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이 한 차례
쉰셋에서 예순넷에 이르는 11년을 아사달에서 살고 있다. 아사달은 우리 민족의 최초 도읍지이자 단군왕검께서 천년 통치를 끝낸 후 돌아가신 이상향을 말함이니 무슨 헛소리인가 할 테지만, 내가 말하는 아사달은 헌책방의 이름으로 ‘아사달헌책방’의 주인이 되어 10년을 보냈다는 뜻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하니 한 차례 강산이 바뀌는 것을 보고도 몇 달을 남길 만큼의 세월을 아사달에 머문 셈이다. 순탄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50대에서 60대에 걸친 10년은 세사를 졸업하고 한가로움을 찾을 나이인데, 그러한 10년을 아사달에 살아온 나는 무엇이 되어 있는가.
공자님은 50세를 지천명(知天命), 60세를 이순(耳順)으로 부르셨다고 한다. 인생에서 가장 원숙하다는 지천명에서 이순에 걸친 10년 세월을 아사달에 있었으니, 성인의 말씀처럼 하늘의 뜻에 귀를 기울일 정도쯤 되어 있는 걸까?
처음 아사달의 간판을 달 때는 꿈이 크기도 했다. 그 무렵은 영국의 헌책방 마을 헤이온와이의 이름이 책방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오르내리고 있을 때였다. 동업자 중의 한 분이 충북 단양의 폐교를 통째로 빌려 책방을 열었다는 소문도 있고 하여, 민족의 성지 아사달의 이름을 차용한 책방을 열면서 헤이온와이쯤 별거냐고 대찬 꿈을 꾸었다.
2006년 10월 26일, ‘19세 이하 청소년 오후 10시 이후 출입금지구역’라고 쓰인 현수막이 반기고 있는 골목 언저리에 간판을 달았다. 전철역과의 거리 문제도 있고, 목 좋은 곳의 가게 임대료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게 어울리지 않는 풍경 속에 아사달을 연 이유였다. 그 한 해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받은 보상금 약간이 가진 돈의 전부였기 때문에, 헤이온와이의 풍경과는 거리가 먼 개업이 되었지만 꿈만은 부족하지 않았다.
출퇴근길에 보게 되는 골목 안 풍경은 80년대의 역전거리가 그대로 남아 있는 정겨운 것이었다. 여인숙이 있고 라면집이 있고 이발관과 중국음식점과 인력시장이 있는, 이런 곳이 아직 남아 있었구나 싶은 풍경 속을 지나면서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편안함을 느꼈는데, 신입 장사꾼을 반기는 아가씨들의 웃음이 그 중 제일 좋았다.
저녁 여덟시 넘어 퇴근을 하는데 유리 진열장 안에서 원색이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은 아가씨가 손짓으로 불렀다. 당황하여 꾸벅 인사를 했더니 얼굴을 찡그려 인상을 썼다. 웬 세상물정 모르는 촌사람인가 하였던 거다. 그 아가씨는 나중에 아사달의 단골손님이 되었는데, 실제로 보니 40대 초반의 아줌마였다.
“씨~발, 여기다 가게를 냈으면 나한테 인사를 해야지. 선배 무시하는 거야?”
다분히 농이 섞인 시비여서 웃으면서 맞았던 기억이 새롭다. 아가씨가 아닌 아줌마였고 조명 아래서 볼 때만큼 예쁘지도 않았지만, 고양이와 강아지를 기른다고 애완동물 기르기에 관한 책을 사러 오기도 하고, 삶은 고구마를 비닐봉지에 담아 와서 놓고 가기도 하여 금세 친해졌다.
고구마 얘기가 나왔으니 그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다. ‘아사달 헌책방’의 간판을 달고 보낸 10년 세월 속에 여러 단골들을 잃었는데, 그러한 생사별리의 사건들 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아팠던 사연이기 때문이다.
“이 책들, 어디서 사왔어요?”
1톤 화물차로 고물상을 하는 친구가 실고 온 고물들 속에 책이 몇 뭉치 섞여 있어 그렇게 물었다. 주로 잡지와 화보인 책 뭉치는 한눈에 내게서 나간 책임을 알 수 있는 특색이 있었다.
“야한 책들이 많아서 볼까 했는데, 죽은 사람 물건이라더군요. 필요하세요?”
“내가 팔았던 물건들인 것 같은데…… 이 책, 다 내리세요. 나밖에 살 사람이 없겠네요.”
