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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발명에서 동시대 예술까지
회화의 재현, 매체의 자기성찰, 사진적 이미지의 확장
[1] 사진과 회화의 관계를 보는 출발점
1. 사진의 발명은 회화와 예술 전반에 변화를 일으켰지만, 그 변화는 하나의 직선적인 인과관계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진이 회화의 재현을 대신하고, 회화가 본질에 집중한 뒤, 사진이 동시대 예술이 되었다는 단순한 순서가 아니라 여러 매체와 사회적 조건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과정이다.
(1) 사진은 초상, 풍경, 기록, 복제처럼 회화가 맡던 시각적 기능 가운데 일부를 빠르고 세밀하게 수행했다. 그러나 역사화와 종교화, 상상적 장면의 구성, 색채와 감정의 탐구까지 회화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2) 사진의 등장 이후 회화가 평면·색채·물감·화면 같은 매체의 조건을 의식하는 흐름이 강해진 것은 사실이다. 다만 사진이 회화를 필연적으로 추상화한 것은 아니다. 회화 내부의 변화, 산업화와 도시화, 새로운 시각 경험, 예술가와 비평가의 선택이 함께 작용했다.
(3) 사진은 19세기부터 예술적 표현의 가능성을 인정받으려는 실천이 있었고, 20세기 전반에는 독립된 예술 매체로 자리 잡았다. 이후 동시대 미술에서 사진은 완성된 사진 작품만이 아니라 기록, 자료, 개념, 설치의 구성 요소, 기존 이미지에 대한 비평의 수단으로 더 넓게 쓰이게 되었다.
2. 이 역사적 흐름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1) 사진의 발명은 회화가 맡아 온 재현 기능 일부를 변화시켰고, 회화와 사진 모두가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는지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 결과 회화에서는 평면·색채·물감·화면 같은 매체의 조건을 의식하는 흐름이 강해졌지만, 이 변화는 사진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진 역시 처음부터 단순한 기록 도구가 아니라 예술적 표현의 매체로 발전했다.
이후 모더니즘·개념미술·포스트모더니즘·디지털 이미지 문화 속에서 사진의 지표성, 복제성, 프레이밍, 기록성, 유통 방식은 예술적 주제이자 재료가 되었다. 사진이 동시대 예술에 깊이 편입된 것은 회화의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진이 가진 시각적·기술적·사회적 특성을 예술가들이 작품의 형식과 의미를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2] 사진의 발명은 회화의 재현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1. 사진은 회화와 단절된 곳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1) 사진의 공개 발표는 1839년에 이루어졌지만, 빛으로 영구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실험은 그보다 앞선 1820년대부터 진행되었다. 사진의 초기 발전을 이끈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Louis-Jacques-Mandé Daguerre)는 화가이자 판화가였고, 초기 사진술은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와 같은 광학 장치의 역사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사진은 태어날 때부터 예술적 표현의 매체인 동시에 과학적 관찰과 기록의 도구였다.
(2) 당시 화가들의 반응은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다. 어떤 화가는 새 매체를 경계했고, 어떤 화가는 사진을 그림의 밑그림이나 관찰 도구로 사용했으며, 또 다른 사람들은 사진 자체를 새로운 표현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사진의 등장으로 회화가 사라지거나 재현 기능을 포기했다고 볼 수 없는 이유이다.
2. 사진은 회화의 특정한 역할을 빠르게 바꾸었다.
(1) 사진은 초상과 풍경, 건축물, 사람과 사건을 기록하고 복제하는 일에서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했다. 특히 한 장의 네거티브에서 여러 장의 인화물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사진 이미지는 책과 앨범, 인쇄물에 널리 유통될 수 있었다. 이는 회화의 재현 기능 전체를 없앤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얼마나 정확하고 빠르게 기록하고 복제할 수 있는가를 바꾼 것이다.
(2) 사진의 재현도 기계가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중립적 행위는 아니다. 촬영자는 위치와 거리, 렌즈, 초점, 노출, 순간, 화면의 경계를 선택한다. 사진은 실제 대상과 빛의 관계를 갖지만, 프레임 안에 무엇을 넣고 밖에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현실을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한다.
(3) 따라서 사진이 회화의 재현을 대신했다기보다, 사진과 회화가 재현을 서로 다르게 수행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 사진은 카메라 앞에 있었던 대상과 사건을 빛의 흔적으로 기록하는 능력을 발전시켰고, 회화는 관찰된 세계를 구성하고 변형하고 해석하는 여러 가능성을 계속 탐구했다.
