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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날 : 8월 1일(화요일)
안탈랴에서의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인구 70만의 휴양도시 안탈랴는 페르가뭄왕 안탈로스 2세의 이름을 따서 안탈랴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벌써 지중해 해변에서의 반달님 생일파티도 과거의 추억이 되었다.
어젯밤에 대충 빨아서 널었던 티셔츠와 양말들이 밤새 뽀송뽀송하게 말랐다.
오늘도 호텔에서 유럽식 아침식사를 마치고 7시 30분에 호텔을 출발하였다.
잠시 후 해변가 광장에 도착하니 셀축 제국시대에 세워진 시계탑과 동상이 있고,
멀리 안탈랴의 상징인 높이 46m의 이블린탑이 보인다.
한 때는 터키석으로 치장되어 있었다고 하며, 첨탑 아래의 기둥 부분은 매끄러운 원형이 아니라 단면을 자르면 꽃모양이 나타나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이런 첨탑들은 오스만 제국시대의 상징이란다.
하지만, 아침 햇살이 역광으로 비추어서 사진 찍기에는 별로다.
좁은 골목길의 언덕을 내려가니 바로 아담하고 예쁜 안탈랴 항구가 보인다.
주변에는 온통 유도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큰 꽃술과 열매가 달린 바나나도 보이고...
항구를 가득 메운 크고 작은 배들은 주로 안탈랴항을 오고가는 유람선이다.
가이드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예정에도 없던 지중해 유람선을 타러 갔다.
1인당 40$ 이었던가? 좀 비싼 편이었지만, 다시 오기 힘든 지중해이기에.....
우리 일행만을 태운 전세 유람선이 항해를 시작한다.
항구가 멀어지면서 저 멀리 아침 안개 사이로 우뚝 솟아있는 토로스산맥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배가 속력을 내니 코끝에 와 닿는 바닷바람이 더욱 상큼하고 시원하다.
당장이라도 지중해에 물 속으로 풍덩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갑판 위에서는 여기 저기 사진들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단체 사진도 찍고 웃고 떠들고 있는데, 구릿빛의 키 큰 터키 친구가 이맛도 저맛도 아닌 사과차를 한 잔씩 돌리고나서 터키 전통 춤을 선보인다.
춤에도 통 소질이 없지만 이 정도 춤사위라면 쉽게 따라 할만한 것 같아서 용기를 내어 흉내를 내 봤지만, 역시 나와는 거리가 먼 분야이다.
해안가 절벽은 용암이 바닷가로 흘러내리다가 굳은 모습이 장관이다.
금방이라도 다시 시뻘건 마그마가 땅 속에서 분출하여 용암으로 흘러내릴 것 같고,
그 절벽 아래의 바닷물에서는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50분쯤 가니 절벽에 제법 규모가 큰 라라폭포가 나타난다.
잠시 항해를 멈추는가 싶더니 이곳이 유람선의 유턴 지점이다.
이내 항구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나니 왠지 섭섭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 아쉬움도 잠깐이다.
정화백님과 뉴그랜저 혜당님의 두 팔 벌린 영화씬 연출이 시작되었고,
이에 질세라 상큼이님의 포즈도 아주 훌륭하다.
1시간 반의 지중해 항해를 끝내고 안탈랴 구시가지를 걸어서 둘러보았다.
어찌나 습도가 높던지 맨 몸으로 걷기도 버거운데, 카메라맨들은 오죽하랴....
이럴 땐 미사일보다 새총이 제격이다.
조용하고 좁은 골목길은 지은 지 오래된 주택들과 담장의 꽃들이 서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이 쓰는 것처럼 생긴 모자를 흥정하여 반값에 샀다.
구시가지를 빠져 나오니 번성했던 로마의 단면을 보여주는 하드리안문이 서 있다.
그 옛날 마차가 지나다녀서인지 문의 바닥 대리석은 많이 닳아 있다.
하드리아문의 벽을 보니 화산활동이 얼마나 심했었는지 짐작케 해주는 증거들이 보인다.
화산재와 용암이 뒤범벅되어 굳으면서 하드리안문의 여기저기를 덮고 있다.
