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P9Tf8JBR5TM
생후 10개월부터 척추와 갈비뼈가 휘어지면서 어쩌다 "이상한 몸”을 지니게 된 ‘변재원’. 장애인 차별이 공기같았던 세상 속에서 그는 웬만하면 사회에 적응해서 살려고 했습니다. 장애인으로 배제되지 않고 성공하기 위해 장애를 덮을 수 있는 ‘쯩’과 ‘경력’을 취득했고, 대학을 갔으며 구글에서 경력을 쌓았죠. 열심히 공부해 대학원에도 진학했어요. 장애인 당사자였지만 비장애인 시선에서 소위 말하는 '성공'을 꿈꿨죠. 하지만 그는 졸업을 앞두고 갑작스레(?) 변절(?)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이었음에도 장애를 잘 몰랐던, 남들처럼 성공이 목표였던 그는 어쩌다 ‘데모꾼’이 됐을까요?
장애인 당사자 분들께 가서 물어봤어요.
"왜 이렇게 데모를 많이 하세요?"
맨날 데모하듯이 얘기하니까 청와대가 안 들어주지.. 날 잘 봐봐요.
제가 서울대를 나왔는데 말이죠!
당신이 그렇게 떼쓰면 떼쓸수록 세상은 어려워진다.
당신 같은 사람이 장애인 욕먹이는 거다.
이런 얘기를 했었죠.
(못된 장애인의 탄생)
제가 장애인이 된 건 생후 10개월이지만 장애 등록을 한 건 9살인가 10살 때예요.
"우리 아들은 장애인일 리가 없어." 하고 (부모님이) 장애 등록을 안 했어요.
어느 날 봤더니 등에 어떤 커다란 구멍이 나 있더래요. 주사를 잘못 접종 받아서 생긴 부작용이었고,
그걸 "척수공동증"이라고 하더라고요. 척추 주변에 구멍, 공동이 텅 빈 구멍이 생겼다는 뜻이에요.
긴급 수술을 해서 어느 정도 척추 신경이 돌아왔는데 하지(다리)에 대한 신경은 안 돌아왔다고 하더라고요.
<재원의 집>
청소기를 쓰면 저는 좀 어려운 지점들이 있어요. 청소길 밀다가 자세를 굽힐 땐 목발이 떨어져요.
근데 그러다가 최근엔 로봇청소기가 열심히 청소를 해줘요. 제가 이렇게 휴대폰으로 그냥 누르면
(청소기가 작동하며 돌아가는 장면과 함께 윙 ~ 소리가 난다)
이게 진짜 요즘 제 삶을 구했어요.
<인터뷰 룸>
체육 시간에는 늘 교실에 앉아만 있어야 했고, 선생님은 어떤 조건이든 다 저를 열외시켰고 그땐 이동식 수업이라는 걸 했어요. 국어는 1학년 1반에서 들으면 과학은 과학실 가서 듣고 수학은 1학년 4반 가서 듣고 이랬는데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에 이동식 수업을 전혀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실제 한국사회 장애인 10명 중 5명 최종 학력이 중학교 이하에요. 한국인은 왜 이렇게 대학을 많이 가나, 라는 분석이 나올 동안 장애인은 전혀 그럴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게 제 삶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아 내가 이제 더 이상 학교에 있기 어렵겠구나.. 그래서 자퇴를 했어요.
그 다음 검정고시를 보고 스스로 공부하게 됐죠, 수능을 보지 않는 학교가 몇 개 없더라고요.
한예종이라는 학교인데 여기는 수능을 안 봐도 된대요. 그래서 "그럼 난 여길 가겠다." 장애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장애인 가족들까지 장애를 덮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아요. 내가 장애인으로서 내 장애를 숨길 수 있을 만한 멋진 타이틀,
그래서 나는 제도적으로 차별받지 않으려는 그 발버둥,
대학을 졸업하고 진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취업해서 연구로원으로서의 삶을 살죠.
구글코리아의 첫 장애인으로 비즈니스 인턴을 했었고 진짜 행복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소수자라서 차별받는다는 느낌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었어요.
그 회사에서 성소수자분들도 너무 당당히 자신의 정체성을 오픈하고 전혀 주눅 들 필요가 없는,
또 대학원은 서울대 행정학과를 다녔는데 제가 진짜 많이 번잡하게 살았네요.
<집 안 운동기구 앞에서>
이건 로잉머신이라는 거예요.
