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장산(265m)과 빈계산(415m)
김정호 선생이 제작한 조선시대 지도 대동여지도에도 분명히 기재돼 있는 산장산은 진잠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산장산은 산세가 좋고 물이 깨끗하여 평화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택리지엔 주능선이 일직선상으로 안정적 자태를 드러내며 진잠 마을과 성북동 마을을 감싸고 있다고 기록돼 있다.
산 모습이 암탉 같아서 이름 붙여진 빈계산은 대전 유성구 계산동, 대정동, 원내동의 울타리 역할을 하며 병풍처럼 길게 뻗어있는 마을의 진산이다. 마을 이름들은 지금도 노루정이(뒷산 형국이 노루 같다) 차돌모랭이(산에 차돌이 많이 박혀 있음) 사기막골(사기 굽던 가마터가 있음) 대정말(옛날 대장간이 있던 동네) 모가나무골(모과나무가 많은 동네) 당산말, 동막골, 새터말, 돌샘골등 순수하고 구수한 우리말로 된 이름이 그대로 쓰여 지고 있다.
산장산과 빈계산의 주능선은 낮고 유순하여 어린이나 노약자를 포함한 가족 산행 코스로 적당하다. 거기에다 뛰어난 조망을 자랑하는 용바위, 범바위, 너럭바위등은 산행객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매혹적인 명소이다. 대전 시내에서 교통이 편해 접근이 쉬운 산장산과 빈계산은 버스표 2장으로 산행을 할 수 있고 가벼운 운동을 겸한 연인들의 산책 장소로도 적당하다.
산장산과 빈계산의 모산은 금남정맥의 황태자 천하 명산 계룡산 쌀개봉(822.7m) 이다. 쌀개봉에서 금남정맥을 벗어나 동쪽으로 가지를 치는 능선이 약 3.5Km 거리에서 황적봉(664m)을 빚어놓는다. 황적봉에서 남서쪽으로 휘어지는 능선은 약 1.5Km인 거리인 밀목재에서 잠시 고도를 낮춘다. 밀목재에서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는 능선은 U자형으로 휘돌아 관암봉(526m)과 백운봉(536m)을 일으킨다. 백운봉에서 산줄기는 두 갈래로 갈라지고 동쪽으로 약 2Km를 더 달려 나가 금수봉을 들어올린다.
금수봉을 지난 산줄기는 산세가 급격히 떨어져 작은 수통골과 성북동을 연결하는 잘록이로 내려섰다가 급경사 능선이 돼 빈계산(415m)을 빚어놓는다. 빈계산을 빚은 산줄기는 남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산줄기는 유순해지며 범바위, 용바위를 빚은 다음 산장산을 일으킨다. 산장산을 지난 금수지맥 산줄기는 약 6Km를 뻗어 방동고개로 가라앉았다가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구봉산(264m)을 솟구치고 남은 여맥들을 갑천에다 가라앉힌다.
계룡산 쌀개봉부터 황적봉과 밀목재, 관암봉, 백운봉을 경유하여 빈계산까지는 도상거리로 약 11.4Km 이고 실지거리는 약 13.7Km이다. 빈계산서 산장산까지는 5.9Km쯤 되나 아주 유순한 길이라 2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1월이지만 봄날처럼 포근하고 따사로운 날 수통골 주차장에서 산행이 시작된다.(10:55) 빈계산을 오르는 모든 사람들을 추월하여 31분 만에 빈계산 고스락에 올라선다. 조망을 하니 대기가 희뿌옇기 때문에 가야할 산장산이 희미하게 조망된다. 빈계산 고스락을 뒤로하고 11분쯤 내려간 삼각점이 박혀있는 능선에서 뒤돌아보니 금수봉과 빈계산 고스락이 뚜렷하다.(11:37) 임도로 내려선 후 용바위봉 오름이 시작된다.
칼날 같은 용바위봉에 올라서서(12:04) 조망을 해보지만 대기가 깨끗하지 못해 전망이 터지지 않아 아쉬움이 가득하다. 11분쯤 쉰 다음 발길을 재촉한다. 산길에 떨어진 쓰레기를 비닐봉지에 담으며 완만한 능선 타기 산행이 계속된다. 전망 좋은 범바위와 용바위를 지나 성재로 내려선 다음 성북동산성에 올라가고 곧이어 삼각점과 깃대가 세워져 있는 산장산에 닿는다. (12:58)
산장산을 뒤로하고 산줄기를 잘라 차도를 낸 방동고개로 내려선다.(13:18) 차도에는 오가는 차량들이 고속으로 달리고 있어 횡단할 수가 없었다. 방동저수지 지하 굴다리를 이용하여 건너편 산에 붙는다.(13:30) 산에는 길이 없었다. 잡목을 헤치고 가시에 찔러가며 산마루에 닿으니 희미한 길이 나타나 길을 따라 나아간다. 무덤을 지나 뚜렷한 길로 50m쯤 진행하다가 이 길은 구봉산 가는 길이 아님을 깨닫고 다시 무덤으로 되돌아와 구봉산으로 이어진 능선을 찾아낸다.