흘러내리다가 식어서 굳은 모습도 보이고, 뜨거웠 용암에 의해 돌들이 까맣게 그을린 모습이 관찰된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버스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했다.
아침부터 육수를 빼고 나니 개운한 게 아니라 힘이 빠진다.
안탈랴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버스는 다시 어제 넘었던 토로스산맥을 넘는다.
‘목화성’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파묵칼레(Pamukkale)를 향해 북서방향으로 쉬지 않고 달린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지금까지 본 풍경 중 가장 삭막하다.
산에 나무도 별로 없고, 한참을 달린 후 밀밭이 나오기 시작해서야 이따금씩 집들이 보인다.
12시가 조금 지나서 식당에 도착하였다. 오늘 점심메뉴는 별로다.
버찌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속까지 부글거려 오늘 점심식사는 영 아니다.
식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호수가 보인다.
세계에서 바이칼호 다음으로 깨끗하다는 살다호수(Salda Lake)이다.
하지만, 물 속에 마그네슘(Mg) 성분이 너무 많아서 물고기는 살 수 없고, 푸르기만 하단다. 하늘색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색은 푸르지만, 호수의 물은 전혀 시원함이라고는 느껴지질 않는다.
그래도 그곳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한 낮의 햇빛은 너무나 강렬해서 눈도 뜰 수 없는데, 이곳으로 피서를 온 듯한 사람들도 보인다.
살다호수의 물은 락스처럼 미끌거린다고 해서 손을 담가보니 그런 것 같다.
석회성분이 많아서 조금만 움직여도 석회가루가 뿌옇게 일어난다.
부지런히 버스 쪽을 향해 빨리 그늘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는데, 일행 중 어느 분이 나보고 낙타를 타라고 권유한다.
더워서 그런지 성질 고약한 낙타 녀석이 귀한 손님을 엄청 놀라게 한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고, 고꾸라지듯 앉는 바람에 순간 기겁을 했다.
관객을 의식해서 의연한 척 표정관리는 했지만 속으로는 쬐끔 놀랐었다.
버스는 파묵칼레를 향해 다시 출발이다. 계속해서 토러스산맥을 넘어간다.
저 멀리 우측으로 깊은 계곡이 보이는가 싶더니 얼마가지 않아서 큰 도시로 접어들었다.
이제는 낯설지 않은 이슬람 사원들의 첨탑이 보이고,
한낮인데도 길가에는 왕래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마을을 지날 때는 무화과 열매농장과 포도밭 그리고 목화밭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또 하기 싫은 숙제(?)를 하고 가야 한단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서 물건을 사던 한국 단체 여행객들이 나가고,
우리가 한창 매장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에 또 다른 한국 패키지여행팀이 들어선다. 이런데서 만나면 서로가 전혀 반갑지 않은 게 사실이고,
표정들을 보니 이내 다른 팀의 사람들도 나처럼 울며 겨자 먹기로 끌려온 듯한 인상이다. 특히 남자들....
기다리는 동안 더운데 뜨거운 사과차를 한잔씩 준다. 별로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다.
더욱이 애연가들이 내뿜는 연기 때문에 도저히 계속 더 앉아 있기가 어렵다.
밖으로 나왔다. 도대체 목전에 있는 파묵칼레는 언제 갈 셈인지?
달리 방법이 없다. 빨리 버스에 타서 일행을 기다리는 수밖에.....
잠시 후 드디어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고원의 파묵칼레(Pamukkale)에 도착하였다. 멀리서 보면 하얀 솜을 쌓아 놓은 것 같다 하여 ‘목화 성 (Cotton Castle)'이라고 불린다.
저녁 무렵인데도 아직 햇살은 따갑다.
예전부터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이곳 파묵칼레이다.
지질학 강의 시간에 지진과 화산을 설명하면서 이곳을 빼 놓을 수 없었기에.....
말 그대로 하얀 목화성 같은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황홀하고 흥분된다.
오랜 세월동안 칼슘(Ca)과 중탄산염이 함유된 온천물이 흘러내리면서 계단식의 자연 온천장을 형성한 곳이다. 현재는 무분별한 개발로 온천수가 분산되었기 때문이며, 이제는 수영복 차림으로 온천욕을 할 수 없고 간신히 발만 담글 수 있는 정도이다. 인근 호텔에서는 노천의 천연 온천욕을 할 수 있는데 예부터 파묵칼레의 온천물은 류머티스, 심장병, 신경통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치료를 하다가 생을 마감한 사람들도 많았었다고...
