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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여행17 - 오모이데 요코초에서 꼬치구이를 먹고는 신주쿠 가부키초를 보다!
2022년 11월 7일 야마노테센(山手線) 전철을 타고 구 후루카와 정원과 리쿠기엔 六義園(육의원)
에 도쿄대학교에 고이시카와 고라쿠엔 小石川後楽園 과 메이지진구가이엔 明治神宮外苑 을
거쳐서 신주쿠역에 내려 남쪽 출구로 나와서는 신주쿠 교엔 新宿御園(신숙어원) 을 구경합니다.
신주쿠교엔을 보고 신주쿠역으로 돌아와 동문 으로 나와 걸어서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 야마노테센 전철
이 다니는 철로 아래에 자리한 오모이데 요코초 (思い出横丁) 를 찾아가서는 꼬치구이 를 먹고 나옵니다.
그런데 저 기찻길 아래 골목을 나와 바로 옆을 쳐다보니 몇 미터를 더 가서 또
골목 이 있는데 분위기 는 방금 우리가 들른 저 골목과 거의 흡사합니다.
그럼 원래부터 이런 골목이 있었는지.... 아니면 저 철길 아래 골목이 히트를 치다
보니 옆 골목도 컨셉을 저 원래 골목과 비슷하게 맞춘 건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네거리 에서 구름 같은 인파 가 밀려가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국제신문에 김필희
논설위원이 쓴 도청도설 칼럼에 “인생과 예술의 길이” 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저 글의 중간쯤에 보면, “‘아르스 롱가 비타 브레비스 (Ars longa, vita brevis)’. 최근 영면에 든 일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 의 웹사이트가 부고를 알리며 띄운 공지문 일부이다. 번역하면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이다. 원래 히포크라테스가 했다고 전해지는 이 말을 류이치가 생전에 좋아했다는 설명까지 붙였다. ”
“류이치는 영화 ‘마지막 황제’ 주제곡 으로 아시아인 최초 아카데미 작곡상 을 수상한 영화음악의 거장이다.
전자음악 부터 클래식 까지 스펙트럼이 넓어 국내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주고 팬들에게 위안을 건넸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을 받던 해엔 그의 피아노 연주가 영화제 개막식을 장식했다.”
1952년에 이 도시 도쿄에서 태어난 사카모토 류이치 는 작곡가이자 뮤지션으로 세계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영화 음악 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는데......
골든글로브상과 그래미 어워드 를 수상한 인물이자 아시아 최초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자 입니다.
坂本龍一 는 일본에서는 '사카모토 류이치' 라고 읽지만, 서양에서는 일본인들의 해외 진출시 또는 서구권
에 본인들을 알리던 관례대로 성씨와 명을 반대로 해서 ‘류이치 사카모토’ 로 소개되었고, 이 이름이
한국에도 그대로 소개되어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서양식 표기 대로 '류이치 사카모토' 라고 부릅니다.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활동이나 영화 음악 등으로 먼저 이름이 알려진 서구권을 통해 한국에 소개
되었기 때문인지 한국에서도 별 고민없이 서양식 표기를 사용했던 것인데, 비슷한 예로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음악가 구라모토 유키 역시 '유키 구라모토' 로서 훨씬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한국 음악가 백건우를 건우 백, 정명훈을 명훈 정, 정경화는 경화 정, 정명화는 명화 정, 윤이상
은 이상 윤 이라고 부르는 식인데, 이 이름을 들었을때 한국인들이 받게될 느낌은 좀 뜨악할 것 이라는....
1952년 1월 도쿄 나카노구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출판사 편집자였고, 장서와 클래식 LP 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하며 유치원에서 피아노를 배웠고, 이것이 즐거워 계속해서 피아노 학원을 다녔으며 무려 4살(!)
