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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김 유 정
금점이란 헐없이 똑 난장판이다.
감독의 눈은 일상 올빼미 눈같이 둥글린다. 훅하면 금 도적을 맞는 까닭이다. 하긴 그래도 곧잘 도적을 맞긴 하련만―
대거리를 꺾으러¹ 광부들은 하루에 세 때로 몰려든다. 그들은 늘 하는 버릇으로 굴문 앞까지 와서는 발을 멈춘다. 잠자코 옷을 훌홀 벗는다.
그러면 굿문을 지키는 감독은 그 앞에서 이윽히 노려보다가 이 광산 전용의 굴복²을 한 벌 던져준다. 그놈을 받아 꿰고는 비로소 굴 안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탈을 바꿔 쓰고야 저 땅속 백여 척이 넘는 굴속으로 기어드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대거리³는 굴문께로 기어나와서 굴복을 벗는다. 벌거숭이 알몸뚱이로 다리짓 팔짓을 하여 몸을 털어 보인다. 그리고 제 옷을 받아 입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여름이나 봄철이면 혹 모른다. 동지섣달 날카로운 된바람⁴이 악을 쓰게 되면 가관이다. 발가벗고 서서 소름이 쪽 끼치어 떨고 있는 그 모양 여기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최서방이라는 한 노인이 있는데, 한 육십쯤 뒤었을까 허리가 구붓하고 들피진⁵ 얼굴에 좀 병신스러운 촌뜨기가 하루는 굴복을 벗고 몸을 검사시키는데 유달리 몹시 떤다. 뼈에 말라붙은 가죽에 또 소름이 돋는지
하여튼 무던히 추웠던 게라. 몸이 반쪽이 되어 떨고 섰더니 고만 오줌을 쪼룩 하고 지렸다. 이놈이 힘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좀만 뻗혔다면 앞에 섰는 감독의 바지를 적실 뻔했다. 감독은 방한화의 오줌 방울을 땅바닥에 탁탁 털며 “이놈이가!” 하고 좀 노해보려 했으되 먼저 그 꼬락서니가 웃지 않을 수 없다.
“늙은놈이도 오줌이 싸 이눔아?”
그리고 손에 쥐었던 지팡이로 거길 톡 친다.
최서방은 언 살이라 좀 아픈 모양.
“아야” 하고 소리를 치다가 시나브로 무안하여 허리를 구부린다. 이것을 보고 곁에 몰려섰던 광부들은 우아아, 하고 뭇웃음이 한꺼번에 터져오른다.
이렇게 엄중히 잡도리⁶를 하건만 그래도 용케는 먹어들 가는 것이다. 어떤 놈은 상투 속에다 금을 끼고 나온다. 혹은 다비⁷ 속에다 껴 신고 나오기도 한다. 이건 예전 말이다. 지금은 간수들의 지혜도 훨씬 슬기롭다. 이러다가는 단박 들키어 내떨리기밖에 더는 수 없다. 하니까 광부들의 꾀 역시 나날이 때를 벗는다. 사실이지 그들은 구덩이 내로 들어만 서면 이 궁리 빼고 다른 생각은 조금도 없다. 어떻게 하면 이놈의 금을 좀 먹어다 놓고 다리를 뻗고 계집을 데리고 이래 지내볼는지. 하필 광주만 먹이어 살 올릴 게 아니니까. 거기에는 제일 안전한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덮어놓고 꿀떡, 삼키고 나가는 것이다. 제아무리 귀신인들 뱃속에 든 금이야. 허나 사람의 창주란 쇳바닥이 아니니 금떡을 보기 전에 꿰져버리면 남 보기에 효상⁸만 사납다. 왜냐하면 사금이면 모르나 석혈금이란 유리쪽 같은 차돌에 박혔기 때문에. 에라 입 속에 감춰라. 귓속에 묻어라. 빌어먹을 거 사타구니에 끼고 나가면 누가 뭐랄 텐가. 심지어 덕희는 항문이에다 금을 박고 나오다 고만 뽕이 났다. 감독은 낯을 이그리며 금을 삐집어놓고
“이 자식이가 금이 또 구모기로 먹어?” 하고 알볼기짝을 발길로 보기 좋게 갈기니 쩔꺽 그러고 내떨렸다.