[3] 회화의 자기성찰과 매체 특수성
1. 회화가 “본연의 본질에 집중했다”는 설명은 매체 특수성(Medium Specificity)이라는 이론과 연결된다.
(1) 매체 특수성은 각 예술 매체가 지닌 고유한 조건을 살펴보려는 관점이다. 회화의 경우 화면의 평면, 캔버스 같은 지지체, 물감과 색채가 그 조건으로 논의되어 왔다.
(2)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모더니즘 회화(Modernist Painting)」에서 모더니즘 회화가 회화의 평면성과 화면의 물질적 조건을 점점 더 의식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회화는 깊이감 있는 세계를 환영처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물감이 칠해진 평면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게 된다.
(3) 이 이론은 회화가 재현을 벗어나 자신의 매체적 조건을 드러내는 흐름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다만 이를 사진 발명 뒤에 회화가 발견한 단 하나의 본질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린버그의 설명은 모더니즘 회화의 한 흐름을 강하게 해석한 이론이지, 모든 회화의 역사를 대신하는 보편 법칙은 아니다.
2. 사진은 회화의 추상화를 촉발한 하나의 조건이지,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1) 회화가 비재현적이고 추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간 데에는 사진 외에도 다양한 원인이 작용했다. 예술가들은 색과 형태, 감각과 지각, 종교적·철학적 관념, 도시와 산업의 변화, 새로운 과학적 지식과 비서구 미술 등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2) 사진이 회화에서 재현을 가져갔기 때문에 회화는 자동으로 추상화되었다고 말하면, 사진 이전부터 이어진 회화의 실험과 사진 이후에도 계속된 구상 회화의 존재를 놓치게 된다.
(3) 사진은 회화의 재현을 약화시키기만 한 것도 아니다. 회화는 사진을 참고 이미지로 사용했고, 사진의 구도와 잘림, 초점과 흐림, 순간 포착 방식을 받아들였다.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는 가족사진과 신문 사진 등을 바탕으로 회화를 제작하면서 사진의 객관성처럼 보이는 성격과 회화적 해석의 관계를 탐구했다. 이는 사진이 회화를 밀어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회화 안에서 새로운 질문을 만드는 재료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4] 원본성, 복제, 손기술의 문제
1. 사진은 예술작품의 원본성과 복제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크게 바꾸었다.
(1) 사진의 기술복제(Technical Reproduction)는 하나의 이미지가 여러 장으로 만들어지고 서로 다른 장소에서 유통되는 일을 가능하게 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에서 복제가 작품의 유일한 현존과 역사적 권위, 즉 아우라(Aura)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분석했다.
(2) 그러나 기술복제가 사진에서 처음 생긴 것은 아니다. 판화와 인쇄술도 이미 이미지를 복제하고 유통해 왔다. 사진은 복제를 새로운 속도와 규모로 확대했고, 사진 이미지가 원래의 장소와 물체에서 분리되어 널리 이동하도록 만들었다.
(3) 복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곧 사진의 원본이 없다는 뜻도 아니다. 초기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은 금속판에 만들어진 하나뿐인 이미지였다. 이후 네거티브에서 여러 장을 인화하는 방식이 일반화되면서 원본성은 유일한 이미지 한 장에만 머물기 어려워졌다. 사진에서는 네거티브, 인화 시기와 방식, 작가의 인화 여부, 에디션, 소장 이력 등이 작품의 진위와 정체성을 설명하는 기준이 되었다.
2. 손기술에 대한 의문도 사진 하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1) 사진은 카메라와 화학적 과정이 이미지를 만드는 데 개입한다는 점에서 “예술은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믿음에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사진의 초기 예술 운동인 회화주의(Pictorialism)는 사진이 기계적 산물이라는 비판에 대응하려고 공을 많이 들이는 암실 작업과 인화 기법을 사용했다. 사진작가들은 사진에서도 작가의 손과 판단이 개입한다고 주장했다.
(2) 이후 다다(Dada)와 개념미술(Conceptual Art) 같은 흐름에서는 손으로 얼마나 능숙하게 만들었는가만으로 예술성을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 이 논의는 사진뿐 아니라 뒤샹의 레디메이드(Readymade), 지시문과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한 작품, 행위와 설치 등 여러 실천에서 함께 나타났다.
