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017 (월)
- 바리캉(bariquant = 이발기-理髮器 = 머리깎개
= hair clippers)
- 고유명사가 보통명사화 된 것들 (19)
- 문화, 여행 (63)
요즘 젊은이들은 머리를 자르거나 다듬기 위하여 대부분 미용실을 찾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평생 미용실에 가 본 적도 없고 오로지 이발관만을 고집합니다.
지금이야 이발관에서도 대부분 가위로만 머리를 자르고 다듬기도 하지만
전에는 바리캉이라는 이발기를 사용하여 머리를 깎았습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학생들이나 군에 입대하는 장병들에게는 이발기를 사용할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은 “바리캉(bariquant-프랑스어) = 이발기(理髮器=hair clippers)”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이발사(理髮師)=이용사(理容師), 미용사(美容師)는 의사(醫師), 한의사(韓醫師),
약사(藥師), 간호사(看護師), 교사(敎師) 등과 같이 “스승 사(師)“를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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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리캉 (bariquant) - 프랑스어 ]
1. 바리캉 (bariquant)
- 바리캉이란 “이발기(理髮器 = 머리깎개 = hair clippers”)
즉, 머리털을 깎는 금속제 용구를 말합니다.
- 바리캉은 “바리깡”이라 부르기도 했기 때문에 마치 일본어 같이 들리는데,
이는 이발기계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 왔을 때 프랑스의 이발기구회사인
“바리캉 에 마르(Bariquant et Marre)”라고 하는 회사의 제품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 회사이름이 그대로 통칭화 된 것입니다.
- 이는 1882년 일본의 프랑스 주재 외교관인 나카타 게이타로라는 사람이
바리캉을 처음으로 일본에 들여오면서 일본에서는 근대화에 따른 새로운
헤어스타일이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당시 일본사람들이 처음으로
그 이발기의 제조회사 이름을 제품이름으로 발음하여 그대로 굳어졌습니다.
* 참고로 프랑스어로의 이발기는 “tondeuse(톤즈즈)”라고 합니다.
- 우리나라에는 바리캉이 일본에서 처음 들여왔는데 그리 빨리 전국적으로
보급된 사유는, 처음 프랑스에서 일본에 들여온 이후에 일본에서 대량생산에
들어갔기 때문인데, 1885년 오사카의 한 공장에서 제조되기 시작하였고
그 이발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면서 전국적으로 급속히 보급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바리캉은 좌우로 움직이는 것과 고정되어 있는 것의 두 빗 모양의 날 및
교차되는 손잡이로 되어 있는데, 가동 날이 고정 날에 대해 왕복운동을 하여
많은 머리칼을 동시에 절단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 날의 종류와 두께에 따라 깎는 높이(즉, 1부·2부·5부 등)를 조절할 수 있으며,
수동식과 전동식이 있습니다.
- 위의 사진을 보면 바리캉이 아니라 무슨 나무 몽둥이나 젓가락처럼 보이는데
이는 초창기 한국에 들어 왔던 바리캉의 모습으로, 실제로는 잘 듣지도 않고
빡빡한 바리캉에 씻지도 않은 머리를 깎으려고 하면 거의 머리카락을 뜯는다고
할 정도의 아픔이 있었다고 합니다.
- 즉, 자동이 아닌 스프링이 달린 수동이었기 때문에 소변보고 바지 지퍼 올리다가
난감한 상황 발생하듯이 잘못하면 머리카락이 끼어 꽤 아픈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었습니다.
- 그런데 이 기구를 가지고 머리를 깎으면 꽤나 빨리 깎을 수 있었기 때문에
“빨리깡”이라고도 부르기도 했습니다.
- 그 당시에는 이발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큰 행사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신문에 이발소 광고도 자주 나오고 바리캉 판매 광고도 나오는 등
신문 광고 중에 빠지지 않는 내용이었습니다.
- 또 당시 이발소에 가면 타일로 된 투박한 머리 감는 곳이 있었고
또 빨래비누로 머리 감겨주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 그리고 일부 이발소에서는 머리카락이 옷 속에 들어가지 않도록
신문지 중앙에 구멍을 뚫어서 씌워 목에다 걸치고 머리를 깎기도 하였습니다.
- 지금도 일부 이발소에서는 뒷머리를 자동 전동 바리캉으로 먼저 다듬고 나서
전체적으로는 빗과 가위로 다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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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리캉에 얽힌 이야기들
(1) 장발단속
- 1970년대는 이른바 통기타, 청바지, 맥주 그리고 통행금지가
대명사격으로 통칭되는 시기였습니다.
- 이 시기에 우리나라 경찰들은 권총, 경찰봉, 수갑 이외에 자(尺)와 바리캉이
꼭 휴대하는 장비였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 즉, 1973년 경범죄 처벌법을 만들어 기초질서 위반 및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명분으로 미니스커트와 퇴폐적 장발을 단속하기 시작했습니다.
- 젊은 여성들의 경우에는 치마길이를 무릎 위 20cm로 규정하여 단속하고,
이를 위반하면 경범죄에 해당하는 식이었는데, 길거리에서 경찰관이 쭈그리고
앉아 여성의 치마 위를 재는 광경은 그야말로 볼만 했습니다.
- 또한 그와 함께 장발단속도 하였는데, 단속의 기준은 뒷머리가 옷깃에 닿거나
옆머리가 귀에 닿는 것이었습니다.
