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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전쟁터 같다’
지난 4월 중순 이래, 팔레스타인 반전·평화, 이스라엘 보이콧 운동이 더 크고 빠르게 미국 대학가에 확산하고 있다.(관련 자료 그림 참조). 대학 당국과 경찰의 강경진압에도 전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가장 직접적인 도화선은 4월 18일 컬럼비아 대학에서 벌어진 대규모 학생 체포·연행 사태. 이후 시위와 농성 3주째 들어서는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동부 뉴욕, 남부의 텍사스와 플로리다에서 북부 미시간과 미네소타에 이르기까지, 참여대학이 급격하게 늘었다. 그리고 대학 농성은 이제 국경을 넘어 캐나다, 호주, 프랑스, 영국, 스페인, 멕시코, 터키, 튀니지, 그리고 일본까지 퍼지고 있다.
4월 18일부터 일주 단위로 정리한 대학가 시위 확산 양상. 4월 30일. 워싱턴포스트 자료 그림 인용.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반전 농성과 집회는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됐다. 경찰이 오기 전까지는…’이라는 대목이다. 4월 27일자 댈러스 신문이 전한 텍사스 주립대 오스틴 캠퍼스 상황이다. 하버드대 신문 크림슨 기자들의 4월 30일 농성장 취재기도 같았다. 5월 3일자 보스턴글로브 신문도 ‘경찰이 오기 전까지 농성은 평화적이었다’고 강조한 뉴햄프셔대 명예교수의 발언을 기사화했다.
상황이 그러함에도 대부분 대학은 농성이 시작되면 즉각 경찰투입을 요청하고, 경찰 역시 폭동진압 장비를 갖추고, 기마부대를 앞세우기도 하면서, 전투에 임하는 진압군처럼, 공격적으로 학생들을 몰아붙인다.(사진 참조). 에모리 대학에서 현장을 목격한 한 교수는 ‘마치 전쟁터 같다’라고 탄식했다. 미국의 대학과 경찰은 왜 이러는 것일까?
뉴욕의 컬럼비아와 몬트리올의 맥길 간의 극명한 차이
4월 17일, 학생들이 천막농성을 시작하자마자 컬럼비아대 총장은 경찰력 동원을 요청했다. 캠퍼스에 진입한 경찰은 1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을 체포했다. 그러자 더 많은 학생이 모였다. 학교는 29일까지 농성 중지와 농성장 철거를 요구했다. 학교의 징계가 시작됐고, 일부 학생들은 농성장을 해밀턴 홀이라는 건물로 옮겼다. 그곳은 68년 베트남 전쟁부터 85년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항의농성이 이어졌던, 대학 저항운동의 상징으로 알려진 건물이다. 다음날 새벽, 경찰 특수부대가 투입됐고, 농성 학생들은 쫓겨났으며, 200여 명 가까운 학생들이 체포됐다. 이후 총장은 15일로 예정된 졸업식을 포함, 교내 질서유지를 위해 17일까지 경찰의 계속 주둔을 요청했다.
4월 27일, 몬트리올 소재 맥길 대학에서도 학생들의 천막농성이 시작됐다. 학교 측은 경찰에 해산과 진압을 요청했다. 학생들의 반유대주의 언사와 공격적 행위가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그러자 몬트리올 경찰은 ‘아직 아무 범죄도 일어나지 않은 곳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라며 대학의 요청을 거부했다. 기다렸다는 듯 즉각 진입한 미국 경찰과는 전혀 달랐다. 한편 5월 1일, 퀘벡 법원은 일부 학생들이 제기한 천막농성 금지처분 신청을 각하했다. 소송에 참여한 학생과 교수들은 농성 참가 학생들의 행동과 천막이 교내 불안감을 조성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에서는 ‘사정이 긴박하다고 볼 이유가 없고, 학생들의 평화적 집회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라고 판결한 것.
물론 캐나다 대학의 상황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대학과 주 당국, 연방 정부 트뤼도 수상까지 나서서 캠퍼스 안전과 질서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나는 차이는 명백하다.
미국 주류사회 지배하는 친이스라엘주의라는 이데올로기
학생 농성에 대해 미국의 대학과 경찰은 과도하게 적대적이고 공격적이다. 지난 12월, 같은 사태로 쫓겨난 하버드, 펜실베이나 총장 사례가 교훈(?)이 됐을 수도 있고, 대학 지원 중단을 협박(?)하는 정치권에 몸을 사린 점도 있었을 것이다. 또 폭력적 대응을 의도적(?)으로 유발하고 무질서한 사태라는 점을 부각하면, 학생들에게 비난 여론이 쏠릴 것이라는 학교와 경찰의 계산도 있었음직하다.
그러나 좀 더 큰 틀에서 보면 이는 미국 주류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스라엘주의(Israelism)’라 불리는 친이스라엘 이데올로기의 반영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친이스라엘 국가다. 공화당, 민주당 가릴 것 없이 정부와 의회는 이스라엘과 궤를 같이한다. 주류언론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미국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스라엘의 개별 정치인이나 정책에 대해서는 찬·반이 있고,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지지율도 출렁일 수 있지만, 친이스라엘 이데올로기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때문에 미국은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과 행태, 역사적 정통성을 문제 삼는 국내외 운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확산을 통제한다.
