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가의 독서법] 글쓰기, 불안, 시대정신
조엔 디디온(Joan Didion)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Slouching Toward Bethlehem)>(1968)
<화이트 앨범(The White Album)>(1979)
조엔 디디온이 1968년 출간한 에세이 모음집인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는 예이츠의 유명한 시 <재림>에서 제목을 따왔다. 이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모든 것이 무너져 중심을 지탱할 수 없다.
무질서만이 세상에 풀려 있다.
디디온은 이 구절이 “마치 외과수술로 이식한 듯이 내면의 귀에 울렸다”고 썼다. 그것은 디디온이 “알던” 세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고, 혼란과 무작위성(디디온은 이를 “주사위 이론”이라 불렀다)이 지배한다고 디디온의 감각에 일러주었다.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와 1979년 출간한 <화이트 앨범>(이 제목은 비틀스의 앨범에서 따왔다)에 실린 디디온의 글은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에 널리 퍼진 광란을 순간순간 포착해 잊을 수 없이 그려낸다. 히피족들이 샌프란시스코 헤이트 애시베리로 이주한 일부터 맨슨의 끔찍한 살인(사이비 종교 집단인 맨슨 패밀리를 이끌던 찰스 맨슨은 1969년 일당과 함께 영화 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집을 습격해 그의 아내이자 유명 영화배우인 샤론 테이트를 포함해 다섯 명을 난도질해 죽였다), 그리고 이런 불안한 시기에 디디온 자신이 느꼈던 두려움과 정서적 현기증까지.
“사회계약과 사회는 개선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원칙에 품었던 작은 믿음을 어느새 잃어버린 여자가 여기 있다.” 디디온은 <화이트 앨범>에서 이렇게 썼다. 디디온은 자신이 “악몽 같은 일, 그러니까 슈퍼마켓 주차장의 문이 잠긴 차 안에서 불타는 아이들”, 고속도로의 저격수, 사기꾼, 정신이상자, “길 잃은 아이들, 밤에 소란을 피우는 온갖 무지막지한 무리들”에 대해서만 정신이 기민한 “몽유병자”가 된 것 같다고 느꼈다.
수십 년 후 디디온이 가장 두려워하던 “이루 말할 수 없는 일상의 위기”가 현실이 되었다. 거의 40년 동안 함께한 남편 존 그레고리 던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외동딸 퀸타나가 몇 개월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후 2년도 채 안 돼 사망한 것이다. 디디온은 이 애끓는 상실을 <상실(The Your of Magical Thinking)>과 <푸른 밤>에 기록한다.
나는 톰 울프가 1973년 발표한 획기적 선집인 <뉴 저널리즘(The New Journalism)>에서 조인 디디온을 처음 읽었다. 이 선집은 <파멸을 맞으며 미소 짓다: <에스콰이어>로 보는 1960년대 역사(Smiling Through the Apocalypse: Esquire’s History of the Sixties)>와 함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 책들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를 구해 읽고서 디디온의 어조와 독특한 힘을 가진 문체, 즉 외과수술과 같은 정확성, 거의 주문을 외는 듯한 운율에 넋을 잃었다. 디디온이 보여주는 “극단적이면서 불운한 헌신”에 대한 매혹과 “막다른 상황”에 대한 인식이 또한 십대인 나의 과장된 상상에 깊이 와닿았다.
수십 년 전 F. 스콧 피츠제럴드가 <무너져 내리다>로 개인 에세이라는 장르를 개척했으나 디디온의 솔직함은 왠지 새롭게 느껴졌다. 사실 디디온의 작업은 여러 가지 면에서 1990년대와 21세기 초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이 쓰게 될 회고록을 예견했다.
디디온은 가장 유명한 한 글에서 “내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썼다. 사랑이나 결혼에 대한 글이든, 뉴욕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글이든, 디디온은 1970년대와 1980년대 많은 젊은 여성들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수줍음을 많이 타며 몸집이 작고 “성격상 나서는 법이 없는”사람이 기자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해 썼다. 디디온은 텅 비다시피 한 자신의 뉴욕 아파트를 묘사했다.
“침실 창문에 46미터짜리 극장용 노란색 실크 커튼”을 걸어 두었는데 “금빛이 기분 좋게 해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디디온은 엘살바도르나 콜롬비아 같은 위험한 나라를 혼자 여행하는 법을 알았고, 또 내가 알았다면 나의 어머니가 좋아했을 법한 것들을 알았다. 예를 들어 부야베스와 보르시(붉은 순무로 맛을 낸 러시아 및 동유럽권의 전통 수프 요리)를 요리할 줄 알았으며, 어떤 옷을 펙앤펙세서 샀는지 본윗 텔러에서 샀는지 아니면 로스엔젤레스 아이매그닌에서 샀는지 구매처를 기억할 줄 알았다.
나는 운 좋게도 1979년 디디온과 <화이트 앨범>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그 인터뷰는 프리랜서 때의 일로 <뉴욕타임스>에 쓴 첫 기사였다. 캘리포니아 브렌트우드에 있는 디디온의 집에 도착해서, 나는 기자 수첩을 꺼내 “디디온풍”이라 할 만한 세세한 것을 모두 열심히 적었다. 진입로에 주차된, <있는 그대로 연주하라(Play It as It Lays)>에서 마리아가 모는 것과 같은 노란색 콜벳 자동차, 그리고 해충 구제업자가 쥐를 끌어올리는 자석이라고 말해줬다는 뒷마당의 아보카도 나무 같은.
디디온은 <화이트 앨범>과 <베를린을 향해 웅크리다>에서 자신의 불안과 경험을 미국의 시대정신의 지표로 삼았다. 자신이 세크라멘토에서 자라면서 알고 있던 캘리포니아가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새로운 캘리포니아로 탈바꿈했는지, 다시 말해 옛 개척지의 방식이 어떻게 할리우드의 디너파티와 뉴에이지의 도피처로 바뀌었는지, 자신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다는 미국인들의 믿음이 어떻게 뿌리 없음과 아노미에 자리를 내주었는지 썼다.
디디온에게 글쓰기는 주변에서 보는 무질서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방법이자 이 나라에 닥친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가 남긴 트라우마 그리고 마틴 루서 킹 주니어와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을 겪으면서 휘청거렸으며, 대학 교정과 시카고 및 로스엔젤스 거리에서는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디디온에게는 “모든 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충격이었지만 상상하지 못할 것이 없”어 보였다.
디디온은 브랜트우드에 있는 식민지 시대 양식의 이층집 같은 곳을 오래전부터 원했다고 내게 말했다. “들어섰을 때 중앙 홀이 있고 오른쪽에 거실이, 왼쪽에 식당이 있는 집을 원했답니다. 이런 집이 있으면 질서와 평화가 내 삶에 깃들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가 않더군요. 이층집에 산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지는 않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