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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金剛幢菩薩의 偈頌
가, 廻向할 善根
爾時에 金剛幢菩薩이 承佛神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菩薩成就深心力하야 普於諸法得自在하고
以其勸請隨喜福으로 無碍方便善廻向이로다
이때 금강당(金剛幢)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보살이 깊은 마음과 힘을 이루고
모든 법에 자재함을 두루 얻고서
설법하기 청하고 기뻐한 복덕으로
걸림없는 방편으로 잘 회향하네
*
금강당보살(金剛幢菩薩)의 게송(偈頌) : 금강당 보살이 게송을 설하다
*
회향(廻向)할 선근(善根)
*
이시(爾時)에
금강당보살(金剛幢菩薩)이
용불신력(承佛神力)하사 :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서
보관시방(普觀十方)하고 : 시방을 두루두루 살피고
이설송언(而說頌言)하사대: 게송을 설해 말씀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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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성취심심력(菩薩成就深心力)하야 : 보살이 깊고 깊은 마음의 힘을 성취해서. 종교적인 수행이나 마음의 이치를 확연히 파헤쳐 놓은 이런 불법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보어제법득자재(普於諸法得自在)하고: 널리 모든 법에서 자유자재함을 얻고, 깊은 마음의 힘이 있어야 제법의 자재한 힘을 얻는다.
이기권청수희복(以其勸請隨喜福)으로: 그 권청과 수희복덕으로써, 보현행원품의 십대행원에 대한 설명이다. 권청이라고 하는 것은 청전법륜(請轉法輪)이라고 할 수 있고 수희는 수희공덕(隨喜功德)을 말한다. 십대행원을 다 이야기 하지는 않고 두개만 들었지만 그 속에 보현의 십대행원이 다 포함되어 있다.
권청은 법문해 주기를 권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말하기를 좋아하고 남 가르치기를 좋아하니까 질문을 받으면 좋아한다.
내가 건강할 때 외국 여행을 한 번씩 가면 같이 간 스님들이 자기는 그 나라 말을 한마디 못하면서 현지어를 한마디라도 배워서 쓸 생각은 안하고 꼭 그나라 사람이나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한 마디라도 가르치려고 한다.
사람 심리가 그런 데서 그냥 드러난다. 가르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다. 인도성지 같은 데 가면 하도 가르쳐서 인도 아이들이 한국말을 잘한다. 그런데 몇 번이고 성지순례에 간 사람이라도 인도 말을 한 마디도 못 배우고 돌아온다.
그런 데에도 얇은 막이 하나 착 가려있는데 그것을 뚫지 못한다. 가만히 보면 참 기가 차다. 아무튼 가르치고 싶은 것은 보통 사람들의 심리라서 누구든지 배우려는 사람에게는 신이 나서 더 가르쳐 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꾸 묻는 것, 물어서 알려는 권청이 중요하다.
수희공덕은 제일 어려운 문제이면서 제일 공덕도 많은 행이다. 특히 친한 도반이 공부를 잘하거나 뭘 잘하거나 나보다 잘나가면 그만 그 때부터는 배가 아프다. 그렇게 아픈 배는 아스피린으로도 못 고치고 위장약으로도 못 고친다. 남의 공덕을 따라서 기뻐해준다는 것은 두고두고 곱씹고 곱씹어야 할 내용이다.
처음엔 누구나 다 잘 안 된다. 연습으로 자꾸 수희공덕을 익혀서 나중엔 진심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남의 공덕을 따라 기뻐해주면 큰 복이 된다. 그런 복으로써
무애방편선회향(無碍方便善廻向)이로다: 걸림없는 방편으로 잘 회향하는 것이 바로 선근회향이다. 남이 잘하는 것울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환영해 주고 기뻐해 주고 예를 들어서 ‘아들이 좋은 데 취직했다’고 하면 ‘축하한다’ 고 말로만 할 게 아니라 말 이외에 다른 것으로도 표현해 주면 좋다. 진심으로 그렇게 하면 그보다 더 좋은 선근회향이 없다.