(3) 따라서 사진은 손기술을 없앤 것이 아니라, 예술적 능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묻게 했다. 그 능력은 직접 그리거나 조각하는 손놀림에만 있는가, 아니면 대상의 선택, 촬영 위치, 연출, 편집, 배열, 인화, 전시 방식에도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5] 사진의 예술 매체화
1. 사진은 동시대 미술이 시작된 뒤에야 예술이 된 것이 아니다.
(1)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회화주의자들은 사진이 회화와 조각에 견줄 예술적 표현이 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는 사진의 예술적 가능성을 옹호했고, 사진 전시와 잡지, 갤러리 활동을 통해 사진의 예술적 지위를 높이려 했다.
(2) 초기 회화주의는 사진의 예술성을 회화와 비슷한 분위기로 증명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초에는 사진의 선명함과 세부 묘사, 렌즈의 시점, 순간 포착 같은 사진 고유의 가능성을 드러내려는 모더니즘 사진이 성장했다. 스티글리츠와 동료들은 사진을 회화처럼 보이게 하는 데서 벗어나 사진 매체의 특성을 활용하려 했다.
(3) 사진이 예술로 받아들여진 과정에는 작품의 미적 성취뿐 아니라 작가와 비평가의 논쟁, 전시와 출판, 갤러리와 미술관의 수용도 작용했다. 사진은 예술가들이 사용해서만 예술이 된 것이 아니라, 사진을 예술로 보고 전시하고 토론하는 제도적 조건 속에서도 자리 잡았다.
2. 사진의 역사는 “기록 도구에서 예술로 한 번에 승격된 과정”이 아니다. 기록과 과학, 상업, 보도, 초상, 예술의 여러 역할이 겹친 채 발전했고, 예술가들은 그 역할의 차이와 경계를 작품에서 계속 다루었다.
[6] 동시대 미술에서 사진이 매체이자 재료가 된 과정
1. 1960년대 이후 개념미술, 퍼포먼스, 해프닝(Happening), 대지미술(Land Art) 등은 전통적인 회화와 조각만을 예술작품의 기준으로 삼기 어렵게 만들었다.
(1) 작품이 영구적인 물체가 아니라 지시문, 과정, 행위, 장소, 기록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되면서 사진은 작품을 남기고 전달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때 사진은 이미 끝난 작품을 찍어 둔 단순한 증거일 수도 있지만, 작품의 존재와 관람 방식에 필수적인 부분이 될 수도 있다.
(2) 예를 들어 퍼포먼스가 사라진 뒤에도 사진을 통해서만 그 행위가 알려진다면, 사진은 단순한 부록이 아니라 관람자가 작품을 접하는 주요 통로가 된다. 어떤 작업에서는 사진 촬영과 이미지의 조작 자체가 작품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브 클라인(Yves Klein)의 〈허공으로의 도약(Leap into the Void)〉은 사진이 행위를 기록하는 동시에 몽타주를 통해 그 행위의 이미지를 구성한 사례다.
(3) 1960년대 중반 이후 개념미술에서 사진의 역할이 커지면서 사진은 단독 인화물뿐 아니라 사진 캔버스, 혼합매체 조각, 사진책, 잡지, 슬라이드와 영상 투사, 연속 사진 등 다양한 형식으로 사용되었다.
2. 이 과정에서는 사진이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1) 사진이 매체(Medium)인 경우, 사진의 이미지와 인화 형식이 작품의 중심 표현 방식이 된다.
(2) 사진이 재료(Material)인 경우, 기존 사진이나 직접 촬영한 이미지가 콜라주, 설치, 조각, 책, 영상 등 더 큰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로 들어간다.
(3) 사진이 기록(Document)인 경우, 사라지는 행위나 일시적인 장소, 변화하는 상황을 보존하고 전달한다. 기록이 작품의 의미와 전시 방식에 깊이 들어가면 기록물과 작품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
(4) 사진이 방법이나 개념적 장치(Conceptual Device)인 경우, 연속 촬영, 분류, 기록, 반복, 증거, 감시, 초상, 이미지의 유통 같은 사진의 작동 방식 자체가 작품의 주제가 된다.
3. 그러므로 사진은 완성된 인화물만이 아니라, 촬영하고 고르고 복제하고 배열하고 전시하고 유통하는 전체 과정으로 작품에 들어갈 수 있다. 이 과정 전체가 예술적 형식과 의미를 만드는 요소가 된 것이다.
