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영적인 것들도 자아로 만든다. 자아는 세상의 것만 탐내지 않고 영적인 것도 탐내고, 그 위에 서서 주인이 되려고 한다.
1. 영적 자아는 기도도 탐하고, 말씀도 탐하고, 은사도 탐하고, 깨달음도 탐하고, 하나님의 임재와 체험까지 탐한다.
2. 그래서 영적 자아는 분별하기 어려워 보인다. 세상을 탐하는 탐욕은 세상의 것으로 자신을 높이지만, 영적 탐욕은 하나님의 것으로 자신을 높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3. 영적 자아는 신앙적인 이미지를 사용해 스스로 속이고, 신앙적인 말들도 자신의 자아를 세우는데 사용한다.
• "하나님을 더 알고 싶다."
• "더 깊은 말씀을 알고 싶다."
• "더 큰 은사를 받고 싶다."
• "더 놀라운 능력을 받고 싶다."
• "하나님께 더 크게 쓰임받고 싶다." 라고 말하면서 그 동기는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해 있다.
1. 정말 하나님을 원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많이 아는 '나'를 원하는가? 은사가 있는 나, 깊은 나, 능력 있는 나, 특별한 나, 크게 쓰임받는 나를 원하는가?
2. 영적 자아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나를 더 큰 존재, 특별한 존재로 만들려는 것이다.
3. 그래서 영적 자아는 영적인 지식과 깨달음을 굉장히 좋아한다. 새로운 성경 지식, 남들이 모르는 해석, 깊어 보이는 영성 용어, 새로운 깨달음 등, 그런데 지식이 많아질수록 순종이 깊어지고 겸손해지기보다 "나는 안다"라는 자신의 특별함만 강해진다. 그리고 그 특별함으로 영적인 계급을 나눈다.
4. 많이 아는 것과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많이 아는 것과 많이 변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깨달음이 많아졌다고 자아는 죽은 것이 아니다. 깨달음은 시작에 불과하다. 어떤 경우에는 깨달음 자체가 아무 의미 없을 때도 있다.
이 깨달음 때문에 내가 더 순종하고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됐는가? 내가 더 특별해졌는가? 스스로 특별해진 이 영적 자아를 가진 사람들은 지적하고 정죄하기 바쁘다. 그 안에 은혜가 없고, 율법의 규칙만 남기 때문이다. 8. 영적 자아는 감정적인 체험도 좋아한다. 강한 임재, 눈물, 전율, 평안, 황홀감, 깊은 감동. 하나님이 이것들을 실제로 주신다. 그러나 강하게 느낄수록 하나님과 더 가깝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러한 것들이 사라져도 믿고 사랑하는지 우리에게 물어보신다. 9. 하나님보다 '하나님을 느끼는 감각'을 더 사랑하는 것이 영적 자아로 흐르는 길이다. 기도가 감미로우면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고, 기도가 메마르게 느껴지면 멀어졌다고 착각한다. 그 체험 자체가가 하나님이 아님에도 그 체험 자체에 묶인다. 하나님은 우리를 더 성숙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느끼던 감각을 차단시키기도 한다. 감성으로 느끼던 하나님이 더는 감성적으로 만나주지 않으신다.
이러한 시간이 오히려 감성의 정화가 일어나는 시간이다. 기다리고 견디고 인내함으로 연단되어 우리 안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그러나 영적 자아는 기다리지 못한다. 다른 무언가를 느끼려고 난리치고, 새로운 무언가를 깨달으려고 난리친다.
10. 영적 자아는 은사도 자기증명의 도구로 사용한다. 예언하고, 병 고치고, 말씀이 열리고, 깊은 기도를 경험하고, 사역의 열매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그 시간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일하신다"가 아니라 "그러므로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로 바뀔 수 있다.
11. 때론 은사가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은사가 왔어도 그 중심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새사람으로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있는지, 옛사람으로서 내가 왕되어 내가 통치하고 내가 판결을 내리려 하는지.
12. 은혜의 선물이 자아의 자기증명 수단이 되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
은혜의 선물이 자아의 왕관으로 바뀌는 순간 영적 탐욕과 교만이 시작된다.
13. 영적 자아는 늘 '특별함'을 필요로 한다. 평범한 신앙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남들과 다른 체험이 있어야 하고,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아야 하고, 남들이 가지지 못한 은사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 특별하게 쓰임받아야 한다. 자신이 특별하다는 자기 존재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14. 그래서 영적 자아는 비교한다.
• "나는 저 사람보다 깊다."
• "저 사람은 아직 육적이다."
• "나는 이 단계를 안다."
• "나는 이런 체험을 했다." 영적 자아의 신앙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영권을 가진 것처럼 스스로 착각해서 영적 서열을 확인하는 일이 된다.
1. 영적 자아는 다른 사람의 성장을 기뻐하지 못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 깊어지면 내 특별함이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은혜가 임하면 함께 기뻐하기보다 비교하거나, 평가하거나, 흠을 찾는다.
