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이야기 한 편
2025.3.2. 우리 목사님 4주기 추도예배
제가 마지막 말씀 순서입니다. 천국 가신 형님은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동경하신 분이 아니셨잖아요.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것도 단체관람 외에는 아마 보시지 않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어느 한 편의 영화는 제가 듣기로는 스무 번 정도 보셨대요. 그 영화가 무엇이죠? “중국의 십자가” 네, 맞습니다. 저는 열 번 이상은 봤는데 그 다음으로는 숫자를 세지 않았습니다. 목사님께서 중국의 십자가를 보시고 언젠가 “아우님, 최근에 중국의 십자가를 보니까 중국 가정교회 성도님들이 화장끼 없으신 모습인데도 밝은 모습으로 고개를 이쪽으로 저쪽으로 찬송하는데 나는 아우님이 그렇게 우리 교회 찬송 인도를 했으면 좋겠어. 우리 교회도 중국 가정교회랑 똑같잖아.” 그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박수 치면서 우리 찬송 하나 할까요? “예수 사랑하심”을 1절만 하겠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할렐루야!)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다시 1절로!) 아멘!” 집회 마지막 날 같습니다. 저희 형님이 교회 자랑하면 굉장히 싫어하셨습니다. 교회도 자랑할 것이 못 되고, 사람도 자랑할 것이 못 되고 봄 철에 전도 나가는 식구님들에게도, 가을철 군 부대 섬김하는 팀들에게도 “교회 자랑하지 말고 예수님 자랑해. 예수님을 전해야만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올 수 있어요.” 그렇게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말씀하신 것이 기억이 나요. “우리 몸된 교회가 주님을 모시고 걸어온 길을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아마도 가슴 벅차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 “맞습니다. 목사님.” 했던 대화가 생각납니다.
저는 주님 모시고 우리 몸된 교회가 걸어온 길을 생각해 보면서 한 가지 영화 같은 장면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시간이 흘러 흘러 되돌아가서 23년 전, 2003년 장소는 노령산맥 기슭에 있는 이사야 기념관에서 있었던 사역자 집회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 때 저는 접수를 맡아서 월요일날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는데 사역자님들이 한 분, 두 분 도착하셔서 접수 쪽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이사야 기념관을 다녀오신 사역자분들은 허르스름한 옷에 장화 또는 털신을 신고 오셨는데 처음 오신 분들은 인천공항에서 내리신 신사 숙녀처럼 오셨습니다. 어떤 분은 부츠를 신고 오셨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진흙탕에 빠지셔서 꼼짝도 못하시는 거에요. 저는 웃으면서 ‘처음엔 저러시지만 하룻밤만 지내보시면 달라지실 거야.’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분은 “이사야 기념관이라는데 도로 포장도 안 해 놓고, 뭔 시설이 이래요?” 말씀하셨어요. 제가 “하룻밤만 지내보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그 날 밤에 눈이 내렸습니다. 4박 5일 동안 70cm나 눈이 내려서 온통 수북이 쌓인 눈 속에서의 집회였습니다. 지붕이 무너질랴 형제들이 빗자루로 눈을 쓸 정도로 눈이 많이 내렸죠.
첫 날 저녁에 우리 목사님이 선포하신 말씀이, 그 제목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다들 사역자들이시고 주님께 헌신하고 주님과 함께 열심히 섬기시는 분들이신데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는 겁니다. 일방적인 기도가 아니라 우리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대로 아버지와의 깊은 관계 속에 사귐을 이어가고 그 사귐 속에서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고 아버지의 지시 사항을 헤아리고 아버지의 뜻을 행할 마음을 품고 기도하는 것이지요. 어제 그렇게 얼굴이 푸르락 파르락 했던 사역자님들이 그 날 밤 은혜를 많이 받으셨는지 그 다음날 아침에는 얼굴이 해와 같이 밝아지셨습니다. 어젯밤에는 여기가 뭔고? 성전도 대나무로 지어져 있고 땔감 냄새도 나고 산적 소굴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은혜는 넘쳤다는 겁니다. 예수님으로 가득찼지요. 어떤 분은 순수하게 맨 얼굴로 밝은 모습으로 인사하며 수고가 많으시다고 저희 식구님들께 인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회에 참여하셨던 모든 분들이 우리 식구님들 기도 속에서 마음이 주님께로 주님께로 매여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수요일날 저녁이었습니다. 2박 3일이 흘렀죠. 어떤 식구가 소식을 전해 옵니다. “병상에 계시다는 박수호 선생님이 조금 전 소천하셨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서 이 사실을 목사님께 알리지도 못하고 눈이 내려서 녹아지는 눈물인지, 마음속에서 형제를 생각하는 눈물인지 그렇다고 울 수도 없고 사역자들 앞에서 밝은 모습이면서도 한 쪽에서는 울고 있는 형제들을 봤습니다. 목사님께는 알리지도 못하고요. 목요일 저녁에 저는 일찍 하산해서 수원으로 올라왔습니다. 다음날 발인 예배를 인도해야 하기 때문에 그랬지요. 발인 예배를 인도하고 비봉 쌍안리 교회 묘지에 이제 하관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눈발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검정색 무쏘 4륜차가 교회 묘지를 향해서 부웅하면서 달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차였습니다. 목사님이 그 날 새벽에 소식을 들으시고 집회를 마치자마자 기차를 타고 오신 것이었습니다. “내가 기차 안에서 서서 왔소. 형제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앉지도 못하고 서서 올 수 밖에 없었소.”
집회 전에 박수호 선생님 병실을 목사님과 함께 찾은 적이 있습니다. 성우 엄마가 “성우 아빠 목사님들 오셨어요.” 우리 박수호 선생님은 의식이 없는 채로 누워서 손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우 아빠 뭐해?” “식구님들 곧 오시잖아. 빵을 만들어야지.” 무의식 중에도 식구님들을 기다리는 성우 아빠. 제가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었습니다. 그 마음을 품고 형제 사랑을 품고 사역자들을 섬기러 나아갔던 우리들이었습니다.
하관예배를 목사님이 집례하시면서 “주님, 이런 법은 세상에 없습니다. 주의 종이 열심히 충성을 다해서 섬겼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형제의 죽음이라뇨.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 없지만 주님의 인격을 믿기에 순종하렵니다.” 우리가 신실한 길 걸어갔어도 이해할 수 없는 형편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보이는 것보다도 주님의 인격을 믿어드립니다. 어떨 때는 목사님이 사정없이 야단을 치실 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제가 변명하고 싶지만 ‘형님에게 무슨 뜻이 있으시겠지.’ 하면서 받아들입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목사님은 “그럼 더 잘해. 내 손만 잡고 따라와.” 그러십니다.
우리 몸된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인도하심은 예수님을 머리로 붙잡는 것이고 실제로 붙잡고 따라온 길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우리 몸된 교회 발자취를 영화로 만들면 마음이 찡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 몸된 교회는 주님을 무덤덤하게 따라온 것 아니잖아. 죽기 살기로 예수님을 붙잡고 따라왔잖아. 살아도 주님 죽어도 주님.” 그 중심이 지금도 살아있기를 마지막까지 살아있기를 바라고 바랍니다. 주님 모시고 각자 오늘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기획하시는 멋진 작품을 만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