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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화사한 봄날에 후배들과 서울산 나드리-안산 인왕산 백악산 곡장봉 말바위봉
언제 : 2022. 4. 26(수) 맑음
누가 : 초등 후배들(구0완 김0수)과 나
왜 : 선후배간 우정과 건강을 위하여
어디를 :
안산(무악, 금화산, △295.9) : 서대문구 봉원동 연희동 홍제동 현저동 영천동
약2.3km 1시간20분(진행1시간10분 휴식10분 포함)
인왕산(△339.9, 우백호) : 서대문구 홍은동 홍제동, 종로구 무악동 누상동 신교동 청운동 부암동
약 2.7km 2시간50분(진행1시간30분 휴식1시간20분)
백악산(백악, 북악산, 342.5, 북현무) : 종로구 청운동 삼청동 부암동 신영동 평창동
곡장봉(310.9) : 종로구 평창동, 삼청동
말바위봉(210) : 종로구 삼청동, 성북구 동소문동
약7km 3시간10분(진행2시간30분 휴식40분)
얼마나 : 약12km 7시간20분(진행5시간10분, 휴식2시간10분)
필요지도(지도를 클릭하시면 선명한 큰지도로 보실수 있습니다)
진행경로
서대문구 봉원동 금화터널인근 들머리-봉원사-안산-하늘다리-인왕산-창의문(자하문)-백악-청운안내소-곡장-백악 삼청터널-말바위전망대-혜화문-낙산-동대문 날머리 대신 말바위전망대에서 녹산약수터-우정의공원-한성대입구역으로 진행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나드리 궤적1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나드리 궤적2
초등학교 후배들이 얼마전에 모였을 때 등산이야기가 나오고
말 나온김에 나들이 삼아
전국에서 제일가는 명당자리에 들어앉은 조산왕국의 왕궁인 경복궁과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가 들어앉은 청와대를 품고 있는
백악산(북악산)이 개방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보지 못했는데
그러면 백악산 하나만 간다는 것은 너무 간단하니
그 옆에서 그 주산인 백악산을 보호하고 있는
좌청룡에 해당하는 인왕산과 우백호에 해당하는 낙산을 들러보는데
그것도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
양념으로 인왕산과 형제의 산으로 인식되고 있는 암산인 안산을 끼워넣어
서울산 봄나들이를 하자고 합의를 하고
3개월여가 지난 오늘
초등시절 뛰어놀던
중등시절 방학때면 매일 올라가 코르위분겐을 연습하던
안산의 봉원사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금화터널 앞 봉원사입구 : 8:00
태고종의 총본산인 거찰 봉원사를 들머리로 올라가면서
그 옛날 그곳을 흐르던 창천은 복개공사로 눈에 보이지 않게 되고
가재를 잡고 놀던 그곳은 지금쯤 생활하수가 흐르고 있지는 않을가
심히 염려스럽다
푸를창滄 개울천川 즉 푸르고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다
즉 이개울의 이름을 따서 지금의 창천동이 생긴 것이며
그 아래 창전동은 창천을 끼고 있으며
노고산과 와우산 자락에 밭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지금은 발원지부터
한강 합수점인 서강까지 전부 복개공사를 해서
물 흐르는 것을 볼수도 느낄수도 없다
절입구로 가서
그 옛날보다 어마어마하게 커진 절구경은 생략하기로 한다
한친구는 장로님이시고
또 한친구는 열열한 신도라 그리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종무소가 있는 입구에서 우쪽으로 방향을 틀어