2. 영적 자아는 사역의 크기도 자기 가치와 연결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시는구나." 사역이 커지면 "내가 잘하고 있구나." 영향력이 커지면 "나는 하나님께 중요한 사람이구나" 그러나 사역의 크기와 자아의 죽은은 같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더 아는 것과 사역의 크기는 비례하지 않는다. 영적 자아는 각자에게 주어진 것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3. 잘되는 사역을 줄이고 내려놓으라 하신다면 내려놓을 수 있는가? 사람들이 떠나도 하나님이면 충분한가? 내 이름이 사라져도 괜찮은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은사가 사라져도 하나님이면 충분한가? 특별한 체험이 없어도 충분한가? 깨달음이 더 없어도 하나님이면 충분한가?
4. 영적 자아는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까지 절대화한다. 특정 기도법, 특정 찬양, 특정 은사, 특정 설교자, 특정 영성책, 특정 공동체, 특정 사역 방식 등 처음에에는 하나님을 만나는 좋은 도구였지만,
나중에는 "이 방식으로만 가능해!"라고 하며 다른 방식은 전부 틀렸다고 여기기도 한다. 19. 영적 자아는 검증 받는 것도 싫어한다.
• "하나님이 나에게 직접 말씀하셨다."
• "나는 하나님께 들었다."
• "영적인 사람은 이러한 것들을 안다."
• "하나님 앞에서 내가 (특별히) 깨달았다."
• "다른 사람들은 다 틀렸고, 이 진리가 맞다." 이러한 말들로 다른 사람의 질문을 막는다. 그러면서 성경과 역사와 공동체의 검증은 무시한다. 자기 체험과 자기 확신의 깨달음만 최종 기준이 된다.
1. 그래서 자신을 향한 모든 비판을 '영적 공격'이라 부르기도 한다. 실제 공격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질문과 검증까지 모두 공격으로 규정한다면, 이미 영적 자아가 자기 권위를 보호하는 중이다.
2. 결국, 영적 자아는 사람을 통제하는 데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다.
•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 "순종해야 한다."
• "영적으로 보면 네가 틀렸다." 등 이러한 말들로 사람을 통제하려 한다.
하나님의 권위를 사용해서 자기 영향력과 통제력을 확대하려 한다. 그 안에는 자유가 없고 규칙, 율법만 남는다. 그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이 없는 것처럼 여기고, 규칙을 아주 잘 지킨 사람만 더 특별하고 위대한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22. 그래서 영적 자아는 십자가 없는 영성을 좋아한다. 능력, 은사, 깨달음, 부흥, 황홀한 기도 등등 다 좋다. 그러나 자기부인, 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싫어한다. 내 옳음이 죽는 것도 싫고, 내 특별함이 내려놓아지는 것도 싫다. 내 통제와 탐욕이 그대로 실현되어 나타나야 믿음이라고 명명한다. 기다리고 견디지 못한다.
23. 진짜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알아갈수록 "나는 이런 사람이다."가 커지기보다 하나님이 더 커져야 한다. 나는 사라지고 하나님이 커져야 한다. 내 은사가 아니라, 하나님 내 깨달음이 아니라, 하나님 내 사역, 체험이 아니라, 하나님
1. 영적 자아가 죽어갈수록 사람은 특별해지기보다 평범해진다. "나는 영적이다."라는 자기확신도 하나님께 다루어져야 한다. 능력보다 동행 특별함보다 사랑 높아짐보다 낮아짐으로 간다.
2.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 소명도 내려놓으라 하시면 내려놓을 수 있는가? 진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선물과 하나님의 것보다 하나님을 더 붙들 수 없다. 선물은 감사히 받지만, 왕관으로 쓰면 안 된다.
3. 영적 자아는 하나님을 가지려고 하지만, 새사람은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다. 영적 자아는 하나님으로 내가 커지고 특별해지길 원하고 새사람은 내가 사라지고 하나님이 나타나길 원한다.
4. 그래서 영적 자아의 중요한 분별은 열매를 보는 것이다.
• 더 특별해지는가?
• 더 비교하는가?
• 더 통제하는가?
• 더 자기확신으로 강해지는가?
• 더 계급을 나누고 율법화되는가? 아니면, 더 낮아지고, 더 사랑하고, 더 순종하고, 하나님만으로 충분한가?
1. 나는 하나님을 원하는가? 하나님을 가지고 하나님마저 통제하길 원하는 '나'를 원하는가? 영적 자아는 믿음이 좋은 것처럼, 신앙적인 것처럼 스스로 속이고 많은 사람을 속인다. 그러나 그 안에는 믿음이 아니라 자기 왕관, 자기 영광만 남아 있을 뿐이다. 모든 거룩함은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다. 어떤 인간도 자격을 갖출 수 없고, 어떤 인간도 죄를 깨끗케 할 수 없다. 훈련시켜서 깨끗해지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깨끗해질 수 있다. 자신이 특별해지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예수님이 필요 없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서로 영광을 돌리니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사라진다. 믿음이 없으니 어떤 의와 거룩함도 없다. 영적 자아를 주의하고 조심하자. 오직 예수님께서만 나의 왕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