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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독서클럽♥ 책으로 만나는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예쁜글씨
국제금융가 김동진의 한국의 문명화에 헌신한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 1886년 조선 제풀포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20여 년간 한국에서 살면서 교육자, 한글학자, 역사학자, 선교사, 그리고 독립운동가로서 한국의 문명화를 위해 헌신한 헐버트의 일생을 다룬 평전이다. 한국에 대한 사랑을 품고서 일본에 맞서 고종 황제의 밀사로 활약을 펼친 헐버트가 노래하는 구한말의 대서사시를 듣게 된다. 세계에 한글의 우수성을 소개할 뿐 아니라, 아리랑을 채보하는 등의 일화도 담아냈다. 특히 1905년 을사늑약을 저지하고자 미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고종 황제의 친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는 등 헐버트가 조선의 독립을 위해 미국에서 펼친 활동을 세세하게 밝히고 있다.
목차
출판사 서평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황제의 밀사
헐버트(Homer B. Hulbert)가 노래한 구한말의 대서사시
- 전기(傳記)이자 역사서요 교양서
일본이 탈취해 간 고종 황제 내탕금의 전모를 최초로 밝힌다.
헐버트(Homer B. Hulbert)란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문 역사가들마저도 헐버트의 참모습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책은 조선의 개화 물결 속에서, 그리고 구한말 우리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과정에서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문명화의 선구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미국인 헐버트(1863-1949)의 일생을 다룬 일대기이자 역사서이며, 교양서이다.
헐버트는, 조선 정부가 최초로 설립한 서양식 교육 기관인 ‘육영공원(育英公院)’의 교사가 되기 위해 1886년 7월 4일 조선 땅 제물포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20여 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교육자, 한글학자, 역사학자, 언론인, 선교사, 독립운동가로서 한국의 문명화와 주권 수호를 위해 크게 헌신하였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 파견 사건 이후 일제의 박해로 미국으로 돌아간 헐버트는 미국에서 서재필, 이승만 등과 함께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1949년 광복절을 기해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을 받고 한국에 환국한 지 일주일만인 1949년 8월 5일 청량리 위생병원에서 서거했다. 그는 생전에 《AP 통신》 기자에게 말한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라는 소원대로 현재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혀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헐버트 서거 다음 해인 1950년 3월 1일 그에게 건국공로훈장 태극장을 추서하였다.
한국의 문명화와 한국학 개척에 기여
- 선교사
헐버트는 1893년 감리교 선교사가 되면서 감리교 출판부인 삼문출판사를 책임 맡았다. 그는 동대문교회 담임목사를 지냈으며 노량진교회의 설립 예배를 인도하였다. 그는 아펜젤러, 언더우드를 도와 우리나라 개신교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1887년 언더우드와 함께 우리나라 개신교 최초의 세례를 행하였다.
- 우리나라 근대 교육의 초석을 놓은 위대한 교육자
헐버트는 조선에 도착하자마자 교육을 조선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그는 육영공원 교사, 한성사범학교 교장, 관립중학교(현 경기고등학교 전신) 교사 등을 역임하면서 교과서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등 우리나라 근대 교육의 초석을 놓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이 주권을 빼앗기자 ‘한국의 살길은 교육뿐’이라며 한국인들에게 교육에 전념하여 나라의 주권을 되찾을 것을 호소했다. 헐버트는 또 학교교육을 넘어 모든 백성이 골고루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국민교육을 주창하였다. 그는 1903년 YMCA 창립총회 의장으로서 YMCA 탄생의 주역이었다.
- 한글학자이자 한글 사랑의 표상
헐버트는 1889년 지리, 사회 총서인 《사민필지》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 한글 교과서를 저술하여 육영공원에서 교재로 썼다. 그는 한글을 현존하는 문자 가운데 가장 우수한 문자 중의 하나라고 정의하였으며, 또한 조선인들에게 어려운 한자 대신 쓰기 쉬운 한글을 애용할 것을 주창했다. 그는 1892년 <한글(The Korean Alphabet)>이라는 논문을 필두로 한글에 관한 수많은 논문을 발표하였고,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인류사에 빛나는 업적으로 보았다. 그는 또 1세기 훨씬 전부터 국제적인 신문 및 학술지에 한글의 우수성을 소개하였다.