돌계단으로 10여m 올라 민가 나오기 직전
좌쪽 산으로 올라가는 4급길이 보이면 그리로 오른다
봉원사 우측 조악한 등산로 이정판
아주 조그만 조악한 방향지시판이 땅바닥에 썩은 나뭇토막처럼 놓여있다
0.3
등산로입구 : 8:10
얼마안가 그 유명한 안산둘레길을 만나고 길은 도로같은 2급길이다
좌쪽으로 방향잡고 가다가
우쪽 능선으로 올라가는 야자매트길로 방향을 잘 잡고 오른다 : 8:15
수많은 갈림길에 이정목 장의자 등 편의시설로 도배를 한다
흐드러지게 핀 황매화
ㅜ자능선으로 올라서면 우쪽으로 가면
봉우리같지도 않은 금화봉(?)을 거쳐 서대문로타리로 가는길이고
정상은 좌쪽으로 시나브로 올라야 한다
안산 주능선으로 올라선다 : 8:25
ㅏ자길 무슨 공원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는데
정상을 찍고 다시 이곳으로 와서
길을 잘 고르면 무악재를 건너가는 하늘다리를 만날 것이다
이후 능선을 고집하면서
한강쪽으로 조망이 터지는 곳을 지나
올랴다본 기암
바윗길 험악한 암릉을 오르는데
계단길 난간길 등 안전시설이 되어있어 어렵지 않지만
바위 암릉 급경사에 있는 왕사를 특히 조심해야 한다
미끄러지는 날이면 사망아니면 중경상이다
이런 길이 인왕산을 내려가 자하문(창의문)까지 계속된다
천하의 조망 능선을 올라
일망무제 천하의 조망처인 봉수대로 올라선다
인왕산 북악산 구진봉 그리고 낙산까지 능선이 그려지고
그뒤로 불암산 용마봉 아차산 그 뒤로 천마산 예봉산까지 가늠이 되고
검단산 남한산성 청계산 우면산 관악산 삼성산 그뒤로 광교산
인천의 산들이 조망이 되고 최고봉인 계양산은
실질적인 정상 오를수 없는 군부대 봉우리에 막혀 조망이 안된다
빽을 해서 부실한 이정목을 잘 판단해서 길을 가늠하여
무악재를 넘는 하늘다리를 잘 찾아서 건너간다
우측 끝 가까운 인왕산 가운데 뾰족한 봉우리가 북한산 보현봉
좌쪽으로 비봉능선이 이어지며 문수봉
평지능선 같은 능선이 이어지도 뾰족하게 살작 올라온 비봉
좌쪽으로 내려가는 지점 봉우리 같지도 않은 향로봉
좌쪽 끝 꼭 독수리대머리 닮은 족두리봉
봉수대 올라가는 암릉 우측 사면길
인왕산 우쪽으로 머리가 올라온 백악 좌쪽으로 머리만 보이는 구진봉
저멀리 관악산 청계산
안산이 무악이라고 인정을 하는 봉수대 안내판
그런데 산자를 하나 더 붙여서 옥상옥을 만들어버렸군요
무악 봉수대
봉수대에서 바라본 좌쪽 가까운 백련산 저멀리 봉산 앵봉
독수리대머리 닮은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가운데 동네는 제일 가까운데가 홍제동 그다음이 홍은동 저멀리 녹번동 불광동 갈현동
먹진 자태를 뽑내는 비봉능선 전경
남산 롯데타워도 보이네요 잘 찾아보세요
좌쪽 저멀리 청계산 정중앙 왼쪽 높은산이 관악산 우측 낮은산이 삼성산
정상 직전 송신탑과 뾰족한 헬기장인 안산정상
정상에서 다 내려와서 만들어놓은 공룡알 전시장(내가 불러본 이름임^^)
다 내려온 ㅓ자안부 하늘다리 가는길
이런 목조데크계단길이 한동안 계속됨
온 산자락이 노란 물감을 풀어놓은듯한 애기똥풀꽃이 만발했습니다
끊어서 냄새를 맡아보면 애기똥 냄새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마도 이곳 아래가 옛날에 똥치골이래서 그런 풀들이 나는 모양이라며
웃음꽃이 핀다
참고로
옛날에는 하수시설과 정화시설이 안되어있어
사람이 일일이 바가지로 똥을 퍼서 똥통을 지게로 지고 다니며
일일이 져날라 똥차에 옮겨붇고 정화시설로 옮겨갔다
바로 그 정화시설 말하자면 똥공장이 있던 곳이
지금의 현저동 서대문형무소 옆
지금 서대문의회건물이 있던 곳에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골짜기 이름이 똥치골이 되었던 것이다
드디어 하늘다리 가는 이정목이 나왔다
수없이 많은 갈림길에 표시가 없으니 잘 골라서 가야한다