이렇게 되고 보면 감독의 책임도 수월치 않다. 도적을 지켜야 제 윌급도 오르긴 하지만 일변 생각하면 성가신 노릇. 몇 두 달씩 안 빤 옷을 벗길 적마다 부연 먼지는 오른다. 게다 목욕을 언제나 했는지 때가 누덕누덕한 몸뚱이를 뒤져보려면 구역이 곧바로 올라오련다. 광부들이란 항상 돼지 같은 몸뚱이이므로――
봄이 돌아와 향기로운 바람이 흘러내려도 그는 아무 재미를 모른다. 맞은쪽 험한 산골에 어지러이 흩어진 동백, 개나리, 철쭉들도 그의 흥미를 끌기에 힘 이 어렸다. 사람이란 기계와 다르다. 단 한 가지 단조로운 일에 시달리고 나면 종말에는 고만 지치고 마는 것이다. 그 일뿐 아니라 세상 사물에 권태를 느끼는 것이 항용⁹이다. 그런 중 피로한 몸에다 점심 벤또¹⁰를 한 그릇 집어넣고 보면 몸이 더욱 나른하다. 그때는 황금 아니라 온 천하를 떼어온대도 그리 반갑지 않다. 굴문을 지키던 감독은 교의¹¹에 몸을 의지하고 두 팔을 벌리어 기지개를 늘인다. 우음 하고 다시 권연을 피운다. 그의 눈에는 어젯밤 끼고 늘던 주막거리의 계집애 그 젖꼭지밖에는 더 띄지 않는다. 워낙 졸린 몸이라 그것도 어렴폿이――
요 아래 산중턱에서 발동기는 채신이 없이 풍, 풍, 풍, 연해 소리를 낸다. 뭇 사내가 그리로 드나든다. 허리를 구붓하고 끙, 끙, 매는 것이 아마 감석을 나르는 모양. 그 밑으로 골물은 돌에 부대끼며 콸콸 내려흐른다.
한 점 이십 분. 굴파수¹²가 점심을 마악 치르고 고담이다. 고달픈 눈을 게슴츠레 끔벅 이며 앉았노라니 뜻밖에 굴문께로 광부의 대강이가 하나 불쑥 나타난다. 대거리 때¹³도 아니요, 또 시방쯤 나올 필요도 없건만. 좀더 눈을 의아히 뜬 것은 등어리에 척 늘어진 반송장을 업었다. 혜, 헤, 또 죽어했어? 그는 골피를 찌푸리며 입맛을 다신다. 허나 금점에 사람 죽는 것은 도수장¹⁴ 소 죽음에 진배없이 예사다. 그건 먹다도 죽고 꽁무니를 까고도 죽고 혹은 곡괭이를 든 채로 죽고 하니까. 놀람보다도 성가신 생각이 먼저 앞선다. 이걸 또 어떻게 치나. 감독 불충분의 덤터기¹⁵로 그 누를 입어 떨리지나 않을는지.
감독은 교의에서 엉거주춤 일어서며
“왜 그랬어?”
“버력에 치치 치었습니다.”
광부는 헝겁스리¹⁶ 눈을 희번덕이며 이렇게 말이 꿈는다.¹⁷ 걸때¹⁸가 커다랗고 걱세게 생겼으나 까맣게 치올려 보이는 사다리를 더구나 부상자를 업고 기어오르는 동안 있는 기운이 모조리 지친 모양. 식식! 그리고 검붉은 이마에 땀이 쭉 흐른다. 죽어가는 동관¹⁹을 구하고자 일초를 시새워 들렌다.²⁰
“이걸 어떻게 살려야지유?”
감독은 대답 대신 다시 낮을 찌푸린다. 등에 엎어진 광부의 바른편 발을 노려보면서 굴복 등거리로 복사뼈까지 얼러 들써매곤 굵은 사내끼²¹로 칭칭 감았는데 피, 피, 싸맨 굴복 위로 징그러운 선혈이 풍풍 그저 스며오른다. 그뿐 아니라 피는 땅에까지 뚝뚝 떨어지며 보는 사람의 가슴에 못을 치는 듯. 물론 그자는 까무러쳐서 웃통을 벗은 채 남의 등에 걸치어 꼼짝 못한다. 고개는 시든 파잎같이 앞으로 툭 떨어지고ㅡ
“이걸 어떻게 얼른 해야지유?”
