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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야수 전준우. 그는 롯데의 표상이다. 롯데 스카우트의 혜안과 2군 시스템의 육성능력, 1군 코칭스태프의 기회 제공 등이 맞물려 입단 3년 만에 주전 자리를 꿰찼다. 물론 전준우 자신의 노력이 가장 빛났다 |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
모두가 꿈꾸는 삶이다. 그것만치 근사한 인생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이는 소수다. 대부분은 해야 할 일을 하며 산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25살의 롯데 야수 전준우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아는 이다. 그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보다 ‘해야 할 일을 할 때’에 더 집중한다.
지난해 중견수를 맡았던 전준우는 올 시즌 개막전에서 주전 3루수로 출전했다. 대학시절 3루수로 뛰었지만, 2008년 롯데에 입단하고선 3루수로는 9경기에만 선발로 나갔다. 가뜩이나 지난해 중견수로 뛰며 입이 쫙 벌어질 만큼 대단한 성적을 냈기에 갑작스러운 포지션 변경은 그로선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전준우는 신임 양승호 감독의 포지션 변경 요청에 순순히 따랐다. 불평을 늘어놓을 시간에 그라운드에 나가 3루 펑고를 하나라도 더 받으려 노력했다. 이유는 간명했다.
‘해야 할 일을 할 때 나와 팀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할 일에 집중한 사내
2010년 미디어데이에서 롯데 투수 조정훈(사진 앞쪽)은 "올 시즌 가장 주목할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전준우"라고 대답했다. TV로 지켜봤던 전준우는 깜짝 놀랐다. 속으로 '저 녀석이 미쳤나'했다. 조정훈은 절친한 친구 전준우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는지 몰랐다. 실제로 전준우는 그해 가장 빛나는 별 가운데 한명이 됐다 |
전준우의 고향은 경북 경주다. 경주중, 경주고를 졸업했다. 두산 김민호 코치가 고교 선배다. 전준우가 롯데에 입단하자 김 코치가 “경주에서 용 났다”고 농을 던진 건 그만큼 경주 출신 야구인이 프로야구계에 많지 않은 까닭이었다.
‘야구의 변방’이던 경주에서 야구의 꿈을 키웠지만, 고교 시절 그는 이미 ‘미래의 4번 타자감’으로 불렸다. 2003년 봉황대기 2회전에서 세광고 에이스 송창식(한화)을 상대로 1회 초대형 홈런을 뽑아낸 건 우연이 아니었다. 당시 그는 2년생 유격수였다. 전준우의 가능성을 주목하던 롯데는 2004년 신인 지명회의에서 그를 2차 7번 순위에 지명했다. 그러나 당시나 지금이나 2차 4순위 아래는 성공 가능성이 낮은 편이다. 그래서 구단도 지갑을 열지 않는다.
프로에 가고 싶던 전준우는 고민했다. 정말 하고 싶던 프로야구 선수였다. 그러나 이대로 프로에 갔다간 계약금도 못 받고, 2군에서 전전할지 몰랐다. 결국, 건국대로 발길을 돌렸다.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기반을 다질 때라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옳은 결정이었다. 전준우는 대학에서 야구에 눈을 떴고, 체육교육과를 다닌 덕분에 교원자격증도 땄다. 그리고 사랑하는 지금의 여자 친구를 만났다.
대학시절 그는 3루수로 뛰었다. 국가대표로 뽑혀 국제대회에서 3루를 지키기도 했다. 그러나 프로 스카우트 가운데 일부는 “빠른 발을 고려할 때 외야수로 뛰면 더 좋을 선수”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3루를 고집했다. 맡고 싶은 포지션보단 팀을 위해 맡아야 할 포지션을 책임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전준우는 지금도 “대학 때 수비가 썩 좋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시에도 불평은 없었다. 그 시간에 그라운드에 몸을 던지며 펑고를 받았다.
2007년 신인지명회의에서 롯데는 다시 전준우를 지명했다. 이번엔 2차 2번 순위였다. 계약금도 1억 원을 준비했다. 지명을 거부했던 선수를 재지명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구단이 자존심을 내세워 일부러 지명하지 않는 일도 있다. 그러나 롯데 조성우 스카우트 팀장은 생각이 달랐다.
“2004년 지명 때보다 체격이 상당히 좋아졌다. 힘도 세지고, 발도 더 빨라졌다. 성장 여하에 따라 20홈런, 20도루도 가능하다 싶었다. 게다가 이대호의 백업 3루수가 필요했던지라, 오래 고민하지 않고 (전준우를) 지명했다.”
하고 싶던 프로야구 선수가 된 전준우. 대졸자에다 군 미필자인 그로선 어쨌거나 빨리 1군 무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 그러나 프로는 녹록하지 않았다.
