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리
마당 한쪽에 봉선화와 채송화가 피어있고 잡초 속에 빨간 꽈리가 주렁주렁 달렸다. 문은 부서져 내려 처마에 걸쳤고 유리창은 모두 깨져 뻥 뚫렸다. 방과 부엌은 책과 옷가지, 농짝으로 뒤엉켰고 주방기기가 털려 솥이며 단지, 큰 그릇들은 죄다 가져가고 쟁반과 사발, 종지, 탕기가 곳곳에 깨지고 굴러 밟힌다.
그래도 약간 손보면 들어가 살만한 집들이다. 일인들이 떠나고 텅 빈 금정광산 골짝엔 그들 살던 집만 덩그러니 남았다. 수시로 들랑날랑 사람들이 무엇이 있기나 하나 휘 들렀다. 남은 빈 병과 궤짝, 팽개친 책, 종이며 장판도 주섬주섬 가져갔다. 이제 깨지고 부서지며 찢겨나간 것만 남았다.
아이들은 그저 넓은 마당이 좋아 뛰면서 꽈리를 입에 물고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며 놀았다. 떠난 지 몇 해이건만 꽃은 해마다 이어 피어났다. 흰 작은 꽃이 피고 나면 쪼글쪼글 붉은 삼각형 속에 동그란 예쁜 열매가 맺힌다. 조물조물 눌러 물컹하게 만든 뒤 씨앗과 물을 흘려낸다. 그걸 입에 넣어 바람을 불어넣고 빼내면서 소리 냈다.
따라 해 보지만 쉽지 않다. 쳐지고 찢어져 곧 못 쓰게 된다. 비릿한 냄새만 입안 가득 남았는데 여자아이들은 신났다. 그 뒤 분꽃과 백일홍, 과꽃, 맨드라미는 봐 왔는데 그만 꽈리는 본 적이 없다.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데 생각이 난다. 그런 게 있기라도 할까. 혀끝으로 냈다가 말아 넣으며 소리 내던 그 아이들은 지금 다 어디 있을까.
아파트 뒷산 기슭 솔밭에서 텃밭을 조금 했다. 아카시아 그늘을 피해 햇볕 들어오는 엉덩이 짝만 한 밭이다. 재밌다고 옆에도 누가 따라 했다. 금세공 일 배우며 이마에 꿀밤을 많이 맞았다는 김 씨가 밭 둘레에 그물을 높이 쳤다. 고라니와 산돼지가 들어오지 못하게 아기자기 아방궁을 만들었다. 채소 외에 꽃도 심었는데 어디서 구했는지 꽈리를 가장자리에 심었다. 이게 자라더니 이듬해 여기저기 싹을 틔웠다. 뚱딴지처럼 막 치밀고 올라왔다.
그 못 보던 게 갑자기 흔해졌다. 꽈리를 따 머리에 꽂고 다녔다. 함께 즐겁던 그 밭도 이내 없어지고 말았다. 구청에서 허물고 나무를 심었다. 농기구도 모두 쓸어 가져갔다. 그곳을 떠나 와 강 건너로 옮겨 가고 김 씨와도 헤어졌다. 지나면서 쳐다본다. 둑에 앉아 오이를 썩썩 비벼 뚝뚝 잘라먹던 게 생각난다.
한번 가서 꽈리 몇 포기를 가져와야지 맘먹었다. 그 잘 번지는 게 혼자 이리저리 자랐겠지. 선뜻 가지지 않아 여러 해가 흘렀다. 다른 곳에서는 영 볼 수 없다. 다들 꽈리라는 말도 잊고 사는 것 같다. 그런 게 있나이다. 잡초 속 그늘 밭에서 죽기라도 했을까. 당최 가 본다 하면서 하루 이틀 또 몇 해가 느닷없이 흘러갔다.
