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랑은 반응을 원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이 모든 피조물들의 심금을 울린 다음에 다시 그분께로 되돌아 오기를 열망하신다. 그러나 슬프게도 하나님께서는 6천년간의 지구 역사 동안, 마땅히 받으셔야 할 만큼의 인간의 반응을 받지 못하셨다.
그 오랜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당신의 사랑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 들이기 위하여 무진 애를 쓰셨다. 그러나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사랑에 올바로 반응하여 자신들의 애정을 그분께 표현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데 실패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 관심을 가졌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울타리 안으로 완전히 뛰어 들기로 결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요구 사항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쉽고 단순한 요구 조건을 만드셨다. 그러나 요구 조건은 반드시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분명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은 죄와 반역의 정신을 버리기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주에서 죄를 제거해 내기 위하여 치룰 수 있는 모든 희생을 치루셨다. 하늘은 죄로 인하여 시작된 인류의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보았다. 그러므로 하늘은 죄로 인하여 또 다시 온 우주가 오염되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그대들과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나는 무엇보다도 너희들이 하늘 왕국에 들어오게 되기를 원한단다. 그래서 나는 나의 아들로 하여금 너희들이 당해야 할 죄의 댓가를 대신 치루도록 하였던 것이란다. 나는 하늘 왕국의 안전과 평화를 위하여 더 이상 낮출 수 없는 최소한의 요구 조건을 만들었다. 이 요구 조건은 반드시 만족되어야만 한단다. 부디 나의 요구 조건을 만족시켜다오! 나는 너희들이 나와 함께 영원히 있게 되기를 소원한단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셔야만 하는 최소한의 요구 조건은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에서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분명한 조건
사랑스러운 태도로 하신 말씀이지만, 구원에 대한 분명한 조건이 담겨져 있는 말씀이다. 이 말씀에는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 오직 한가지 조건 곧 “새로 태어남(new birth)”이라는 조건 이외에는 영생을 받고 하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설명하신 하나님의 요구 조건은 분명하지만, 한가지 질문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새로 태어남’이란 어떤 경험을 의미합니까?”이다. 도데체 그것이 어떤 경험이길래 그것이 없이는 하늘을 볼 수 없단 말인가?
성경은 새로 태어남의 경험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급격한 생애의 변화를 말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겔 36:26.
성경은 “새로 태어남”을 경험한 사람을 가리켜서 “새로운 피조물” 곧 새롭게 창조된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은 사도 바울의 말처럼 “새 생명 가운데서 인생의 새로운 길을 걸어가게” 된다(롬 6:5, NEB역). 이것은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이것은 오래 된 나무에 새 가지를 접붙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이 전혀 새로운 나무가 되는 것을 말한다.
교정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것임
거듭남이란, 술을 끊고 담배 피우기를 삼가하는 것과 같은 삶의 교정이 아니다. 거듭남이란, 분노와 식욕과 쾌락의 습관을 조절하기 위하여 좀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거듭남이란, 값비싼 보석 목거리와 팔찌를 하지 않거나, 일주일 중에서 교회가는 날만 조금 다르게 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이렇게 저렇게 조금씩 뜯어 고쳐 나가는 것이 아니다. 거듭남이란, 성경에서 새롭게 깨달은 진리에 맞추어서 오래 동안 사귀어 오던 세상 친구와의 교제가 끊어지고,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이 거룩하게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인생 전체의 방향과 목적과 동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거듭남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의 우선 순위가 바뀌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돈을 제일 좋아하고, 그 다음으로 스포츠, 유행을 따라가는 옷, 식도락, 성경 읽기와 같은 순서로 좋아하던 우선 순위가 성경 읽기를 제일 좋아하고, 그 다음으로 돈, 식도락, 스포츠, 유행을 따라가는 옷과 같은 순서로 바뀌는 것이 거듭남이 아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애란, 단순히 옛 것을 뜯어 고치거나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본성이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과거에 좋아하던 것이 싫어지고, 과거에 싫어하던 것이 좋아지는 것이 거듭남이다. 미워하던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정하게 되며, 사랑하던 쾌락이 싫어지고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본성이 변화되는 거듭남이다. 거듭남이란, 자신과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이며, 새로운 생애를 사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새로 태어난 삶은 성령께서 우리들의 삶에 효과적으로 역사하실 때에만 가능하다.
오직 거듭남을 통해서만이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의 일원으로 속하게 된다. 어떤 사람도 거듭난 상태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하여 이기적이고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새롭게 거듭나는 경험을 갖도록 요구하시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거듭나는 경험없이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라는 기만적인 신앙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러한 신앙 속에는 자신을 부인하고, 진리에 순종하기 위해서 시련을 극복하고 자신을 희생시키는 고결한 정신을 찾아 볼 수 없다.