나, 菩提에 廻向
三世所有諸如來가 嚴淨佛刹遍世間하사
所有功德靡不具하시니 廻向淨刹亦如是로다
三世所有諸佛法을 菩薩皆悉諦思惟하고
以心攝取無有餘하야 如是莊嚴諸佛刹이로다
盡於三世所有劫토록 讚一佛刹諸功德이라도
三世諸劫猶可盡이어니와 佛刹功德無窮盡이로다
如是一切諸佛刹을 菩薩悉見無有餘하야
總以莊嚴一佛土하고 一切佛土悉如是로다
有諸佛子心淸淨하야 悉從如來法化生이라
一切功德莊嚴心이 一切佛刹皆充滿이로다
彼諸菩薩悉具足 無量相好莊嚴身하며
辯才演說遍世間하니 譬如大海無窮盡이로다
菩薩安住諸三昧하야 一切所行皆具足하고
其心淸淨無與等하야 光明普照十方界하니
如是無餘諸佛刹에 此諸菩薩皆充滿이라
未曾憶念聲聞乘하며 亦復不求緣覺道로다
세 세상에 계시는 여러 부처님이
국토를 장엄하여 세간에 가득하사
그러한 모든 공덕 다 구족하니
정토에 회향함도 또한 그러해
세 세상 부처님의 여러 가지 법을
보살이 자세하게 생각해 알고
마음으로 거두어서 남김없나니
이와 같이 모든 세계 장엄하오며
삼세에 끝이 없는 많은 겁(劫) 동안
한 세계의 공덕을 찬탄하나니
삼세의 많은 겁이 끝나더라도
부처님 국토의 공덕은 다하지 않고
이와 같은 일체의 부처님 세계를
보살이 모두 보아 남김이 없어
이것으로 한 국토를 장엄하듯이
모든 부처님 국토도 다 이러하네
어떠한 불자들은 마음이 청정하여
여래의 법으로써 화(化)해 생긴 것이라
일체의 공덕으로 마음을 장엄한 것이
여러 부처님 세계에 두루 가득하네
저 모든 보살들의 무량한 상호가
구족하게 그 몸을 장엄하였고
온 세간에 법문을 말하는 변재(辯才)가
바닷물이 다할 줄 모르는 듯하네
보살이 모든 삼매 머물러 있어
닦을 바 온갖 행(行)을 다 구족하고
그 마음 청정하여 짝할 이 없어
광명으로 시방세계 두루 비추네
이렇게 빠짐없는 모든 세계에
이런 보살 간 데마다 가득하여서
한 번도 성문법(聲聞法)을 생각지 않고
연각도(緣覺道)를 구하지도 아니하나니
*
보리(菩提)에 회향(廻向): 보리에 회향하다
*
삼세소유제여래(三世所有諸如來)가 : 과거 현재 미래에 계시는 모든 부처님 모든 여래가
엄정불찰변세간(嚴淨佛刹遍世間)하사: 세계를 청정하게 장엄해서 한 곳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온 세간을 다 그렇게 장엄한다. 그것이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다. 내 자신의 인격을 자꾸 향상시키고 내 주변 사람들, 온 세상을 아름답게 가꿔가는 것이 엄정불찰변세간이다.
소유공덕미불구(所有功德靡不具)하시니 :있는 바 공덕 갖추지 아니함이 없으시니
회향정찰역여시(廻向淨刹亦如是)로다: 회향으로써 세상을 청정하게 함도 또한 이와 같다. 회향으로 세상을 깨끗하게 함도 또한 이와 같다. 공덕으로써 그렇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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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소유제불법(三世所有諸佛法)을 : 삼세소유제불법을
보살개실체사유(菩薩皆悉諦思惟)하고: 보살이 다 깊이 사유하는
이심섭취무유여(以心攝取無有餘)하야: 마음으로써 모든 불법을 다 섭취해서 하나도 남김없이 한다. 남김없이 마음으로 불법을 섭취해야 된다. 불법에 대해서 알 것은 다 알아서
여시장엄제불찰(如是莊嚴諸佛刹)이로다:불법으로써 세상을 장엄한다.
돈을 많이 벌어서 학교도 지어주고 우물도 파주는 것이 다 좋은 일인데 불법으로써 세상을 장엄해야 된다. 삼세소유 제불법을 보살들이 깊이깊이 사유해서 모든 불법을 내 마음에 다 남김없이 섭취하고 다 거둬들여서 그것으로써 세상을 장엄한다.