- 단속에 걸리면 즉심에 넘어가거나 또는 소위 “벌초”라 하여 휴대하고 있던
바리캉으로 뒷머리나 옆머리를 싹둑 밀어버렸는데,
- 특히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머리가 조금 길다고 여겨지면 소위 “고속도로”라 하여
머리 한 가운데에 길을 내곤 하였습니다.
- 그래서 단속지점을 피해 골목으로 숨어들거나 또는 긴 머리를 파마로 말아 올려
장발 단속을 피하기도 했습니다.
- 장발단속에 가장 많이 적발된 해는 1976년이었는데, 그 해 5월까지
55만 9,837명이 단속에 걸려 그 중 2만 4,998명이 즉심에 회부되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 지금 청바지가 우리나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국민복 같이 되었는데, 한참 전의
미국에서도 이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즉 미국정부에서 가장 큰 부서인
국무부(Department of State)에는 여성 직원이 많았는데, 이들이 청바지를 많이
입고 다니자 1981년 국무장관이 될 수 있으면 치마를 입고 다니도록 하자
바로 그 다음날 전 여성 직원이 청바지를 입고 출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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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발소 그림
- 지금도 가끔 볼 수 있지만, 전에는 어느 이발관을 가더라도 벽에 꼭 걸려있는
그림들이 있었는데, 즉 유명한 미술작품의 모작(模作)이기도 하고 싸구려
사진이기도 하고 아니면 아마추어의 어설픈 그림 같은 것들입니다.
- 이러한 그림들에는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줍기”, 어미돼지가 새끼를 10마리 쯤
젖을 먹이고 있는 그림, 예쁜 소녀가 무릎 꿇고 앉아 기도하며 “오늘도 무사히!”
라는 구절이 씌어있는 그림, 아니면 시골의 풍요로운 가을 풍경이라든지
어떻든 아무나 보면 좋고 그림을 이해하는데 머리를 쓸 이유가 없는
그런 그림들을 걸어놓았습니다.
- 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라는 푸시킨의 시가
걸려있기도 했습니다.
- 지금도 싸구려 흔한 그림을 보면 “이발소 그림”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어느 미술평론가는 “이발소 그림이란 제도권 미술의 상투화된 패턴이 저급화되어
대량 생산 및 유통되는 통속미술”이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 이를 영어로는 “kitsch(키쉬, 키치)”라고 하는데, 독일어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 이는 미학적 안목이나 경험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통속적인 싸구려
예술품을 지칭하는 것인데, 이에는 “값싸게 만들다”, “윤리적으로 부정함”,
“진품이 아님”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 지금도 길거리나 백화점 계단에 잔득 전시해 놓고 파는 이상적인 풍경을 그린
그림들 또 동네 유리가게 등에서 파는 싸구려 그림들이 모두 이발소 그림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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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의 전동 바리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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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정말 옛날을 생각케 하는 군요.손으로 깎던 바리캉의 추억을 다시 떠올립니다. 참 재미있게 읽었읍니다. 김정일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지나간 것들은 모두 아름답고 그립습니다. 저는 아직도 옛날 스타일의 이발소에서 한 달에 한 번 꼴로 이발을 하며 옛 생각에 젖어듭니다.
@김인환 아련한 추억으로 남네요. 뱅글뱅글 돌아가는 이발등, 어렸을적 조금은 무서워했던 바리캉, 면도 할때 맡던 싸구려 거품 비누 향과, 면도 거품 지꺼기 닦는 종이..ㅎㅎ 추억의 장소입니다.
어렸을적 이발 의자에 널판 깔고 그 위에 앉아 바리깡으로 뜯겨 가며 빔송이 머리 , 가만 보니 김정은 스타일 같기도 하군요. 동네 친구 몇몇은 집에서 바리깡으로 형제가 깍기도 했는데 기계충이 올라 고생하는 녀삭들도 많았습니다. 수십년전 부산 아미동 동네 이발소에 다녀온 기분임다. 감사합니다.
주사장님은 참 자세히도 기억하십니다. 옛날 이발소에는 겨울에 꼭 연탄난로와 함석(아연도강판-반짝거리는 일신제강의 별표함석이 주로 쓰였지요)으로 만든 연통 그리고 거기에 올려 놓은 큰 물통 그리고 또 주욱 널어 놓은 수건들이 있었는데 사각거리는 머리깍는 소리와 적당히 기분좋은 습도로 왜 그리 졸리는지 이발할 때마다 쏟아지는 잠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번엔 아주 옛날 바리깡 얘기네요. 정말 두손으로 깎는 바리깡 사진을 보니 너무 반갑네요. 저는 두 손 바리깡 보다는 한손으로 하는 걸 주로 했던 것 가타요. 그런데 그 때는 머리를 자주 깍지 않아 두달에 한 번 정도로 깎아 대부분 초등학교 학생들은 더벅머리였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중학교에 가니 그 때부터 @부로 깎게 되어 한 달에 한 번은 깎아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기계독이 옮은 애들은 조회 후 남게 해 선생님들이 모비루를 발라 줬던 기억도 납니다.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에 이발을 했는데, 우리동네 이발소는 약간 옛날 냄새가 나는 곳입니다. 이 집은 가위로 다듬기 전에 꼭 신식 바리캉으로 뒷머리를 먼저 다듬고 나서 이발을 시작합니다. 이발-면도 후에 따로 머리를 두 번 샴푸해 주고 나서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세수하고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는데 드라이로 말려 주지도 않아서 물기가 조금 남은 머리로 나올 때마다 옛날 생각이 납니다. 한겨울에는 머리가 마를 때까지 한참을 앉았다 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