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음악에 취해서
글 德田 이응철(수필가)
평소 존경하는 시조작가 수암(水巖)께서 새벽에 민들레 홀씨처럼 날려 보낸 문자였다.
열어보니 의외로 나훈아의 영상 음악이었다. 이름 모를 앳된 여가수가 어느 통나무 적치장에서 몸을 흔들며 부르는 트로트가 아닌가!
요즘 클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난번 자랑을 늘어놓았더니, 엉뚱하게 보낸 음악은 아뿔싸 유행가요가 아닌가! 들어보니 초보자라도 리듬이 단순하고 가사 또한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흡인력이 대단하다. 얕잡아 보며 언젠가부터 천박하기까지 하던 유행가가 깊이 각인되는 순간이다. 꽃밭에서 몸을 자유롭게 하늘거리며 한결 노래에 향을 더해준다.
ㅡ사랑이 떠나거든 그냥 두시게
ㅡ마음이 떠나면 몸도 가야 하네
ㅡ누가 울거든 그냥 두시게
ㅡ실컷 울고나-면 후련-해질 거야
완전 감동은 무엇보다 나훈아의 창법 때문이다. 헤어짐을 서러워 마라! 무겁게 보내지 말라는 당부의 말이다. 미련 없이 그냥 보내라는 가사가 납덩이처럼 추억의 갈피 속에 묻어둔 아픔들을 씻어준다. 어쩌면 그리도 마음을 울리는 노래인가! 부담 없이 위로받는 대중가요였다. ㅎ 그냥 두시란 끝말이 여기도 나온다. 실컷 우는 것이 후련하다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좋다. 경쾌하다. 내용이 알차다. 후렴이 우르르 쏟아지며 마음을 다시 채근한다.
ㅡ아- 살다가 보면 하나씩 잊히다가
ㅡ아-살다가 보면 까맣게 잊어버리지!
ㅡ지나간 사랑은 지워버리게, 그래야 또 다른 사랑을 만나지
ㅡ자네는 아직도 이별이 아픈가 망각은 신이 주신 최고에ㅡ 선물이지!
살다가 보면 이란 가사가 너무 좋다. 비약하지 않는 후렴이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현실에 충실하라는 말이다.
누군가 말했다. 미래는 두렵고 현재는 불안하고 과거는 얽매이고- 누구나 살아오면서 녹록지 못한 삶으로 인한 아픔과 이별들이 그 얼마나 많을까 이를 드넓게 위로해 준다.
제목을 사랑이 떠나거든 인 줄로만 알았다. 인터넷에 찾아봐도 함구하며 대꾸하지 않는다. 궁금했다. 가수 나훈아 노래라고 인터넷에 찾으니 생뚱맞게 자네라고 제목을 알려준다. 이찬원 신인가수도 이 노래를 리바이벌해 장안에 화제였다고 한다. 동감이다. 다시 음악을 듣는다.
ㅡ사랑을 묻거들랑 말해주시게, 후회하더라도 한번 해보라고
ㅡ이별을 묻거들랑 거짓말하시게, 아프긴 해도 참을 만하다고
ㅡ아ㅡ 살다가 보면 세상을 원망도 하고
ㅡ아ㅡ 살다 보면 세상을 고마워하지
지나간 상처는 잊어버리게 그래야 그래야 또 다른 행복을 맛보지/ 자네는 아직도 가끔씩 우는가 눈물은 아픔 씻는 최고의 샘물이지
아 - 살다가보면 운명은 어쩔 수 없지/ 아- 살다가보면 인연은 따로 있다네ㅡ.
노을이 진다고 슬퍼 마시게 그래야 또 다른 내일이 온다네/ 자네는 아는가 진정 아는가 8자는 뒤집어도 팔자인 것을
끝까지 다 듣고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퍼 나른다. 신바람이 난다.
대중 간, 접점을 찾은 트로트가 분명하다. 흔한 사랑과 이별이 소재라지만, 마치
인생철학 강의를 방금 들은 기분이다. 세상을 달관하며 살아온 노자의 명 강의 와도 같은 착각이다. 흥분이다.
점점 흉흉한 세상, 와우각상쟁(蝸牛角上爭)이란 백거이의 詩를 돌아보며 강제로 물꼬를 트고 작은 뿔로 싸움하는 인간들이 바보스럽기만 하다.
후련한 영상 음악 ㅡ. 참으로 여유롭다. 마치 동양화의 여백과 같은 나훈아의 트로트-. 얼마 전에 세상을 깜짝 놀란 소크라테스형과도 같이 창법이다. 신곡을 내놓기만 하면 힛트다. 가사가 철학적이고 곡이 명쾌하다.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후련해진다. 내 추억에 옹이가 된 사랑 이야기들이 위로받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대단원의 마무리는 8자로 맺는다. 뒤집어도 팔자? 하늘이 내려준 운명이요, 숙명이라고 대변한다. 어제도 종일 정신 나간 사람처럼 흥얼거렸다. 빗속에서도 음악을 듣는다. 가사에 심취한다, 절반은 암기했다. 아내가 예전에 없던 희한한 짓을 한다고 한마디 툭- 던진다. 아무래도 좋다. 나이와 무슨 상관이 있으랴! 이렇게 영혼을 편케 하는 성인가요야말로 녹록치 않은 요즘 고물가시대, 불안한 정치 시국, 칼부림나는 사회를 희석하는 국민의 영약이 아닐 수 없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