이런 도로같은 길이다
드디어 무악재를 건너가는 하늘다리 바로 앞 팔각정을 만나면
아무 표식이 없더라도 우측길로 내려가야 한다
갈림길에 이정목이 나오고
좌쪽 하늘다리쪽으로 간다
좌쪽 숲이 무성한 곳이 동물이동통로인 생태육교
우쪽으로 별도로 사람이 다닐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바로 이 육교를 하늘다리라고 명명을 한 모양이다
90, 2.3
무악재 하늘다리 : 9:20
여기까지가 안산이다
이제부터 인왕산이다
전에는 없던 인왕산 올라가는 길이
전부 목조데크계단길로 만들어져 있다
물론 그 옛날에는 사면으로 나있는 무속인들 기도처를 지나는 바윗길이다
지금도 두어곳 무속인 기도처가 나오며
통돼지 한 마리를 옮기던 사람이 기진맥진 쉬고 있는 곳을
양해를 구해 사진 한장 찍는데 성공했다
뭐하러 찍느냐고 항의하는 여인네가 그늘 속에서 나오며 한소리 하는데
그냥 신기해서 찍는다며 웃으며 지나간다
하두 그런 사람이 많은지 그러려니 하며 두말 안한다
본능선인 성곽을 만나고 우로 조금 내려가서 성곽을 건너
좌쪽 군부대를 향해 오르는데 이건 길이 고속도로 1급길로 바뀐다
옛날에 다 군인들이 다니던 길이라 그렇다
좌쪽 성곽을 넘어 홍제동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지나
거대한 바윗길 급경사를 힘들게 채고 오르면
조악한 나무정상목이 있는 인왕산 정상이다
커다란 바윗덩어리 하나가 있는 위로 오르면
그위에 삼각점이 있으며 사방팔방 조망이 안터지는 곳이 없다
일망무제 안보이는 곳이 없고 내집도 찾을수 있는데
갑자기 가스가 잔뜩 끼어 먼데는 흐릿한 실루엣으로 보일뿐이다
구0완이 사랑방인 멋진 곳에서 배낭을 풀고
북악산을 바라보며 정상주 한잔하며 고시레도 하고
에너지를 보충한다
무려 1시간20분을 늘어지게 쉬고 일어난다
북악하늘길 2차선도로를 만나고
그 도로는 좌로 넘어가고 산으로 들어가
새로 생긴 윤동주시인의 동산을 지나
자하문고개는 고가도로로는 지나갈수 없고
무조건 세검정과 청운동을 넘는 고갯마루로 내려가야 한다
하늘다리로 무악재를 건너가서 바라본
유관순 안중근 등 수많은 독립군들을 잡아 가두고 사형을 집행한
악명높은 서대문형무소를 독립문공원으로 리모델링한 건물들
하늘다리를 건너가서 바라본 거대하누 암장인 안산 전경
5월이 오기전에 조금이라도 잔인한달의 이미지를 씻고자
4월인데도 흐드러지게 핀 산사나무꽃
보통 양지쪽에서 햇빛을 듬뿍 받으며 피는 꽃이고
잘보면 상큼한 향이 좋은 사과꽃과 똑같다(나만 그리 보일지도 모른다)
가을에 엄지손톱만한 사과와 똑같이 생긴 빨간 미니사과가 주렁주렁열린다
맛은 실제로 사과보다 향이 더 강하고 맛있다
40대때 산에 열심히 다닐때는 내 닉을 어느분이 산사나무라고 불러주던 때가 있었다
그때가 좋았는데 세월이 아쉽기만 하다
목조통나무계단 중간 거대한 바위 아래 인왕정이라는 정자가 있고
또 똑같은 조망을 즐길수 있다
150, 2,5
팔각정 : 9:30 9:40출발(10분 휴식)
인왕정에서 바라본 멋진 암봉인 안산
옛날에는 돌길 급경사로 이어지던 길인데
이제는 이런 데크길로 간다 격세지감을 아니 느길수 없으나
굳이 이런식으로 만들었어야하는가 하는 아쉬움도 묻어난다
해골바위 저기에 이름을 올리면 무병장수할수 있나요
뭐하는 짓인지 어디 가서 챙피해서 이런 사진 내놓겠어요^^
서양종교와 인도종교 중동종교는 우리종교를 밀어내고
정부에서 허가까지 해주어 커다란 빌딩짓고
온갖 음식 다 차려놓고 온갖짓 다하는데
저런 식으로 근근히 맥을 이어가는 우리민속종교만
너무 차별대우 하는 것 같아 안스럽기도 합니다
기도처 : 9:55
모자바위?
또 다른 기도처
1급 성곽길
군부대 앞을 지나 철계단으로 오르고
백악자락 가야할 산줄기 경복궁 청와대가 내려다보인다
인왕산 거대한 바위산
尹容肅(?) 예나 지금이나 돌에 이름을 새기면 영원히 살줄 알았는가?
