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창순의 김유정소설문학여행]
제54차 김유정소설문학여행기(1)
-2016. 3. 9
한국단편문학의 선구자
알싸하고 향긋한
노란 동백꽃
-권창순의 김유정소설디카詩 <작가 김유정>
내가 제1차 김유정소설문학여행을 시작한 건, 노란 동백꽃 향기가 알싸한 1992년 봄이다.
2016년 새봄! 설레는 가슴을 안고 경춘선 전동차를 탄다.
알싸하고 향긋한 김유정의 문학을 찾아 쉰 네 번째 김유정소설문학여행을 떠난다.
김유정역은 서울 상봉역에서 춘천역까지의 경춘선
그 경춘선의 색동역이자, 한국단편소설문학의 색동역이다.
유정이야기숲은 구 역(신남역)에서 김유정역 사이에 철길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
생강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함께 알싸하고 향긋하게 흔들리며, 김유정 소설 [동백꽃], [봄․봄]
두 점순이의 닭싸움질을 생각하며 웃어본다.
“얘, 점순아!” 하고는
동백꽃 점순이가 살금살금 다가와 큰 소리로 나물을 캐던 봄.봄의 점순이를 부른다.
“망할 년, 깜짝이야! 애 떨어질 뻔했네.”
얼굴에 점이 하나 더 많은 봄.봄의 점순이가 나물 캐던 호미를 내동댕이치고 벌떡 일어서더니 동백꽃 점순이를 노려본다.
“망할 년, 내가 너 보담 한 살 더 먹은 거 잊었니?”
동백꽃 점순이도 자기네 수탉처럼 곧 얼굴을 쪼을 것처럼 봄.봄의 점순이를 노려본다.
“그래, 한 살이나 더 먹은 게 남의 닭을 훔치다가 닭싸움을 시키니?”
“남의 닭을 훔치다니?”
“그럼, 그 얘 집에 몰래 들어가 횃대에서 닭을 꺼내오는 게 훔치는 게 아니고 뭐니?”
“우리 소작인 집인데 뭘 그래.”
“그럼, 너희네 소작인집은 다 너희네 것이냐? 그 알량한 맘 알아주지 않는다고 그렇게 심청이냐?”
“뭐라고! 이 년이!”
곧, 면두와 대강이에 피를 흘리는 닭싸움이라도 벌어질 태세다. 그러나 금병산기슭에서 노란 동백꽃향기가 봄바람을 타고 날아오자 동백꽃 점순이가 썩 불리함을 알고 한 발짝 물러선다. 그러나 여우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서
“어떤 양반이길래 이름이 욕필이람!” 하고는 봄.봄의 점순이를 바라다본다.
“죽일 년, 남의 집 어른보고 욕필이라니, 함자가 어련히 있거만.”
“뭔데?”
“몰라서 물어?”
“동리에서 다들 그렇게 부르는데 나라고 욕필이라고 부르지 못하냐?”
“이 죽일 년 좀 봐!”
“동리에서 욕필이 영감한테 욕 안 먹은 사람이 있냐. 그러니까 아이들까지도 욕필이, 욕필이 하고 손가락질을 하지. 안 그래 이년아?”
아버지 봉필 영감이 동리에서 두루 인심을 잃었다는 걸 봄.봄의 점순이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기에 목구멍까지 나온 욕을 삼키며 동백꽃 점순이를 씩씩거리며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백꽃 점순이는 봄.봄의 점순이를 위하는 척 하면서
“그리고 성례를 시켜준다고 했으면 시켜줘야지. 안 그러냐?”
“……”
“뭐, 네 키가 작냐?”
“……”
“네 그이가, 아니 봉필 영감님 세 번째 데릴사위께서 그랬다던데. ‘빙모님은 참새만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낳지유?’ 하구 말이야. 말을 바로하자면 네 어머니는 너보다도 귓배기가 작지 뭘 그래. 안 그러냐?”
봄.봄의 점순이의 숨은 더 거칠어지고 얼굴은 더 빨개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키가 아니야. 다 핑계지. 네 그이가 일을 잘 하니까. 머슴을 두면 돈만 들고. 안 그러냐?”
“……”
“아직도 성례를 할려면 4년은 더 있어야 할 걸.”