‘죽은 사람 물건’이라는 말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책을 사간 사람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어지러워 어려운 책은 못 봐요. 그냥 그림 많은 거 찾아주세요.”
말씨가 어눌한 40대 중반쯤의 사내였다. 화물용 짐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그림이 많은 여성잡지를 자주 사갔다.
“가죽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자꾸 어지럽고 그러더니 핑 돌아서 쓰러졌어요. 공장에서 치료비는 내줬는데……”
화학약품을 쓰는 가죽공장에서 10년 넘어 일을 하다가 중독되어 뇌신경을 다친 산재환자였다. 공장이 영세해서 겨우 치료만 해주었을 뿐 보상을 변변히 받지 못하고 퇴원했다고 하였다. 장애 등급이 나온 게 그나마 다행이라 생활보호대상자로 약간의 돈이 나와 그걸로 살아간다고 하였다.
“이 책들, 다시 팔러 오면 반값은 언제든지 드릴 테니 버리지 말아요.”
야한 그림이 많은 대중잡지를 10여 권씩 사가곤 하였다. 나름 성생활일 거라고 안타까워하던 중에 뜻밖에 선물상자를 들고 왔는데, 고구마가 가득 들어 있었다.
“농사지은 거예요. 드리고 싶었어요.”
농사를 지을 땅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 웬 고구마인가 물었더니 철도부지에서 가꾼 것이라고 하였다.
“제가 사는 컨테이너 박스 옆에 빈 땅이 조금 있어요. 그냥 놀리는 게 아까워서 심어봤어요.”
살고 있는 곳도 철도부지 공터에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 앉힌 무허가 건물이었다. 산재환자였지만 다니던 가죽공장이 하청의 재하청 같은 영세업체로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보상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극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 달에 25만원으로 살아요? 생활보호대상자로 받는 돈? 그 돈에서 약값을 내고, 책을 사요?”
“가끔 잡부 일을 나가요. 청소 같은 거. 쉬운 일은 할 수 있어요.”
그렇게 친해진 게 몇 해 전 가을인데 계절이 바뀌면서 발길을 끊더니 엉뚱한 방법으로 부음을 전해 왔던 것이다.
단골손님과의 안타까운 사별은 그뿐만이 아니다. 아사달 10년 세월에 몇 분의 스승과 친구를 보내드렸는데, 재작년 겨울에 가신 박모 선생님께는 동몽선습을 배웠기 때문에 아픔이 컸다. 소장본이셨던 한적(漢籍) 동몽선습을 가져오셔서 한 문장씩 짚어가며 강독해 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천지지간만물지중(天地之間萬物之衆)에 유인최귀(惟人最貴)니
소귀호인자(所貴乎人者)는 이기유오륜야(以其有五倫也)니라.
“만물 중 사람이 가장 귀하니, 사람을 귀히 여기는 이유는 오륜이 있기 때문이다. 이 뜻을 알겠는가?”
젊었을 때 동몽선습을 읽기는 하였지만 주마간산(走馬看山)식의 공부여서 선뜻 해설하지 못했더니 책으로 머리를 쾅 때리셨다. 한 대 맞고 설명을 듣는데 왜 그리 서러운 지 눈물을 감추려고 애를 썼다.
“11월 말경에 가셨어요. 자전거를 타다가 떨어지셔서. 연세가 높으셨으니 고생 않고 가신 게 다행이지요.”
두어 달 오시지 않아 놓고 가신 책 때문에 전화를 드렸다가 그렇게 부음을 들었다. 젊은 시절 중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셨던 선생님은 출퇴근을 하며 타셨던 자전거를 그리워하셨고, 아들이 사드린 세발짜리 안전 자전거를 타시다가 변을 당하신 것이었다. 전화를 받으신 사모님은 “오랜 지병이 있던 분이니 큰 고생 않고 가신 게 다행”이라고 하시며, “기왕 남기신 물건이니 책은 가지시라”하셨다.
그런 연유로 얻은 동몽선습의 마지막 장에는 영력(永曆)245년의 연호가 있었다. 명나라 망명정권의 마지막 황제 계왕(桂王 1647년~1662년)의 연호라는데, 임진왜란 때 구원병을 내어 우리나라를 도운 중국에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한 조선 선비들의 의리가 그런 연호를 사용하게 했고, 21세기의 헌책장사에게까지 전해졌던 것이다.