사람이 성령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거듭남을 경험할 때, 그의 생애에는 “죽음”이라는 말로 표현될 만큼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들이 죽는 변화가 일어난다!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어떤 사람도 거듭남의 경험에 대해서 애매모호해 하거나 혼돈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거듭남의 경험이 극적인 모습으로 일어나지 않고 조용하게 일어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생애 속에서 너무나 분명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만일 그대가 이 중요한 경험을 지금 이 순간까지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지금부터 온 마음을 다하여 그 경험을 주님께 간구하라. 이 경험을 얻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모두에게 참된 거듭남의 경험을 주시기 위하여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양심과 지성에 접근하고 계신다.
우리 자신이 참된 거듭남을 경험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증거는 무엇인가? 성경은 그것을 알 수 있는 충분한 기준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예를 들어서, 마태복음 5장에 있는 팔복의 경험은 오직 거듭난 경험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축복이다. 갈라디아 5장에는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경험과 참된 거듭남을 경험한 사람들의 경험이 대조적으로 비교되어 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상태: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은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 5:19~21
거듭난 사람의 상태: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4
바로 이러한 것들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성품과 생애 속에서 맺혀지는 열매인데, 이 열매는 사도 바울이 말한 다음과 같은 경험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만 맺혀진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갈 5:24.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은 사람들, 그들만이 마태복음 5장의 팔복의 축복을 받을 것이며, 갈라디아서 5장의 성령의 열매를 맺어서 영생에 들어갈 사람들이다.
참된 거듭남의 9가지 증거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 즉, 새로 태어남을 경험한 증거는 무엇인가? 성경은 거듭남의 증거를 다음과 같이 9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1. 죄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소유한다
죄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는 영혼에 평화를 가져다 준다. 비록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진실로 거듭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원치 않는 죄에 반복해서 빠지게 되고, 그로 인하여 양심은 심한 가책으로 고통당하게 되는데, 이러한 사람은 영혼의 평화를 소유할 수 없다. 또한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의심과 불확실함으로 인하여 깊은 좌절감에 빠진다.
그러나 새로 태어나는 거듭남의 경험을 통하여 이런 모든 것들은 변화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나님의 용서)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롬 5:1. 죄인의 회개와 하나님의 용서를 통하여 죄인의 마음에는 투쟁이 사라지고 고요함이 깃들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거하심으로써 모든 격정과 불안과 투쟁은 종결되며, 죄는 마음으로부터 추방되고, 이기적인 자아는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나님과 그의 동료 인간들 사이에 화평을 유지하는 사람은 비참해질 수가 없다. 시기하는 정신이 그의 마음에 자리잡지 못할 것이며, 악한 추측을 하는 정신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미워하는 마음도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마음이 하나님과 조화를 이룬 사람은 하늘의 평화에 참여한 사람이며, 온유와 겸손으로 감싸져 있는 아름다운 향기가 늘 주변의 사람들에게 축복의 강처럼 흘러 나가게 될 것이다.
2. 다른 사람들을 사랑한다
우리는 죽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요일 3:14.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감정적인 느낌이 아니며, 심지어는 가족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맹목적 애착심도 아니다. 사랑은 존경심이 담겨져 있는 태도이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합리적인 관심이고, 다른 사람의 필요와 행복을 위한 사려 깊은 결정이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친한 친구 뿐만 아니라, 지성적이지 못한 사람이나 고집센 사람이나 사랑스럽지 못한 사람이나 변덕이 심한 사람이나, 심지어는 원수에게까지도 한결같이 유지되어야 한다. 사랑은 자신의 유익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신속하게 도와주는 원칙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소유해야 할 사랑은 이러한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이 결핍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다른 모든 은사와 선행은 무의미하다(고전 13장). 사랑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8. 이러한 사랑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받을 수 있다. 어떤 사람도 스스로 이러한 사랑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이러한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을 좀도 깊고 세련되게 다듬음으로써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참된 사랑은 하늘로부터 받는 거룩한 선물이다. 이 사랑은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위대한 사랑이다. 순결한 사랑은 하늘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태어날 때에 부모로부터 받는 마음에는 이러한 사랑이 없다. 하늘에서 받은 사랑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주관하시는 마음에서만 자랄 수 있다.