에 작곡 을 시작해서 11세(!) 때 1963년 도쿄예술대학의 음악 교수에게 클래식 작곡 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때 우연히 포스트 모던 연주회 에 가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고등학교 때는 당시 일본의 사회주의
운동에 영향받았으며 백남준의 작품 등 다양한 포스트 모던 아티스트들의 작품에 매료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1971년 도쿄예술대학 음악학부 작곡과 에 입학했는데 주어진 조건대로 곡 하나를 작곡해야 하는
시험을 고작 1시간 만에 끝내고 나가 버렸지만 입학후 작곡과는 전형적인 클래식 분위기
일색이라 어울리지 못했고 미술학부 친구들과 어울렸으며 아티스트들과 교류 를 넓히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는 전위파 작곡가 이자 피아니스트인 타카하시 유지 (高橋悠治) 가 쇤베르크와 베르크,
베베른의 피아노곡 전곡을 1977년에 일본 콜럼비아에서 녹음할 때 쇤베르크의 초기
습작인 '여섯 곡의 피아노 연탄곡집' 에서 타카하시와 함께 피아노를 연주 한 것이 있습니다.
솔로 데뷔전인 1976년 슈가 베이브 출신의 오오누키 타에코, 야마시타 타츠로 등 여러 아티스트들의 세션으로
활동했고 1978년 솔로 앨범 Thousand Knives 로 주목을 받았는데, 타이틀 곡인 Thousand Knives
는 이후에도 각종 YMO 라이브 버전이나 YMO 앨범 버전, 피아노 연주곡 버전등으로 계속 활용 되었습니다.
이 앨범을 발매한 뒤, 일본 대중음악계에서 유명세를 쌓고 있던 호소노 하루오미, 타카하시 유키히로 등과
알게 되었을 때, 사카모토 본인은 팝에 문외한 이라 그들과 어울리면서도 왜 그들이 유명한지 전혀 몰랐
었다고 하며 우연히 앨범을 만들자고 이야기가 나와 함께 음악을 만드니 Yellow Magic Orchestra 였습니다.
일본에서는 큰 반향이 없었으나 매우 진보적인 전자음악이었고, 음악 전반에 깔린 팝과
락큰롤의 느낌, 동양인이 하는 최신 현대 음악에 대한 신비감 이 섞여있었기 때문인지
서구에서 대히트를 치게 되어 몇달 후 귀국했을때 그들은 국민 아티스트 가 되어 있었습니다.
느닷없이 국민적 인기를 얻게 된 탓에 면역(?)이 없던 YMO 멤버들 은 집 밖에만 나가도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엄청 시달렸고, 특히 사카모토 류이치는 대인기피증 까지
앓았었다고 하는데 가장 큰 히트를 친 곡은 Behind the Mask 와 Rydeen 에 Tong
Poo. Behind the Mask 는 에릭 클랩튼이 락버전으로 리메이크한 것이 널리 알려집니다.
YMO 활동으로 유명해지자 영화배우, 광고 모델로 활동영역을 넓혔으니 오시마 나기사 감독
의 1983년 작품 <전장의 크리스마스 (戦場のメリークリスマス/ Merry Christmas
Mr. Lawrence)> 에서 주연과 OST 를 맡았으며 영국의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와
공동으로 주연한 이 영화에서 그는 일본군 장교 로 나오는데 데이비드 보위와 격렬한 키스신(!)
이 영화의 주 테마곡인 Merry Christmas Mr. Lawrence 는 영화 보다 유명해져서 사카모토나 영화를 몰라도
이 노래만큼은 모두가 알 정도며 한국에서는 영화 내용이 문제가 되어 상영되지 못해 영화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음악은 여러차례 대중매체에서 재생 되었기 때문에 인지도가 있는 명곡이라 할만 합니다.
화룡점정으로, “마지막 황제” 의 OST 를 통해 “오스카상” 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는데 마지막 황제에서도 직접 극중 인물을 연기했으며
배역은 푸이와 만주국을 배후 조종한 아마카스 마사히코 예비역 일본 육군 대위로 분했습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테마곡 을 맡기도 했으니 월드 클래스 뮤지션이었는데, 1989년도 PC 엔진판 천외
마경을 비롯한 여러 게임 음악을 맡았고, 드림캐스트를 처음 구동하면 골뱅이 로고와 함께 흘러
나오는 오프닝 콘솔 뮤직도 그의 작품이며 애니메이션으로는 왕립우주군에서만 참여해 음악을 맡았습니다.