어머니 계실 때 모시고 태어났던 곳을 찾아간 적이 있다. 좁은 협곡에 버럭 더미만 좌우로 흘러내리고 살던 집터는 어디쯤인지 흔적도 없이 잡초로 덮였다. 일인 소장이 살던 외딴 담벼락이 덩그렇고 그 앞 광산사무실 자리가 휑하다. 조금 오르니 금 캐던 굴이 보인다. 소화 몇 년이라 적힌 글이 흐릿하게 보인다.
추적추적 천장에서 물이 줄줄 흘러 골을 따라 밖으로 나온다. 음산한 굴속에서는 서늘한 바람이 솨 나온다. 그때 광부들이 ‘간드레’ 불을 깜박이며 광차를 몰고 다니는 게 어련히 보이는 듯하다. 저 안쪽은 동발이 썩어 주저앉았다. 제련소 자리에는 시멘트벽만 있고 돌아가던 큰 쇠 통은 뜯겨나가고 없다. 금 섞인 돌을 넣어 야금 때 함께 돌던 동그란 수많은 쇳덩어리가 개울에 굴러 녹이 슨 채 나뒹굴고 있다.
폐허이다. 이 좁은 골짝에 그 많은 집들이 어떻게 들어섰겠나. 목탄차가 오르내리며 소리소리 쳤다니 가관이다. 화약고는 그대로 남고 그 옆 내가 났다는 집은 터만 덩그러니 없어졌다. 봉선화와 채송화, 분꽃이 피고 꽈리가 열리던 넓은 마당의 그 집은 어딘지 알 수 없다. 찾다 찾다 터벅터벅 걸어서 내려왔다.
갑작스레 해방이 오고 광산은 문 닫았다. 수천 명의 광부가 가족을 데리고 살길을 찾아 나서야만 했다. 갈 곳이 없는 사람은 눌러앉아 굴러떨어진 버럭 돌을 으깨 금을 골라냈다. 망치로 두드려 가루로 만든 뒤 물에 흘려 가라앉은 금싸라기를 모았다. 한 달 내내 한 돈 두 돈으로 입에 풀칠하기 바빴다. 야문 돌을 해 저물도록 두들겼으니 사는 것도 시들해라. 이젠 그도 저도 다 나가고 휑하니 비었다. 상동으로 넘어가는 뻔질나던 중석 광산 트럭과 버스 길도 막혔다. 길길이 나무가 자라 으스스한 게 더 들어가지 못한다.
이 꽈리를 어디서 구한담. 하찮은 쓸데없는 생각으로 골몰하다가 얻게 됐다. 수필가 장 회장이 몇 포기를 줬다. 뿌리가 굵고 잔뿌리가 적어 살겠나 했는데 잘 살았다. 겨울 추위에 견디고 이듬해 올라오나 봤더니 돼지감자처럼 불쑥불쑥 쳐들고, 쑥대머리 올라오듯 쑥쑥 치밀었다. 고마워라. 동쪽과 서쪽에도 꽃밭을 만들어 옮겨 심었다.
올라오면서 옆으로 더 번져나가 귀하긴 천지다. 다섯 잎 작은 꽃을 피우고 나서 어언 빨간 고깔이 만들어졌다. 덮개를 찢어 안 열매를 보지 않았다. ‘뽀드득뽀드득’ 어련할까이다. 내보다 아내가 더 좋아하며 목걸이를 둘러쳤다. 예쁜 실로 매어 방마다 걸어놨다. 몇 개씩 방울처럼 묶어서 모임 때 선물로 나눠주기도 했다.
“이게 머시당가 꽈리 아니여-”
첫댓글 저 어릴땐 학교앞 가계에서 꽈리를 팔았었어요.풍선 재질로 만들었던것 같구요.어릴적 자라던 고향에대한 향수는 언제나 아련하지만 쌤처럼 직접찾아보는건 힘든일인데..추억으로 접어두시고 건강하게 지내시길!!
백로가 지난 주이고 다음 주말은 추분입니다.
날씨가 계속 덥습니다.
이런 날씨에 감기 환자가 있다니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