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산성(上黨山城)-충북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산 28-1
이 성은 우리나라에서 원형이 잘 남아있는 조선 중후기의 대표적인 석성이다.둘레가 4.2㎞,내부면적이 727,276㎡에 이르고 있으며 전형적인 포곡식 내탁공법의 성이다.
최초의 정확한 축성년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 원정공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 김유신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장군이 쌓았다는 기록,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 청주목고적조에 고상당성은 율봉역의 북에 있고 석축으로 둘레가7,772척인데 성안에 큰 연못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상당산성은 임진왜란중인 선조 29년에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에서 45년까지 충청병사 유성추의 감독으로 대대적인 성벽개축이 이루어졌고, 이듬해 성내에 구룡사와 남악사의 2개 사찰과 암문이 마련되었는데 이것은 성문 무사석의 기록에 남아 있다. 그후 여러번의 수축이 이루어져 성내의 여러 시설인 관아사, 군기고, 창고 수구, 장대, 포루 등이 완성되었다. 조선왕조실록과 비변사등록 등에 의하면 효종 2년(1651년)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충남 해미에서 청주로 옮겨지고, 왜구의 침입과 내란 등으로한성의 중간방어 지역으로 청주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가면서 상당산성의 개수축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상당산성에는 동문, 서문, 남문의 3개문과 동암문 남암문의 2개 암문, 치성 3개소, 수구3개소가 있는데,77년부터 78년까지 정비공사로 동.남문루와 동문이 재건되었고 '92년말에는 동장대도 재건되었다. 또한 1995년도의 발굴조사로 서장대의 규모와 위치가 확인되었다.동장대에서는 매년 시민의 날에 국운융성, 청주발전, 가정화평을 기원하는 삼원제를 지내고 있으며 이곳에서 성돌이 행사가 시작된다. --참조 : 충북관광허브사이트--
구녀성(九女城)의 유래 소재지: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조정리
구녀성의 축성시기는 신라시대로 추정되며 석축형태로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해진다. 이곳 산정에 아들 하나와 아홉딸을 가진 홀어머니가 있었다. 이들 남매는 모두가 장사였는데 항상 불화가 잦아 마침내는 생사를 건 내기를 하게 되었다. 내기인 즉 딸 아홉은 산꼭대기에 성을 쌓는 일이고 그 사이 아들은 나막신을 신고 한양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내기를 시작한지 5일이 되던 날 어머니가 상황을 살펴보니 성은 거의 마무리가 다 되어 가는데 한양간 아들은 돌아올 줄 몰랐다. 이에 내기에 지게 되면 아들이 죽게 될 것을 생각하고 어머니는 가마솥에 팥죽을 끓여 딸들을 불러모아 팥죽을 먹으며 천천히 해도 되리라 했다. 뜨거운 팥죽을 식혀 먹고 있는 동안 아들은 부릅튼 다리를 이끌고 피를 흘리며 돌아왔다.
그리하여 내기에 진 아홉딸은 성위로 올라가 몸을 던져 죽고 부질없는 불화로 아홉 누이를 잃게된 동생은 그 길로 집을 나가 돌아올줄 몰랐다. 어머니는 남편의 무덤 앞에 아홉딸의 무덤을 만들어 놓고 여생을 보내다 숨을 거두었다. 이때 당시 죽은 아홉딸과 부모의 묘는 이 성안에 2줄로 배열된 11기의 묘라고 전해진다.
구녀성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정확한 축성 연대는 알 수 없다. 신라시대 백제의 낭비성(지금의 상당산성 또는 삼년산성)과 대결하기위해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산의 내부는 성터로서 우물과 수원지의 흔적이 남아 놀이와 휴식에 적합한 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전망이 좋아 서북쪽 미호 평야와 청주의 상당산성이 건너다 보인다.
첫댓글 헉~~ 11월 산행이 시작돠나요
고령의 꼬맹이부대도 따라 붙어야 되겠지요
한주일 건너뛰면 박자 놓칠까봐 먼저 붙들어 매는 것이라우.
회장님 한남금북 4번째가 11월 6일 로 바뀌는건 아니지요 11월 6일은 일요일 이네요
토요일은 11월 5일 이고요 ..... 자세히 보다보니 ㅎ~~ㅎ~~
지송합니다. 요즘 형광등이 되었남. 정정했읍니다.
석적에서 탑승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