2013년 5월에는 도쿄 필하모닉 교향악단과 함께 16년 만에 오케스트라 협업 공연을 선보였고
1년 뒤인 2014년 4월 Playing the Orchestra 2014 를 성황리에 마쳤지만, 같은 해
7월 10일에 기자회견을 통해 인두암 진단 을 받고 투병 중이며 음악활동을 중지했다가
2015년 암 투병후 복귀작을 발표했으니 야마다 요지 감독의 영화 '어머니와 살면' 의 OST 입니다.
2015년 8월 30일 일본 국회 앞에서 아베 신조 정부가 추진 중인 안보법안 반대 시위 에 참가하며
오랜만에 다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연설을 통해 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격려하고,
헌법과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아주 중요한 시기에 함께 행동하겠다고 했으며 위안부
관련해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지했으니 일본 극우단체에서는 재일(在日) 이라 비하했습니다.
일본 지지통신 보도에는 사카모토 류이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The Revenant, 2015)' 에서 음악을 담당해 골든글로브상 최우수작곡상 후보 에 올랐으며
독일의 음악가 알바 노토와 수상을 놓고 경쟁하게 된다고 보도했는데 알바 노토와 사카모토 류이치는
이전부터 공동으로 앰비언트 뮤직을 작업하며 앨범도 여러 장을 발표할 만큼 음악적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2021년 1월 21일 본인의 웹페이지를 통해 직장암 투병 사실을 밝혔으니 두번째 암투병이며
성공적으로 수술은 마쳤으나 앞으로 활동으로 인한 장거리 여행은 어려울 것이라
언급햇으며 2022년 6월 7일, 문예지 ‘신초’ 에 자신이 시한부 상태 임을 말했으니
문예지에 류이치는 직장과 간 두 곳, 림프로 전이된 종양, 대장 30cm 를 절제했다고 밝혔습니다.
암 판정후, 치료하지 않으면 남은 시간이 6개월이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하며, 수술은 예정시간 8시간을 넘은
20시간에 달했다고 하는데 류이치는 “수술이 아닌 투약 방식으로 통원 치료를 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갈
것” 이라며 “남은 시간 속에 음악을 자유롭게 하며 내 인생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 을 갖겠다” 고 밝혔습니다.
2022년 12월 11일-12일에 일본의 웹사이트 MUSIC/SLASH 를 통해 오랜만에 온라인 피아노 솔로 콘서트 를
갖었으니 제목은 <Ryuichi Sakamoto: Playing the Piano 2022>. 보통은 실시간 라이브 공연을 있는
그대로 방송했지만, 건강 상태가 악화되면서, 9월 몇차례 걸쳐 녹화를 마무리했으니 이를 위해 뉴욕에서
영화 전문 스탭이 소집 되었고 12월 인터넷 송출후 극장판으로 재편집되어 전세계에 필름 마켓에 올랐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온라인 피아노 솔로 콘서트 <Ryuichi Sakamoto: Playing the Piano 2022>
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대외적인 마지막 연주 모습이었으니 본인이 직접 "이번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 라고 코멘트를 했는데 결국 2023년 3월에 운명을 달리 한 것입니다.
사카모토는 일본에서 발매된 음반, 책이 한국에서 라이센스화 되는 것을 비롯해, 한국에서만 특별히 발간되는
책이나 상품들이 출시하는 경우 본인의 기준에 만족할 때 까지 하나 하나 꼼꼼히 시간을 들여서 확인하는
것으로 유명하니, 오랜 시간 재활용 종이를 사용해 상품을 제작해왔기 때문에 환경 호르몬 이 검출되지
않는 선을 지킨 용지를 사용해서 제작을 했는지, 콩기름 잉크 를 사용해서 인쇄를 했는지 확인을 한다고 합니다.