“제리 로이스터 전 감독님이 신임 사령탑으로 오시면서 ‘2군 선수는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군 선수들이 하나같이 ‘우리는 이제 1군에 못 올라가겠구나’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절망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절망하면 나만 손해였다. 오히려 그때부터 연습을 더 많이 했다. 당시 상동 2군 훈련장에 숙소가 있었는데, 오전 경기가 끝나면 할 게 별로 없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틈만 나면 그라운드에 나가 던지고, 받고, 치고, 뛰면서 계속 훈련만 했다.”
전준우는 이번에도 해야 할 일을 했다. 몸담고 싶은 1군에 승격하려면 훈련밖엔 답이 없었다. 땀을 양분 삼아 성장한 전준우는 그해 가을 ‘1군 승격’이란 열매를 맺었다.
“그해 9월 3일, 1군 승격을 통보받았다. (김)주찬이 형의 부상으로 (이)대호 형이 3루에서 1루로 가야 해 3루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날 프로 데뷔 타석에 서는데, 기분이 정말 묘했다. 첫 타석 결과? 안타였다.”
프로 첫 타석에서 안타를 친 전준우는 다음날 3루수로 전격 선발출전했다. 그리고 3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다.
전준우는 한 시즌 도루 30개가 가능한 선수로 꼽힌다. 그만큼 발이 빠르다. 여기다 선구안이 좋고, 상대 투수를 괴롭히는 능력도 뛰어나다. 출루와 타점능력을 동시에 갖춘 가장 강력한 1번 타자가 될 수 있다는 평이 많다 |
당시 롯데 코칭스태프는 “로이스터 감독다운 기용”이라고 말했다. 부임 초기 로이스터 감독은 2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2군을 ‘육성이 목적’인 마이너리그 정도로만 인식했다. 그래서 메이저리그처럼 1군 선수들로만 한 시즌을 치러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로이스터 감독이 생각을 바꾼 건 부임 후 몇 달이 지나서였다. 그제야 “이렇게 부상선수가 속출하고, 1군 선수가 부족한지 몰랐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매 경기가 포스트 시즌처럼 치열하게 전개되고, 선수들의 의욕이 넘치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부상은 흔한 일이었다.
후반기부터 로이스터 감독은 기존 입장을 과감히 버리고, 2군 선수들을 수혈했다. 효과는 좋았다. 하지만, 로이스터 감독의 미국식 용병술은 변하지 않았다. 한번 기용해 잘하면 계속 기회를 줬다. 그래야 성장한다고 믿었고, 실제로 그랬다.
전준우는 데뷔 타석 이후 6경기에 선발출전했다. 그러나 3루수 출전은 한 번이었다. 첫 출전에서 실책을 기록한 까닭이다.
“아마 그때부터 로이스터 감독님이 날 외야수용으로 보신 것 같다. 그해 시즌이 끝나고 외야수 전향을 권하셨다. 처음엔 망설였다.
외야수 경험이 전혀 없었고, 외야에서 다시 경쟁하는 게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맡고 싶다고 맡을 외야가 아니었다. 어쨌거나 1군에서 살아남으려면 다시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 감독님의 권유에 따르기로 했다.”
프로 첫해 15경기에 출전해 타율 1할, 3타점을 기록한 전준우는 겨우내 외야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1군에 남을진 미지수였다.
2009년 3월 일본 가고시마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로이스터 감독은 “올 시즌 외야 주전은 카림 가르시아, 손아섭, 이인구”라고 못박았다. 덧붙여 “우리 팀은 외야자원이 없다”며 “가능하다면 외야수를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하고 싶다”고 밝혔다.
로이스터 감독의 의중대로라면 1군에서 전준우가 설 자리는 없었다. 그러나 막상 시즌을 앞두자 로이스터 감독은 전준우를 개막전 명단에 넣었다. 외야 백업요원 가운데 전준우가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처음엔 대타로만 출전했다. 4월 초 주찬이 형이 아프면서 중견수로 첫 출전 했다. 그 경기에서 운 좋게 안타를 치며 한 경기씩 출전이 늘었다. 그러다 손아섭까지 좋지 않으면서 주전 중견수를 맡는 날이 많아졌다.”
1군 승격에 이어 1군 주전 확보라는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설렐 법했다. 부담을 느낄 만도 했다. 그러나 전준우는 되레 ‘기회가 왔으니 편하게 즐기자’고 다짐했다. 긴장하고 위축되면 제 실력이 나오지 않을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시즌 종료까지 1군 잔류’를 노리던 전준우는 그러나 2009년 8월 1일 한화전에서 대타로 나섰다가 손을 다쳤다. 타격을 하다 손목에 이상이 온 것이다. 해야할 일을 누구보다 묵묵히 수행했음에도 그에겐 행운과 악재가 번갈아가며 찾아왔다. 1군에서 제외된 전준우는 수술대에 누웠다.