분한 마음에 거친 숨을 몰아쉬던 봄.봄의 점순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동백꽃 점순이에게 묻는다.
“아니 왜?”
“넌 몰라서 묻니?”
“……”
“네 언니가 열 살에 데릴사위를 들여 열아홉 살에 열 번째 데릴사위와 성례를 했고, 네 동생이 지금 여섯 살이니 열 살은 돼야 데릴사위를 얻을 테고 하니 앞으로 4년은 더 있어야 네 아버지가 성례를 시켜 줄 걸. 그러니 네 그이가 7년 7개월 데릴사위를 해야 널 안해로 맞을 수 있지. 넌 스무 살, 네 그이는 서른 살 돼야 상투를 틀어 올릴 수 있어.”
“너무 길어 4년은!”
봄.봄의 점순이가 안마을을 멍하니 바라다보며 한숨을 내쉰다. 신이 난 동백꽃 점순이가 한마디 톡 쏜다.
“바보지 뭐!”
“맞아, 바보지 뭐! 아니! 뭐라고? 우리 그이가 바보라고 이 망할 년이!”
봄.봄의 점순이가 곧 달겨들어 동백꽃 점순이의 머리채를 움켜잡을 태세다. 그러나 봄.봄의 점순이도 쓴웃음을 깨물며 한 발짝 물러서더니
“너, 그 얘와 그랬다지?”
“뭘?”
“저기 소보록한 동백꽃 속에서 그 애와 그랬다지?”
“뭘? 이년아.”
“네가 그랬다지. 그 얘는 배냇병신이라구. 그런데 배냇병신하구 그랬다지?”
이번엔 동백꽃 점순이의 숨이 거칠어지고 얼굴이 파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래! 그랬다. 어쩔래?” 하고는 봄.봄의 점순이를 빤히 쳐다보며 웃는다.
“배냇병신하구?”
“그래, 배냇병신하구. 근데 네 그이도 고자 아니니?”
“뭐라구? 누굴 죽일려구 그래 이년이!”
“잘난 욕필 영감님이 네 그이의 바짓가랭이 속 그 것을 단박 웅켜잡았다니까 혹 고자가 됐을지 누가 아니?”
“이 망할 년의 주둥이를 그냥!”
“아버지의 쇰을 채라고 해 놓고 귀를 잡아당기며 울건 또 뭐람!”
봄.봄의 점순이 눈에 독이 잔뜩 올랐다. 그러나
“네 어머니에게 고자질 좀 해야겠다.” 하고는 동백꽃 점순이의 얼굴을 홉뜨고 바라다보았다.
“뭘?”
“네 고자께서 지게막대기로 때려죽인 그 닭에 대하여!”
“그 건 안 돼! 그 얘 집이 모두 쫓겨난다구!”
“네 어머니 역정이야 대단하시니.”
“그것만은 안 된다구 이년아!”
“왜 안 돼 이년아!”
급기야 두 점순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물바구니를 발로 걷어차고는 머리채를 잡고 밭고랑으로 나뒹굴었다.
멀리서 바라다보니 머리채를 잡고 혹은 치맛자락을 잡고 일어섰다간 넘어지고 넘어졌다간 일어서고 하는 것이 꼭 닭싸움을 하는 것 같다.
한참을 그렇게 싸우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물바구니를 챙겨들고는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논길을 걸어 자기네 집으로 돌아들 간다.
그런데 봄.봄의 점순이 얼굴을 보니 점이 하나 빠졌다. 혹 동백꽃 점순이 얼굴에 묻었나 살펴봤지만 헝클어진 머리채엔 알싸한 생강냄새가 날뿐이었다.
그렇다! 동백꽃 향기 알싸하고 산골 물소리 쫄쫄거리고 노란 꾀꼬리소리도 좋은 금병산 기슭에 찾아온 봄봄 사이에 빠졌구나. -권창순 <김유정 소설 속 등장인물만나기>에서
한국철도역명에 사람이름이 쓰인 곳은 이곳 김유정역이 처음이며 유일하다.
아래 건물 김유정역(구 신남역)은 '간이역' 드라마의 배경지로도 유명하다.
두 점순이의 닭싸움질을 상상해 보며
한바탕 웃고
김유정 생가로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