멋진 천수천지 소나무 불꽃같이 타오르는 형상이 멋드러진다
멋진 소나무 보호수를 지나(240, 3.1) : 10:05
좌로 성곽을 넘어서 철계단으로 내려가면
홍제동 가는 길이다
230, 3.3
ㅓ자길 : 10:10
인왕산 정상 가운데 바위를 올라가야 정상이다
그 위에 삼각점이 있다
조악한 인왕산 정상목
인왕산 정상에서 삼각점을 내려다보는 구0선 후배님
서울407 1994복구 삼각점
가야할 백악 누진봉
남산
백악 저멀리 용마봉 아차산
3.6
인왕산 : 10:20 10:25출발(5분 휴식)
내려가다가 적당한 곳에서 힘을 보충한다
3.9
10:30 11:40출발(1시간10분 휴식)
기차바위 갈림길 좌측 암릉이 기차처럼 보이나요^^
저멀리 우쪽 갈고리처럼 생긴 보현봉 부터
좌쪽으로 문수봉을 지나 비봉능선의 골체미 의상봉도 머리만 내밀고 있음
기차바위와 보현봉 밑의 평창동의 명당동네
이정목에 기차바위260m, 창의문(자하문)1.4, 하늘다리1.6
해골바위 : 9:50
무속인 기도처입니다
모자바위라는데 글쎄요 나는 달팽이바위 같네요^^
무속행위금지 펼침막 밑에 막 통돼지한마리를 부린다
이걸 짊어지고 올리온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막 쓰러져버리더라구요
사진 찍는다고 무속인에게 허락맞고 찍은 사진입니다
기도를 하고 난후 촛불과 음식들을 잘 처리하면
우리고유의 종교이자 삶의 한축이었으며 문화였는데
굳이 금지까지 해야하는가 하는 안타까움도 있다
기차바위 갈림길 : 11:45
가야할 산줄기 자하문 북악산
푹거진 원형건축물은 군부대 교회건물이고
그 아래가 윤동주동산을 지나 푹꺼진 자하문(창의문)이다
보이지는 않는다
모르고 지나가면 두나무 사이에 통나무장의자인줄 알겠지만
그건 부부소나무인 연리지소나무다
떡반죽바위(내가 본 느낌임^^)
산사나무꽃이 만발했어요
군부대 문이 잠겼군요 우쪽으로 내려갑니다
이런 북악하늘길 2차선 도로로 나간다
ㅏ자길 데크계단길 수성동계곡 가는길 : 11:50
군부대 : 12:00
도로따라가다 우쪽 포장도로로 간다
윤동주 시인님의 언독
서시비도 오래간만에 보고
고가도로로는 못가고
깍아서 도로를 낸 자하(창의)재까지 내려야함
130, 5
3차선도로 자하문(창의문) : 12:10
여기까지가 인왕산이다
이제부터 백악(북악산)이다
고갯마루서 좌쪽으로 나가서 북악하늘길을 따라도 되고
우쪽으로 내려가 자하문으로 올라
이후 사람죽이는 1000계단 급경사 성곽길을 따라도 된다
김신조간첩사건때 제일 처음 발견한 사람 동상이 있는 곳에서
좌쪽 자하문에서 갈길을 정하는데
성곽길은 예전부터 다니던 길이라
이번에 새로 개방한 길로 올라가보기로 결정하고
자하문을 통과 암문을 또 통과하면 북악하늘길이다
자동차도로를 따라도 되지만
좌쪽 동네길로 들어가면 자동차 걸리적거리지 않고
편하게 오를수 있다
우쪽으로 그북악하늘길을 지하통로로 나가
개방한 철책 울타리를 통과하면
능선 좌쪽 사면길로 목조데크계단길이 한도끝도 없이
청운안내소까지 이어진다
그길이 싫다면 북악하늘길을 따라 직접 여기까지 와도 된다
여기서 각자 방문목걸이를 받아야한다
신분증은 없어도 누구나 준다
아마도 그 방문목걸이를 받으면 반납을 해야하므로
뻘짓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 전산운영 경비와 인력이 2명씩 배치되어있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그리고 오후 4시 이후는 통행금지다
결국 완전개방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미아리고개로 가는 누진봉은
군부대라 오를수가 없고
그 밑 북악하늘길 팔각정까지만 갈수 있는 것 같다
또 끝없는 목조데크계단길로 성곽으로 올라서
우쪽으로 오르면 김신조총알받이 소나무를 지나
약간의 공터인 정상으로 올라서면 조그만 백악산 정상석이 있고
북악산옛모습으로의복원비도 있고 커다란 바위가 있어 오르면 조망이 좋지만
안오르면 조망은 하나도 없는 답답한 곳이다
여기도 예외는 아니라
사복군인인지 경찰인지 경비를 하고 있으며
사진도 찍어주고 물음에 대답도 하는 안내원 노릇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고마운 것은
북악산의 옛이름인 백악이란 이름을 찾아준 것이 고맙다
단지 백악산이라고 한 것이 조금 걸린다
왜냐하면 산경표에는 백악산이 아니라 백악이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님들은 같은 의미의 두글자를 겹쳐서 쓰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즉 산이란 것은 그냥 보편적인 산이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악은 험악한 바위산을 부르는데 많이 쓰고 있었으며