스치고 지나가면 별 것 아니지만 ‘불법으로써 세상을 장엄한다’는 말은 아주 중요한 말이다. 내가 천번 만번 말씀드렸지만, 급식 활동을 할 때는 법을 함께 전해야 한다. 카드 만한 작은 종이에라도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선인선과 악인악과’ 한마디라도 함께 적어서 밥 한그릇, 국수 한그릇과 같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이럴 일이 아니다. 얻어먹으러 다닐 것이 아니라 뭔가 열심히 해서 나도 남에게 주는 사람이 좀 되어야겠다’ 이런 뜨끔한 순간을 제공해 준다.
이것이 불법으로 세상을 장엄하는 일이다. 불자는 그렇게 해야 된다.
고기를 한 마리 사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사실 이런 비유는 흔히 쓰는 비유지만 불자들이 쓸 만한 비유는 아니다. 많은 비유 중에 하필 왜 고기 잡는 비유를 드는가. 아무튼 이치를 가르쳐 주면, 특히 인과의 이치를 가르쳐 주면 그 사람에게 언젠가 가슴에 뜨끔하는 계기를 줄 수 있다. 그런 계기가 되면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 자존심이 생겨서 ‘왜 내가 니거 먹어. 나도 내거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데’ 사람이 이렇게 된다. ‘니거 말고도 내가 실컷 해결할 수 있는데’ 그런 자세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 두 번째 게송에도 별을 세 개를 쳐놨다. 불법으로 세상을 장엄한다. 우리는 그렇게 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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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어삼세소유겁(盡於三世所有劫)토록: 삼세 모든 겁이 다하도록
찬일불찰제공덕(讚一佛刹諸功德)이라도: 한 불찰의 모든 공덕을 찬탄할지라도
삼세제겁유가진(三世諸劫猶可盡)이어니와: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세월들은 오히려 다 할 수가 있지만
불찰공덕무궁진(佛刹功德無窮盡)이로다: 불찰의 공덕은 무궁진이로다.
‘세상이 이러느니 저러느니’ 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이대로’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다. 이 세 번째는 기세간(器世間)이라고 하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고맙고 얼마나 좋은 곳이고 감사한 곳인지를 깨닫는 내용이다.
아무리 많은 세월 동안 한 세계의 모든 공덕을 찬탄하더라도, 찬탄하는 세월은 다할지언정 그 공덕은 다할 수가 없다. 그것을 우리는 잊어버리고 산다. 이 지구에 몸담고 살면서 거기에 대한 불찰 공덕을 잊어버리고 산다. 이 지구가 없다고 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겠는가. 그 공덕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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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일체제불찰(如是一切諸佛刹)을: 이와같은 일체 모든 불찰을 세계를
보살실견무유여(菩薩悉見無有餘)하야: 보살이 다 남김없이 보아서
총이장엄일불토(總以莊嚴一佛土)하고: 모두 한 불토를 장엄하고
일체불토실여시(一切佛土悉如是)로다: 또 모든 불토를 역시 그렇게 한다. 내 주변을 아름답게 만들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그것이 발전해서 이웃과 사회 전체가 다 살기 좋은 불토로 만드는 것이 불보살의 꿈이고 불교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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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불자심청정(有諸佛子心淸淨)하야 :여기 어떤 불자가 마음이 청정해서
실종여래법화생(悉從如來法化生)이라: 다 여래의 법으로부터 화생한 것이다. 금강경 32분중에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이 있다. 법에 의해서 출생한다는 내용인데, 사실 우리 모두는 여래의 법으로부터 화생한 것이다. 특히 불교의 전문가인 승려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모두 법에 의해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다. 우리는 지금 모두 여래의 법으로부터 이렇게 화생한 것이다.
일체공덕장엄심(一切功德莊嚴心)이: 일체 공덕으로써 마음을 장엄한 것이
일체불찰개충만(一切佛刹皆充滿)이로다: 일체 불찰에 다 가득했다. 공덕으로써 마음을 장엄했는데 그것이 일체 불찰에 다 충만했다. 이 다섯 번째 게송도 아주 좋다. 이러한 사실을 항상 우리가 되새기고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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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제보살실구족(彼諸菩薩悉具足): 저 모든 보살이
무량상호장엄신(無量相好莊嚴身)하며 : 무량 상호를 구족해서 그 몸을 장엄한다. 상호도 자주 바뀐다. 수행을 잘하면 저절로 상호가 자비로와지고 선량해지는데 얼굴이 당장에 수술한 것처럼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풍기는 것이 달라진다.
