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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백성호
#궁궁통1
불교의 스님들이
출가할 때는
남다른 결단이
필요합니다.
예전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머리 깎고 출가한 스님들은 늘 속가와의 인연을 어떻게 할지가 숙제로 남는다. 백성호 기자
머리 깎고
출가한 뒤에도
부모가 절에 찾아와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고
조르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집에서 먼 곳으로
출가하는 스님들이
꽤 있었습니다.
교통이 그리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집에서 멀수록
찾아오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궁궁통2
세속과 인연을 끊고,
속가와 인연을 끊고
출가자의 삶을 산다지만
고민의 시점이
오기도 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게
부모가 돌아가실
때입니다.
세속을 떠나
산으로 들어간 출가자가
부모의 장례식에는
가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가지 않는 것이 맞을까요.
요즘은
핸드폰과 SNS 등으로
속가의 가족과도
수월하게 연락을 주고받지만
지금 불교 종단의
노장 스님들이 젊었을 적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게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가령
성철 스님은
부모상을 당했을 때
장례식에 가지 않았습니다.
시자를 대신 보내
문상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게 가슴에는
두고두고
큰 아쉬움으로
남았던 걸까요.
아들이 태어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았을 때 싯타르타 왕자는 부인과 갓난 자식을 뒤로하고 카필라성을 떠나 출가했다. 백성호 기자
막상
제자가
부모상을 당했을 때
성철 스님의 조언은
달랐습니다.
#궁궁통3
성철 스님을 시봉한
상좌 원택 스님이
부친상을 당했습니다.
원택 스님은
바깥에 나가 일을 보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성철 스님은
원택 스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곧장 해인사로
돌아오지 말고
아버지의 장례식에
꼭 들렀다가 오라는
당부였습니다.
“내 말 알겠제.
꼭 대구 가거라.
어~잉!”
정작 당신은
부모상에 가지 않았지만
제자에게는
달리 말했습니다.
엄하고 무뚝뚝한
성철 스님이었지만
애제자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성철 스님은 부모상을 당했을 때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다. 대신 상좌에게는 꼭 부모상에 갔다 오라고 했다. 중앙포토
비슷한 사례는
또 있습니다.
조계종단 설립 초기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큰스님도
열반 직전에
그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스님, 여여하십니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하나,
스승의 조언대로
어머니 장례식 때
안 갔던 게
지금도 마음에 남는다.”
그 스님도
스승의 조언에 따라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궁궁통4
출가한 수행자가
부모의 장례식에
가는 것이 정답일까요,
가지 않는 것이
정답일까요.
거기에
답하기 위해선
우선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자식이 부모상을 치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왜 굳이
그걸 하지 말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이미 출가한 사람이
속세의 인연을 못 잊어,
행여 거기에 휘둘릴까 봐
경계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속세의 인연에
휘둘리지 않는 게 목적이지,
부모상에 절대
참석하지 않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럼 답이 나옵니다.
속세의 인연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부모상에 참석하면 됩니다.
금강경의 한 구절처럼
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면 됩니다.
종교에는 늘
본질과 격식의 문제가
있습니다.
종교에는 본질과 격식이 있다. 처음에는 본질만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격식이 중시되는 경향이 있다. 백성호 기자
본질을 지키고자
격식이 생겨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본질을 보는 눈이
흐려지기 쉽습니다.
그럴 때는 어김없이
격식을 본질보다
우선하게 됩니다.
출가한 수행자가
부모의 장례식에 참석해
여여한 마음으로
부모의 마지막을 위로한다면
그보다 더 큰 자비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래서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형식인가.
무엇이 달이고
무엇이 손가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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