그 뒤에 다시 산자를 붙이지 않았지만 전부다 그런 것이 아니라
들쑥날쑥해서 딱히 어느 것이 맞다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어느험한 높은 산을 보통 악자를 쓰는데
굳이 그 뒤에 보편적인 산을 붙일 필요가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몇 개 예를 들어보면
설악산이 산경표에는 설악이라 했고
97년뒤인 대동여지도에는 설악산이라 했다
오늘 가는 안산은 산경표에는 무악이라 했고
도성도에도 무악이라 했으나
대동여지도에는 아예 명칭이 없다
오늘 가는 백악산은 산경표에는 백악이라 했고
도성도에도 백악이라 했으나
대동여지도에는 아예 명칭이 없다
그리고 오늘 가는 산들의 모산인 북한산은
산경표나 대동여지도는 삼각산이라고 했으나
내가 어느 책에서 본지는 정확히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 옛날에는 부아악으로 불리워졌다
그러나 관악산은 여기저기 다 관악산이다
즉 일관성이 없지만
악으로 끝나고 산을 붙이지 않은 이름이 더 많다
제이름을 찾아준 김에
국립지리원지도에도
무악 백악이라고 수정을 해 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악은 그 이전에는 금화산이라 불렀으니
지금도 남아있는 이름으로는 금화터널이 있고
그 밑의 냉천동에는 금화초등학교가 지금도 있어서
무악이라는 지명보다는
그 이전의 금화산의 예쁜 이름을 찾아주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지금도 서대문구의 안산자락의 동명을 설명할 때
금화산의 이름을 넣어서 설명하고 있다
냉천동(冷泉洞)
금화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냉천동은
경기대학교 북쪽지역 부근에 맑고 찬 우물이 있다하여
"찬 우물골"로 불리워지다 이하 생략
영천동(靈泉洞)
영천동이라는 이름은
금화산 중턱에 "영천"이라고 부르던 약수가 유명하여
그 이름을 따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하 생략
경복궁이 천하의 명당인 이유
작금에 풍수지리적으로 청와대가 안좋아서 이사를 간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알기로는 천하의 제1명당은
음택으로는 국립현충원이 있는 서달산이고
양택으로는 조선조 500년의 궁궐인 경복궁이 있는
백악산 자락이 천하의 제1명당자리라는 점이다
왜 경복궁이 천하의명당중에서도 명당자리인지
대충 설명해보면
내가 알기로는 명당이란 명당의 조건이란 것이 있다
즉 배산임수의 지형으로서
뒤로는 산이 둘러쳐져 있어야하며 앞으로는 개울이 흘러야 한다
배산은 내사산으로 둘러쌓여야 하고
외사산이 그 내사산을 지켜주어야 하는 지형이 명당자리인 것이다
여기서 배산은 등뒤의 산으로 백악이 버티고 있고
임수로는 앞으로 청계천과 한강이 흐르고 있다
내사산을 보면
좌청룡으로는 낙산이 있고 우백호로는 인왕산이 있다
남주작으로는 목멱산이 있고 북현무로는 백악이 있다
남주작인 목멱산이 궁 앞에서 노출을 막아주고 있는 산으로 안산(案山)이라 했고
북현무는 배산의 산으로 궁을 떠안고 보호하고 있으므로 주산(主山)이라 했다
외사산을 보면
좌청룡을 보호하고 있는 아차산이
우백호를 보호하고 있는 앵봉이 학의 날개를 피고 보호하고 있으며
혹자는 멀고먼 행주대첩의 덕양산을 말하고 있으나
창릉천의 끝자락 한강변 산으로 산이 작기도 하지만
너무 멀어서 그 기가 경복궁까지 이어져 보호를 할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 생각이다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다
남주작을 보호하고 있는 관악산을 조산(朝山)이라 하고
북현무를 보호하고 있는 삼각산을
궁을 보호하고 있는 모든 산의 으뜸이라 하여 조종산(祖宗山)이라하고
그 웅장하고 깊으며 깊이를 헤아리수 없는 조종의 위용은 견줄바가 없다
여기서 인왕산과 거의 같은 급의 암산인 안산은 인왕산권으로 보면 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성계가 정도전을 시켜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고
무학대사에게 국태민안이 영원히 계속될수 있는 도읍터를 마련하라 했다
좌청룡과 우백호가 동격으로 보호를 해주어야하는데