어떤 관상가가 사미를 보고는 ‘이 아이 여기 놔뒀다가 얼마 안있다가 송장을 치룰 것이다. 그러니까 집으로 얼른 보내세요’라고 했다. 그 아이가 가다가 비가 와서 물에 떠내려 가는 개미를 여러 수백마리 수천마리를 건져주었다. 무슨 자비행이다 하는 조건 없이 떠내려가는 개미를 보고는 그냥 본심으로써 건져준 것이다.
며칠 후 이 아이가 관상가에게 다시 왔는데 ‘이 아이는 길상이고 복덕상이고 오래살 상이다’라고 관상가가 말했다. 엊그제는 금방 죽을 아이라고 했다가 왜 오늘은 그렇게 다른 말을 하는가, 얼굴을 수술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상호가 바뀌었는가?
개미 몇 백마리 생명을 살려준 것은 공심(空心)으로 한 것이지만 저절로 그 아이의 인상에 자비심이 넘치도록 해서 풍기는 것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무량상호로써 상호를 구족해서 몸을 장엄한다하는 것도 그런 의미다. 얼굴 상호를 고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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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재연설변세간(辯才演說遍世間)하니 :변재로 연설해서 세간에 가득하니
비여대해무궁진(譬如大海無窮盡)이로다: 비유컨대 큰 바다가 다함이 없는 것과 같더라. 불법을 우리가 많이 공부하면 저절로 이야기 거리가 많아진다.
특히 화엄경은 어떤 경과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넉넉하고 풍부하다. 이것을 익숙하게 공부하다 보면 말거리도 충분히 많아지고 말도 저절로 잘하게 되고 마음도 그렇게 화엄경 내용만치 넉넉하고 풍부하게 된다. 그 한구절 한 줄 읽은 것이 어디로 가겠는가. 전부 우리의 아뢰야식속에 알알이 박히게 된다.
컴퓨터에 올려놓은 것은 지워지지만 우리의 타고난 장식(藏識)에 저장된 것은 지워지지 않는다. 어떤 능력가도 도저히 지울래야 지울 수가 없다.
얼른얼른 떠오르지 않을 뿐이지 지워지진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화엄경 공부하면서 ‘아 이거 비슷비슷한 소리 자꾸 읽어서 뭐하나’ 그런 신심 없는 소리를 해선 안된다. 같은 소리라도 자꾸 반복해서 읽음으로써 그것이 전부 내 마음속에 저장이 되어서 언젠가 싹을 틔울 때가 있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큰 그늘을 드리우게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런 이치가 너무나도 확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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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안주제삼매(菩薩安住諸三昧)하야 : 보살이 모든 삼매에 안주해서
일체소행개구족(一切所行皆具足)하고: 일체 모든 수행을 다 갖추고
기심청정무여등(其心淸淨無與等)하야 : 그 마음이 아주 뛰어나고 훌륭하기가 누구와 더불어 같을 이가 없어서
광명보조시방계(光明普照十方界)하니: 광명이 시방세계를 두루 비춘다.
삼매가 되어 마음이 안정이 되면 명경지수가 되어 일체 수행을 다 갖추게 된다.
명경지수가 되면 물 밑에 고기가 헤엄쳐 다니고 하늘에 구름이 지나가고 새가 지나가는 것을 환하게 비춘다. 보살이 안주제삼매하여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그 평정심이 동요하지 않게 오래가면 저절로 그런 행이 갖춰진다. 해야할 일 안해야 할 일 일체수행이 개구족이다. 그것이 아주 뛰어난 마음이다.
청정은 ‘깨끗하다 훌륭하다 근사하다 멋지다 아주 품위있다’라는 모든 좋은 뜻을 다 가지고 있다. 어떨 때는 텅비었다는 뜻도 된다. 관삼륜청정(觀三輪淸淨) 이라고 할 때는 청정은 텅비었다는 의미다.
여시무여제불찰(如是無餘諸佛刹)에 : 이와같이 남김 없는 모든 불찰에
차제보살개충만(此諸菩薩皆充滿)이라: 모든 보살이 가득히 차있다. 모든 보살이 가득히 차야 된다. 이것이 화엄경이 바라는 바고 모든 불보살들이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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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증억념성문승(未曾憶念聲聞乘)하며: 일찍이 성문승을 억념하지 아니하며
역부불구연각도(亦復不求緣覺道)로다: 또한 다시 연각도도 구하지 않는다. 앞에서 소승교 대승교 이야기를 했는데 보살이 이 세상에 충만하다는 것은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뜻이다.