여기저기서 사진을 다찍보니, 비키니 차림으로 사진을 찍는 잘 빠진 유럽 아가씨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솔직히 눈요기 감으로는 그만이다.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고 파랭이님과 상큼이님께서는 연방 셔터를 눌러 대신다.
파묵칼레의 하얀 석회층 바로 위쪽에는 로마시대의 ‘휴양 및 치료 도시’인 히에라폴리스(Hierapolis)가 있다. 히에라폴리스에는 야외 원형극장을 비롯하여 교회, 대중목욕탕, 신전 등의 유적이 있다. 시간이 없어서 히에라폴리스를 자세히 보지 못하고 차 안에서만 보고 온 점은 너무나 아쉽다. 가이드 미워!
파묵칼레를 빠져 나오는 길에 '여신의 성스러운 도시'라고 불리는 거대한 공동묘지 네크로폴리스(Necropolis)에서 잠깐 차를 멈추었다. 이 공동묘지는 여러 차례의 지진에 의해 깨지거니 부서진 석관들, 뚜껑이 없어진 채 쓰러져 있는 수많은 석관들이 두꺼운 이끼를 뒤집어 쓴 채로 나뒹굴고 있다....그리고 아직도 대다수의 석관들은 땅 속에 묻혀 있다고 한다.
이 모습을 보며 누군들 어찌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있을까?
오늘 밤 묵을 호텔(Halici Hotel)은 바로 이 근처의 아주 조용한 마을(Karahayit)에 위치하고 있다.
호텔방이 깨끗해서 아주 마음에 든다. 방음이 잘 되지 않은 것만 빼고는.....
짐을 풀고, 풀장 옆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식사 도중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여행객들과 몇 마디 주고 받기도하고,
어린 아이들과 소녀처럼 보이는 젊은 여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하고,
눈만 보이도록 까만 히잡을 두른 여인의 식사하는 모습도 신기해하면서...
맛있는 와인도 한 잔! 흡족한 저녁식사였다.
저녁을 마치고 반달님, nuri님, daume님, 김혜숙샘...등은 마을로 마차를 얻어 타고 시골장 구경을 가시고,
아그네스와 혜당님 그리고 우리 내외는 풀장 옆의 뜨끈한 노천온천탕(이게 바로 오리지널 ‘터키탕’이리라!)에서의 온천욕과 수영을 반복하며 그동안의 여독을 풀었다. 터키에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해보고, 처음 접하는 음식은 가급적 시도해 보고 가자는 게 우리 부부의 생각이었다.
말로만 듣던 천연 터키탕까지 했으니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다.!
왠지 그냥 잠자리에 들기가 서운하다.
옆방에서 얘기하는 소리가 들리니 옆방의 주인공들도 아직 잠자리에 들기 전인 것은 분명하다.
다시 그 옆방의 반달님 & 이경준샘께 연락하여 우주님 & 아그네스 방으로 모였다.
컵라면, 김치, 치즈 등을 안주로 아직 있던 팩소주를 비우고 수다를 떨다보니 새벽 2시가 훨씬 넘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은 이만 잠자리에.....
첫댓글 님의 춤사위는 단연 으뜸이었고 여행의 즐거움은 깊은 휴식에 들기 전 한잔의 알콜이 아니던가요?
터키 여행 중에 잠시 제주도에 다녀오느라 시간을 비웠었지만 여전히 터키 여행이 그립고 궁금했었거든요. 생생하고 맛있는 여행이 여전히 이어져 행복합니다. 터키팀 만나면 박사님 이야기로.....호호호...귀가 가렵지는 않으셨는지요? 사모님도 안녕하시지요? 글을 언제든지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흐뭇합니다. 감사합니다. 얼른 다음여행을 위해 길을 떠나렵니다.
희하이님, 제주도 잘 다녀 오셨군요. 파랭이님께서 올리신 사진(제주공항)에서 선생님 얼굴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