이번 농성과 시위에서 학생들이 대학에 요구하는 핵심 사항은 이스라엘 BDS다. BDS란 Boycott, Divestment, Sanctions의 약자, 즉 이스라엘에 대한 투자 중지, 기존 투자철회, 그리고 여러 형태의 제재(예: 학교 협력관계 중단)를 의미한다. 즉, 대학의 이스라엘 관련 투자 포트폴리오를 투명하게 밝힐 것과 무기 생산을 포함, 전쟁으로 수익을 올리는 기업에 투자하지 말 것, 기존 투자를 철회할 것, 이스라엘 교육기관과의 협력을 취소 또는 중단할 것 등이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이 벌이는 ‘죽임에 대한 학교의 투자를 중단하라!(Divest from death!)’는 것이다. 이스라엘주의 입장에서 BDS는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전쟁’(2017년 하원의장 P. 라이언)이다. 이스라엘의 국가적 정당성을 부정하는(delegitimize) 반유대주의 행위다.
한 외교 전문가가 지적하듯, 지금 의회와 바이든 정부가 취하는 ‘닥치고 이스라엘 지원 정책은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반유대주의라는 명분으로 억압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민주주의를 침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지금 우리는 대학 캠퍼스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과 주류매체는 이스라엘의 보호막
이를 정치권과 주류매체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통령 바이든은 대학가 농성사태가 확산하자 22일, 이를 ‘반유대주의’ 행태라고 비난했다. 하원의장은 24일 컬럼비아 대학을 방문, “선동가들과 급진파들이 대학을 점령했다. 반유대주의라는 바이러스가 대학에 퍼지고 있다”라며 학생들을 비난했다. 함께 한 동료 공화당 의원은 “하마스의 지지를 받고 있다니, 여러분들 퍽 자랑스럽겠다”라며 농성 참여 학생들을 조롱하듯 비난했다. 의장은 나아가 대통령에게 군을 투입, 대학의 법과 질서를 바로잡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이라이트는 하원이 작년 12월, ‘반시온주의는 반유대주의’라는 결의안을 채택한 것, 그리고 지난 5월 1일, ‘반유대주의 금지법(Anti-semitism awareness act)’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비판 금지법, 우리 식으로 말하면 이스라엘을 위한 국가보안법이다. 사실, 주 단위에서는 이미 이스라엘 보이콧 금지법, 반유대주의 금지법이 시행 중이다. 이제 그 금지를 연방 차원으로 올리겠다는 뜻이다. ‘의회는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을 만들 수 없다’라고 규정한 헌법도 이스라엘주의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주류매체 역시 이런 정치권과 다르지 않다. 이들은 경찰이 오기 전까지 대학농성이 평화적이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대신 유대인에 대한 차별 발언이나 안전 문제, 외부인들의 참가나 활동 여부에 주목한다. 팔레스타인과 아랍인들에 대한 차별 발언이나 안전 문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해당 학교 학생 이외의 사람들은 ‘외부 선동가(outside agitators)’로 규정한다. 협박이나 공격, 증오 발언에 대한 사실 검증보다 주장을 더 열심히 전달한다. 시위나 농성 참여자가 대부분 학생인데도 외부의 선동을 계속 의심한다. 뜻을 같이하는 시민이 있을 수 있다는 상식적 판단보다는 농성사태가 불순분자의 작전일 수 있다는 음모설(?)을 부각한다. 폭력 주장에 대한 진실은 주류매체가 아니라 소셜 미디어가 드러낸다.
이는 이미 예정된 일이기도 하다. 미국 주류매체의 이스라엘 편향성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초 드러난 뉴욕타임스나 CNN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보도지침(coverage guidance)이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팔레스타인 기사에서 ‘학살(genocide), 인종청소(ethnic cleansing), 점령지(occupied territory)라는 용어를 피하라’는 것이 타임스의 지침이라면, ‘하마스의 대량 살상, 인질 납치 공격을 항상 강조’하고 사상자 규모를 언급할 때도, ‘이 수치는 하마스 보건부의 발표’라는 점을 반드시 곁들이라고 한 것은 CNN의 지침이다. 이런 친이스라엘 편향성은 농성사태 보도에도 그대로 이입된다. 젊은 대학생들이 기성 언론을 의회, 군과 함께 가장 불신하는 세 기관 중 하나로 인식하는 배경이다.
대학과 경찰, 정치권과 언론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너희들은 반유대주의자’라는 것이다. 한국식으로 하면 ‘너희들은 빨갱이’라고 낙인찍는 일이다.
4월 19일, 유대인 단체 Anti-defamation League 대표 J. 그린블랫 MSNBC 방송: ‘대학 농성 주도단체는 헤즈볼라와 같은 이란의 대리조직’. 4월 29일, 폭스뉴스 진행자 M. 레빈: ‘대학 농성 참가자는 히틀러 유겐트’. 4월 30일, 클린턴 정부 재무장관 L. 서머스 X(트위터) 멘션: ‘대학 내의 팔레스타인 깃발 그 자체가 반유대주의 테러를 의미’. 같은 날, 공화당 의원 N. 말리오타키스: ‘반유대주의 행위를 막지 못하는 대학에 정부 지원 중단법 만들 것’.
더 적나라한 것도 있다. 농성을 주도하거나 참여하는 학생들에 대한 신상털기,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과 친척의 연락처까지 온라인으로 공개하기, 그렇게 해서 온갖 협박 유도하기. 이들을 취업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공유하기 등등. 심지어 해당 리스트에 오른 학생들에게 고용금지 조처를 공언하는 기업도 있고, 학생들 움직임에 강경하게 대응치 않는다면 약정 후원금을 내지 않겠다고 대학에 통보하는 부호들도 있다.
‘반유대주의’라는 형틀로 미래의 주역인 청년들을 옥죄는 미국. 미국은 지금 자신의 미래를 옥죄고 있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