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7월 둘 째 토요일
금년은 14일이다
이날이 되면 우리 4형제와 사촌들이 모여 선영의 양대 조고와 선고 및 숙부의 묘소에 모이고 ,윗대의 인근 묘역 몇 군대를 살피고 오는 날인데…….
날씨는 여지없이 장마철에 한 복판에 선다.
작년도 재작년도 마찬가지였고 이 날 벌초를, 가니 마니 하다 내 눈치를 살폈던 것을 기록한 적이 있다.
묻지도 않고 묘소에 도착하니 거의 동시에 형님내외와 조카 사촌 여동생 내외가 같이 차를 주차했고 막내 동생과 조카가 도착한다.
5월에 한번 풀을 뽑았는데 작은 아버지 산소는 어찌 제절에 쑥이 그리 무성한지 못 봐줄 만큼 무성하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사촌 남동생이 철을 모르고 불효를 하여 제 아비 묘소도 안 오니 시집간 여동생과 사위가 아들노릇을 하는 것이 고마워서 내가 그쪽을 돕는다.
약속시간에 예초기를 가지고 올 고종이 안와서 전화를 찾으니 집에 놓고 왔다. 형님 전화로 통화를 하니 우천이라 안 온줄 알고 다른 일은 하고 있었다.
동편의 칡넝쿨만 기여 넘어온 상태로 그만 볼만한다.
뽑기도 하고, 베기를 하고 칡을 걷어치우는 동안 간식 겸 현지에서 삶은 돼지 수육을 형수님이 차린다.
그사이 한 시간 반 정도 뽑고 자르고 한, 벌초로도 수건과 속옷은 짤 만큼 땀이 범벅이다.
김밥 떡 참외 김치에 싼 수육을 몇 첨하고 맥주와 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예초기가 도착하면 한 묘소에 많은 사람이 있을 필요가 없으니
이번에 장가를 든 막내 동생의 조카를 데리고 윗대로 올라간다. 네 5대조와 그 옆의 9대조 쌍분에 네가 장가를 갔으니 성묘를 하라하고 이르고, 오르니 조카가 다녀올라 온다.
장가가지 전에 제 마누라 감과 할아버지 산소에 와서 성묘를 하고 다녀갔다 한다.
네 9대조는 25세에 돌아가시고 청상의 과부 전주이씨 할머니가 지금 가는 큰 돌무더기 아래에 있는 생가 9대조 할아버지에서 찾아가 아들을 양자로 달라고 청하기를 수 십차래 가까운 당내간(10촌 이내)에는 자식항렬에 맞는 사람을 구할 수 없어 24촌 형에게 눈물로 애원하여 간청을 수차례, 굳은 가을 찬비를 맞으며 부탁을 하지 전, 오늘도 거절하여 안 들어 주면 그 집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땅위에 거적을 깔고 고개를 숙이고 빌기를 서너 시간 한아이가 “어머니 들어가세요!. “이러시면 큰 병납니다. 소리를 듣고 고맙다는 인사를 올린 뒤, 들어가긴, 뭘! 이리 기쁜데
얘! 성수야 빨리 가자며 9살 아이를 업고 ,그길로 왕대골(청부서부 경찰서)에서, 어댕이 (고분박물관)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돌아 오셨던 사정을 설명하니 이해를 하는 눈치다.
이 산소에 계속 벌초를 잘하면 노도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도 계속관리를 하라면서, 나는 첫 아들을 낳고 네 아버지도 첫 아들을 낳고 네 4촌 형도 작년까지 나와 이곳을 성묘해 아들을 뱉으니 너도 이제 지성으로 관리하면 첫 아들을 낳을 것이라 밑져야 본전인 말을 이르니 관심이 가는 모습이다.
그리고 내가 지은 비문을 읽어 주면서 내력을 설명한다.
원래 이분의 생부는 重자 春닌데, 重자 夏에게 양자를 온 분이라서 도시 계획으로 밀 례를 하는데, 후손이 우리보고 선산이 크니 모셔가라 부탁을 해서, 이리 오시게 된 역사를 설명하고 그곳에도 둘려 본다.
