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2011. 10, 01(토요일) 수 2:1- 7<라합이 정탐꾼을 숨겨주다>
오늘 본문은 가나안 정복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으로 입성하기 전에 싯딤에서 2명의 정탐꾼을 보내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과거에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후, 광야에서 각 지파의 대표들을 뽑아 가나안 땅에 정탐을 보냈었습니다. 그 땅이 어떤 땅인지, 산지인지 평지인지, 좋은 땅인지 척박한 땅인지, 또 각 성의 강약과 인구의 다소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좋은 땅이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미리 약속하신 땅이기에 믿음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백성들은 정탐하기를 원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허락하셨습니다.
각 지파에서 한명씩 12명의 정탐꾼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40일 동안 모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정탐꾼들 중 열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한 것입니다.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모든 백성들은 통곡을 하고 탄식을 했습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첫 번째 정탐을 하나님께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하여 20세 이상 주역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들어가지 못하는 불행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보낸 두 번째 정탐은 처음과는 다른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신실한 것인가를 확인시켜 주기 위한 것입니다.
믿지 못해서 정탐하는 것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정탐하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목적이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서 분명하고 반듯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해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여호수아가 두 명의 정탐꾼을 여리고성에 보냈습니다. 보낼 때, 가만히 보냈습니다. ‘가만히 보냈다’는 말은 티가 안나게 보냈다는 말입니다. 일찌기 가데스에서 열두 정탐꾼 중의 한 사람으로 활약했던 여호수아는 정탐군이 처하는 위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두 정탐꾼만을 ‘은밀히’ 보낸 것입니다.
이렇게 두 정탐꾼이 여리고 성으로 들어가 머문 곳은 기생 라합의 집이었습니다. 기생 라합 집에 들어간 것은 기생의 집'(harlot's house, KJV)은 각양 각색의 사람이 모여 사담을 자유롭게 나누는 곳이었으므로, 가나안 거민의 민심이나 정치. 군사적 동태를 파악하기에는 적절한 곳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생 라합의 집은 성벽 위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15절) 여리고 성을 조망하기에도 매우 적절한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행적이 발각되었습니다. 정탐꾼이 들어가자마자 여리고 왕이 이 소식을 보고받은 것을 볼 때, 여리고의 병사들이 그 성을 매우 철저하게 경비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 요단 강 가까이에 위치한 성읍으로서의 여리고 군대가 이스라엘이 조만간 요단 강을 건너 진격해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비상 경계를 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정탐꾼들이 여리고 경내로 들어온 것을 안 여리고 왕은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정탐꾼들을 끌어내라고 했습니다.
4절-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이 라합의 행동이 달랐습니다. 여리고 성안에 들어온 이스라엘 첩자를 숨겨준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라합의 행위는 자기 나라를 침략하려는 적군의 첩자를 숨겨주는 이적행위였습니다. 정탐꾼이 잠입한 사실은 이미 여리고 왕에게 보고되었고, 왕의 사신이 라합에게 찾아와 그들을 어디에 숨겼는지 물었지만 라합은 거짓말로 둘러대고 정탐들을 끝까지 보살펴 주었습니다.
라합의 행위는 거짓말을 한 것뿐만 아니라 나라를 적에게 넘겨주는 매국노와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라합의 거짓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여기에 대하여 두 가지 상반된 의견이 있는데, 라합의 행위는 믿음의 행위로서 죄악이 아니라는 견해가 있고, 또 하나는 라합의 행위는 분명한 죄악이지만 그러나 그 동기가 신앙적이기에 용서되고 이해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견해는 정당한 주장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거짓은 죄며 아무리 정당화해도 옳지 못한 행위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돕고 그들의 안전을 위하고 그들의 구출하기 위한 것일지라도 거짓말이 합법적일 수는 없습니다. 진실하신 하나님의 속성에 어긋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라합이 한 행위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는가를 보겠습니다.
믿음장에서 히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그가 행한 동기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 뿌리를 박고 있었던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약2: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이 여인은 이미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정탐꾼을 숨겨줄 수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