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출신 낭만주의 화가 "J.M. 윌리엄 터너(J.M. William Turner,1775 ~ 1851)"의 1805년 작품 "난파선(The Shipwreck)". 이 그림은 초기 작품으로 터너는 낭만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아 자연계 특히 바다와 풍경에 집중하기 시작했으며 또한 옅은 물감이 수채화로 짙은 유화의 표현력을 이끌어내는 등 다양한 기법을 자유재자로 활용하였다. 터너는 10살이 넘어서부터 돈을 받고 작품을 팔 정도로 그림 신동이었지만 작은 키에 볼품없던 외모로 열등감의 소유자였다. 18살때는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불행을 겪기도 했으나 1796년 왕립아카데미 전시회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터너의 얼굴은 매일 바깥 풍경을 관찰하느라 언제나 붉었으며 예술에 방해될까봐 결혼도 하지 않았다. 60살이 넘은 터너는 폭풍을 체험하기 위해 선장에게 자신을 돛대에 묶어달라고 요청하여 4시간동안 직접 폭풍을 체험하였는데 그 이유는 폭풍이 치는 바다를 현실감 있도록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단 한명의 가족이었던 아버지가 사망하자 다른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고 가명을 쓰기도 하다 76살의 나이로 사망한다. 평생 빛과 색채에 대한 고민을 했던 터너는 유언으로 "태양은 신이다"라는 말을 남겼으며 자신의 작품을 국가에 기증하였다. 현재 영국 20파운드 지폐에는 윌리엄 터너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을 정도로 존경받는 화가이며 그의 작품 "전함 테메레어의 마지막 항해(The Fighting Temeraire tugged to her last Berth to be broken up)"는 영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가 되었다.
"J.M. 윌리엄 터너(J.M. William Turner,1775 ~ 1851)"의 1799년 작품 "자화상(Self-Portrait)". 작가가 24살때 그린 그림인데 실제로 인물과 외모는 형편이 없어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 출신 "요셉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1835년 작품 "불타는 국회의사당(The Burning of the Houses of Lords and Commons, October 16, 1834, 국회의사당 화재)". 이 그림은 1834년 런던 화재때 불탄 국회의사당을 그린 그림이다. 터너는 화재 당시 배를 템즈강에 띄우고 현실감 있는 그림을 위해 화재현장을 관찰했다고 한다.
영국 출신 "요셉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1839년 작품 "전함 테메레어의 마지막 항해(The Fighting Temeraire tugged to her last Berth to be broken up)". 이 그림은 수명을 다한 전함 "테메레어호"를 해체하기 위해 예인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영국 출신 "요셉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1845년 작품 "노엄성의 일출(Norham Castle, Sunrise)". 모네가 그린 "인상 해돋이"를 연상케 하는 그림이다. 당시 터너의 작품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후에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