“원래 손목이 좋지 않았다. 대학 때부터 비만 오면 못 견디게 아팠다. 그러다 한화전에서 다쳤다. 주변에선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게 생겼다’며 염려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다치길 잘한 것 같다. 수술하고 나서 손목이 이상할 정도로 아프지 않았으니까.”
고질적인 손목 부상에서 벗어난 전준우는 2010시즌을 앞두고 전력을 다해 훈련했다. 그런 전준우를 로이스터 감독은 4월 중순부터 붙박이 중견수로 기용했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에 집중했던 전준우는 2011시즌 드디어 자신의 가치를 성적으로 증명했다. 타율 2할8푼9리, 19홈런, 57타점, 16도루를 기록하며 가장 주목받는 신예 스타로 거듭난 것이다.
3루수 포지션 변경을 묵묵히 받아들인 전준우
전준우는 중견수로 재배치됐다. 그러나 언제든 3루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전히 3루 수비를 다듬으려고 노력한다. 많은 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가장 멋진 삶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론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삶의 보람을 찾기도 한다. 동료와 팀이 연관된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전준우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할 때 더 행복해하는 선수다 |
지난 시즌이 끝나고 많은 야구전문가는 “내년 시즌 전준우가 롯데 구단 사상 최초로 ‘20(홈런)-20(도루)’을 기록할 것”이고 예상했다. 전준우도 도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로이스터 감독이 떠나고 신임 양승호 감독이 취임하며 뜻밖의 소식이 들렸다. 양 감독이 ‘전력 극대화’를 외치며 “전준우에게 3루를 맡기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3루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한 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다시 3루수를 맡아야 한다니, 전준우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양 감독은 이대호가 1루를 전담하고, 전준우와 황재균이 3루수와 유격수를 맡는다면 공격력 극대화에 큰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 여기다 발 빠른 외야요원이 필요했던지라, 이승화에게 기회를 주며 성장을 도와야 했다. 마침 왼손 김문호도 상무에서 제대한 터였다.
전준우는 주저했다. 그러나 양 감독의 설득으로 내야 글러브를 다시 끼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군말 없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스프링캠프에서 전준우는 공필성 투수코치의 도움을 받아 쉼 없이 펑고를 받았다. 공 코치는 “생각보다 빨리 전준우가 내야 수비감(感)을 되찾았다”며 “팀을 위해서라면 뭐든 열심히 하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아직 전준우는 홈런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룸메이트 홍성흔도 같다. 그러나 마수걸이 홈런이 터지면 무섭게 홈런 행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늘 그랬던 것처럼. |
4월 2일 사직 한화와의 개막전부터 전준우는 주전 3루수로 출전했다. 그의 수비는 좋을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문제는 타격이었다. 초반 3경기는 타격감이 좋았다. 그러나 이후 3경기에선 11타수 1안타로 저조했다.
4월 10일 목동 넥센전에서 만났을 때 그의 타율은 2할8리였다. ‘20-20’을 노렸건만, 홈런과 도루는 ‘0’이었다. 당시 그에게 3루 수비가 타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물었다. 전준우는 담담한 표정으로 “솔직히 부담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외야수는 아무래도 수비 부담이 덜하다. 공이 갑자기 공중에서 휘는 일도 없고, 불규칙 바운드가 날 일도 없다. 그러나 내야는 땅볼이 많고, 그라운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거기다 내야는 사인도 많이 나온다. 실책이라도 하면 그 생각이 계속 떠오르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일까. 3루 수비에 몰두하다 보면 막상 타석에 섰을 때 뭘 해야 하는지 잊어버리곤 한다.”
그렇다고 전준우가 3루수 전향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건 아니었다. 반대였다.
“야구를 오래 하려면 3루수로 경험을 쌓는 것도 좋다. 다양한 포지션을 맡으면 그만큼 팀을 위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고, 개인적으로도 상품가치가 높아진다. ‘해야 하는 일’이라면 불평보다 거기서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참 홍성흔은 “타격 시 불필요한 동작이 많아졌다”며 전준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서 “(전)준우 자신도 문제점을 잘 아는 만큼 조만간 개선할 것으로 본다”라고 했다. 전준우도 인정했다.
“마음이 급해지니까 오히려 배트가 안 나가고, 이것저것 불필요한 동작에만 집중하게 된다.”
전준우에게 커다란 위기가 닥친 게 분명했다.