성문승은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만 닦는다. 그래서 불교의 처음부터 고집멸도(苦集滅道)가 나온다. 그 고통을 좀 떨쳐버렸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살은 그런 소리를 안한다. 보살은 자신의 고(苦)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중생이 화두일 뿐이다. 오로지 중생 뿐이다. 화엄경에서 사람들이 열심히 독송하는 품이 또 정행품이다. 그 정행품에 보면 110가지의 불교 명제를 걸어놓고 이렇게 가장 좋은 백열가지의 이름을 완성하려면 무엇을 하는 것이 좋겠는가 하면서 딱 한마디로 ‘선용기심(善用其心)하라’고 표현한다. 마음을 잘 쓰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는 것이 마음을 잘 쓰는 것인가에 대해서 넉자 게송이 정행품의 끝까지 내려온다.
내가 정행품과 현수품을 좋아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보살이 집에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살이 식구들과 모여 있을 때는 중생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가 ‘당원중생(當願衆生)당원중생’하면서 다 나온다.
오로지 보살의 화두는 중생이다. 보살의 님은 중생이다. 부처의 님은 중생이다.
그저 자나깨나 불보살은 중생중생중생 그렇게 되어 있다. 보살은 육바라밀을 닦는다. 육바라밀은 주로 보시부터 나오는데 중생을 위하는 것이지 자기 혼자 잘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다.
성문승이 하는 사성제 팔정도는 자기 잘 살자고 하는 것이지 남을 위한 말이 없다.
또 연각도는 12인연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내가 인과이야기를 잘 하는 것도 연각도에 해당된다. 연각이라고 하는 인연의 도리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세상을 바로 세우는 데는 참 좋은 이치다. 그 인과의 법칙이 좋은 이치다.
그런데 보살은 여기에도 관심이 없다. 깊은 병을 앓는 자식을 둔 어머니는 자신이 감기에 걸리고 다치고 상처받고 한 두끼 굶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기 자식만 생각한다. 자기 자식이 어떻게 하더라도 병이 낫기를 바라고 안전하기를 바랄 뿐이다.
불이 났을 때 자식을 구하려고 불속에 뛰어들어가서 결국 자식은 구하고 자기는 돌아가신 부모의 사례도 우리가 많이 본다. 보살의 마음이 그런 마음이다.
보살은 자기고통이나 자기가 하는 일이 인과의 법에 걸리고 안걸리고 하는 것에 아무 관심이 없다. 그저 중생만 위하고 중생만을 바라보며 간다.
자나깨나 자기 안녕만을 도모하는 소승불교와는 천지차이다.
어떻게 실천하느냐 못하느냐는 그 다음 문제이고 우리는 이 모든 법의 분제, 한계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보살의 행을 실천 하느냐 못하느냐는 지금 따질 것이 아니라 알고난 다음의 문제다. 세월이 가고 충분히 납득이 가다보면 저절로 그렇게 보살을 닮아가게 된다. 경전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여기 나오는 보살도, 성문도, 연각도에 대해 곤히 잠든 사람을 두드려 깨워서 ‘성문법은 뭐냐 연각법이 뭐냐 보살법은 뭐냐’하고 물어도 언제든지 일초도 주저하지 않고 재깍 나올 수 있어야 된다. 그 정도는 확실하게 이론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불교이야기를 할 수가 있다.
다, 衆生에게 廻向
菩薩如是心淸淨하야 善根廻向諸群生하고
普欲令其成正道하야 具足了知諸佛法이로다
보살들이 이와 같이 마음이 청정하여
선근으로 중생에게 회향하면서
그들이 바른 도(道)를 모두 이루어
온갖 불법(佛法) 구족히 알게 하려네
*
중생(衆生)에게 회향(廻向): 중생에게 회향하다
*
보살여시심청정(菩薩如是心淸淨)하야: 보살이 이와 같이 마음이 청정해서
선근회향제군생(善根廻向諸群生)하고 :선근으로 모든 군생들에게 회향한다.
내가 노래처럼 부르는 선근회향이다.
보욕영기성정도(普欲令其成正道)하야 : 널리 그 군생들로 하여금 정도를 이루게 해서
구족요지제불법(具足了知諸佛法)이로다: 모든 불법을 구족하게 요지하게 함이로다.
