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의 자전거 정책
지난 5월에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2018년까지 바닷가와 비무장지대를 따라 1조 2456억원을 들여
3114킬로미터의 전국일주 자전거 도로를 건설하기로 계획돼 있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세분하면 서해안선
(행주대교-목포) 548킬로미터, 남해안선(목포-부산) 1652킬로미터, 동해안선(부산-강원 고성) 634킬로미터,
비무장지대 노선(경기 강화-강원 고성) 280킬로미터 등이 있다.
이와 연계해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하면서 강 주변에 자전거전용도로를 놓기로 계획했는데, 한강(팔당댐-충주댐
구간) 311킬로미터, 금강(금강 하구둑-대청댐 구간) 255킬로미터, (......) 이 밖에 행정도시 347킬로미터,
혁신도시 161킬로미터, 기업도시 46킬로미터, 그리고 동탄2신도시 227킬로미터를 비롯해 신도시 자전거도로도
781킬로미터를 놓기로 했다. 이 모든 사업에다 현재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계획하고 있는 것까지 포함하면
향후 우리나라에 건설될 자전거전용도로는 전부 6000~7000킬로미터는 족히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계획에는 기존 도시의 자전거전용도로 건설계획은 전혀 없다. 2005년에 자전거 관련 사무를
지자체에 위임한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정부에서는 도시 간의 자전거도로를 건설하고, 각 도시 안의 자전거도로
건설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아주 소극적인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거의 방관자처럼
행동하고 있다. 다만 올해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수요조사를 실시해 2010년 이후 ‘도로 다이어트’를 추진하고,
국도와 지방도의 자전거도로를 연결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추상적 내용만 밝히고 있을 뿐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전거란 거리마찰효과가 있는 단거리 통행수단이므로 전국 일주도로나 4대강 주변
자전거도로를 만들어도 아주 극소수의 자전거동호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이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수요도 없는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여한다는 것은 녹색 교통수단인 자전거사업의 활성화를 통해
우리나라를 저탄소사회로 이행시켜 나가기보다는, 토건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토목사업의 한 방편으로
그것이 기획되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반증해준다.
자전거는 구매가가 자동차에 비해 적게는 100분의 1에서 많게는 몇백분의 1에 이를 만큼 아주 저렴해
비교적 모든 사람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해주는 아주 평등한 교통수단이다. 개발도상국가에서 가장 긴
자전거전용도로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콜롬비아 보고타의 앤리께 페냐로사 전 시장은 자전거를 통해
경제.사회적 약자에게도 균등하게 이동권을 보장해주는 일이 행복한 문명사회를 건설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부품과 조립분야 모두 붕괴된 우리나라의 국내 자전거 생산기반 현실은 전혀 감안하지 않은 채,
세계 3대 자전거 생산국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제시하며 은연중에 저가의 생활밀착형 자전거보다는
부가가치가 높은 고가의 자전거 생산에 역점을 기울이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70~80만원대의 중고가 자전거 생산을 거론하고, 지식경제부는 급증하고 있는 자전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유명브랜드와 제휴하거나 정보기술, 자동차기술을 접목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고부가가치 자전거’ 개발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게다가 대전시는 대덕특구지원본부, 한국기계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자전거연구조합 등을
중심으로 ‘대덕특구 국산 자전거산업 육성협의회’를 결성해 초경량 소재에 GPS가 장착된 첨단 명품자전거의
개발과 생산에 나서겠다는 아주 의욕적인 행보를 막 시작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일부 언론은 샤넬, 에르메스, 벤츠, 페라리 등 유명브랜드를 딴 명품자전거들처럼 조만간에
국내에서 수백만원 내지 천만원대에 이르는 에쿠스, 제네시스와 같은 명품자전거의 생산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도하면서 계속 명품자전거의 생산 자체를 독려하고 있다. 그리고 자전거전용 운동복과 운동화, 헬멧, 야외용 안경,
배낭, 장갑 등을 갖춘 자전거동호인들의 사진을 지속적으로 친절하게 보여주면서 명품타령을 계속 늘어놓고 있다.
