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그 역사의 향기에 빠지다
2017. 2. 24(금)
경주 남산 자락에 우뚝 앉아계신 그 돌부처님,
새봄도 발길 돌릴 이 시린 날씨에 어떻게 계실까?
몸은 어느새 경주행 고속버스를 타고...
경주 터미널에 내리니 바람이 몹시도 찹니다.
비니(beanie)까지 눌러 쓰고 500번 버스,
11:05 남산 용장골 들머리(내남면 용장1리 마을 입구)
11:15 마을길 지나 용장사지 등산로,
천우사 가는 콘크리트길도 있는데
소나무 오솔길로...
참 친절한 경주국립공원입니다.
'머리 조심...'
햇살이 퍼지는지 버들개지는 기지개를,
개울은 바위 그늘,
소나무 그늘을 비켜 돌아 흐릅니다.
표지판에 컬러(color)가 더해졌습니다.
흰색은 등산 길잡이,
노란색은 문화유적 길잡이랍니다.
이 골짜기가 신라천년 노천 박물관이라는
경주 남산 용장골이지요
노천박물관은 지금도 지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바위틈에 돌 하나씩 얹고 또 쌓으면서...
11:45 설잠교(雪岑橋)
이 용장골에서 매월당 이야기를 아니할 수 없지요,
다리 이름을 김시습의 법호인 '설잠'으로 해서
매월당(1435~1493)을 기리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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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대가 보이니 용장사 터가 가까워지는 가 봅니다.
용장골 골 깊으니
오는 사람 볼 수 없네
가는 비에 신우대는 여기저기 피어나고
비낀 바람은 들매화를 곱게 흔드네
작은 창가엔 사슴 함께 잠들었어라
낡은 의자엔 먼지만 재처럼 쌓였는데
깰 줄을 모르는구나 억새 처마 밑에서
들에는 꽃들이 지고 또 피는데
매월당
이 꽃샘추위 물러가면 매월당이 노래했던
그때 그 들꽃들, 또 지고 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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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용장사터(茸長寺址)
등산로 왼쪽으로, 바람도 자고 무척 아늑합니다.
이곳에서 茸長寺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와와
신라, 조선시대의 유물이 춭토되어
천년전부터 이어져 내려 온 용장사 터임을
알게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멧돼지가 묘지를
마구 뒤 헤집었는지...
여기 저기 흩어진 큼직큼직한 석축으로
용장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듯...
무성할 茸에 길 長, 이름까지 용장사였는데
천년 세월에 잡풀만 이렇게 무성하니...
그 세월이 참 무정하고 또 무섭습니다.
김시습의 '금오산실'이 여기 어디쯤이 아닐까요?
세조의 단종 폐위(1455) 소식을 접한
스물한살의 김시습은 통곡하며 읽던 책을 불 살랐습니다.
그리고서는 전국 명산대찰 방랑길에 나섰다가 스물아홉에
이 곳에 들러 지었다는 금오산실,
그기서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쓰고
속세 떠난 산승(山僧)으로
단종에 대한 절개를 지키면서
북향화(北向花, 백목련)를 심었던 곳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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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 용장사터 되돌아 나와 또 다른 용장사지,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 확 트였습니다.
저기 고위산 자락이 ~~
용장사는 신라 경덕왕(재위 745~765) 때의
고승 대현 스님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조선시대 생육신의 한사람인 김시습이 머물면서
금오신화를 썼다고 하니
조선 중기까지는 절이 있었을 터인데
지금은 절터 축대와 기와 조각들만이...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87호)
이 부처님은 지난 1300년 동안
삼륜대좌 위 높이 앉아 경주를 지켜보셨을텐데
어떻게 머리를 잃고서 지금도...
부처님은 가슴으로 지켜 보시겠지요?
부처님은 가슴으로 지켜보실 저 경주의 산과 들판을
이 갈바람, 한없이 바라다만 봅니다.
아! 부처님 뒷태에 그만 울컥,
어쩌다 이렇게 되셨나요?
지금 돌고 있는 저 CC TV가 진작에 나왔더라면
부처님은 무사하실 수 있었겠지요...
남산 용상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
머리 잃은 부처님 바로 옆 바위벽에
또 한분의 부처님이 계십니다.
머리 잃은 부처님, 바위 벽 부처님이 있어
큰 아픔 나눌 수 있었겠습니다.
이제는 CC TV 와 우리가 지켜 드릴테니
더 이상 잃지말고 이 모습 그대로
다시 천년 영원하시기를...
부처님 두분을 뒤로 하고 계단길 올라
12:20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보물 제186호)
파아란 하늘에 맞닿은 듯 이렇게 높은 탑을 보셨나요?
경주의 저 산과 들,
용장사의 법당터가 모두 아래로 보입니다.
멀리 고속도로 차안에서도 바라다 보이는 탑입니다.