우백호인 인왕산은 높이가 300m가 넘는 거대한 바위산인데
좌청룡인 낙산은 높이가 100m가 조금 넘는 육산이라 비교 자체가 안된다
바로 그 백악산자락 밑에 경복궁을 만들자고 한 사람은 정도전이고
무학대사는 그런 약점이 없는 즉 인왕산 자락에 궁을 앉히면
주산이 인왕산이 되고 좌청룡이 북악산이 되고
우백호가 안산이 되므로 그 세력이 전부 동격이 되므로
궁을 지키는데 풍수지리적으로 완벽한 명당이 된다는 것이다
만약 그랬으면 임진전쟁이나 일제침략 같은 난이 없었을지도 모르고
지금쯤 세계 최강국이 되어 인류평화공영에 매진하고 있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성계는 같이 나라를 설계한 정도전의 손을 들어주고
무학대사를 팽시켰다
그때부터 조선조 500년은 성리학의 공리공론이 당파를 만들고
중국에 사대를 했으며
각종 난에 휩싸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관악산은 화기가 세서 한강을 건너 궁까지 미치므로
광화문 앞에 해태를 만들어 그 기운을 잡게 하여
불에게서 안전을 지키려 했다
그런 약점이 있어 조금이라도 상쇄를 시키려고
인왕산 자락인 서촌에서 기거하며
완벽한 명당자리를 만들려고 노력들을 해왔으며
세종대왕이 그 서촌에서 태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복궁의 전체적인 모양이
여성의 생식기를 닮은 천하의 명당자리라
자손이 천대 만대 창성할 자리라
그 모든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자리로 보는 것이다
즉 천하의 명당자리라는 것이다
지금의 청와대 자리는 경복궁의 서쪽
즉 인왕산에 좀 더 가까이 배치함으로
안산의 기운까지 받으려 노력한 자리로
천하의 명당인 경복궁보다 더 한수위인 명당인 것이다
그런 곳을 어찌 남산을 주산으로 하는
국방부 자리와 비교하리요
이글은 누구를 폄하하거나 논쟁을 하기 위해 작성한 글이 아니고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을 사심없이 적어본 것이므로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생각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모든분들 늘 행운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청운대를 지나 전망대 휴게소 등을 지나며
좌측으로 누진봉 군부대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그 아래 계곡에 어마어마하게 큰 삼청각이라는 음식점 구경도 하고
곡장봉(휴암) 말바위봉(응봉)전망대에서 성곽을 넘어 혜화문을 가는
사면길로 진행하며 그 어디에도 낙산을 이야기하는
이정표나 안내판 등이 하나도 없고
혜화문 가다가 도로로 내려서기전 마지막 거대한 안내지도를 보니
아무래도 혜화문쪽이 아니고 녹산약수터쪽으로 해서
한성역쪽으로 손톱만큼 남아있는 능선으로 가는 것이 맞는 것같아
빽을 해서 그리로 내려가다
부적합한지도 모르고 무조건 약수물을 한바가지 마시고 한병 받았는데
뒤따라오는 후배들은 용케도 그 안내문을 보고 안마셔서 다행이다
이구 설사가 나오면 어쩌나 걱정이었는데 다행이 그러진 않았다
낙산을 찾아야하는데 그 안내판에 그려져 있는 길을 따라
동네 포장길로 진행하다
각국국가 국기가 게양된 우정의공원을 지나
버스 종점에 이르니 후배님께서 더 이상 못가시겠단다
산2개만할걸 공연히 고생시킨 것 같아 얼른 알았다하고
버스종점에서 기다리던 버스를 타고 한성역에서 오늘 산행을 접는다
아무래도 진행상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집에 돌아와 그 옛날 도성도를 보니 혜화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진행을 해야 낙산이 표기되어 있고
동대문을 지나 청계천에서 산줄기는 끝난다
여기는 알고 있던 상황인데 도시화가 되어있어
산줄기 하나를 건너뛰어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즉 혜화문의 위치가
지금의 혜화전철역 인근에 있는줄 생각했던 것이
결국 지도에 표기는 안됐지만
그리로 갔어야하는 예지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러나 늦지는 안았다
성북동 도로따라 내려가다
우쪽 능선으로 동네길을 따라 오르면 되지만
동네 한가운데 손톱만하게 남은 낙산은 다음으로
동망봉(△93.2)과 함께 답사하기로 하고
