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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과 수 슈락 목사 부부와 웬델 밀러(오른쪽). 개신교의 일종인 메노나이트 교도들인 이들은 '평화를 위한 페달밟기(Peace for Pedaling)'로 미국을 횡단 중이다. 뒤에 보이는 승합차가 그들을 따라 다니는 지원차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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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18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을 여행하는 바이크 라이더들은 서로 마주치지 않아도 한 마을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마을은 아마 세계에서 유례없이 가늘고 긴 띠 모양일 것이다. 6400㎞가 넘는 길을 따라 공동체를 이뤄나간다.
엘리자베스타운을 떠나 고질적인 기어변속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리노이 주 카본데일에 있는 자전거포에 들렀을 때 나도 모르게 이 마을의 주민이 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면식 없는 주인이 수리를 마친 뒤 “너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 라고 말했다. 먼저 그 집을 들른 바이크 라이더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고 간 것이다. 궁금하기 짝이 없다. 주인은 말을 빙빙 돌리다가 ‘저 무게’ 하면서 내 짐수레를 가리켰다. 내가 끌고 가는 짐이 ‘마을’에서 화제가 된 것이다. 필시, 평균보다 세배나 무거운 45㎏의 짐을 싣고 가는 괴상한 녀석이 있다고 조롱하고 간 게 틀림없다.
라이더의 안식처 체스터 시립공원
그런데 기이한 것은 지금까지 나를 지나쳐간 라이더들은 몇 명 없었고 그들의 이름을 대자 주인은 그들은 아니라면서 정확히 누구한테 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어떤 경로로 나를 알게 된 것일까. 구전은 빠르고 넓게 퍼진다. 내가 보지 못했다고 해서 여행하는 사람들이 얼마 안 되는 것은 아닐 게다. 같은 길을 비슷한 시기에 간다고 해도 끝까지 한번도 서로 못 볼 수 있다. 출근 지하철을 타는 것과 같다. 같은 시간에 지하철을 타도 앞 객차에 타는 사람은 뒤 객차에 타는 사람과 마주칠 일이 없다. 그런데 기분에 따라 객차를 앞뒤로 바꿔 타는 사람들이 있거나 어느 날 늦잠을 자고 또는 부부싸움을 하고 황급히 지하철에 올라타 평소와 다른 객차를 타는 바람에 다른 승객들과의 교유가 이뤄지고 동료 승객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 것이다. 진짜 지하철 여행에서는 서로 말을 건네지 않지만 자전거 여행에서는 만나는 순간 바로 한 마을 주민이 되기 때문에 말이 빠르게 전파된다.
일리노이 주 체스터의 시립 공원 입구에서 크레이그 브록하우스라는 사람을 마주쳤을 때는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다. 머리를 짧게 깎은 우람한 체격의 그는 대번에 “그 동안 네가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어”라고 말했다. “어? 나를 어떻게 알지?” “사람들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무슨 얘길? 무거운 짐 끌고 다니는 이상한 녀석이 한 명 올 거라고?” 브록하우스는 다소 신경질적인 내 어조에 조금 당황하며 “그게 아니고 한국 저널리스트가 올 거라고 들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라이더들을 공원으로 안내하고 먹을 것을 챙겨주는 자원봉사자. 그는 찬 스포츠 음료와 얼음을 가져다 주며 아침에는 팬케이크와 잼, 주스로 대접하겠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일찍 출발하는 바람에 먹지 못했지만. 그는 내년에는 자신의 집에 침대를 여러 개 마련하고 라이더들을 초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잘해주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는 “라이더들은 내가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들”이라고 말했다.