‘롯데의 7위’, 아직 112경기가 남았다
부산 롯데 팬은 화끈하다. 잘 하면 박수를 치고, 부진하면 바로 비판을 가한다. 그러나 뒷끝은 없다. 3대 15로 지고 있어도 롯데가 4점을 내면 열화와 같은 박수를 치는 팬들이다 |
4월 12일 사직 두산전에서 전준우는 선발 중견수로 출전했다. 8경기 만이었다. 당시 양 감독은 원체 중견수 이승화의 부진이 길어지고, 유격수 문규현의 컨디션이 좋아 유격수 황재균을 3루로 배치하고, 전준우를 중견수로 활용하는 게 팀 전력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한시적”이란 단서를 달았다.
전준우는 이날 5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다음날엔 무안타였다. 하지만, 이후 6경기 연속 안타를 쳤다. 3루수로 뛰며 타율 2할8리, 출루율 2할3푼1리에 그쳤던 타격이 중견수로 전향한 12일부터 29일까진 각각 3할, 4할로 치솟았다.
중견수로 돌아와 타격감을 찾은 건지 몰랐다. 하지만, 전준우는 “포지션과 상관없이 잃어버린 타격감을 회복했을 뿐”이라고 했다.
애초 전준우의 올 시즌 목표는 ‘20-20’이 아니었다. 타율 3할도 아니었다. 3루 수비의 안정이었다. 그다음에 홈런 20개 이상을 노리겠다는 게 전준우의 다짐이었다. 중견수로 재배치된 지금도 목표는 달라지지 않았다.
로마 병정처럼 강인한 표정과 단단한 체격 때문에 그를 ‘진지한 사내’로 생각하는 이가 많다. 실제로 그는 말 한마디를 해도 매우 진중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풍기는 이미지가 그럴 뿐 그리 진지하지 않다”고 말한다.
“주변에서 ‘전준우 선수는 경기하면서 많이 긴장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얼굴 때문인지 ‘진지해보인다’는 말도 한다. 그러나 반대다. 난 언제나 경기를 최대한 즐기려고 노력하고, 늘 좋은 생각만 하려 한다. 그래서 그날 성적이 나빠도 결과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왜 못 했을까?’ 애써 분석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성적이 좋았을 때 내 플레이를 모니터한다.”
풀타임 2년 차 선수가 경기를 즐긴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냥 하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전준우는 정말 경기를 즐기고, 경기가 없는 날엔 삶을 즐긴다.
“경기가 없는 날엔 휴식을 취하다가 약속이 있으면 외출해서 쇼핑을 즐긴다. 옷과 신발 사는 걸 무척 좋아한다. 간혹 여자친구와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전준우의 여자친구는 은행원이다. 한 살 연상이다. 대학 시절 소개로 만났다. 벌써 6년째다. 그래서일까. 여자친구에게 무척이나 깍듯하다. “영상메시지를 보내봐라”는 말에 한참을 망설이다가 첫마디로 “늘 감사합니다”할 정도다. 이 감사한 여성과 전준우는
입대 전 결혼할 계획이다.
말이 나온 김에 언제쯤 입대할 것인지 물었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하고 싶다. 그때까지 프로에서 충실히 기량을 쌓을 생각이다.”
2008년 2군 올스타전을 앞두고 전준우는 속으로 ‘MVP를 받고 싶다’고 되뇌었다. 현실이 됐다. 정말 MVP에 선정된 것이다. 지난해 준플레이오프 때도 ‘어허, 이러다 MVP가 되겠네’했다가 실제로 그렇게 된 바 있다.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행운이 따를지 모른다.
4월 28일 사직 LG전에서 2루 도루에 성공한 이대호. 시즌 1호 도루가 이처럼 화제가 된 적은 없다 |
4월 29일 현재 롯데는 6승2무13패로 7위다. 주중 LG전에서 2연패 했다. 하지만, 침체했던 타선은 살아났다. 투수진이 문제지만, 타선처럼 언제든 살아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롯데의 전망을 낙관하는 덴 이유가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선수들보다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주장 홍성흔은 좌익수란 부담에도 내색하는 법이 없다. 팀 분위기 전환을 위해 평소 살갑게 지내던 심판진을 상대로 강하게 항의했다. 이대호 역시 주루에 열심이다.
4월 28일 LG전에서 1천460일 만에 도루에 성공했다. 양 감독은 “이대호의 홈런보다 적극적인 주루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말한다.
조성환도 부진에 대한 변명보단 부단한 훈련을 통해 부활했다. 손아섭은 아직 발목이 완전하지 않다. 펜스 공포증도 있다. 그러나 우익수로 출전을 강행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보다 롯데 선수들의 의지는 강하다. 팀 결속력도 대단하다. 잡음 하나 없다. 아직 롯데는 112경기나 남기고 있다.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팬들도 마찬가지다.
전준우는 말한다.
“모두가 올 시즌이 끝나면 롯데의 4월 부진은 잊고 10월의 활약만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그의 말이 맞았다는 걸 확인하기까지 거인들을 향한 응원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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