오늘은 4호선전철에 몸을 실었다
전번 모임때 오늘 하산주는 내가 모래내에 가서
50년전통 집으로 가서 사기로 했으니
구0완 후배님 제수씨를 가좌역으로 오시라고 전화를 하고
전철을 갈아타고 가좌역에서 만나
다같이 그집으로 들어가 맛있는 식사를 하며
하산주를 마시며 다음번 산행을 아예 정해버린다
7월 6일 둘째주 수요일 9시 야당역에서 만나서
심학산 둘레길 산행을 하기로 한다
전철에 짐짝처럼 떠밀려가다가
구0완 부부가 갑자기 강매역에서 내린단다
오늘 산행 잘했으니 커피 한잔을 사겠다고 하니
에고 그냥 갔으면 좋겠는데 호의를 베푼다는데
고맙기도 하고 거절할수도 없어 일단은 내렸는데
커피집이 있을리 만무하다
할수 없이 불친절한 포차 생맥주집을 갔는데
손님으로서 말한마디 꺼내다가 쥔장한테 혼나고
마눌까지 불러낸 마당에 성질 같이 부리고 나올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 일대에 다른업소가 없는 줄 알고있어서 더욱이 그랬다
지금생각하니 통닭집이 한군데 있긴한데
분위기가 영아니어서 참길 잘했다
그리고 일단은 같은 동네사람 아닌가
그런데 생맥주도 없단다
할수 없이 비싼 병맥주에 맛있는 골뱅이소면을 오래간만에 시켰는데
말을 안해도 참기름을 안치고 무쳐서 맛있게 먹을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
부동산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그냥 어 그래 어이구 잘했어요 하면 될 것을
평소때 내 뚜렷한 주관이 있으니
술도 약간 오른 김에 참지 못하고 버럭 큰소리를 치고 만 것이다
하고나니 민망하고 미안하고 그렇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담아 넣을수도 없구
아무튼 선배로서 분위기 없이
스타일 다 구긴 것 같아 서글픈 마음이다
그넘의 부동산이야기 나오는 바람에 그리 되었으나
마음은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여 주었으면 좋겠다
다음번에 만나면 사과를 단단히 해야할 것 같다
에구 이넘의 주둥아리.........
다 둘인데 입이 하나인 것은 말조심하라고
조물주가 입을 하나만 만들었다는데 그걸 못참고 그랬으니
나이를 먹더니 참을성까지 없어진 것같아
민망할 뿐이다
이 자리를 빌어 극구 미안함을 전한다
자하문(창의문) 옆모습
김신조일당을 제일 먼저 발견한 분의 동상이 있는 곳에서
좌쪽 절개지가로 너른 길따라 오름
창의문 올라가는 계단길 우쪽 2사람이 내 후배님들이다
펼침막에 쓰여진 그 길로 오르기로 한다
자하문(창의문)
암문을 나가면 북악하늘길을 만나게 된다
북악하늘길 밑으로 나간다
북악산 등산로 안내판
한없이 올라가는 목조데계단길
청운대안내소(220, 6.3) : 12:45 13:05출발(20분 휴식)
건물로 들어가 입산목걸이를 받고 전산체크기를 통과해야 오를수 있다
드디어 철문을 통과 성곽을 만났다
성곽을 넘으면 멋진 소나무가 있는 너른 쉼터가 나온다
1.21사태(김신조간첩단사건) 소나무 안내판
1.21사태(김신조간첩단사건) 소나무 수많은 총알을 맞고도 굳세게도 살고 있다
북악산옛모습으로의복원비
주변 나무들이 자라 백악 정상 바위 위로 올라가야 조망이 터진다
백악(백악산, 북악산) 정상석(342.5, 6.8) : 13:25 13:40출발(15분 휴식)
왜 사복 군인아저씨가 지키고 있는지 알길이 없네^^
청운데 표시석
백악산사진조망도
백악산 조망명소 : 13:45 13:55출발(10분 휴식)
곡장봉(310.9, 7.4) : 14:00
성곽을 따라 멋진 소나무숲길이 이어진다
건너다보이는 구진봉 정상은
군부대라 오를수 없는 모양이다
안내목에 숙정문 나가면 촛대바위 청운대쉼터로 가는 길이라는데
청운대는 말이 안되는 방향지시판이다
지나온 길에 곡장도 있고 청운대쉼터도 있으니 말이다
210, 7.9
숙정문 : 14:10
말바위전망대 올라가는 성곽길
너른 말바위 데크전망대(210) : 14:15 14:20출발(5분 휴식)
청운대안내소에서 받은 명찰을 반납한다
시나브로 오르며
내려다본 삼청각 옛날에 요정이었는데
지금은 무엇으로 활용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냥 보편적인 한식당이 되어있으려나
아님 지금도 요정처럼 기생이 나와서 수발을 들어주는 집인지 궁금타
옛날부터 서울의 부촌으로 알려진 성북동
그러나 제일 가난한 사람들이 산기슭에 토굴을 파고 사는
빈민가와 공준하는 동네이기도 하다
바라본 남산
희얀하게 꼬인 멋진 소나무
서울423 1994재설 삼각점이 있는 말바위봉 전망대
삼각점이 숨어있어서 어렵게 찾아내었다
멋진 바위전망대
