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빈 교수(서울사이버대학교)
쌀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단순한 식량 이상의 아주 특별한 의미를 남기고 있습니다.
첫째, 쌀은 우리에게 가난의 숙명을 벗어나게 해준 기적의 상징입니다. 빈곤과 기아로 허덕이던 시절, 우리는 수년간 연구 끝에 1971년 다수확 품종 ‘통일벼’를 개발하고 1976년에는 꿈같던 쌀의 자급을 이룹니다. 농사지어 아이들을 먹일뿐 아니라 학교도 보내게 되었고 그 아이들이 대한민국 성공신화의 일꾼으로 자라났습니다. 그래서 쌀은 대한민국 근본정서와 이어 있고 농민뿐 아니라 거의 모든 국민들의 특별한 관심과 배려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둘째, 쌀은 남북간 적대의 현실에서도 서로 인도주의와 동포애를 전해주는 상징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북한에 국산 쌀 165만 톤을 지원했습니다. 15만 톤은 무상지원이고 150만 톤은 유상차관입니다. 과거 북한은 “쌀은 곧 공산주의”라고 하였고 “인민에게 이밥에 고깃국을 제공” 하려한 김일성 주석의 소원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북한이 반세기동안 원수로 싸우던 남한으로부터 쌀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각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국민소득이 올라가면서 쌀 소비는 줄고 있지만, 쌀에 대한 국민정서와 정부의 특별배려는 여전합니다. 농가보호와 물가안정을 위해 정부가 농가로부터 쌀을 고가매입하여 소비자에게 저가판매하는 이중가격제도 탓에 쌀은 판매수익에 비해 보관처리비용(톤당 30억원)이 많습니다. 생산도 줄지 않습니다. 1995년부터는 우루과이라운드에 따라 의무적으로 외국 쌀을 들여오면서, 쌀 자급이후 25년만인 2002년 재고가 적정량(72만톤)의 배를 넘었습니다.
우리 쌀은 국제가에 비해 비싸기도 하지만 우리는 세계무역체제(WTO)에서 쌀 개방에 대한 특례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남는 쌀을 외국에 팔 수도 없습니다. 결국 과잉재고를 처리하지 못하면 쌀값 하락으로 농가가 타격을 받게 되고, 창고를 갑자기 늘리는 것도 경제성이 없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러한 때에 대북지원이 문제의 일부를 해소해 주었습니다.
2000년 대북 쌀 지원이 시작되면서 2005년 쌀 재고가 적정선 범위로 줄어듭니다. 그런데 쌀 지원이 중단된 지 2년 만에 쌀 재고가 다시 역대 최고인 150만톤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우리는 쌀 소비가 매년 2%씩 감소하는 반면, 해마다 수요량 보다 20%가 초과 생산되고 10%를 추가로 수입하니 재고량은 전년대비 30%씩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매년 수천억원을 과잉재고 보관비용에 충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정서에 쌀이 남는다고 짐승 사료로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또 수요공급을 조절하기 위해 태워버릴 수도 없습니다. 외국에 헐값이라도 팔거나 국내에서 소비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미 국내에서는 술과 과자를 쌀로 만들면서 추가적 신규수요 창출이 어려운 형편이고, 국제무역에서 가격경쟁은 어렵고 무상으로 외국에 주는 것도 쌀 수출입 개방국들 반대로 사실상 불가능 합니다. 그동안 대북 쌀 지원에 대해서는 민족내부거래라는 특수성과 인도적 차원이라는 명분으로 이들의 양해를 묵시적으로 구한 것이었습니다.
올해에도 북한은 외부에 식량지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