체스터의 시립공원에는 별도의 캠프장이 없고 그냥 잔디밭에 텐트를 치는 것이었지만 마실 물과 전기가 있고 수영장에서 수영까지 할 수 있었다. 미국 횡단 바이크 라이더들에게는 모든 시설이 무료다. 수영장에는 10m는 될 듯 높은 다이빙대까지 있어서 한번 뛰어보고 싶은 생각이 간질간질 했지만 해가 저물어서 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설이 좋고 사람들이 친절한 탓인지 이곳으로 라이더들이 몰려들었다. 동진, 서진하는 라이더들 6명과 함께 야영했다. 동료가 있다는 게 좋다. 모처럼 자전거에 자물쇠를 잠그지 않고 잘 수 있는 게 좋다. 한 달이 가까워 오도록 자전거에 올라타면 왜 아직도 엉덩이가 고문 당하는 수준으로 아픈지 고충을 털어놓을 수 있어 좋다. 나처럼 그들도 어느 방향으로 가든 바람은 뒤에서 불지 않고 앞에서 불어온다고 느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공사 중인 어느 길은 피해야 하고 어느 마을 공원의 잔디밭이 텐트치기에 부드러운지 정보를 교환할 수 있어서 좋다.
나와 같이 서진하는 라이더들 중에는 목사 부부와 초등학교 교사 일행이 있었다 이들은 나보다 열흘 늦은 6월5일 출발했는데 불과 20일 만에 나를 따라잡았다. 비결은 ‘얄밉게도’ 차량의 지원이다. 승합차 한 대가 그들과 동행하면서 짐을 실어주기 때문에 그들은 자전거만 몰면 된다. 하루의 여정이 끝나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승합차 운전자가 저녁을 지어놓고 기다리고 있다. 내가 펌프질을 해서 액체연료를 심지 위로 분사시켜 버너에 불을 피우고 물을 떠다 올려놓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텐트를 치고 옷을 빨고 부산을 떠는 동안 그들은 유유히 샤워를 끝내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맛있게 저녁을 먹은 뒤 낮에 찍어온 디지털 사진들을 휴대용 컴퓨터에 연결해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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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스터 시립 공원의 입구에서 만난 크레이그 브록하우스 (가운데). 첫 인상이 봉사와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데 라이더들에게는 천사 같은 존재다. 그는 필자가 올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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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과 수 슈락 목사 부부와 6학년 담임교사 웬덜 밀러는 모두 50대. 짧게는 10년 길게는 25년 동안 자전거를 타온 고참 라이더들이다. 이들이 더욱 ‘얄미운 것’은 ‘평화를 위한 페달밟기(Pedaling for Peace)’라는 미명 하에 자전거를 타면서 돈을 걷고 있다는 사실. 마라톤 대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심장병 어린이 돕기 1m 1원 운동 같은 것이다. 나는 이게 지능적인 사기라고 본다. 사실 요즘 체력들이 좋아서 풀코스 마라톤이나 장거리 라이딩을 무리없이 소화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는 돈을 걷어줘서 격려할 만큼 힘든 일은 아니다. 그런데 평소에 몸을 쓰지 않는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어떻게 그 긴 거리를 뛰고 자전거를 타느냐며 지갑을 연다. 몸을 안 쓰면 사기도 쉽게 당하는 법이다.
캔자스 대평원 일군 메노나이트
안식년을 자전거여행으로 보내고 있는 슈락 부부는 1마일(1.6㎞)당 1 센트씩 또는 그 열배인 10 센트씩 받고 있다. 1 센트는 돈도 아니다면서 10센트씩 내겠다고 덜렁 약속했다가 그게 모두 더하면 420달러(42만원 상당)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 후회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달리 얘기하면 그들이 비록 차량의 지원을 받고 자전거만 끌고 간다고 해도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긴 거리를 자신들의 힘으로 여행한다는 뜻이다.