라, 利益
十方所有衆魔怨을 菩薩威力悉摧破하니
勇猛智慧無能勝하야 決定修行究竟法이로다
菩薩以此大願力으로 所有廻向無有碍하야
入於無盡功德藏하니 去來現在常無盡이로다
시방에 수가 없는 마군과 원수를
보살의 위력으로 꺾어 부수니
용맹한 그 지혜를 이길 이 없어
결정코 구경법(究竟法)을 닦아 행하리
보살이 이와 같은 큰 원력으로
간 데마다 회향하여 걸림이 없고
무진(無盡)한 공덕장에 들어갔으매
과거. 현재. 미래에 다함이 없네
*
이익(利益) : 이익을 이룸
*
시방소유중마원(十方所有衆魔怨)을 : 시방에 있는 온갖 마, 원, 이것은 부정적인 요소 장애되는 요소다. 예를 들어서 내 몸이 아파서 장애되기도 하고 마음에 어떤 상처를 받아서 장애되기도 하고 외부의 문제들, 주변환경 때문에 뜻하지 않게 장애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더라도
보살위력실최파(菩薩威力悉摧破)하니 : 보살위력으로도 실최파라. 보살의 위력은 굳건한 원력, 보살심이다. 그것으로써 부정적인 것을 다 꺾어버리고 깨뜨려 버린다.
부정적인 문제나 상황을 쫓아다니기로 하면 끝도 없다. 우리는 감기 걸렸다고 끄달리고, 소화 안된다고 끄달리고, 배 고프다고 끄달리고, 너무 많이 먹어서 끄달린다. 선방에 있으면 국수 먹었다고 방선하고 떡 먹었다고 조기방선하고 삭발일이라고 방선하고 빨래한다고 방선한다. 그래서 일년 365일중에 공부하는 날이 반도 안 된다.
참 신기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공부 분위기가 그렇지 않았다. 그 때 모처럼 총무원에서 전통경학을 부흥시켜야 되겠다고 해서 은해사에 승가대학원을 만들고 내가 그 첫 소임을 맞게 되었다. 그때는 1월 1일도 쉬지 않았다. 아무리 음력설을 쇤다 하더라도 1월 1일날 쉴 핑계가 얼마나 좋은가? 재야의 종을 울리고 야단법석인데도 안 쉬고 그냥 공부를 밀어붙였다. 밀어붙이면 밀어붙여지는 것이다. 그럼 결과적으로 공부한 것만 남는다.
그런 것이 다 보살위력이다.
주변의 장애요소를 그렇게 없애는 것이다. 마구니니 원수니 원한관계니 이런 것들은 모든 장애요소를 일괄 말하는 것이다.
용맹지혜무능승(勇猛智慧無能勝)하야 : 용맹한 지혜, 능히 그 누구도 이길 이 없어서
결정수행구경법(決定修行究竟法)이로다: 결정코 확실하게 분명하게 구경법, 최고의 가는 법을 수행하도다. 구경법, 제일가는 법, 화엄법, 최고대승불법, 보살대승불교를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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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차대원력(菩薩以此大願力)으로: 여기 바로 나온다. 이 큰 원력으로써
소유회향무유애(所有廻向無有碍)하야: 있는 바 회향이 걸림이 없어서. 원력가지고 밀어붙이는데 누가 방해를 하겠는가? 바른 길이고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법이고 많은 사람에게 보탬이 되는 법이기 때문에 결국은 그것이 승리하게 되어 있다.
마음이 약하고 원력이 부족하면 주저주저 하게 되고 주저주저 하다보면 이것저것 핑계거리가 많이 생기게 된다.
입어무진공덕장(入於無盡功德藏)하니 : 무진공덕장, 다함이 없는 공덕의 창고, 공덕의 보물 창고에 들어가게 되니
거래현재상무진(去來現在常無盡)이로다: 과거든 미래든 현재든 항상 무진공덕장이다.
무진장 스님은 이 뜻이 좋아서 당신 이름을 무진장이라고 해버렸다. 우리 본성이 원래 무진장이다. 그런데 무진장한 것을 이런 훌륭한 가르침을 통해서 일깨워야 된다. 그냥 가만히 두면 그것이 끝까지 발현되지 않고 사장(死藏)되어 버리다. 자꾸 이런 것을 통해 들쑤셔서 일깨워 놓아야 한다. 그냥 두면 안된다. 보살의 원력이라고 하는 건 참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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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하셨........
‘불법으로써 세상을 장엄한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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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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