이런 중앙 및 지방 정부 그리고 일부 언론기관의 명품타령은 자전거교통의 활성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자전거이용의 대중화 자체를 근본적으로 막을 위험성이 매우 높은 게 엄연한 사실이다.
중앙정부가 자전거 관련 업무를 지방에 이양하고 국비 지원 자체를 중단한 데다, 지자체 사이에 이루어지는
중복 투자를 조정하지 않으면서 정말 웃지 못할 사태까지 요즘 들어서 나타나고 있다. 대전시는 이미 대전을
자전거 생산 거점도시로 만든다는 전략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적지 않은 지방자치단체가
이런 유행에 편승해 비슷한 사업 구상을 계속 내놓고 있다. 머지않아 우리나라가 자전거 생산 대국 중국을 앞서는
생산기반을 갖추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말 헛웃음만 나온다.
이 정도에서 우리나라 자전거정책의 비판을 마무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중앙일보에서 역점을 기울이고 있는
기획 기사의 제목, ‘자전거, 이젠 생활이다’처럼 우리 삶 속에 깊이 자전거가 들어온 탓인지 최근에는
일부이기는 하지만 전문가들마저 아무런 성찰 없이 ‘녹색’으로 덧칠된 ‘토목 페달’을 밟고 있다.
네덜란드와 독일 자전거 회사들의 모임인 ACCELL그룹이 후원하는 ‘자전거 타는 유럽인 연맹’이 중심이 되어
1995년부터 2020년까지 유럽대륙에 12개 노선 6만 6175킬로미터의 국제 자전거도로망을 건설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는 ‘유로벨로’의 경우 현재까지 4개 노선 개발이 완료되었고, 독일과 영국 등 일부 유럽국가에도
자전거도로 네트워크 개발 사례가 있어 우리나라에서 현재 추진 중인 전국일주 자전거도로와 4대강 자전거도로의
개발은 충분히 논리적 타당성이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하지만 유로벨로를 주도하는 위의 두 나라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도시 안에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자전거도로망을 구축하고 생활밀착형 시스템을 구축한 나라들이다.
최소한 이들 국가는 앞뒤 순서가 바뀐 자전거 정책과 행정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후속사업이 현재 진행 중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2008년 말경에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얼마 전에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통연구원에서 직접 나서 전혀 새로운 개념이라고 고가(高架) 터널형
‘자전거급행도로’의 건설을 제안하기까지 했다. 이 자전거전용도로는 버스 등 다른 차량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중앙분리대나 녹지 위 4미터 이상 높이에 만드는데, 건설비용은 킬로미터당 50억~150억원으로 시속 20~30
킬로미터의 속도를 낼 수 있고, 왕복 2차로 또는 4차로에 가벼운 소재로 투명한 원통형 모양으로 시공한다.
비나 눈이 와도 지장을 받지 않도록 설계된 이 자전거급행도로는 4차로 기준으로 시간당 4000명가량 통과할 수
있는 데다가 공사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해 향후에는 모노레일이나 경전철을 대체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이런 자전거급행도로가 설치된 나라는
아직 지구상에 없다. 필자가 아는 바로, ‘벨로시티’란 자전거급행도로는 크리스 하드윅이라는 캐나다 토론토시의
건축가가 최초로 구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시스템은 가상의 세계나 우주인이 사는 마을을 꿈꾸는
의사결정자가 아니라면 정말 수용하기 어려울 것 같다. 또 원통형의 터널을 투명하게 시공하기 위해서 이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소재가 강화유리가 아닐 경우 아무리 첨단 신소재일지라도 노후화되거나 흉물화되는 것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까, 태양과 먼지 등으로 손상될 외관의 청소는 어떻게 할까 등 정말 많은 점에서 의구심이 든다.
이렇게 녹색 교통수단인 자전거를 위해 적색 개발방식을 이용한다는 사업구상 자체에 정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정말 선진 자전거도시 사람들이 손가락질하지 않게 마구 표류하고 있는 MB정부의 자전거정책을 바로잡을 때이다.
-박용남의 "저탄소 사회로 가는 지름길, 자전거" (<녹색평론> 107호)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