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16일
제목 기도와 거룩함이 힘이다
본문 시141:1-5
동성애 반대와 차별금지법 반대를 위해 전국교회가 나섰습니다. 이 일을 찬성하는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일반 백성들도 대부분 그러합니다. 여의도 한량들만 이 일의 심각성을 모르고 성소수자들의 꾐에 빠져서 입법화를 돕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았던 다윗의 시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은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는 대적자들의 음모를 이겨내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다윗의 문제와 다르지만, 해법은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갔을까요?
다윗은 기도를 힘으로 삼았습니다
다윗은 대적자들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럴 때 다윗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1절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내게 오시옵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 내 음성을 귀를 기울이소서.” 10절까지 기도가 이어집니다. 다윗은 대적자들과 맞서 싸우는 대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아뢰었습니다. 기도의 힘을 믿었습니다. 여호와의 손은 다윗을 구원하는데 짧지 않습니다.
히스기야도 기도의 힘을 믿었습니다. 앗수르 군사 18만5천명의 공격 앞에 싸울 힘이 없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힘이 무장한 대적자들보다 더 강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민족과 한국교회에 큰 해를 끼칠 악법이 제정하지 못하도록 거룩한 명분을 가지고 모였습니다. 악법을 찬동하는 세력들과 맞붙어 싸우는 편보다 기도의 힘을 믿기에 모였습니다. 다윗과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던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기도도 하지만, 악법에 대한 교회의 의사표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2017년 제가 순천기독교연합회 회장을 할 때 전국적으로 학생인권조례, 노동인권조례를 제정하는 광풍이 불었습니다. 우리 시도 조례제정을 위한 입법예고를 했습니다. 저는 투쟁할 능력도 없었고, 세력을 동원할 힘도 없었습니다. 이때 제가 한 일은 조례의 부당함을 기록하여 의회에 제출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시의회는 철회했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 교회의 힘은 숫자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과 싸울 때 3만2천명이 모였지만, 하나님은 수효가 너무 많아 미디안을 넘겨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300명만 남깁니다. 사람의 힘을 빼니 하나님의 힘으로 메뚜기 떼와 같은 미디안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교회가 한 곳에 모여 기도할 뿐만 아니라,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차별금지법의 부당함을 차분하게 설득하면 더욱 효과적일 것입니다. 교회는 세력을 과시하려는 유혹을 주의해야 합니다. 교회의 힘은 숫자에 있지 않고 기도에서 나옵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자신을 살피는 것을 힘으로 삼았습니다
시인은 대적자들을 처벌해 달라고 말하지 않고 먼저 자신을 살피는 기도를 합니다.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켜주십시오.” 다윗은 기도의 응답은 더디고 대적자들의 기세는 여전하니 입에서 불평이 나올 법합니다. 그래서 내 입술을 지켜주시라고 부탁합니다. 대적자들의 잘못을 말하기 전 내 잘못을 먼저 살피는 다윗이 하나님 자녀답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옛 선비들은 악담이나 추담을 들으면 귀가 더럽혀졌다며 귀를 씻었습니다. 영조대왕은 세자비 혜경궁에게 “나쁜 말을 들었거든 귀를 씻고, 나쁜 말을 입에 담았으면 이를 닦고 자라.”고 당부했습니다. 이처럼 자기를 살피는 일을 귀히 여겼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날마다 전쟁터에서 날마다 죽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느냐며 기자회견을 거부했습니다. 축하하려는 사람들은 한곳에 모으고 뽐내는 것보다 조용히 자기를 성찰하는 모습에서 큰 힘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저들은 일반은총의 빛 아래서도 자기를 겸허하게 살필 줄 압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밝은 빛 아래 사는 자들입니다. 악법을 제정하려는 자들의 허물을 꾸짖기 전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교단 지도자들도 교인들을 광장으로 모이라고 말하기 전 먼저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우리 노회에 깊은 상처를 끼치고 정치적 흥정거리로 삼았던 일, 이와 유사한 일들을 행한 것들에 깊은 반성이 선행되었더라면 모이자는 말에 힘이 있었을 것입니다.
교회의 강한 힘은 숫자에서 나옴이 아니라, 교회가 자신을 겸손하게 살필 때 나옵니다. 평양, 원산 대부흥은 세상을 향해 꾸짖지 않았고, 교인들이 자기 죄를 먼저 자복한 결과입니다. 우리도 세상을 꾸짖기 전 나를 먼저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의 외침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과 능력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거룩함을 힘으로 삼았습니다
다윗은 마음이 악에 기울어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4절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악을 행하지 말게 하시며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악인들과는 친밀한 교통을 나누지 않겠다는 기도입니다.
5절에서 동료 의인들이 잘못을 꾸짖으면 은혜로 여기고 책망도 머리의 기름 같게 여기겠다고 했습니다. 꾸지람을 달게 받겠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대적자들과 물리적인 힘으로 싸우는 대신 거룩한 삶을 사는 데 집중했습니다. 다윗이 대적을 물리친 힘은 악을 멀리하고 거룩함을 추구함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죽이려는 자들을 대항하기 위해 열두 영 더 되는 하늘 군대를 동원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군중들도 떠나고 제자들마저 도망했습니다. 홀로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힘은 무죄하심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따르는 데서 나왔습니다.
교단이 합동을 할 때 우리 노회가 겪었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총회는 합동에 참여하지 않은 당회가 넷뿐인 12개 교회를 노회로 인정해 주고 순천노회 이름까지 주었고, 120개 교회가 있는 우리 노회를 순천제일노회로 하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는 노회장으로 부당함을 서면으로 제출하고 작은 목소리로 항의를 했을 뿐인데, 순천노회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교권주의자들의 힘이 세지만, 참과 거룩함에서 나오는 힘을 더 강했습니다. 인맥과 비용을 동원하지 않았어도 진실이 부당함을 무릎 꿇게 했습니다.
교회의 힘은 언제나 거룩함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교회는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교회가 되어야 생명력이 있고 악을 이겨낼 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요시아왕은 신상을 부수고 불태우고 신접한 자와 무당들까지 모조리 없애지만, 그가 죽자 유다는 급속히 몰락합니다. 겉으로는 성공했지만, 백성들 마음의 악은 버리지 못했습니다. 악법을 막아내도 성도들의 마음에 거룩함이 없으면 힘을 잃고 무너집니다. 교회는 거룩함이 힘입니다. 거룩함을 힘으로 삼는 교회와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교회의 힘은 사람의 수효에서 나오지 않고 기도에서 나오며, 나를 겸허하게 살피며, 거룩한 삶을 살 때 나오는 줄 믿습니다. 주신 말씀을 따라 기도와 거룩하므로 강해져서 모든 악과 악법을 물리치는 강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