이를 말인가. 곧 서둘러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으스러진 발목을 잘라내든지 해야 일이 쉽겠다. 허나 이걸 데리고 누가 사무실로 병원으로 왔다 갔다 성가신 노릇을 하랴. 염량²² 있는 사람은 군일에 손을 안 댄다. 게다 다행히 딴놈이 가로맡아 조급히 서두르므로 아따 네 멋대로 그 기세를 바짝 치우치며
“암! 얼른 데리구 가. 약기 바라야지.”²³
가장 급한 듯 저도 허풍을 피운다.
이 영이 떨어지자 광부는 날듯이 점벙거리며 굴막을 나온다. 동관의 생명이 몹시 위급한 듯, 물방앗간을 향하여 구르다시피 산비탈을 내려올 제
“이봐, 참 그 사람이 이름이 뭐?”
“북 삼호 구덩이에서 저와 같이 일하는 이덕순입니다.” 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다시 발길을 돌리어 삥 내뺀다.
감독은 이 꼴을 멀리 ˙바라보며
“이덕순이, 이덕순이.” 하다가 곧 늘어지게 하품을 으아함, 하고 내뽑는다.
시골의 봄은 바쁘다. 농군들은 들로 산으로 일을 나갔고 마을에는 양지 쪽에 자빠진 워리²⁴의 기지개뿐. 아이들은 둑 밑 잔디로 기어다니며 조그마한 바구니에 주워담는다. 달룽, 소로쟁이, 게다가 우렁이 ―
산모롱이를 돌아 내릴 제
“누가 따라오지나 않나?”
덕순이는 초조로운 어조로 묻는다. 그러나 죽은 듯이 고개는 그냥 떨어진 채 사리는 음성으로
“아니, 이젠 염려 없네.”
아주 자신 있는 쾌활한 대답이다. 조금 사이를 띄어 가만히
“혹 빠지나 보게, 또 십 년 공부 아미타불 만들어.”
“음 맸으니까 설마―”
하고 덕순이는 대답은 하나 말끝이 밍밍히 식는다. 기운이 푹 꺼진 걸 보면 아마 되우 괴로운 모양 같다. 좀전에는 내 함세 그까짓 거 좀, 하고 희망에 불 일던 덕순이다. 그 순간의 덕순이와는 아주 팔팔결.²⁵ 몹시 아프면 기운도 죽나 보다.
덕순이는 저의 집 가까이 음을 알자 비로소 고개를 조금 들었다. 쓰러져가는 납작한 낡은 초가집, 고자리 쑤시듯²⁶ 풍풍 뚫어진 방문, 저 방에서 두 자식을 데리고 계집을 데리고 고생만 무진히 하였다. 이제는 게다 다리까지 못쓰고 드러누웠으려니! 아내와 밤낮 겯고틀고²⁷ 이렇게 복대기를 또 쳐야²⁸ 되려니! 아아! 그러고 보니 등줄기에 소름이 날카롭게 지난다. 제 손으로 돌을 들어 눈을 감고 발을 내려찧는다. 깜짝 놀란다. 발은 깨지며 으츠러진다. 피가 퍼진다. 아,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그러나 그러나 단돈 천 원은 그 얼만가!
“아, 이거 왜 이랬수?”
아내는 자지러지게 놀라며 뛰어나온다. 남편은 뻔히 쳐다볼 뿐, 무대답. 허나 그 속은 묻지 않아도 훤한 일이었다. 요즘 며칠 동안을 끙끙거리던 그 계획, 그리고 이러이러할 수밖에 없을 텐데 하고 잔뜩 장은 댔으나 그래도 차마 못하고 차일피일 멈춰오던 그 계획. 그예 기어코 이 꼴을 만들어 오는구!
아내는 행주치마에 손을 닦고 허둥지둥 남편을 부축하여 방으로 끌어들인다.