산줄기가 이어진 능선으로 나아가니 또다시 산줄기를 잘라버린 호남고속도로가 나타난다. 고속도로를 건너갈 수가 없어 능선 오른쪽으로 길을 내가며 산을 내려간다. 고생 끝에 힘겹게 고속도로 굴다리로 내려선다.(13:55) 길도 없는 산에서 잡목과 싸우며 25분 동안 기운을 많이 뺐다. 구봉산 가는 길 팻말이 서있는 곳에서 구봉산 오름이 시작된다.(13:59)
체력을 소모한 탓으로 발걸음이 무겁다. 거대한 송전탑이 서있는 능선에서 지나온 능선 길이 한 눈에 조망되어 기뻤다.(14:10) 구봉산 1봉에 올라서고(14:23) 바로 2봉에 닿아 9분 동안 간식을 들며 휴식을 취한다.(14:26) 3봉에 닿으니 구봉산 구각정이 뚜렷이 보인다.(14:40) 4봉(14:48), 5봉(14:59)을 지나 고스락인 구각정에 닿는다.
구봉산 3봉부터 고스락까지는 오르고 내리는 환상의 암릉 능선이라 산행의 묘미가 돋보이는 좋은 코스였다. 구봉산 7봉과 8봉을 지나 산불감시 초소가 있고 삼각점이 박혀있는 9봉에 닿는다.(15:29) 곧이어 구봉산 10봉에 이르고 끝 봉우리인 11봉에 도착한다.(15:51)
가수원 차도로 내려가(15:59) 차도를 따라 가수원역으로 나아간 후 육교로 호남선 철도를 건넌다. 한가로운 마을과 전답을 지나 갑천을 건너 정림동 삼정하이츠 아파트에서 정각산에 붙는다.(16:18) 산길에는 대전둘레 산길 잇기 리본이 붙어 있다. 초행인데도 용케 길을 잘 찾아왔다. 약 4분쯤 밧줄이 달려있는 조금 가파른 길로 올라가서 완만한 산길로 나아간다. 효자봉 고스락 직전 경사는 급해지지만 삼각점이 박혀있는 효자봉에 어렵지 않게 올라선다.(16:39)
효자봉을 뒤로하고 내리막길로 나아가 장안봉에서 뻗어 나온 삼거리 능선 길과 만난다. 삼거리엔 쟁기봉, 효자봉, 장안봉 팻말이 서있었다. 쟁기봉으로 발길을 옮긴다. 산행한지 6시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체력이 남아 있어 빠른 걸음으로 쟁기봉에 올라섰다. 쟁기봉엔 정자가 세워졌고 복수정자란 현판이 달려있다.
전망이 열리는 바위에서 조망을 해본다. 빈계산은 보이지 않고 구봉산이 멀리 보인다. 보문산은 뚜렷하고 발아래 유등천은 수량이 없어 볼품없다. 보문산 시루봉에 설치된 대전둘레 산길 잇기 안내판엔 쟁기봉에서 뿌리공원을 경유하여 보문산으로 가는 걸로 돼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쟁기봉부터 뿌리공원까지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효자봉에서 장안봉을 가서 대둔지맥 산줄기를 타고 가다가 시도경계능선으로 하여 뿌리공원으로 가는 것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올바른 대전둘레 산길 잇기가 될 것이다.
하산은 도솔산으로 뻗어나간 능선을 타고 정림동고개로 나아간다. 널찍하고 완만한 능선 길로 20분쯤 진행하니 혜천대학이 나타난다. 산행 안내판엔 정각산을 오량산으로 기록하고 주요 지점을 표시해 두었다. 혜천대학 울타리를 오른쪽에 끼고 조금 더 내려가니 복수정류장이 나타나며 능선 타기 장거리 산행이 마감된다.(17:28) 차도로 바뀐 능선에서 정림동고개로 산줄기가 이어짐을 확인한다. 산줄기를 개발할 때 자연과의 조화를 해치지 않는 창조적인 개발을 하지 못한 아쉬움에 잠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