[7] 복제 이미지와 작가의 권위를 비판하는 사진
1. 1970년대 이후 사진은 대중매체 이미지가 현실을 보여주는 방식과 작가의 독창성에 대한 믿음을 비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 더글러스 크림프(Douglas Crimp)가 1977년 기획한 전시와 관련해 알려진 픽처스 제너레이션(Pictures Generation)의 작가들은 광고, 영화, 텔레비전, 잡지에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의 표현 방식을 가져오거나 다시 구성했다. 그들은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되며, 특정한 인물과 정체성을 어떻게 재현하는지 질문했다.
(2) 셰리 레빈(Sherrie Levine)은 워커 에번스(Walker Evans)의 사진을 다시 촬영하는 작업으로 저자성(Authoriality), 독창성(Originality), 사진의 소유와 복제 문제를 드러냈다. 신디 셔먼(Cindy Sherman)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사진에서 직접 인물을 연기해, 여성의 정체성이 미디어 이미지와 시각적 관습을 통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탐구했다.
(3) 이때 사진의 복제 가능성은 단순히 여러 장을 만드는 기술적 장점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가 누구의 시선과 권력을 담고 있는지, 그 이미지를 다시 가져오면 의미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묻는 비평의 방식이다.
2. 이 흐름은 사진이 “현실을 찍은 증거”라는 기대도 다시 검토하게 한다.
(1) 사진은 현실과 물리적 관계를 맺는 지표(Index)로 설명되어 왔다.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의 기호학에서 지표는 대상과 실제적·인과적 관계를 맺는 기호를 뜻한다. 사진은 대상에서 반사된 빛이 감광면이나 센서에 작용한다는 점에서 지표적 성격을 지닌다.
(2) 그러나 사진은 지표만은 아니다. 대상과 닮은 형상이라는 점에서는 도상(Icon)이기도 하고, 사진의 의미를 읽는 방식은 사회적 관습과 기호에 기대므로 상징(Symbol)의 성격도 갖는다. 사진이 실제 대상을 촬영했다는 사실은 사진이 사건 전체의 진실을 보여준다는 뜻이 아니다.
(3)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는 1970년대 동시대 미술을 설명하며 사진의 지표성과 여러 사진적 실천의 관계를 논의했다. 다만 지표성만으로 모든 사진의 의미를 설명할 수는 없다. 프레이밍, 캡션, 편집, 연출, 유통과 전시 맥락도 함께 살펴야 한다.
[8] 디지털 시대와 포스트매체 조건
1. 디지털 이미지 환경은 사진의 재료와 유통 방식을 다시 바꾸었다.
(1) 디지털 사진은 촬영된 이미지를 수정하고 합성하기 쉬워졌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던 장면도 사진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 변화는 사진과 시각적 진실의 관계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2) 그렇다고 디지털 사진이 모두 현실과의 연결을 잃었다는 뜻은 아니다. 카메라 센서가 실제 대상에서 온 빛을 받아 이미지를 만들었다면 촬영 단계에는 여전히 현실과의 인과적 관계가 있다. 다만 편집과 합성, 생성 이미지가 더해지면 이미지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별도로 살펴야 한다.
(3) 그러므로 오늘날 사진의 중요한 문제는 “사진은 진실인가 거짓인가”라는 단순한 양자택일이 아니다. 이미지가 어떤 장치와 데이터, 편집, 플랫폼, 유통 구조를 거쳐 만들어지고 신뢰받는지를 묻는 문제다.
2. 이 변화는 포스트매체 조건(Post-Medium Condition)과도 연결된다.
(1) 포스트매체 조건은 사진·회화·영상 같은 전통적 매체의 경계가 사라졌다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다. 하나의 작품이 특정 매체의 순수한 재료만으로 성립하기보다, 여러 매체와 기술, 전시 방식, 유통 구조를 함께 사용하게 된 상황을 가리킨다.
(2) 사진은 회화, 영상, 설치, 책, 스크린, 인터넷 이미지와 결합한다. 이때 사진의 의미는 인화물의 크기와 표면뿐 아니라 이미지가 놓인 공간, 반복되는 방식, 관람자의 이동, 온라인에서의 복제와 공유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3) 이 관점에서 동시대 미술의 사진은 카메라로 찍은 결과물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진적인 것(The Photographic)은 촬영과 기록, 복제, 분류, 저장, 검색, 화면 구성, 이미지 유통을 포함하는 넓은 작동 방식으로 확장된다. 이 확장을 말할 때도 사진의 물질적 인화와 실제 촬영의 흔적이 여전히 중요한 경우가 있다는 점을 함께 보아야 한다.
[9] 동시대 미술에서 사진이 작동하는 방식
1. 사진은 현실을 기록하는 동시에 현실이 이미지로 구성되는 방식을 드러낸다.
