이 되었다.
철판은 단단하지만 늘 수동적이라
인간이 전기와 가스불로 달구어
잘라내면 마지못해 비명을 지르며 잘려나간다.
설계도면을 보고 프라스마 절단기가 일단
자동으로 철판을 잘라내면 나는 그 서슬픈 칼날같은
모서리를 갈아내고 녹슬지 않게 페인트를 칠한다.
마치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듯이---
알맞지 않는 경력에 병신같은 놈 일도 할 줄 모르는게
들어 왔다 할까봐 잘려나가는 철판모서리를
보자마자 달려가 갈고 때리고 칠하고 부지런을 떨었다.
하루는 들고 있던 뺑끼통과 붓끝에 불이 붙었다.
황당했다. 생전 처음 당해보는 일이고 예상하지도 않은
상황이다.
허겁지겁 철판조각을 들어 뺑기통을 덮어버리고
붓은 철판 맏침대 가시밭 밑에 흐르는 물에 담가 불은 껐다.
너무 서둘러 덤벼들어 프라스마 불꽃이 튀어
뺑끼통 안으로 들어와 불이 붙은 것이다.
또한 잘려나가는 철판조각도 어찌나 열을 내 품는지
눈에 보기는 냉냉해 보이는 철판에 손을 데면
손에 낀 두 컬레 장갑이 노랗게 타버릴 정도다.
서둘고 함부로 덤벼서는 내 팔목과 손가락에 화상 마를 날이 없다.
타임~
모든 것이 때가 있는 것이다. 그 시간을 잘 맞춰야 다치지도 않고
일도 순조롭게 돌아간다. 느긋할 때는 느긋해야 한다.
세상일도 때를 기다리며 숨어서 기다려야 한다.
서둘러 덤비고 아우성을 피운다고 성사될 일이 아니다.
남이 나를 몰라준다고 센세이션을 일으키기 위해
기발한 착상과 귀인의 흠집을 잡아 앞서 보려는 자들
그들 앞에 남는 것은 상처와 망가짐 뿐이다.
때를 기다리며 가슴속 불꽃을 숨기고
슬픔을 억누르며 정신 또한 망가지지 않고 잘 기다려야 한다.
그 긴 세월의 인고를 함께해 줄 벗이나 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처럼 위기를 벗어나게 해준다.
한없이 감사하고 사랑하고 싶을 뿐이다.
무딘 강철이 갈고 잘려서
뱃고동을 울리며 한 생명체로 탄생하는 순간,
나는 땀방울과 손끝에 와 닿던 그의 온기를 느끼며
한없는 기쁨을 느낀다.
그와 같이 조각난 내 인생 내 작품도
언젠가는 한척 배로 용접되어
한산대첩 저 바다위에 당당히 설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오늘도 투구를 뒤집어 쓴다.
첫댓글 오늘 하는 조선소의 막일이 내일 찬란히 꽃 피울 문학의 살찐 경험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글 속의 리얼함이 강하게 전해져 감동적으로 다가 옵니다.
다행이네요, 읽어줘서 감사
저도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님의 꾸밈이 없는 글을 보니 살아있는 숨소리가 들립니다.
선배 좋은 글입니다. 가슴속 큰 뜻을 품고사는 님.. 그 결과는 장대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