- 민족 혼 아리랑을 최초로 채보
헐버트는 1896년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아리랑을 우리나라 최초로 채보(採譜)하여 논문으로 발표함으로써 아리랑이 오늘날 세계의 노래가 되는 단초를 열었다. 그는 ‘아리랑은 한국인들에게는 쌀과 같은 존재다.’라며 아리랑에 대한 한국인들의 정서를 정확히 파악했다. 아울러 그는 군밤타령도 오선지에 채보하여 발표함으로써 우리나라 음악사에 양악보 시대를 가져오면서, 전래 민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독립운동가로서의 활동
- 고종의 침전에서 불침번을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헐버트는 언더우드 등과 함께 시해 위협에 시달리던 고종을 보호하기 위해 고종의 침전에서 불침번을 섰다. 이 책은 1895년 11월 27일 춘생문 사건 당일 헐버트 일행이 고종을 보호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새로운 역사 기록이라 할 수 있다.
- 을사늑약 저지를 위한 고종 황제의 대미 특사
고종 황제는 1905년 을사늑약을 저지코자, 미국의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자신의 친서를 전달하는 특사로 헐버트를 임명하였다. 헐버트는 1905년 11월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 조야에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따라 미국이 일본의 보호 통치 음모를 저지시켜 줄 것과 일본의 침략주의를 막아달라고 호소하였다. 이 책은 헐버트의 미국에서의 활동을 우리나라 최초로 세세하게 밝혔으며, 당시 고종 황제가 을사늑약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 일본의 횡포에 맞서는 헐버트
헐버트는 러·일 전쟁 직후 박해받는 한국인들을 위해 일본에 대항하였으며,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에게 부동산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헐버트에게 부동산 등기문서를 들고 와 헐버트 명의로 이전해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헐버트는 이토 히로부미 통감에게 한국인들에게 공정한 재판이 보장되면 자신은 일본 비난을 중지하겠다고 타협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1907년 일본 궁내부 대신이 우리나라 국보인 개성 부근에 있는 경천사 10층 석탑을 고종 황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탈취해가자 헐버트는 현장에 가서 사진을 찍어 국제적 신문에 고발하며 석탑 반환을 촉구하였다. 후일 석탑은 돌아왔으며 현재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세워져 있다.
- 미국에서 서재필, 이승만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계속
헐버트는 1907년 여름 일본의 박해로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면서 한국인들을 격려하고, 국제적으로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면서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독립운동을 계속적으로 이어갔다. 이 책은 헐버트가 3·1 만세운동 직후인 1919년 8월 <한국을 어찌할 것입니까?(What about Korea?)>라는 제목의 진술서를 미국 상원에 제출하면서 일본의 잔학상을 고발하고,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였음을 최초로 밝히고 있다. 헐버트는 이 진술서를 위해 공증까지 하였다. 저자는 이에 대한 자료를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입수하여 이 책에서 사진과 함께 제시했다.
일제가 탈취해 간 고종 황제
내탕금을 돌려받아 고종 황제의
100년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
이 책은 1903년 고종 황제가 상하이에 있는 덕화은행(독일계 은행)에 독일화 510,000마르크를 금괴와 일본 엔 화로 예치하였으며 이 돈을 1908년 일본이 탈취해갔음을 우리나라 최초로 밝혔다. 이 돈은 당시 대한제국의 총세입의 1.5%나 되는 돈이다. 오늘날의 가치는 연리 10%로 100년을 계산하면 약 2조원이 된다. 국제금융인인 저자는 이 책에서 덕화은행장이 써준 예치금 영수증, 통감부 외무총장이 독일 측으로부터 돈을 받고 써준 영수증 등 실체적 증거를 제시하며 내탕금의 예치 과정, 고종 황제가 헐버트에게 내탕금을 찾아오라고 위임하는 경위, 일본이 예치금을 탈취하는 과정, 헐버트의 내탕금을 찾으려는 분투, 해방 후 우리 정부가 이 사실을 헐버트로부터 접하고 취한 행동 등을 소상하게 밝혔다. 40년 동안 이 돈을 찾으려고 동서분주한 헐버트는 생전에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국은 이자까지 합쳐서 꼭 돈을 받아내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저자는 CEO 출신답게 증거 자료와 함께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세밀하게 파헤쳐 내탕금 문제의 모든 의문점을 해소하였다. 지은이는 내탕금에 대한 근거 없는 여러 설을 일축하며 이 문제를 흥밋거리로 보아서는 아니 되며, 민족정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이기도 한 저자는 이 문제는 새로운 한·일 문제로서 헐버트가 소원한대로 이자까지 합쳐서 돌려받아야 하며 경술국치 백년을 맞아 고종황제와 헐버트의 100년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이 문제에 대해 김영일 광복회장과 김삼열 (사)독립유공자유족회장과 협의하였으며 두 분은 일본이 탈취해 간 내탕금에 대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면서 소송을 해서라도 기필코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응모방법: 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를 적어주세요.
◆ 모집 기간 : 11월 5일 ~11월 11일
◆ 모집 인원 : 10명
◆ 발표일 :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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