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책을 못 읽어서 최근에 쓴 글이라도 대신 올려봅니다. ;;;
교회 편집부에 일과 소명을 주제로 기고한 글을 조금 다듬었어요.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2024년 8월 26일, 용은중)
수년 전 큰아이 초등학교 5학년 참관수업이 있었다. 주제는 장래 희망이었고 아이들은 각자의 미래를 적어 발표했다. 대기업 직원, 공무원, 유튜버, 연예인, 운동선수, 2017년도 아이들의 장래 희망이다. 내가 학생이던 8~90년도에는 과학자도 많았고 대통령도 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사뭇 다르다. 세상이 그만큼 많이 변했다는 이야기. 뒤에서 참관하던 부모들은 대기업 직원이라는 답이 여러 차례 나올 때마다 예상했다는 듯 웃었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의 답을 모두 들은 후,
“그 직업이 되어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거예요?”
꽤 현실적인 아이들의 답이 불편했던 반가웠다. 선생님의 질문은 그 직업을 가지고 싶은 이유를 묻는 말보다 한발 앞선 것으로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현문이다. 아이들의 답이 기대되었다. 어땠을까? 가물가물한 기억이지만, 돈을 벌어 건물주가 되겠다는 답이 여럿 있었다. 한 명이 그렇게 답을 하니 다른 아이들도 따라서 한 듯하다. 그 답에도 부모들은 웃었다. 돌잡이 할 때 돈을 잡는 것을 볼 때와 닮은 듯하면서도 머쓱한 웃음이었다. 그럴 만도 하다. 어디 세상 사는 게 쉬운가?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삶에서 이미 배운 게다. 철학은 그 시대의 아들이라고 한 헤겔의 말과, 사람은 시대를 닮는다는 신영복 선생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후 내가 활동하고 있는 도서관에서 만났던 근로장학생과 자원봉사 대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꽤 능동적으로 보이는 학생도 지금의 전공은 성적에 맞춰 진학했을 뿐, 졸업할 때 되니 이 길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며 힘들어했다. 재작년 만난 또 다른 청년들은 그렇게 방황하는 대학생, 청년을 대상으로 자신을 알아가고, 공부를 하며 진로를 찾아가는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요즘 대학생, 청년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정도로 고민이 많다는 방증이다. 청년들만 그러할까?
나는 살아오면서 직업에 대해 질문을 해 본 적이 있던가? IMF즈음 대학을 졸업한 나는 형편상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야 했기에 직업을 선택할 겨를 따위는 없었다. 이후에도 흘러가는 대로 살았을 뿐이다. 나이가 들면 좀 안정되어 진로와 관련된 고민은 없을 줄 알았는데 40대 중반을 넘긴 지금도 진로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다. 나는 현재 도서관을 기반으로 한 비영리법인의 이사장이다. 뿌듯하고, 의미 있는 일이지만 급여가 있는 직장은 아니라서 요즘처럼 살기가 팍팍할 때는 잡코리아를 들락거리며 흔들린다. 그럴 때마다 취업의 문턱에서 경력 단절 여성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을 뿐이다. 사업을 하거나 직장에 다니고 있더라도 이 길이 맞다고 확신하며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일의 의미보다 얼마나 안정적이고 경제적인가가 직업에 대해 확신하는 조건이 아닐까 한다. 우리도 시대를 닮았다.
하지만, 시대를 따르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에 교회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함께 수강하신 분 중, 기존의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시민사회 영역으로, 사회적경제 영역으로 뛰어든 분들이 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야만적인 경쟁 교육을 멈추기 위해 교육 시민단체에서 헌신하며 일하시는 분, 장애인도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여행을 만드는 사회적기업을 운영하시는 분이 있다. 그분들이라고 고민이 없었겠냐만, 그야말로 소명으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7년 전 5학년 교실에서 장래 희망을 이야기하던 우리 집 큰아이는 올해 수능을 앞두고 있다. 이제는 자율전공이 확대돼 전만큼 세세하게 과를 고민하지 않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실질적으로 고민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아이와 진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부모보다 더 현실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일에 대해 고민했다. 어떤 산업이 유망하고, 어떤 직업이 안정적일 것인가가 진로에 중요한 요소였다. 주변의 동년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비슷했다.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나중에 하면 된다고 한다. 철든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사람에 자신을 맞춰가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다.
“이젠 한 가지 일만 하는 세상이 아니니, 어떤 게 되었든 배우는 방법 자체를 익혔으면 좋겠어. 넌 마음먹은 바를 실천하는 장점이 있으니, 좋은 뜻을 가지는 게 중요할 것 같아. 그러니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자.”
아이에게 늘 하는 말이었지만, 나 자신에게도 해당한다. 나는 흘러가는 대로 살아 그런 고민을 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녀들은 좀 더 그 길을 일찍 찾길 바란다. 전에 아이들이 커서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냐고 질문했을 때 어디에 있던 너의 소명을 따라 살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소명이 있다면 직접적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이 될 수도 있고, 가르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지금의 도서관 활동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단, 시대를 닮지 않고, 시대의 아들이 되지 말며 내 안의 소망을 따라 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첫댓글 바쁜 와중에 이렇게 글 올려주셔서 반가웠어요. 샘 글 읽으면서 저의 과거도 스쳐지나가네요. 아무 생각없이 대학 가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고 그래도 나쁘지 않은데 아이들은 좀 더 일찍 치열하게 준비하길 바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단, 시대를 닮지 않고, 시대의 아들이 되지 말며 내 안의 소망을 따라 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선생님은 바랄 뿐이라고 소박한 듯 말하셨지만 어려운 거 아니에요?? 시대를 거스르는 소수자로 살기는 쉽지 않은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