음악 활동 외에 사회 운동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나 말년에는 환경 보호와 사회운동 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는데... 유명세에 시달린 탓에 평소 조용한 사생활을 추구했지만, 인류 보편적 생존의 조건을
뒤흔드는 문제에 대해선 오히려 유명세를 통해 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고등학생 때에 일본 사회주의 운동 에 감명받아 전공투로 학생 운동에 참가해 바리케이드
봉쇄를 결행하기도 했고, 대학 시절에는 타케미츠 토오루를 비방하는
과격한 전단을 뿌리기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회 운동에 참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7년에는 일본의 음악 저작권이 JASRAC 가 독점 관리하는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제도권
의 움직임을 이끌어내기도 했으며 또한 1999년에 제작한 오페라 'LIFE' 를 계기로 환경과
평화 에 대해 자주 언급하기 시작하며, 잔여 지뢰 제거 활동을 위한 자선곡인 'ZERO
LANDMINE' 등을 발표하기도 했고, 미국 9.11 테러를 주제로하는 논고집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2004년에는 음악 평론가인 다카하시 켄타로와 영국 출신의 DJ 피터 바라칸 등과 함께 공동 성명을 내어
일본 국회에서 심의되고 있던 '음악 레코드의 환류 방지 조치' 에 반대 를 표명하기도 했고
'아오모리현 핵처리 시설 설립 반대 운동' 을 시작으로 반핵운동에도 주도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헌법 9조(평화헌법) 개정에 강하게 반대 하며 일본 내 사회적 화두인 부부별씨(夫婦別氏) 제도의 도입에 찬성
했으며 2015년 부터 아베 신조 정권이 강하게 밀고 나갔던 집단 자위권과 평화 헌법 개정에 대해 시위에
참여하는등 비판 행보를 보였으며 또 매크로바이오틱(전체식)의 실천자로 채식주의자 이니 2014년 암
진단 이후 본인의 라디오 방송에 다시 복귀하면서 비건(완전 채식주의자) 이 되었음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평소 수많은 자선 콘서트와 프로젝트 를 지원하기도 했는데 2023년 4월 2일, 일본의 신문사 스포니치
아넥스는 사카모토 류이치가 지난 3월 28일 도내 병원에서 향년 71세의 일기로 직장암
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으며 결국 본인의 인터뷰 대로, 지난해 12월 11일 열린
「Ryuichi Sakamoto:Playing the Piano 2022」 피아노 솔로 콘서트가 마지막 공연이 됐습니다.
네거리에 서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건너편에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가부키초 거리 를 바라
보는데.... 신주쿠의 유흥가 가부키초 에는 몰카의 원조격인 "훔쳐보는 방" 이 있다고 합니다.
엘프리드 히치콕 의 영화 “이창 Rear Window ” 은 사고로 휠체어에 의지해
사는 사진 작가가 카메라 레즈로 주변 이웃을 훔쳐보는 영화 입니다.
또 소년 토토 를 주연으로 한 영화 “시네마 천국” 을 제작했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이 유럽의 3대 미녀에 속한다는 "모니카 벨루치" 를 주연으로 캐스팅 해서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도시 시라쿠사 에서 촬영한 영화 “말레나” 는 막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13세
소년 레나토의 눈 으로 한 여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간의 탐욕 과 시기심" 을 표현했습니다.
소년이 그녀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몰래 훔쳐보는 말레나 의 모습
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아찔해질 정도로 고혹적 으로 나타납니다.
언제부턴가 텔레비전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 이 등장해 한 장르로 까지 자리잡더니 몇년 전에는 26세 최모
여성이 워터파크 여성 샤워장에서 몰래 카메라로 찍은 영상물을 유통사이트에 팔았다고 난리가 났었지요?
그러니 이제는 "드론" 이 몰래카메라를 장착하고 누드해변을 촬영하는 시대라....
그럼 "벌레나 곤충 형태의 몰래 카메라" 가 등장할 날도 머지 않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