자연 암석을 다듬어 아랫기단으로 삼고
산 전체를 다시 또 그 아래 기단으로 삼았으니
3층이지만 멀리서도 우뚝할 수 밖에 없겠지요,
1300년전 조상님들의 지혜가 돋보입니다.
12:25 이제 금오봉까지는 0.9m,
바위를 두부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을 법한데...
매월당이 여기 올랐다면 벌렁 누워
저 파란 하늘을 올려다 봤겠지요?
12:45 넓찍한 길로 나왔습니다.
편안합니다.
12:55 금오산(468m)
삼릉 주차장 방향으로 길을 잡으니
형산강에 들판이 시원하게 들어옵니다.
능선 숲길에서는 바람인지 파도인지
쉼없이 쏴아 ~~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유형문화제 158호)
멀리서도 부처님은
눈썹으로 먼저 웃어 주십니다.
천년의 그 미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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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0 상사바위
말로만 듣던 경주 지진, 여기서 실감합니다.
오른쪽으로는 위험해서...
동행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 싶은 곳,
양지 바른 상사바위 아래서 쉬었다 갑니다.
언젠가 여기를 다녀가서 쓴 구절이 떠오릅니다.
'갈바람, 지독한 사랑에 한번 빠져보고도 싶습니다.
상사병 쯤은 여기와서 빌면 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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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암 마애석가여래좌상 내려가는 길은 위험해서
2017년말까지지 출입금지로 우회,
대신 남산은 천년 고도 경주를
더 가까이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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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 돌계단길 내려와 13:45,
상선암이 내려다 보입니다.
13:50 상선암
소박한 법당엔 부처님만...
상선암 내려오는 길에 안내표지,
석조약사여래좌상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고...
14:00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몇년전,
이 부처님 역시 머리 부분이 없었어도
존재감은 지금 보다 더 한것 같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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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지나치곤 했는데 이제 표지판을 통해서
삼릉곡 제6사지 석탑 터였다는 걸 알고
이 곳에 있었던 석탑을 한번 가늠해 봅니다.
14:05 삼릉계곡 선각육존불(경북 유형문화제 제21호)
이제 희미해진 바위 선각을 그림으로,
QR 코드로 설명합니다.
정보화된 국립공원이 여기...
바위 선각불상을 보호하기 위하여 배수로와
법당을 세원던 흔적들이 보입니다.
불교 용어는 잘 모르지만 앞쪽이 아마타삼존,
안쪽은 석가삼존이라고...
14:25 삼릉곡 제2사지 석조여래좌상
계곡에 묻혀있다가 1964년에 발견되어 마멸이 없다고,
그런데 부처님 머리는 왜 이렇게 되었나요?
너무 사실적이라 가슴이 더 ...
14:30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경북 유형문회제 제19호)
잘 한번 보세요 부처님 입술을,
설명에 나온데로 주칠(朱漆)을 했던 붉은 색이 돕니다.
립스틱의 기원은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라는데
우리나라의 립스틱 원조는 혹시 이 부처님 아닐까요?
부처님 앞 소나무, 그러하다고 허리 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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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0 삼릉곡 제1사지 탑재와 불상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것들을 모아 놓았다고...
모두가 온전했을때의 경주 남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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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느다란 소나무 길이 이어집니다.
가운데 있어도 길은 비켜 걷습니다.
14:41 게이트를 지나고서는
소나무들은 춤을 춥니다.
기대어 볼도 부빕니다.
여기쯤엔 일행이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소나무 사이로 삼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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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0 경주 배동 삼릉(사적 제219호)
산 아래 쪽부터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무덤이라 전해지고 있답니다.
그런데 신라 초 8대 아달라왕(재위 154~184)과
통일신라의 53대 신덕왕(912~917),
54대 경명왕(917~924)은
무려 700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어
삼릉이 이들 세 왕의 무덤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그렇겠지요?
그 사실을 입증할 문헌 같은 게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저 늙은 소나무들도 그때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기 전일테니까요
14:50 경주 경애왕릉(사적 제222호)
신라 55대 경애왕(재위 924∼927)의 무덤으로,
경명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는데
재위 4년이 되던 해에 포석정에서 잔치를 열고 있을 때,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서
비참한 최후를 마친 왕이라고 전합니다.
경애왕의 이종사촌 동생인 경순왕이 왕위에 올라
경애왕의 시신을 수습해 남산 해목령(蟹目嶺)에
매장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의 사적 제222호 경애왕릉과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해목령 가까이 있는 사적 제173호의 경주 일성왕릉(逸聖王陵)을
경애왕의 왕릉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고...
경주 남산은 신라 천년 부침(浮沈)의 역사를 보둠어 왔는데
그 산은 이제 저 소나무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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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0 경주 남산 맛집 할매비빕밥집에서
저 남산 자락 골짜기 마다에 스민 우리 조상님들의
이야기들 함께 비빔합니다.
상선암 마애석가여래좌상의 천년 미소,
포석정에서 흘렸을 경애왕의 눈물에
매월당의 북향화 향기까지...
감사합니다.
2017. 2. 25
갈바람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