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 2009년에 누군가 올린 들도 있어 함께 나누어 봅니다..
가을에는 가볼 수 없을 줄로만 알았었다. 나에게 며칠간의 여행을 허락하는 시기는
주로 2월의 냉기가 여전한 겨울의 끝자락 즈음이었기 때문이다.
가을의 악양은 지리산의 다양한 색상만큼이나 풍성한 곳이었다.
이제는 쓸쓸함이 묻어나기 시작하는 섬진강의 강줄기를 따라,
푸르렀던 몸을 털어내고 가을의 결실을 풍성히 맺어놓은 악양과
평사리의 너른 들판과 언덕을 지나 마을 어귀에 차를 세운다.
초대받은 자리, 풍악재로 조그마한 소박한 마을길을 따라 천천히 오른다.
동네밴드로도 유명한 악양의 귀농인들..
그 중 베이시스트이자 칠공예를 하시는 성광명씨의 집 옆에 풍악재라는
여러목적을 위한 공간을 하나 마련하였다.
산세가 부드러운 지리산의 한줄기 등성이에 위치한 이 곳은
아래 계곡의 마을과 밭들을 내려다 보는 곳에 위치해 있다.
황토와 목재를 사용한 고유한 느낌의 집은 아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지만,
가끔 이곳에 내려오면 여기 신세를 좀 질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곳에서 지리산학교 분들이
풍악재 개관기념 공연을 위한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었고,
준비된 음식과 막걸리에 이미 한상 거하게 차리고
초저녁의 여유를 즐기는 분들도 있었다.
성광명씨는 옆의 자기 집 한 모퉁이에 공간을 만들어 갤러리를 꾸며놓았는데
지금껏 칠공예로 만든 찬합, 자개장, 식기, 다기 등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정성과 자연의 재료들이 빚어낸 그 작품들에서 쉽사리 다가갈 수 없는
어떤 힘을 느꼈다면 그건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이제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나는 얼른 준비된 막걸리와 떡, 고기등의 음식으로
저녁요기를 하고 공연을 보기 위해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성광명씨는 자신의 집 뒤편 조그마한 뜰에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놓기까지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겨울이 아니면 언제든 바깥의 공간에서 어느 누구의 불평도 없고,
어느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는 그곳에서
이는 사람들과의 잔치를 위한 필수요소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는 동네밴드의 멤버 중 한 사람이 아닌가,
이 밴드의 장비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것들인데 음..
이만하면 이 무대로 만들어 놓은 공간이 비좁을 수도 있다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리산 학교 기타반 수강생들의 공연이 있고 나서 어두움이 더욱 짙어질 무렵,
동네아이들의 공연이 시작된다.
이 아이들은 이 동네 분들의 아이들인데 어릴적 부터 악기 하나씩을 배워
각자 세션을 맡아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다. 연주실력이 수준급이다.
보컬도 괜찮고, 무대매너가 조금 더 자연스러워지면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겠단 생각이 든다.
도시가 가깝지 않은 이 시골 한 구석에 사는 이 아이들은 남다른 매력과 느낌을 준다.
강하게 받았던 인상 중 하나는 이들은 각자의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심이 깊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같은 또래가 아닌
어느 정도의 나이차가 있는 아이들의 집단이다보니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안교육에 관한 어떤 글에서 지금의 학교와 같은 동일한 나이의 아이들을
학년으로 구분하는 제도는 서열과 위계, 그리고 억압중심의 질서를 습득하게 하지만
여러 나이대가 섞인 청소년집단에서는 서로가 어울리면서
약자에 대한 배려나 상급자에 대한 존중을 습득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런 것이 아닐까.. 이들이 대안학교를 다니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네에서 자기들만의 세계와 역할을 맡아 하면서 자연히 몸에 습득하게된 사회성이라 생각이 된다.