말바위봉 바위전망대( △207.8, 8.5) : 14:30 14:40출발(10분 휴식)
약간 빽해 혜화문으로 가는 성곽을 넘어가는 길
길
요런 표시띠를 잘 살펴가면서 와룡공원으로 간다
쉼터
아무리 찾아보아도 낙산이 없다
오록스지도나 이산경표를 찾아보아도 못찾아서
여기서 헷갈리기 시작한다
혜화문 가다가 도로로 내려서기전 마지막 거대한 안내지도를 보니
아무래도 혜화문쪽이 아니고 녹산약수터쪽으로 해서
한성역쪽으로 손톱만큼 남아있는 능선으로 가는 것이 맞는 것같아
빽을 해서 그리로 내려가다
도면이 헷갈리게 그려져 있어서
녹산약수터로 내려왔는데
제대로 가려면 헤화문으로 내려가면 올바로 가는 길이다
녹산약수터를 지나서 나오는 동네길
개울건너 동네길 : 15:00
우정의공원 어린이놀이터 각국국기전시장(110, 10) : 15:05
도로따라가다 우쪽으로 붙어서 능선을 가늠해서
혜화문으로 가려고 했는데
버스종점에 이르니
모두들 그만 가자고 하여
어쩔수 없이 답사산행을 접고
버스를 탔다
90, 12
성북구 성북동 버스종점 : 15:20
그후
버스 종점에 이르니 후배님께서 더 이상 못가시겠단다
산2개만할걸 공연히 고생시킨 것 같아 얼른 알았다하고
버스종점에서 기다리던 버스를 타고 한성역에서 오늘 산행을 접는다
아무래도 진행상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집에 돌아와 그 옛날 도성도를 보니 혜화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진행을 해야 낙산이 표기되어 있고
동대문을 지나 청계천에서 산줄기는 끝난다
여기는 알고 있던 상황인데 도시화가 되어있어
산줄기 하나를 건너뛰어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즉 혜화문의 위치가
지금의 혜화전철역 인근에 있는줄 생각했던 것이
결국 지도에 표기는 안됐지만
그리로 갔어야하는 예지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러나 늦지는 안았다
성북동 도로따라 내려가다
우쪽 능선으로 동네길을 따라 오르면 되지만
동네 한가운데 손톱만하게 남은 낙산은 다음으로
동망봉(△93.2)과 함께 답사하기로 하고
오늘은 4호선전철에 몸을 실었다
전번 모임때 오늘 하산주는 내가 모래내에 가서
50년전통 집으로 가서 사기로 했으니
구선완 후배님 제수씨를 가좌역으로 오시라고 전화를 하고
전철을 갈아타고 가좌역에서 만나
다같이 그집으로 들어가 맛있는 식사를 하며
하산주를 마시며 다음번 산행을 아예 정해버린다
7월 6일 둘째주 수요일 9시 야당역에서 만나서
심학산 둘레길 산행을 하기로 한다
전철에 짐짝처럼 떠밀려가다가
구선완 부부가 갑자기 강매역에서 내린단다
오늘 산행 잘했으니 커피 한잔을 사겠다고 하니
에고 그냥 갔으면 좋겠는데 호의를 베푼다는데
고맙기도 하고 거절할수도 없어 일단은 내렸는데
커피집이 있을리 만무하다
할수 없이 불친절한 포차 생맥주집을 갔는데
손님으로서 말한마디 꺼내다가 쥔장한테 혼나고
마눌까지 불러낸 마당에 성질 같이 부리고 나올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 일대에 다른업소가 없는 줄 알고있어서 더욱이 그랬다
지금생각하니 통닭집이 한군데 있긴한데
분위기가 영아니어서 참길 잘했다
그리고 일단은 같은 동네사람 아닌가
그런데 생맥주도 없단다
할수 없이 비싼 병맥주에 맛있는 골뱅이소면을 오래간만에 시켰는데
말을 안해도 참기름을 안치고 무쳐서 맛있게 먹을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
부동산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그냥 어 그래 어이구 잘했어요 하면 될 것을
평소때 뚜렷한 주관이 있으니
술도 약간 오른 김에 참지 못하고 버럭 큰소리를 치고 만 것이다
하고나니 민망하고 미안하고 그렇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담아 넣을수도 없구
아무튼 선배로서 분위기 없이
스타일 다 구긴 것 같아 서글픈 마음이다
그넘의 부동산이야기 나오는 바람에 그리 되었으나
마음은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여 주었으면 좋겠다
다음번에 만나면 사과를 단단히 해야할 것 같다
에구 이넘의 주둥아리.........
다 둘인데 입이 하나인 것은 말조심하라고
조물주가 입을 하나만 만들었다는데 그걸 못참고 그랬으니
나이를 먹더니 참을성까지 없어진 것같아
민망할 뿐이다
이 자리를 빌어 극구 미안함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