내려오면서 비석도 석물도 없는 초라한 묘소에서 네 6대조니 성묘를 해라 이른 뒤, 정면을 쳐다보라! 지금은 나무가 우거져 조망이 안 되지만, 이곳에서는 멀리 까치 내와 무심천이 만나는 지검과 정학하게 합치는 양 강 합수지혈의 묘로 명당 중 명당인데, 이곳은 봉황이 날을 준비를 하는 지형으로 돌을 올려놓으면 날수 없는 터이므로, 석물이나 나무패도 없는 곳이니 잘 관리해야 한다는 말을, 내가 할아버지에 듣던 말 그대로 조카들에 잘 전수시키고, 내려오니
제 아들 항렬의 돌림자를 묻는다.
제 아버지에 물으니 잘 모르시더란 얘기도 함께 한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막내아들 딸이라 형님들이 계시니 관심이 없어서 그렇고, 너는 남의 맏아들이 됐으니 그런 관심이 있는 것이다. 다음 항렬을 일러 준다. 그리고 아들이 나오면 즉시 내게 알려주면 이름을 잘 짓지는 못하지만, 지어 주겠다는 약속을 하며 조카 딸년이 낳은 아이의 이름을, 제 시아버지와 내가 지은 것을 가지고 고민을 하다 시아버지에 양해를 얻어 내가 지은 것으로 정한 내력을 알려주니 조카 녀석도 관심이 지대한 눈치다.
성묘 후 낭성에 이사를 간 친구가 날 자기 집에 초청을 했는데 전화를 놓고 왔으니, 마누라 전화로 다른 친구에 묻고 중계를 하여 오늘 오후 4시 전에 와야 산에 심은 호두나무를 구경한다 한다.
고종사촌 여동생이 젊은 나이에 뇌세포가 많이 죽어서 암기력을 다 까먹어, 여중 교장에서 퇴직 후 환자가 되어 집에 있다. 일 년에 오늘이 가장 방문하기 좋은 날이기에 들려서 얼굴을 보고 샤워도 하고 감자도 쪄 먹으면서 보호자에 잘 부탁을 드리고 낭성으로 향한다.
500여 구루의 호두나무는 잘 크고 있었고,25m 간격으로 심고 남은 넓은 공간 수천 평에 따비밭을 일구어 콩을 갈아, 제초를 잘하여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농막과 컨테이너 숙소에 다행히 전기가 들어와 개 4마리가 꼬리가 빠지도록 반기며 시루 뛰고 가로 뛰며 내 닫는다.
산을 같이 걸어올라 구경을 하는데 선 정상은 의외로 농사지을 만한 완만한 경사지 엇다. 앞으로 10년 안에 과실을 수확을 기대하면서 앞날을 설계하는 친구 의기가 양양하다. 나도 열주만 남은 땅에 심기로 약속을 한다. 일 년에 수차에 방문하여 관리를 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청주 집을 팔아 수리한 낭성 집에 도착하여 올림픽 팀 평가전 축구를 보는데, 시간을 내서 강 충렬부부가 왔다. 터를 누르려면 현관에서 눌러야 하므로 긴급식탁을 마련하고 의자를 준비하여 삼겹살을 구워 소주를 왁자지껄 마신다.
비가 오므로 한 궁여지책이지만 터를 누르는데 는 현관이 제격이 아닌가.
나무는 영물이다 오래된 나무는 벌목 시 벌목사유를 먼저 나무에 알리고 막걸리를 붓고 베어야, 후 환이 없다는 얘기는 궁의 목재를 벌목하는 사람들의 사이에는 당연한 상식이다.
함부로 벌목치 말아야 서로 신상에 조타는 얘기를 안주 삼아 하면서 그래야 다시 낙상을 면한다? 남의 쓴 나무 가구는 함부로 들이면 탈이 난 경험담을 부인이 들은 실화를 들으며, 귀신얘기도 전혀 없다 단정 할 수 없으니 이 밤의 화제는 제격이로구나,
밤비는 내리고 어느덧 자정이 닥아 오니, 새벽에 일어나 종일 운전과 벌초를 한 뒤라 곪아 떨어진다.
2012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