일생일대의 경험도 쌓고 돈도 챙기니 일석이조일 것 같은데 이 돈을 자신의 호주머니에 집어넣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사기가 아니다. 교회의 건축 헌금으로 집어넣지도 않는다. 오하이오 주에 사는 슈락 목사 일행은 모금한 기금 전액을 그 주의 9개 평화봉사 단체에 기증한다. 그래서 그들의 자전거 횡단은 진짜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
슈락 목사는 메노나이트(Mennonite) 교파에 속해 있다. 메노나이트는 재침례교(Anabaptist)의 분파인데 유독 평화를 중시해서 군대에도 가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아미쉬(Amish)도 같은 뿌리였는데 근대를 거부하고 전통적인 삶을 고수하는 데서 메노나이트와 갈라진다. 재침례교도들이 유럽에서 박해를 받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태어나면 자동적으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 관행에 반대하고 사람들이 커서 예수를 진정 받아들였을 때에 세례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메노나이트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 그래서 그들을 찌르고 죽이는 사람들에게 보복은커녕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죽어갔다.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이 교파는 박해를 피해 신구 대륙을 전전하는데 이게 인류에게는 축복이 된다. 그들은 1790년 러시아의 카테리나 여제의 초청으로 우크라이나의 크리미아로 가서 스텝 평원을 푸른 농토로 바꾸었다. 그들은 뛰어난 농부였다. 당시 유럽의 곡물시장은 이들이 재배한 우크라이나 밀이 장악했다. 카테리나 여제가 죽고 그가 보장했던 군복무 면제와 종교의 자유가 흔들리자 1871년 미국으로 건너오는데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그들이 들여온 터키 레드 밀(Turkey Red Wheat)로 캔자스의 대평원은 세계의 곡창지대로 탈바꿈했다. 이전까지 대평원에서는 벌레들과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가문 여름 때문에 어떤 밀 품종도 통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에서 추위에 대한 내성을 키운 터키 레드 밀은 겨울에 파종해서 여름 이전에 수확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평원에서 살아남았고 해일처럼 뻗어나갔다. 슈락 목사는 자신의 조상이 바로 1871년에 건너온 메노나이트라면서 물어봐줘서 고맙다고 했다.
함께 여행하고 있는 교사이자 역시 메노나이트인 밀러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9·11 이후 ‘두려움’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라크 전쟁으로 수 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있는데 대해 깊은 무력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래도 내 눈에 그는 페달을 밟으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
빈곤·문맹·실명 퇴치를 위하여
미국 자전거 횡단으로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내가 원래 합류하기로 했던 리차드슨 부부는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빈곤과 문맹의 심각성을 알리고 그것들을 퇴치하기 위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 페달을 돌린다. 펜실베니아 주 하노버에서 온 커트 헴핑은 진드기가 옮기는 세균성 감염병인 라임병(Lyme Disease)에 걸려 4년 동안 병석에 누운 누이 케이티를 생각하며, 그리고 라임병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달린다.
제프 버터워드와 에이 케이 베이젠버그는 실명의 위기에 처한 고교동창 레버스 보닝을 위해 달린다. 보닝은 망막염에 걸려 점점 시력을 잃어 운전대를 놓아야 했고 지금은 악수를 하기 위해 내민 손을 잡지 못할 정도가 됐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1만5천달러(1500만원)를 모았다고 한다. 이 돈은 실명퇴치재단(Foundation Fighting Blindness)에 들어간다.
나는 자선과 기부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믿는 편이다. 인류는 아직 합리적으로 부를 분배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계획경제는 편중은 시정해도 부는 창출하지는 못했다. 시장은 노동의 등가성을 야만스럽게 무너뜨린다. 이는 자선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보완돼야 한다. 특히 질병의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적 보장이 철저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도 누이를 위해, 친구를 위해, 아프리카에 사는 동시대인들을 위해, 그리고 인류의 평화를 위해 달리는 이들은 브록하우스의 말대로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나는 제도적 개입만으로 사회문제가 해결될 거라고도 보지 않는다. 우애와 헌신, 연대,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가슴이 바닥에 깔려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비록 나는 나를 위해 달리지만 이들과 함께 달리는 기분이 좋다. 이들과 한 마을의 주민인 게 좋다. hongdongz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