3. 마음과 정신을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돌린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저절로 마음이 세속적으로 기울어진다. 그들의 주된 관심은 대개 세상에 모아진다. 그들이 비록 주님의 사업에 종사하고 있을지라도, 그들의 진짜 흥미는 직업과 돈과 쾌락과 직위와 유행 위주로 흘러 간다. 그들은 스포츠와 유행과 여행과 자동차에 대해서는 열심히 이야기 하지만,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에 대해서는 흥미있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거듭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사랑에 대하여 대화할 때, 당황하거나 어색해 하면서 침묵을 지키지 않는다. 그들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친 사람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17:14). 참된 거듭남은 감정과 동기에 있어서 결정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참된 거듭남은 세속적인 교제와 관심을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교정시키며, 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4. 승리의 생애를 산다
자신의 힘으로 죄를 극복하고 승리의 생애를 살려고 하는 사람은 전혀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아(self)는 자아(self)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임재가 거하지 않는 사람은 승리할 수 없다. 오직 거듭난 사람만이 죄에 대하여 승리하는 생애를 살 수 있다. 오직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말씀에 일치하는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만이 죄를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2:20. 이러한 경험을 하는 사람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말의 의미가,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생애 속에 치열한 투쟁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자아를 부인하는 일(self-denial)은 매일 매순간마다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그 마음이 새롭게 거듭났기 때문에, 소원과 경향과 의지가 그리스도를 향하게 되므로 승리의 생애를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5. 자신의 부족에 대하여 기도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 서로 그리워하고 대화하기 원하는 강렬한 마음이 있는 것처럼, 기도하기 원하는 소원은 사랑하는 구세주와 교제하기 원하는 간절한 염원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심정이 시편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가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시편 42:1,2.
6.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다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니” 렘 15:16. 과거에는 재미없고 무관심하던 하나님의 말씀이 거듭난 후에는 연구의 대상이 되고, 모든 판단과 결정의 근거가 된다. 거듭난 사람에게 있어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보낸 구원과 영생에 관한 편지라고 여겨진다. 거듭난 사람은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성경에 비추어보고 시험한다. 거듭난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구원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는 동시에 하나님의 계명과 명령의 말씀을 두려운 마음으로 존중한다.
7. 죄에 대한 민감도가 증가된다
“(하나님께서) 허물(disobedience, 불순종)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엡 2:5. 하나님께서는 불순종과 죗된 생애를 통하여 영적으로 죽은 우리에게 성령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을 주신다. 새롭게 거듭나는 경험을 통하여 새로운 사상, 새로운 감정, 그리고 새로운 동기가 심어짐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추구하는 새로운 목적이 마음 속에 새겨진다. 마음은 변화되고 양심은 일깨워진다. 마음이 성령의 변화시키는 영향력에 굴복되면, 양심은 매우 민감하게 죄와 불순한 것들을 감지하게 된다.
성령께서 우둔한 양심을 일깨우셔서 새로운 양심을 갖게 되면, “도데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입니까?”라는 말은 사라지고,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칠흙같이 캄캄한 방에 조그만 구멍을 통하여 한줄기의 빛이 들어오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이 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자신의 부족과 잘못들을 이제는 매우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된다.
8. 하나님의 말씀에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게 된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라는 간증은 오직 거듭난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시 40:8). 왜냐하면 거듭나지 않은 마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롬 8:7).
새로 태어나는 경험을 통하여, 마음은 하나님의 생각과 조화를 이루게 되며 그 분의 법과 일치하게 된다. 죄인의 마음 속에 이러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되면, 죄인의 삶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죄 속에서 거룩함으로, 반역과 불순종에서 충성과 순종으로 옮겨지게 된다. 하나님과 분리되었던 옛 생애는 사라지게 되고, 믿음과 사랑으로 꼴지워진 새로운 생애가 시작된다.
죄인이 그의 마음과 삶 속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죄를 포기할 때, 그는 율법과 일치하게 되며, 완전한 순종의 생애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바로 이것이 그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셨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그분의 진리에 순종하고자 하는 강한 열심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분의 계명에도 충성을 표시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선이 있다. 왜냐하면 순종의 길은 쉽고 편한 길이 아니다. 그 길은 자아 부정과 희생의 길이기 때문이다.
9.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고자 하는 강한 소원을 갖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은 성령에 대한 약속이었다. 예수께서는 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행 1:8).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를 받고 새롭게 거듭난 다윗은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라”고 서언하였다(시 51:13).
만일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일은 우리에게 참된 즐거움을 가져다 줄 것이다. 거듭난 사람은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고귀한 진리와 행복과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기 위하여 최고의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죄로부터 구원받고, 마음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진리를 발견한 사람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진정으로 거듭나게 될 때,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거룩한 페이지를 열어준 진리를 이웃과 친구들에게 말해 주고자 하는 욕망이 마음 속에서 스프링처럼 솟구쳐 올라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이기심없는 열심으로 인하여, 그는 죄인들에게 보내는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편지가 될 것이다.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삶과 마음을 보는 사람마다, 그 속에서 그리스도의 뜻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먼저 거듭남을 통하여, 참된 그리스도인 되어야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다. 먼저 거듭남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 수 있다. 거듭남이 없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것과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려고 애쓰는 것은 한낱 인위적 노력에 불과하다. 거듭남을 통하여 하늘로부터 능력을 받는 자들만이 죄와 자신을 정복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power)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니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 1:12,13.
자녀는 부모가 지니고 있는 어떤 특성들을 갖게 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 역시 하나님의 속성을 우리의 마음과 생애 속에 담고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