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영호남 접경 섬진강변의 전남 광양시 다압면 신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주택서민들을 위한 사랑의집짓기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은 자신들이 짓는 것은 집이 아니라 사랑과 평화라고 말했다.
뙤약볕 속에서 1400여명의 국내외 자원봉사자들이 검게 그을린 얼굴로 땀을 쏟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의사들의 폐업 움직임,정치의 파행 등 도처에서 개인과 집단의 밥그릇을 움켜쥐기 위한 목소리들만이 높아가는 가운데 자원봉사자들은 오로지 남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헌신하고 있었다.
작업장에는 한국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미국 일본 중국 필리핀 등 10개국에서 150여명의 외국인들이 신원리에 모였다.돈이 생기는 일이 아니었다.오히려 남을 위해 많은 돈과 땀을 쏟아야 했다.그러나 그들은 함께하는 멋진 삶을 실천하기 위해 신원리에 왔다.서로가 말은 제대로 통하지 않았으나 가슴깊이 흐르는 사랑과봉사,헌신의 마음으로 하나가 됐다.신원리의 해비타트 공사현장은 바로 사랑의 실천장이었다.
말복인 10일 공사현장은 한증막과 같이 무더웠다.모두가 땀을 비오듯 흘렸으며 의무실은 탈진한 여학생들로 붐볐다.그러나 누구 한사람 짜증내는 사람들이 없었다.모두가 환한 얼굴로 서로를 격려하며 집짓기에 열중이었다.평소 집에서는 못하나 박아보지 못했던 여학생들도 헬멧을 쓰고 망치를 내려치고 있었다.이구동성으로 “남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한국사랑의집짓기운동연합회가 6∼12일 실시하는 이번 행사의 명칭은 ‘평화를 여는 마을’이다.공사장은 전라도지만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경상도 하동이 지척이다.반목을 거듭하던 영호남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이번 행사는 기획됐다.2채의 마을회관을 제외한 32채의 집에는 각 16가정씩의 영남과 호남 출신의 무주택서민들이 입주한다.이들은 영호남 화해의 상징으로 함께 평화를 일구며 살게 된다.입주자들의 자녀들은 벌써부터 “광양댁”“하동댁”하면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그들에게는 영호남의 울타리가 없었다.
‘5일,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는 플래카드를 뒤로한 작업장에는 삼성물산 현대투신 카길사 정림건축 온누리교회 홍익대 호서대 등 각 단체의 자원봉사자들이 내건 슬로건들이 보였다.이번 행사를 위해 건축대지 값과 3채분의 금액을 지원한 주택은행에서는 20명의 직원을 현장에 파견했다.주택은행 여의도본점의 HR팀장인 정돈기씨(45)는 “일을 하면서 애사심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면서 “앞으로 무주택서민들을 위한 지원을 강화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작업현장에는 앳된 얼굴의 고등학생들도 보였다.미국 오하이호주의 웨스턴 리저브 고등학교에 다니는 정재훈씨(19)는 “방학에 집에 왔다 해비타트 자원봉사에 참여하게 됐다”면서 “남을 위해 사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말했다.일본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는 일본인 후루카와 아키코씨(19)는 “처음으로 방문한 한국에서 봉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한다”고 언급했다.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절친한 친구로 애틀랜타의 해비타트 본부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로이드 트로이어씨는 “해비타트의 정신은 말로만 사랑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망치를 들고 이웃을 위해 땀을 흘리는 것”이라며 “한국에서도 충분히 해비타트가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온누리교회의 헌금으로 지어지는 집에서 연신 땀을 흘리며 못을 박고 있던 김항기씨(37)와 이소영씨(32) 부부는 신원리 주민으로 바로 이 집에 입주하게 된다.집한채 장만하지 못해 애태우던 김씨 부부는 해비타트를 통해 내집이 생기는 기적을 체험했다.이들은 산과 강을 끼고 지어지는 16평의 집이 고급 전원주택 같다며 기뻐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이들은 입주자 선정당시 대문앞에 “평화를 여는 마을에 우리집 주심을 믿고 감사드립니다”고 써놓기도 했다.“너무나 감사하지요.어떻게 사랑의 빚을 갚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동안 감격에 겨워 수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이소영씨의 눈가에 또한번 물기가 고였다.
6일 개막 이후 많은 사람들이 공사현장을 찾았다.11일 방문한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를 비롯,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민주당 서영훈 대표,허경만 전남지사,김혁규 경남지사 등 헤아릴 수 없다.방문한 정치인들은 모두 1,2시간씩 작업을 했다.여의도에서 정쟁만을 일삼던 그들이 신원리의 민생현장에서 얼마나 사랑을 체험했는지 궁금하다.이들외에 인근 교회 성도들은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봉사했고 전국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격려차 방문했다.
11일 오후,작업은 모두 끝났다.32채의 집에서는 각각 입주식이 열렸다.자원봉사자들은 입주자들에게 집 열쇠와 성경책을 전달했다.입주식을 마치고 서로 끌어안은 그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려내렸다.이들은 일주일간의 작업내내 한번도 복음을 말하지 않았다.그러나 성경을 받는 순간 모두가 알았다.“바로 해비타트의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정신”임을….
11일 저녁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신원리에서 특별한 행사가 벌어졌다.각 집에 전기가 통하고 물이 제대로 나오는지를 확인하는 행사였다.“각 집에 전기가 통합니까?” 방마다 불이 들어오면서 주위가 환해졌다.물이 콸콸 흘러내렸다.가수 윤형주 장로의 인도로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모두가 “해비타트!”를 외치자 마지막 집의 불이 점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