“끙!”
남편은 방벽에 가 비스듬히 기대어 앉으며 이렇게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다친 다리를 제 앞으로 조심히 끌어당긴다. 이마에 살음 조여가며 제 손으로 풀기 시작한다.
굵은 사내끼는 풀어젖혔다. 그리고 피에 젖은 굴복 등거리를 조심히 풀어보니 어느 게 살인지 어느 게 뼈인지 분간키 곤란이다. 다만 흐느적흐느적하는 양이 아마 돌이 내려칠 제 그 모에 밀리고 으츠러지기에 그렇게 되었으리라. 선지 같은 고깃덩이가 여기에 하나 붙고 혹은 저기에 하나 붙고, 발가락께는 그 형체조차 잃었을 만치 아주 무질러지고 말이 아니다. 아직도 철철 피는 흐른다. 이렇게까지는 안 되었을 텐데! 그는 보기만 하여도 너무 끔찍하여 몸이 졸아들 노릇이다.
그러나 그는 우선 피에 흥건한 굴복을 집어들고 털어본다. 역시 피가 찌르르 묻은 손뼉만 한 돌이 떨어진다. 그놈을 집어들고 이리루 저리로 뒤져본다. 어두운 굴속이라 간드레 불빛²⁹에 혹여 잘못 보았을지도 모른다. 아내에게 물을 떠오라 하여 거기다가 흔들어 피를 씻어보니 과연 노다지. 금 황금. 이래도 천 원짜리는 되겠지!
동무는 이 광경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섰다가
“인내게. 내 가주가 팔아옴세.”
“……”
덕순이는 잠자코 그 얼굴을 유심히 쳐다본다. 돌은 손에 잔뜩 우려쥐고. 아니 더욱 힘 있게 손을 조인다. 마는 동무가 조금도 서슴지 않고
“금으로 잡아 파나, 그대로 감석채 파나 마찬가지 되리, 얼른 팔아서 돈이 있어야 자네도 약도 사고 할 게 아닌가. 같이 하고 설마 도망이야 안 가겠지.” 하니까
“팔아오게.”
그제서 마음을 놨는지 감³⁰을 내어준다.
동무는 그걸 받아들고 방문을 나오며 후회가 몹시 난다. 제가 발을 깨지고, 피를 내고 그리고 감석을 지니고 나왔다면 둘을 먹을걸. 발견은 제가 하였건만 덕순이에게 둘을 주고 원주인이 하나만 먹다니. 그때는 왜 이런 용기가 안났던가. 이제 와 생각하면 분하고 절통하기 짝이 없다. 그는 허둥거리며 땅바닥에다 거칠게 침을 퉤, 뱉고 또 퉤, 뱉고 싸리문을 돌아나간다.
이 꼴을 맥풀린 시선으로 멀거니 내다본다. 덕순이는 낯을 흐린다. 하는 양을 보니 암만해두, 암만해도 혼자 먹고 달아날 장번인³¹인 듯. 하지만 설마.
살기 위하여 먹는 걸, 먹기 위하여 몸을 버리고 그리고 또 목숨까지 버린다. 그걸 그는 알았는지 혹은 모르는지 아픔에 못 이기어
“아이구” 하고 스러지는 듯 길게 한숨을 뽑더니
“가지고 달아나진 않겠지?”
아내는 아무 말도 대답치 않는다. 고개를 수그린 채 보기 흉악한 그 발을 뚫어지게 쏘아만 볼 뿐. 그러나 가무잡잡한 야윈 얼굴에 불현듯 맑은 눈물이 솟아내린다. 망할 것두 다 많아. 제 발을 이래까지 하면서 돈을 벌어 오라진 않았건만. 대관절 인제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지!
얼마 후 이마를 들자 목성을 돋우며
“아프지 않어?” 하고 뾰로지게³² 쏘아박는다.
“아프긴 뭐 아퍼, 인제 낫겠지.”
바로 희떱게스리 허울 좋은 대답이다. 마는 그래도 아픔은 참을 기력이 부치는 모양. 조금 있더니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지며
“아이구!”
참혹한 비명이다.
-끝-
2016년 6월 3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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