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서니 가슴이 답답하다. 줄을 잘 맞추어 놓은 의자에 회사 로고가 찍힌 점퍼를 입은 남성들이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하고, 여성 직원들이 듬성듬성 끼어 앉은 형세이다. 교육 참여자들의 움직일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인지 어깨를 돌리기도 어려워 보일 정도로 의자를 붙여 놓아 빈자리가 하나도 없이 꽉 끼어 앉은 사람들을 보니 빈틈없이 끼워놓은 네모난 과자상자를 보는 것 같다. 어찌나 일사불란 해 보이는지 가보지도 않은 예비군 교육장이 연상된다.
25명쯤 참가할 것이라고 해서 둥글게 앉아 자유롭게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형식의 강의를 준비했는데 두 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허리를 곧추 세우고 나를 보고 있다. 진땀이 난다.
강의 제목은 “직장 내 성폭력 예방교육”이다.
이 교육은 고용노동부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중소사업장에서 1년에 한번은 필수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교육이다. 시행하지 않을 때에는 사업주가 벌금을 내어야 한다. 사업주 및 모든 근로자가 참여해야 하고, 출장 휴가 등으로 교육에 불참한 근로자가 있는 경우에는 추가교육도 해야 한단다. 당연히 교육일지 및 참석자 명단도 작성해야 하고, 예방교육 실시 동영상을 촬영하여 보관할 것을 권장한다니 강제 의무교육인 셈이다. 강의 하는 사람도 강의를 듣는 사람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 교육은 남녀 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 2조 제2호를 근거로 시작된다.
직장 내 성희롱이란 “사업주, 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근로조건 및 고용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규정하고 직장 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필요교육을 실시하도록 한 것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운동(나도 당했다)이 우리나라에서는 서지현 검사가 불을 붙이고 안희정 김지은 사건으로 성희롱 성폭력 사건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 해에 5만 건이나 신고 된다는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어물쩍 넘기거나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기에 고용노동부에서 이런 교육을 필수적 시행하도록 했을 것이다.
우리사회의 성희롱 성폭력은 가부장적, 권위주의적, 굳어진 성차별적 문화, 그리고 왜곡된 직장 내 권력관계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피해자는 떠들어 봤자 개인의 잘못으로 몰리기 십상이라, 혼자 입 다물고 직장을 그만두는 것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
고용노동부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혼자 보아도 모두 이해할 수 있게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으니 나중에 읽어보도록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부과된 제목과 연결되는 기본적인 사항들을 함께 풀어내보고자,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직장이 그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먼저 물었다. 그리고 참가자들의 대답을 모아 직장에 관한 마인드맵을 함께 작성했다.
참가자들이 직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첫째 월급, 둘째 일, 셋째 인간관계로 생각이 모아졌다. 강의 하는 사람으로서 여기에 한 가지 보태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이는 장미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첨언하였더니 의아해 하는 얼굴들이다. 이것은 내가 만든 말이 아니라 이미 100여 년 전 미국 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이다. 직장에 몸담은 근로자 노동자들은 ‘직장을 통해 빵(생존권)을 보장 받을 뿐 아니라 장미(인간의 존엄성과 인권)도 보장 받아야 한다’고 하며 “빵과 장미”를 자신들의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교육에 참여한 이들은 그동안 직장을 통해 생존권은 노동의 대가로 얻었는데, 장미에 대한 것은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음을 인식하고, 그들도 장미가 필요한 것임을 확인 하는 과정을 거쳤다. 현재 우리 사회의 직장에서 장미를 얻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성희롱 성폭력이 아닌가 질문하니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들이 보인다.
성희롱과 성폭력 뿐 아니라 모든 희롱과 폭력은 힘의 역학관계에서 시작된다. 힘 있는 자는 별 생각 없이 힘없는 자를 희롱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때로는 그것이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반해 힘없는 사람은 그저 당한다. 때로는 피해자 자신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자책하고 자멸의 길을 택하기도 한다.
어디다 하소연 할 곳도 없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감추고 숨길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도움을 요청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야 인간 존엄성과 인권을 지킬 수 있는 장미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들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드러냄이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을 예방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희롱 성폭력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된다고 강조하였다.
근로자들이 필요에 의해 요청한 교육이 아닌 의무교육이라 걱정하고 시작했는데 다행히 참가자들이 집중하여 듣고 강사의 질문에 대답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강의하는데 힘이 되었다.
참가자들이 둘째로 의견을 모은 ‘일’에 관한 것은 자신들이 전문적으로 풀어야 할 것이기에 넘기고, 셋째로 의견을 모은 직장 내 인간관계에 대한 것을 미국의 철학자 마틴 부버의 언어를 빌려 설명하였다. 마틴 부버는 모든 관계는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하였다. “나와 너”의 관계, 그리고 “나와 그것”과의 관계이다. ‘나와 너’의 대등한 관계, 인격과 인격이 만나는 관계에서는 평등한 관계가 형성된다. 나의 존재와 너의 존재 자리가 같다. 상급자와 하급자,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의 차이가 없다. 나를 존경하기 위해서는 너의 존경도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희롱이나 폭력이 자리할 곳이 없다.
그러나 ‘나와 그것’의 관계는 차별과 불평등의 관계이다. 상대를 나와 대등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같은 ‘그것’으로 대할 때 희롱이 가능하고, 폭력이 난무할 수 있다. 회식 자리에서 젊은 여직원에게 술을 따르라고 하는 것은 성희롱이다. 나와 대등한 직원으로 보지 않고, 나보다 못한, 나보다 낮은 ‘그것’으로 대하니까 가능한 주문이다. 이것은 잘못 된 것이다. 농담도 마찬가지이다. ‘나와 너’의 대등한 관계가 형성된 사람들 가운데서는 할 수 없는 농담을 ‘나와 그것’의 관계에서는 천연덕스럽게 한다. 죄책감도 없다. 우리의 현재 모습, 현실이다. 따라서 직장 내의 구성원들의 관계는 ‘나와 너’ 평등한 관계로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덧붙여, 우리가 그린 마인드맵에는 등장하지 않은 단어 ‘아니오’를 말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힘이 없는 사람들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순응하고 못 본 척, 못 들은 척 예스맨으로 살아야 편하다고 해왔다. 그런데 지금 필요한 것은 옳지 않을 때는 ‘아니오’를 외쳐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대등한 관계로 대하지 않을 때, 나를 향해 성적 희롱할 때, 참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 아니라 옳지 않음을 ‘아니오’라고 말 할 때 살길이 열린다. 그리고 그 ‘아니오’ 한마디가 변화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됨을 알고 용기를 내어야 말하는 것이 지금 필요한 것임을 확인했다. 또한 내가 당하는 것이 아니지만 성희롱 성폭력을 행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아니오’라고 말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이렇게 여럿이 함께 하는 ‘아니오’는 세상을 바꾼다.
끝내고 돌아오는 길. 어려운 숙제를 끝낸 마음!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