(1) 사진의 프레임은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제외할지 결정한다. 따라서 사진은 현실을 단순히 담는 창이 아니라, 현실의 일부를 선택해 보이게 하는 형식이다.
2. 사진은 시간과 사건을 다루는 매체다.
(1) 사진은 한 순간을 고정하지만, 그 순간은 촬영 전후의 시간을 모두 설명하지 않는다. 연속 사진과 배열, 캡션, 설치는 사진 한 장에 없는 시간 관계를 새로 만든다.
3. 사진은 복제와 유통을 통해 의미가 바뀌는 이미지다.
(1) 같은 사진도 신문, 광고, 가족 앨범, 미술관, 인터넷 화면에서 서로 다른 기능과 권위를 갖는다. 동시대 미술은 이미지가 이동하면서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작품의 주제로 삼는다.
4. 사진은 증거와 허구의 경계를 탐구한다.
(1) 사진은 실제 대상을 찍었다는 믿음을 일으키지만, 연출과 편집, 선택을 통해 허구를 만들 수도 있다. 이 차이를 감추거나 드러내는 방식이 작품의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다.
5. 사진은 물질적 대상이기도 하다.
(1) 종이의 크기와 표면, 인화 방식, 액자, 벽에 거는 위치, 책이나 스크린으로 제시하는 방식은 사진의 의미와 관람 경험을 바꾼다. 사진은 화면 속 이미지인 동시에 공간 안에 놓이는 물체다.
[10] 사진의 발명에서 동시대 예술까지의 논리 흐름
1. 사진의 발명은 회화가 맡아 온 재현 기능 가운데 일부를 변화시켰다. 사진은 초상과 풍경, 기록과 복제에서 새로운 정확성과 속도, 유통 가능성을 제공했고, 그 결과 예술가들은 무엇이 보이고 어떻게 보이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모더니즘 회화는 이 변화만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여러 역사적 조건 속에서 회화의 평면, 색채, 물감, 화면 같은 매체의 조건을 의식하게 되었다. 한편 사진은 처음부터 과학적 기록 도구와 예술적 표현 매체라는 두 성격을 함께 지녔고, 회화주의에서 모더니즘 사진에 이르는 실천을 통해 사진 고유의 표현 가능성을 발전시켰다. 기술복제는 작품의 유일성과 작가의 손기술만을 예술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지 질문했지만, 사진의 원본성과 기술은 사라지지 않고 인화, 에디션, 촬영, 편집, 배열, 전시의 문제로 다시 구성되었다. 1960년대 이후 개념미술과 퍼포먼스, 설치, 포스트모더니즘은 사진을 기록이자 작품, 재료이자 개념, 현실의 흔적이자 대중 이미지에 대한 비판으로 사용했다. 디지털 시대에는 사진의 제작과 조작, 저장과 유통까지 예술의 주제가 되었다. 그러므로 사진이 동시대 예술에 깊이 편입된 것은 회화가 재현을 포기한 뒤 그 빈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 아니다. 사진이 가진 지표성·복제성·순간성·프레이밍·기록성·유통성을 예술가들이 작품의 형식과 의미를 만드는 데 활용하고,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예술 환경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11] 참고자료
(1)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다게르와 사진의 발명」
https://www.metmuseum.org/pt/essays/daguerre-1787-1851-and-the-invention-of-photography
(2)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프랑스 다게레오타입 시대」
https://www.metmuseum.org/ja/essays/the-daguerreian-age-in-france-1839-1855
(3)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와 미국 사진」
https://www.metmuseum.org/de/essays/alfred-stieglitz-1864-1946-and-american-photography
(4) 클레멘트 그린버그, 「모더니즘 회화」
https://www.c-cyte.com/OccuLibrary/Texts-Online/Greenberg_Clement-Modernist_Painting.pdf
(5) 월터 벤야민,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https://www.mit.edu/course/21/21w.784/www/BD%20Supplementals/Materials/Unit%20Three/Benjamin%20work%20of%20art.html
(6) 시카고 미술관, 「개념미술과 사진, 1964–1977」
https://archive.artic.edu/lightyears/overview/
(7) 손영실, 「이론적 대상으로서의 사진: 지표성에 관한 재고를 중심으로」
https://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104687
(8) 뉴욕 현대미술관, 「픽처스 제너레이션」
https://www.moma.org/collection/terms/pictures-generation
(9)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포토샵 이후」
https://www.metmuseum.org/exhibitions/listings/2012/after-photosho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