내 아사달에서의 이야기꺼리는 사람과의 인연 못지않게 책에 관련된 사연이 많다. 최근에 사들인 도서관 책도 그 중 하나인데, 도시 안에 몇 안 되는 도서관들이 폐기 용도로 방출한 책들 속에서 보물을 건진 경우였기 때문이다.
주자대전차의집보(朱子大全箚疑輯輔). 화서 이항로(華西 李恒老)선생과 아들 이준(李埈)의 역작. 국판 크기에 각권 2800여 쪽 이상인 네 권의 책을 방출도서 속에서 발견했을 때 가슴이 쿵! 뛰었다. 판권을 들쳐서 한정판임을 확인하고 기증본 스탬프를 보는데 인연이다 싶어 신기하기만 했다. 전날 손님들에게서 송시열선생의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 이야기를 듣다가 주자대전차의집보까지 화제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주자대전을 주석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책 전부를 모아 비교해 놓은 게 ‘주자대전차의집보’라더군요. 유학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는 어려운 일이었다는데, 그 국역본이 10여 년 전에 나왔다고 하더군요. 시중에는 없고 도서관 기증용 한정판만 약간 찍어냈다고…”
중국 송나라 때의 성리학자 주희(朱熹)의 저서를 망라한 회암선생주문공문집(晦庵先生朱文公文集)을 주석한 모든 책들을 비교 연구하여 다시 해석했다는 이항로선생과 아들 이준의 ‘주자대전차의집보’국역본을 꼭 구해보고 싶다는 손님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군침을 삼킨 게 달포쯤 전인데, 그 책이 내 손에 들어왔던 것이다.
욕심내던 책이 뜻하지 않게 구해질 때의 기쁨을 이야기한 장서가들의 글을 자주 보는데 헌책장사의 책에 대한 구애도 그들에 못하지 않다. 모처럼 손에 넣은 보물을 지키지 못하고 팔아치울 때의 아쉬움도 흔히 겪는 일이지만, 희귀본을 발견할 때의 뿌듯함은 헌책장사 아니면 갖지 못할 직업적 자긍심에 통한다. 고물상의 폐지 뭉치 속에서 누군가 버린 보물을 발견할 때는 지식의 낭비를 기막혀 하면서도, 그걸 살려내는 게 헌책장사가 살아가는 명분이려니 생각하여 감사를 드린다.
책을 사고팔며 살아온 아사달에서의 삶도 4000일에 가깝다. 몇 만권의 책을 모아놓았을 뿐 원래의 꿈인 헤이온와이는 닮지도 않았는데, 그동안 얻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그 나마의 소득이라고 자부하며 산다.
10년은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고도 남을 만큼의 시간이고, 지천명에서 이순에 이른 10년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내 경우 아사달의 이름을 빌린 헌책방에서의 10년 동안 잡서를 눈동냥 하여 얻은 번거로움이 만만치 않은데, 뉘라서 아사달 성지를 생활터전으로 갖고 살 수 있으랴 싶기는 하지만, 그런 억지 인생의 어딘가에서 만족을 구하는 게 험은 아니지 않느냐고 강변해 보기도 한다.
요즘.젊은이들.꼭읽었음좋겠네요
생각없이 보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집중해서 보게되는 글입니다.
지금은 접었지만 나도퇴직후 커피점을 운영하면서 맞이했던 여러 인연도 생각나구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저도 몇년새 아는분이 두분이나 가셨습니다. 언젠가 제 차례도 오겠지요. 이 세상 소풍 아름답게 마무리 해야지요^^
좋은글 감사해요
잘 읽었습니다
잘 읽 고 갑니다 ~~ ㄳ
잘 읽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멋진글인네요
잘읽었습니다
굿 아주 좋은 글 입니다~감4^^*
잘 읽었습니다
해박한 지식에 감동 감격합니다. 항상 건강하소서
잘보았습니다.
아름답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잘봅니다
좋은글잘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
서점이란 말을 귀하게 듣게 되군요.
책이 많이 팔려야 되는데
감사합니다.
헌책방..아사달~이름만 들어도 정말 좋습니다. 여기 토론토는 오래된 건물에 책방들이 더러..정겹게 있어 나들이 길엔 의례 들립니다. 좋은 책 찾으면 반갑고 기쁘고..귀하고 좋은 일 하시니 부럽습니다~^^
공감합니다
그런데 뒷맛이 쌉쓰레합니다
읽었어도 무슨글인지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
안녕하세요 과하객님 좋은글
잘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