노 젓기 같은 그런거죠? 맞아요. 하지마비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유산소 운동 같아요. 제 생각엔..
이렇게 해서.. (운동기구에 앉아 양 손으로 레버를 앞, 뒤로 잡아 당겼다 놨다를 반복하는 운동 동작)
여기 역 앞에 스타OO 헬스 이런 데 가면 저를 좀 싫어하시더라고요. 장애인이 있으면 약간 물 흐려진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돈 안내도 되니까 그냥 가시라고" 이런 경험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까 아휴 방법이 없구나.
그래서 이제 운동기구를 사서 집에서 하고 있죠. (할부 12개월)
<인터뷰 룸>
대학원을 다니는데 저만 서울대학교 내 체육시설을 도 못 쓰는 거예요. 활동지원사랑 같이 입장을 해야 되는데
"활동지원사는 입장이 안 된다, 두 명 값을 내라" 내가 이거 행정대학원에 문제제기 할 거다.
그래서 대학원장님들이랑 같이 당신들 만나러 갈거다.
그랬더니 다음 날부터 입장 시켜주더라고요. 와 나도 운동해가지고 멋진 몸매를 갖겠어, 했는데 왜 나는 입장이 안 돼?
나도 클럽가서 춤 춰야지, 했는데 알고 보니까 99% 클럽이 날 받아주지 않는 거였어요. 나만의 차별은 왜 이렇게 힘들지?
빨리 성공해야겠다. 인생이 스텝 바이 스텝이랄까요. 그렇게 딱 뛰려고 하는데 저를 소용돌이로 몰아치게 한 논문이 있어요.
(행정학석사 학위논문 공공시설 접근성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 이 석사 논문을 쓰면서 인생이 여기까지 갑자기 떨어졌어요(?)
장애인과 공무원과 건축가는 왜 이렇게 맨날 싸울까. 공공시설 접근성 가지고.. 굉장히 평이한 논문 주제이지만 재미있게 풀어보고 싶어서 당시 시위하는 장애인 당사자분들께 가서 물어봤어요. 당신들은 왜 이렇게 집회를 많이 하세요? 라고 하다가
만난.. 제가 여기다가 머리통을 그려놓은 사람이 하나 있거든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였어요. 이분이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 나한테는 계단이 그냥 계단이 아니다.
박경석 대표는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인데 휠체어 타는 분들은 계단을 아예 오를 수가 없잖아요.
나한테는 계단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내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내 스스로가 바꾸기 위해서 움직이는 거야.
당신이 그렇게 떼쓰면 떼쓸 수록 세상은 어려워진다. 당신 같은 사람이 장애인 욕 먹이는 거다.
근데 그때 만남이 나쁘지 않으셨나 봐요. 13개월 전에 딱 갑자기 전화가 와서 만납시다. 딱 만났는데 하는 말이
같이.. 운동하자.. 무슨 운동이요, 축구요? 그러니까 아니 그거 말고 팔뚝(데모)질..
안 돼요, 저는. 저 해커스 어학원 다녀야 돼요, 지금 강의 결제해놔서 다음 달까지 무조건 토플 점수 따야지 추천서 받고 유학 갈 수 있어요, 그러니까. 코로나인데 그게 가능하겠어? 언제 진짜 부끄러웠냐면 2020년 코로나 때.
이건요 공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도 아니고 취업하고 안 하고의 문제도 아니고 그냥 차별받는 사람은 다 죽더라고요.
특히 청도대남병원에서 100여 명의 정신 장애인이 집단 감염되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나는 대체 뭘 위해서 나 혼자 이렇게 잘났다고 시건방지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삶 스스로가. 그때부터..
아, 장애인 인권 운동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완전하게.
<투쟁 결의대회가 진행 중인 현장>
저 귀엽게 보이는 노란색이 저희가 친 텐트예요. 드디어 2021년의 변재원이 인사하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정책국장 변재원입니다. 여기가 약간 범죄사관 학교인데요.
공동대표님들의 벌금 조회가 안 된다, 왜 그러냐니까 너무 많아 가지고..
<투쟁 중인 전장연 활동가들의 모습과 설명>
제가 무슨 LH 국토부 직원처럼 땅을 샀습니까! 이분은 지금 전과 27범.