게다가 어른들의 도움 없이 마을의 여러 행사나 장소들을 스스로 관리하고 사용함으로서
역할에 대한 자신감과 자립심이 풍부해보였다. 결정적인 것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잘 다가가지 않는 민욱이가 이런 자신감 넘치는 아이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갔던 모습에서의
느낌이었는데 이는 분명 그들만의 어떤 기가 작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숙소에서 양손에 짐을 들고 있어 안아달라는 민욱이를 어찌하지 못하고 있을때
이들이 다가와 당연한 듯, 자신있는 듯한 목소리로 '형이 안아줄까?' 하는 소리에 그렇게
스스럼없이 안기는 모습에서 '아, 뭔가 다르구나.'하는 기분은 아마 아내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동네아이들과 '사이'라는 가수의 축하무대가 끝나고 드디어 동네밴드의 공연이 시작된다.
우리를 초대해 준 희지누님을 비롯하여 베이시스트 성광명씨 등이 멤버인 동네밴드는
남녘에서는 이미 유명해진 그룹이다.
성향도 분명해서 한번은 하동군수가 군 행사에 초대를 했다는 데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일단 이 분들에게는 어른들에게서의 기, 그러니까 끼가 느껴진다.
그럴 줄 몰랐던 희지누님의 목소리에서 그런 성량과 기가 느껴질 지는 정말 몰랐던 일이었고,
리더급인 기타리스트의 무대매너는 가히 관중을 압도할 만한 현란함 그 자체였다.
스킬과 끼, 그리고 그만의 활동감있는 감성은 그를 무대앞으로 뛰쳐나오게 하고,
기타와 혼연일체로 몸부림같은 몰입을 하게 만든다.
아.. 이건 단순한 동네의 밴드가 아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함으로써 자신을 완벽에 가깝게 표현하고 발산하는 모습에서
난 내 자신에 대한 괴로움까지 느꼈다.
대체 난 지금까지 무얼 하고 살아온걸까부터 시작하여 난 지금 뭘하는 거지? 라는
자조적인 그러나 이런 기회가 될때마다 반복되는 질문..
이건 단순한 공연에 초대되어 온 것이 아니라 나를 성찰하기 위해 어딘가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 어딘가는 요즈음, 김규항 선생님의 블로그와 지리산, 그중에서도 악양, 이 곳이다.
연주 내내 한 모퉁이에서 조용히 악기 연주를 하시며,
딱 한번 수지큐 연주에 맞추어 이주일 춤을 추셨던 박남준 시인은
마무리 앵콜곡에서 자신의 특기인 하모니카 연주를 선보이셨다.
지리산 한 자락을 감싸는 한 밤의 고즈넉함과 잘 어울렸던 하모니카 연주..
이 분들은 12월 12일 정기공연으로 더 많은 모습을 보여주겠다 약속하셨다.
마무리가 되었다. 뒤풀이가 이제 마지막의 하이라이트인데,
오늘의 숙소이기도 한 매계폐교를 개조하여 만든 청소년 수련원에서 뒤풀이를 한다는 이야기에
나는 민욱이도 있고 해서 미리 내려가 짐을 풀고 기다렸다.
하지만 그들은 내려오지 않았다. 그러면 그렇지.. 문을 연 그 넓은 풍악재 안방을 놔두고,
그 많은 음식들을 어떻게 두고 다른 데서 뒤풀이를 할 것인가..
미리 내려온 우리는 민욱이를 씻기고 재운 뒤,
춥지 않은 밤기운에 베란다로 나가 미리 준비해 온 와인을 조용한 악양의 마을 풍경을 안주삼아 마셨다.
후문에 그들은 새벽까지 먹고 마시고 노래했다 한다.
첫댓글 사람냄새가 물씬 나는군요... 악양...가보고 싶습니다...
우리 희망나무도 산속에 힐링하면서 각자의 재능을 기부할 수 있도록 희망타운을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무언가 희망나무만의 아지트가 필요하니 우리가 힘을 모아야겠습니다.
멋진 아이디어 입니다... 우리는 함께 사는 사회임에 희망을 나누겠습니다..
희망나무가 잘 자라도록 해야겠네요..그래야 이런 밴드도 하나 만들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역할로~...
희망나무밴드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팀웍.. 그리고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부여를 우리 희망나무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