도대체 내가 뭘 했는데!! 이영숙 대표님도 지금 전과가.. (전과 5범)
이게 그 많은 분들이 "어우~ 무서워" 하는 농성장의 실제예요. 간단하게 말하면 큰 텐트예요, 큰 텐츠를 차려서 장애인 시설 규모를 축소하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건강권을 지켜달라. 지속적으로 우리 목소리를 전달하는 텐트인데 이런 걸 차리면 무단점거했다고 해서 제자체에서 당연히 고소장 날아오죠. 한국에서 행정학은 공무원학이에요. 정부 18개 부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시민단체가 입법부와 행정부랑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지. 행정학 공부한 게 저는 진짜 제 삶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다. 공무원과 어떻게 만나야 되는지, 어떤 의제를 꺼내면 어디까지는 먹힐 수 있고 어디까지는 불가능한 지 이론적으로 공부한거. 제 지도교수님이 우스갯소리로 내가 스파이를 키워놨다.. 맨날 정부 부처랑 투쟁하고 그러니까. (웃음)
<인터뷰 룸>
이번에 저희가 새로운 기록을 세운 게 있는데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탈시설장애인 정당'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사람도 없으니까. 우리가 비록 진짜 정치인이 못 되지만 선거관리위원회에 정식 서울시 후보 등록하기 직전까지 우리도 장애인 정책을 널리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해보자, 해서 11명의 후보님들이 나오셨어요.
'OOO당' 이라는 이름은 선거법 위반이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너희들 다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그래서 저희는 성당, 식당, 숭구리당당 이것도 정당인가요? 라고 지금 물어본 상황입니다. 처음에는 다 긍정적이고, 아름답고 누구도 피해가지 않는 방법으로 다 정책 제안을 합니다. 공무원분들께 겸손하게 전화도 하고요. 국회의원 분들께 머리도 조아리고 다 하는데 이렇게 하면 장애인들끼리 요구한다고 들어주지 않는 세상인 거예요. 언제 움직이냐면 난리 난리 생난리를 쳐야 움직여요. 그런 과정을 반복해야 "어우~ 정말 얘네 귀찮아서라도 이거 해봐야겠다" 이런 식인 거예요.
<박경석 대표가 투쟁 발언하는 모습>
2001년도에 장애인이 지하철을 이용하다가 떨어져 죽었어요. 힘 있는 사람들, 정보 갖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집행할 수 있는 공무원들한테 가서 저희가 지하철에 엘리베이터 좀 설치해 주십시오, 라고 했어요.
언제까지 검토할 거냐 물어보니까 언제까지 검토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이야기해서 저희는 지하철로 내려갔습니다.
어떤 대책이 나왔는지 아십니까? 경찰서로 잡아가주더라고요. 그리고 벌금 팍 때려주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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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낼 돈이 없는 수급자들이에요. 대부분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님들이. 그러면 노역을 택하시거든요.
그럼 검찰청에 일단 가서 수송 차량을 기다려야 해요. 근데 죗값을 치르겠다고 자진해서 온 장애인조차 휠체어로 탈 수 있는 차량이 없어요, 장애인용 호송 차량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또 거기서 실랑이가 벌어지죠. 우리 어떻게 노역장에 가나요?
착한 장애인으로 저 살아봤거든요? 살아봤더니 좋더라고요 뭐가 좋냐면. 비장애인들 입장에서 무해해요.
무해한 장애인을 원하지, 나와 맞먹으려고 하는 장애인이 필요한 건 아니거든요, 사람들에게는.
저는 이번 생은 아마 악역으로 살 것 같은데 나쁜 장애인은 제도를 바꿀 수 있어요. 착한 장애인은 개인의 삶을 바꿀 수 있지만 나쁜 장애인은 제도를 바꿀 수 있거든요.
한국사회에서 지하철 엘리베이터나 저상버스를 타기 위해 장애인이 직접 행동해야 된다는 사실 자체가 저는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하거든요. 그건 정책이 해결했어야 될 문제였어요. 이걸 보고 계신 여러분들도 언젠가 장애를 갖게 되실 거예요.
죽기 직전이 될 수도 있겠고요, 아니면 나이가 들어가면서일 수도 있고요, 정말 불행하게는 내일 당장 어떤 사고를 당하실 수도 있어요. 삶의 최전선을 지키는 운동이고, 비장애인까지도 누구나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결국 우리 사람은 이름 없이 끝나더라도 우리 다음의 삶은 그냥 공기처럼 당연하게 존중받았으면 하는 마음.
소음이 많은 사람들, 그 악역들이 나쁜 장애인이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